2020년 2월 2일 주님봉헌축일 (봉헌 생활의 날)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냅니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합니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습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2020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문(2020년 2월 2일)
2019년 성탄을 전후해서 경북 상주시 모동면에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 수도원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의 수도원 봉쇄 구역 안에서, 자신들 역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세상과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며 침묵과 고독 속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모습이 신선하였습니다. 봉쇄 규정이 구속이 아니라 한 영혼을 진정으로 성숙시켜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기도가 진정으로 그들의 일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발적인 포기와 투신의 삶이 화면을 통해 조용히 전달되어 왔으므로 그 수도자들의 절제된 음식과 구멍 난 양말, 단순한 삶은 전혀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고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매년 2월 2일 교회는 ‘축성 생활의 날’을 지내며 세상 곳곳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이 사셨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축성(봉헌) 생활자들을 기억합니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제정된 이래,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합니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2019년 12월 2일 회의에서 기존에 ‘봉헌 생활’로 번역하던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도록 결정하고, ‘봉헌 생활의 날’ 역시 ‘축성 생활의 날’로 변경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축성 생활’이라는 용어는 이 삶이 단지 깊은 영적 체험을 갈망하는 신자들이 스스로의 봉헌을 통하여 이러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생활로 불러주시고,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하며, 참된 형제애/자매애를 드러내고, 이러한 친교와 사랑의 바탕 위에 교회와 세상을 위해 봉사할 사명을 부여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최된 일련의 세계 주교 시노드는 평신도(1987년)와 사제(1990년)와 수도자(1994년)에 대하여 깊이 토론하였으며, “예수님께서 당신 교회를 위하여 바라셨던 삶의 신원들을 특징짓는 특수성들을 다루는 작업을 완성합니다”(「축성 생활」, 4항 참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축성된 이들이며, 하느님 백성의 세 가지 신분은 가장 기초가 되고 본질적인 세례성사의 축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이 갖는 신분의 특수성은 세례성사를 통한 이 축성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하고, 신앙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은사의 다양성은 성령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 봉쇄된 공간 안에서 기도에 일생을 바치는 하느님의 자녀들과, 세상 안에서 살아가며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이들, 복음적 권고를 따라 살기를 공적으로 약속한 이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에서 펴낸 「한국천주교회 2020」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다양한 사목 지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계를 통해 신자 수의 증감, 미사 참례율, 영세자 수, 사제 신학생 수도자 수의 증감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남자 수도자 수는 20년 전에 비해 36% 가량 증가하였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정체를 보이고 있고, 여자 수도자 수는 20년 전에 비해 18% 가량 증가하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로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숫자는 200%가 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소자와 사도직의 감소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결코 축성 생활의 복음적 생명력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축성 생활은 언제나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그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축성 생활은 창조자이신 성령의 변함없는 인도 아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갈라놓을 수 없는 일치의 빛나는 증언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축성 생활의 실제적인 붕괴를 막아야 합니다. 성소자의 감소로 평가되는 붕괴가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뢰와 개인 소명과 사명의 흔들림에서 오는 붕괴 말입니다. 축성된 사람들은 축성생활에 충실함으로써 역사의 주님께 대한 그들의 확고한 신뢰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힘차게 고백합니다”(「축성 생활」, 63항 참조).
친애하는 평신도 형제자매 여러분, 존경하는 성직자 여러분, 경애하는 주교님,
축성 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은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며, 복음적 삶을 증거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각 신분간의 협력은 교회를 더욱 더 풍요롭게 하고, 다양한 은사들이 피어날 수 있는 터전이 되게 합니다. 창립자의 은사에 뿌리를 내리고 교회와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모든 축성 생활회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며, 순례하는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 2월 2일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박 현 동 블라시오 아빠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