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거면 사직서 써!” 해고일까 아닐까… 이런 분쟁 3년 간 늘었다
올해 1∼8월까지 분쟁 3222건… 근로자 권리의식 높아지며 증가
‘해고여부 다툼’ 25.8%로 최대치… 중노위, ‘직장인 고충 솔루션’ 운영
협약 맺은 사업장에 분쟁 발생 땐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해결 도와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게 가고 싶으면 그만두고 집에 가세요.”
회사 대표가 근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이건 해고에 해당할까, 그렇지 않을까. 지난해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A 씨는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듣고 곧장 회사에서 나와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비가 내려 야외 설치작업이 어려워지자 작업반장은 “오늘은 작업을 그만하자”며 작업장을 먼저 나갔다. A 씨도 뒤따라 퇴근하려 하자 대표가 “오후에는 작업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지시했다.
A 씨는 “비가 많이 와서 작업이 어렵고 작업반장도 없으니 퇴근하겠다”며 대표와 언쟁을 벌였다. 말다툼 끝에 대표가 “그렇게 집에 가고 싶으면 그만두고 가라”고 하자 A 씨는 이를 해고로 받아들인 것이다. A 씨는 관할 노동위원회에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 “해고 맞나요?” 다투는 분쟁 증가
최근 근로자와 사용자가 해고 여부를 다투는 분쟁이 늘고 있다. 27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노동위에 접수된 해고 분쟁 사건은 3222건이었다. 이 가운데 해고가 맞는지를 다투는 ‘해고 존부’ 사건이 25.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징계로 인한 해고가 적절했는지를 다투는 사건(징계 해고)의 비중이 23.4%로 많았다. 지난해(4601건)에는 ‘징계 해고’ 사건의 비중이 27.0%로 ‘해고 존부’ 사건(21.5%)보다 컸는데, 올해 역전된 것이다.
‘해고 존부’ 사건의 비중은 2021년 15.0%에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해고가 맞는지 다투는 분쟁이 많아지는 건 이에 대한 근로자와 사용자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회사 대표가 직원에게 “이렇게 일하라면 사직서를 쓰라”고 말한 것을 두고 대표는 “직원의 근무 태도를 바로잡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는 반면 직원은 해고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앞서 A 씨의 사례에 대해 노동위는 회사가 A 씨를 해고한 것은 아니라고 최종 판정했다. 당시 대표의 발언은 근로자의 퇴근 요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고, 먼저 나간 작업반장의 경우 미리 대표에게 외출 허락을 받은 데다 오후에 다시 복귀한 점 등이 고려된 것이다. 결국 A 씨는 해고가 아닌 자진 퇴사로 처리됐다.
사용자가 해고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경우도 종종 분쟁으로 이어진다. 한 서비스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B 씨는 다른 동료와 함께 영업이사에게 불려갔다. 당시 회사 대표는 영업 악화로 매출이 감소하자 내부 회의에서 자주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토로하곤 했다. 영업이사는 “회사가 (매출 악화로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며 “나갈 사람이 정해지면 한 달 치 월급을 더 줄 테니 두 분이 얘기를 잘 해보라”고 말했다.
B 씨는 동료와 상의한 끝에 자신이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회사에 서면으로 ‘해고 통지’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표는 자신이 해고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B 씨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받은 노동위는 대표가 B 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인정했다.
● 근로자 권리의식 높아져 문제 제기↑
전체 해고 관련 분쟁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21년 4246건에서 2022년 4601건으로 8.4%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 3222건이 접수돼 연말까지 지난해 연간 건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노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근로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해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분쟁에 비해 직장을 잃어버리는 해고 관련 분쟁은 근로자들이 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중노위는 올해 9월부터 해고를 포함해 직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직장인 고충 솔루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동위와 협약을 맺은 사업장에 관련 분쟁이나 고충이 발생하면 전문가가 찾아가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돕는 제도다.
중노위 측은 해고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근로자가 처음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 내용을 꼼꼼하게 챙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해고를 다툴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사용자에게 해고의 의사가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용자도 직원을 해고하기 전에 관련 규정에 따라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등을 잘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고 존부(存否)
해고가 맞는지 여부를 다투는 사건.
주애진 기자
“조기 출근 강요에 점심값도 안 줘”… 금융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눈물
고용부, 비정규직 차별 감독 결과
불합리한 차별 등 총 62건 적발
정규직과 상여금에 차등 두기도
은행에서 보증서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단시간 근로자 A 씨는 월 20만 원의 식대와 월 10만 원의 교통비를 지급받지 못했다. 한 증권사에서 육아휴직 대체근로자로 일하는 B 씨는 지난 추석 당시 회사로부터 명절 귀성비 60만 원을 받지 못했다. A 씨와 B 씨가 식대와 교통비, 상여금을 받지 못한 건 이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해소를 위한 금융업 간담회’에서 이 같은 비정규직 차별 기획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부는 2월부터 지난달까지 은행 5곳, 증권사 5곳, 보험사 4곳 등 총 14곳을 감독했다. 이 중 12곳에서 시간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대우(7건·21억6000만 원), 연차 미사용 수당 및 연장근로수당 등 금품 미지급(12건·4억 원), 모성보호 위반(7건) 등 법 위반사항 총 62건을 적발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한 은행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게 정규 출근 시간 10분 전에 출근하도록 강요했다. C증권사의 경우 상여금 수령 금액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차등을 뒀다. 여러 은행, 증권사에서 최저임금 미달, 임신근로자에 대한 시간 외 근로 등 기본적인 노동권리를 침해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 국내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는 812만 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7%를 차지한다. 고용 형태 역시 기간제, 파견, 용역 등으로 다양하다. 고령화 등을 이유로 앞으로도 다양한 고용 형태가 생겨날 것으로 보이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근로환경 차이가 극명한 이중 구조는 금융업에서도 만연한 것이다.
고용부는 위반사항에 대해 시정지시를 내렸다. 근로계약서 내 임금, 휴가 등 필수 기재사항을 누락한 업체에는 과태료도 부과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얼마 전 취업포털기관 설문에서 취업준비생이 취업하고 싶은 곳 1위로 금융업이 선정됐는데, 그 이유가 ‘직원 복지가 우수할 것 같아서’였다”며 “금융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은 만큼 그에 부응하기 위한 책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정규직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근로감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공정한 대우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