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 대한 정세 판단은 붕괴론과 개혁개방론을 오락가락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조만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이 풍미했다. 이는 다가올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와 연결됐다. 2000년대 초반엔 북한이 곧 개혁개방에 진입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이 논리를 내세운 이들은 한국의 포용정책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탄력을 줄 것이며, 그러면 북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북한은 이미 개혁개방을 했다는 식의 판단이 주류가 됐다.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주요 정책 사업 중 하나였다. 아울러 북한 개혁개방에 따른 남북경협의 확대는 한국 경제에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여겨졌다. 2000년대 말에 들어서자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재차 주류가 됐다. 김정일 와병과 권력승계 문제 때문이었다. 통일 준비는 당면 정책과제로 다뤄졌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 년 동안의 이러한 정세판단은 하나같이 정확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북한은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크게 변화했지만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러한 판단 실패를 지속했을까. 첫째, ‘붕괴’냐 ‘개혁개방’이냐의 이분법(二分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새로운 생존 조건에 직면해 적응하고 변화했다. 다시 말해 구체제는 ‘붕괴’했지만, 정권은 살아남았다. 아울러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은 채로도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재 북한 상황이다. 둘째, 지난 20여 년간 정세 판단의 주된 방향이 한국의 집권 정치세력의 성격과 연동해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의 정치세력이 자기 입맛대로 만든 북한정세판단이었다는 말이다. 사실 정세 판단을 기초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지, 정책목표에 맞춰 정세 판단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20년 동안 한국 집권정부가 북한 관련 지식의 생산과 유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정부교체 때마다 붕괴론 또는 개혁개방론의 어느 한쪽으로 쏠림이 심했다. 정세 판단의 쏠림이 심할수록, 그에 비례해 정책도 크게 실패했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북한은 개혁개방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에 붕괴하기 어려우며, 역으로 붕괴하기 어려운 이유로 개혁개방하기 어렵다’. 세 가지 이유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 첫째, 정치 차원에서 개인 독재와 일당 구조. 둘째, 경제 차원에서 독재의 경제논리와 외화벌이를 통한 정권 재정 확충. 셋째, 사회적 차원에서 공안기관의 강화 및 공개총살과 같은 ‘본보기 폭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독재정권에는 다양한 양태가 있다. 역사를 보면 양태에 따라 내구성이 달랐다. 독재정권의 내구성이 특히 강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독재자가 주변의 엘리트를 확고하게 장악하면서 동료가 아니라 부하로 부리는 경우다. 둘째, 정권이 단일 정당을 매개로 주민을 선별적으로 포섭하는 경우(co-optation)다. 북한은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흔하지 않은 사례다. . 미국의 정치학자 밀란 스볼릭(Milan W. Svolik)에 따르면 1946년부터 2008년까지 하루라도 권력을 잡았다가 비헌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상실한 지도자는 303명이다. 그 가운데 205명의 독재자, 즉 전체의 3분의 2가 정권 이너서클 내부자(內部者)에 의해 제거됐다. 대중봉기나 민주화 압력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 경우는 62명으로 5분의 1에 그친다. 나머지는 암살 혹은 외국의 간섭에 의해 제거됐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독재자에게 1차적 경계 대상은 바로 주변의 엘리트다. 독재자는 엘리트가 역모하지 않고 협조하도록 포섭해야 한다. 독재자와 엘리트 간의 관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비확고한 독재(contested autocracy)와 확고한 독재(established autocracy)다. 비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공산정권에서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다. 이 경우 독재자와 동맹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며, 독재자가 엘리트의 역모에 의해 제거당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김정일 등이다. 이 경우 독재자가 행사하는 권력이 주변 엘리트 전체가 행사하는 권력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주변 엘리트가 단결해 역모를 꾸며도 독재자를 이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장수한 독재자일수록 확고한 독재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와 같은 독재자가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권력을 잃더라도 그것은 이너서클 엘리트의 역모와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자연사, 대중봉기, 외국의 간섭 등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일반적으로 독재정권 정변에서 대중 봉기나 외국의 간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확고한 독재, 또는 북한식 ‘수령제’는 일반적인 독재에 비해 불안정해질 확률이 5분 1에 그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내구성이 강화된 또 다른 이유는 일당독재 체계를 바탕으로 정권이 주민집단을 선별적으로 포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당 체제가 가진 조직상의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 북한은 우선 당원(黨員)이 되어야 한다. 초급 당원을 지나 고급 당원이 돼야 누리는 이득을 누리는 식으로 봉사와 이득을 위계적, 순차적으로 배정했다. 이렇게 되면, 상급 당원이 될수록 현존 정권의 영속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북한은 또 당원인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책의 숫자를 늘렸다. 이를 통해 당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 당원과 현존 정권의 운명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높였다. 북한은 독재국가 중에서도 유별나게 거의 모든 간부의 직책 임명을 당적(黨籍)으로 통제한다. 또한 북한은 주민집단을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등급화하고 그에 상응하게 공공재 배분을 차별했다. 독재에는 독특한 경제논리, 즉 독재의 경제논리가 있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면 소수의 충성집단에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독재자는 다수 주민으로부터 경제잉여를 추출해 핵심 지지 집단에 재분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경제성장이나 주민복지를 희생해야 가능하다. 통치집단 구성원의 충성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잉여를 확보하고 배분할 수 있다면 경제가 침체하더라도 독재정권은 위협받지 않는다. 또한 독재 국가에서 독재자-엘리트-주민 사이의 권력 배분 상태는 경제잉여의 배분 상태와 대체로 일치한다. 만약 어떤 그룹이 자신의 상대적 권력에 비해 너무 작은 이득을 얻을 경우 이 그룹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이득 배분 상태를 바꾸고자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집중도가 심할수록 기회와 재화가 권력집단에 집중된다. 북한에서 독재의 경제논리는 1990년대 경제난을 거치면서 변모했다. 국가의 중앙재정이 붕괴하면서 독재자와 국가는 과거처럼 계획 및 배급체계를 직접 활용해 정권 핵심 집단에 경제적 특혜를 배분하는 방식에서 한계에 직면했다. 물론 계획과 배급은 완전히 철폐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두 가지 장치가 추가로 동원됐다. 하나는 특권적 사업권을 배분해 정권 기관 운영 및 충성 집단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광물 수출이나 원조 유입과 같은 외래 수입을 증가시켜 투자와 생산을 하지 않고서도 정권 유지 자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특권적 사업권 배분을 보자. 김정일은 당·군 및 보안 관련 주요 기관처럼 정권유지를 위해 불가결한 특수기관에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을 배분했다. 이들은 분야별 독점 무역권을 바탕으로 상업적 활동을 전개해 독과점 이윤을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이윤은 해당 기관의 운영자금, 간부의 부정 축재 및 종업원의 소비 특권 유지, 그리고 김정일에게 건네는 ‘충성자금’ 상납에 사용된다. 북한에서 이러한 체계를 수립한 선구자는 다름 아닌 1970년대 후계 추진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분배하는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은 각종 기관과 집단이 정권 유지에 얼마나 긴요한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분됐다. 1995년 이후 선군(先軍) 정치 시대에는 군대가 정권 유지에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대두하면서, 가장 많은 특혜를 차지했다. 2009년 이래 김정은 후계 체제 수립 과정은 장성택 최용해 등의 당료 그룹을 새로운 주류로 등장시켰고, 이에 상응한 이권 재배분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이처럼 북한 정권의 재정체계는 조세수입이 아니라 특권기관의 ‘자체 벌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자금 확보와 상납(충성자금)에 의존하는 체계로 점차 진화했다. 이러한 재정체계는 다차원적으로 불투명한데, 그 불투명성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경제구조 자체가 부익부빈익빈을 촉진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독재자가 가장 큰 재력가가 되고, 개별적 특권 기관과 그 연루 집단은 부유하지만, 국가재정은 영속적으로 붕괴 상태가 지속된다. 국가재정 붕괴는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공공재 공급 기능이 소멸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평양은 흥성하지만, 국가의 공적 기능은 마비되고 인민경제 전반은 계속적으로 정체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경제 체제에서 시장 확대는 정권기관이 영토 내의 부를 정권 유지 자금으로 동원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 기능을 한다. 독재자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배분한 독점적 사업권, 주로 무역권을 기초로 정권 기관들은 ‘무역회사’를 설립해 상업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들이 북한의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지배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북한에서 ‘무역회사’는 권력기관의 자회사(子會社)로서, 정치권력의 배려에 의해 독과점의 특혜와 초과이윤을 보장받고, 정권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에 궁극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정치·경제 단위다. 정권기관의 무역회사들은 시장의 상층구조를 형성하며 상업적 유통 및 직접 생산의 하부구조를 직접 지배하거나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적 활동과 행위자를 포섭해 하부 구성 요소로서 종사시켰다.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관련 부서가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밑에 큰 ‘돈주’들이 있고, 그 아래 몇 단계를 거쳐 맨 밑바닥에 소매 장사와 원천 생산자가 존재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도 정권 유지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의 외래지대(地代) 유입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보자. 독재자가 경제적으로 당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앞서 서술한 독재의 경제논리 때문에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독재자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정책을 취하고자 한다면 특권기관에 제공한 독점권 배분 철폐, 각종 크고 작은 관료적 인허가의 폐지, 재산권 보장과 계약 준수 보장 같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독재의 경제논리를 지탱하는 구조와 조치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독재정권의 존속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독재자는 내부 생산성 증가 없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특히 외환을 조달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자원수출과 원조유입이다. 이처럼 내부 경제의 생산성이 아니라 자원수출과 원조유입 등에 의해 지탱되는 국가를 외래지대 의존 국가(rentier state)라고 한다. 여기서 지대란 석유처럼 ‘자연의 선물로부터 벌어들인 수출 또는 획득된 소득’ 또는 ‘비생산적 경제행위를 통해 자산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기회’라는 뜻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래 외래지대 의존 국가의 길을 밟아왔다. 최근의 외래지대 추세를 보면 이렇다. 2010년 이래 북한에서 ‘원자재 지대’, 그러니까 원자재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에 달한다(석탄 50%, 기타 광물, 가공도가 낮은 광물 상품 및 농수산물 등 1차산업 상품 포함). 나진 선봉 및 청진 등 항만을 중국 또는 러시아에 임대하고 받은 임대수입,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 가는 가스관을 설치하고 통과 수입을 확보하는 계획 추진,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관광 진흥 정책, 한국과 인접한 개성에 경제특구 설치 등은 ‘위치 지대’다. 중국의 대북 원조, 한국의 ‘평화보장’을 위한 대북 원조,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외교적 활용을 통해 확보한 원조는 ‘전략적 지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다루었듯 북한의 독재는 정치적, 경제적 구성에 있어 다른 국가의 경우보다 강한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덧붙여 지적해야 할 것으로는 정치변동 주체의 부재와 정권의 강압능력 강화 등이 있다. 1990년대 재앙적 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국내 정치의 동요 없이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내 정치 행위자 분포의 특징 때문이다. 독재정권에서 등장 가능한 정치행위자로는 정권 강경파, 정권 온건파, 온건 야당과 급진 야당이 있는데, 이 중에서 1990년대 현실적으로 북한에 존재했던 것은 정권 강경파뿐이었다. 따라서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는 위기가 도래했는데도 정권 강경파는 시간을 벌면서 재(再)안정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아울러 김정일은 정권 재편을 통해 노골적 강압기구인 군부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또한 급작스레 악화된 경제난으로 마비에 빠진 당 기구와 국가 기구를 대신해 1995년부터 핵심 무력기구인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설정하고 선군정치를 시작했다. 또한 무자비한 탄압 과 공안기구의 대대적 강화에 나섰다. 무자비한 탄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공개처형이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공개처형의 빈도수는 1990년대 초부터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1995년이 되면 122회로 전년 대비 2.5배 증가하며, 1996년에는 227회로 다시 1.9배 증가하고, 1997년 229회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1998년 151회로 0.7배 감소하고, 1999년 93회로 0.6배, 2000년에는 90회, 2001년은 42회로 계속 감소한다. 이후 2000년대에는 대체로 약간 줄어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개처형 숫자로만 보면 북한의 내부 위기는 1995~1998년에 정점에 달했으며, 2001년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에서 그다지 변화된 것이 없다. 김정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는 해도 김정은은 절대적 독재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사는 망해도 소유주는 흥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기득권 집단은 20여 년 동안 국가의 공공기능이 붕괴하고 인민경제가 침체한 것을 바탕으로 치부하고 흥성했다. 기득권 집단의 개인은 참담한 북한 현실을 대체로 잘 알고 있고, 유감스러운 생각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기득 이권을 위협할 만큼 현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은 엘리트 내부의 권력 균형이 깨지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기 전에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습 정권인 김정은 정권에서 당분간 내부 정치 변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북한은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은 북한일 것이다. (이 글은 한국 통일연구원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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