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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지애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뒤를 졸졸 따르는 남학생의 무리들이 보였다. 지애의 손엔 또 어제처럼 예쁜 색깔의 편지봉투 몇 장과 꽃 세 송이가 있었다. 다만 굳이 어제와 다른 점 몇 가지를 꼽자면 어제보단 꽃 한 송이가 부족하고 대신 육안으로만 봐도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향수병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애의 인기에 다른 여자아이들의 반응은 꼭 질투를 보인다거나 시기심을 드러낸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들도 약간은 놀랍고 심지어는 신기해하는 눈초리였다.
오늘에서야 확실히 깨달았지만 지애는 정말 짧은 새에 지나치게 예뻐졌다. 반듯한 이마에 검고 긴 눈썹, 가느다랗고 깊은 눈망울과 오똑하게 솟아있는 콧날, 작고 붉게 빛나는 입술과 그녀의 뺨, 그리고 희고 아름다운 우윳빛 살결... 더불어 아무리 성장기라지만 단 몇주만에 15cm는 훌쩍 커버린 키하며 맵시있게 내려오는 몸매와 크고 아담한 가슴, 그리고 잘 뻗은 다리까지... 분명 전과는 다른 고혹적인 분위기가 지애를 감싸고 있었다.
놀라운 건 불과 한달전만해도 지애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그는 반에서 항상 조용하고 존재감 없고 못생긴 여자아이였다. 지금 지애의 키는 어림잡아 175는 되겠지만 그때는 160cm도 안되는 땅딸보 꼬맹이였다. 게다가 쌍커풀 없고 작은 눈에 여드름까지 나있는 정말 못난 얼굴이었다. 이 모든 변화가 겨우 한달만에 일어난 것이다.
지애와 자주 마주치지 못한 다른반 친구들은 그녀가 혹시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는가, 혹은 다른 사람이 아닌가하고 오해할테지만 그녀를 한달동안 봐오고 쭉 같이 지낸 우리반 급우들은 그녀의 변화를 확실히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하루하루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제부턴가 쑥쑥 자라기 시작한 그녀의 키하며,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가던 그녀의 여드름 범벅 새빨간 피부, 그리고 기형적이리만큼 크고 영롱하게 뜨이기 시작하던 그녀의 눈...
솔직히 남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지금 지애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예전엔 그저 무뚝뚝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아이였는데 이제는 그런 얌전한 모습마저도 도도하고 고혹적으로 느껴진다. 이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면 TV속 잘나가는 여자스타의 미모가 무색할 정도이며, 심지어는 여자아이들마저도 지애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업시간도 제대로 진행될리 없었다. 교실에 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시간엔 멍하니 지애만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선생님이 들어오는 수업은 아예 선생님이 앞장서서 괜한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내며 지애에게 말을 걸곤 했다. 어쨌든 지애의 인기는 이제 거의 연예인이나 다름없게 돼버렸다.
그러다 얼마 후 학교엔 다시 사건이 터졌다.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지애가 돌연 죽어버린 것이다. 사실 지애는 현기증이 잦고 굉장히 약한 아이이기도 했다. 이제는 학교에서 스타가 되어버린 지애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나 또한 내심 속으로 지애를 좋아했던 터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반엔 지애와 유독 돈독한 우정을 가졌던 두명의 소녀가 있었다. 바로 윤아와 혜은인데 이들도 지애의 죽음을 무척 슬퍼했으며, 특히 먹성 좋고 튼튼한 혜은이가 며칠동안 거의 밥도 못 먹다시피 할 정도로 애통함을 드러냈다. 이 친구들도 역지 지애와 마찬가지로 조용조용하고 어두운 친구들이었는데, 특히 예전의 지애처럼 얼굴이 무척 못생긴 여자아이들이었다. 혜은이같은 경우는 두꺼비를 연상케하는 몸매와 넓적한 코가 특징이어서, 장난이 짓궂던 반아이 몇몇은 종종 혜은이를 두꺼비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지애의 장례식이 끝나고 시간은 흘러갔다. 학급분위기는 의외로 지애의 빈자리가 큰모양이기는 했지만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지애의 책상에 자주 찾아오던 남자아이들의 조문행렬과 조화도 지애의 책상과 의자를 교실에서 치우면서부터 뚝 끊켰다. 지애에게 자주 관심을 드러내던 노총각 국사선생님도 한동안 진빠진 사람처럼 지내더니 이내 농담도 줄곧 하던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아 그래도 지애같은 절세미인은 앞으로도 세상에 태어나긴 힘들 거야.”
“그러게 말이야. 나도 차라리 일찍 죽더라도 엄청 미인이었으면 좋겠다.”
“넌 죽어도 안돼.”
“하하하하하하하!”
“쳇, 짖궂긴... ...야! 근데 쟤네는 왜 안 예뻐지냐?”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던 여자애들 몇몇이 윤아와 혜은이가 있는 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둘은 한참 남아있는 점심시간에 할 게 없어서 묵묵히 책을 읽고 있었다.
“모르지. 안되는 사람들은 뭘 해도 안 된다는데... 크크크...”
“난 김지애가 갑자기 그렇게 예뻐지길래 은근 쟤네들도 기대했다? 근데 아직도 투투. 큭큭큭...”
“아 투투래. 킥킥킥킥킥... 야 근데 정혜은 의외로 요즘에 살 많이 빠졌어.”
여자애들의 뒷담화에 계속 관심을 갖고 듣고 있다가 나도 문득 그 여자애들과 함께 혜은이를 쳐다보게 됐다.
사실 그랬다. 지애의 죽음 이후 혜은이는 심한 패닉상태였다. 먹을거 잘 먹고 뚱뚱한 혜은이가 밥도 먹는둥 마는둥 잠도 자는둥 마는둥 지냈던 것이다. 요즘은 그래도 충격에서 많이 헤어나온거 같긴 하지만 그 덕인지는 몰라도 살이 굉장히 많이 빠져있었다. 이제는 정말 젖살만 조금 토실토실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여자애들의 뒷담화를 어떻게 눈치챘는지, 윤아와 혜은이는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나는 문득 혜은이의 키가 약간 자랐다는걸 느꼈다. 이제는 살도 많이 빠진 혜은이의 뒷모습은 약간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랜만에 학교에 일찍 온 나는 다가오는 기말고사를 위해 자습서를 펴놓고는 핸드폰이나 만지작대고 있었다.
“꽥꽥.”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반에서 제일 재밌고 짓궂은 경태가 내는 두꺼비소리에 몇몇 남자애들이 크게 웃었다. 나도 피식 웃었다. 아마 혜은이가 교실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닫고 고개를 들자 역시 혜은이와 윤아가 막 교실로 들어오다 경태의 농담에 급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순간 나도 모르게 ‘엇!’하는 탄성을 작게 뱉았다. 혜은이는 이제 두꺼비가 아니었다. 아니 꼭 지금이라기보단 언제부턴가 혜은이는 그녀의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꽤 라인있는 모델몸매를 뽐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금 확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굉장히 길고 잘 뻗은 섹시한 여자라는 것이다.
혜은이는 그날 이후로도 계속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전의 혜은이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것 같을 정도로 혜은이는 굉장히 예뻐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의 키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는 넓적한 코가 굉장히 날이 서고 오똑해졌다. 듣기로 그녀는 교복을 다시 한 벌 사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일주일전쯤 약간은 헐렁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의 어설픈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정말 그녀를 두꺼비라고 부르는 자체가 죄악일 정도로 굉장한 미녀가 되었다. 마치 몇 달 전의 지애처럼...
“야 요새 두꺼비 왜 저래? 아 존나 예뻐.”
“야 장난 아냐. 지애보다 더 예뻐.”
“에이, 지애가 더 낫지 그래도...”
“아냐. 지애는 눈이 진짜 예뻤는데 혜은이는 몸매가 개쩔어. 특히 가슴이 존나 매혹적이야. 하하하! 크기도 딱 좋지, 거기서 허리와 엉덩이로 흐르는 S라인까지! 와 쩐다 진짜. 킥킥킥.”
경태는 그러면서 또 혜은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두꺼비라는 별명을 혜은이에게 지어준 장본인인 경태가 두꺼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경태가 바라본 그녀는 이제 예전의 지애처럼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있었다. 문득 나는 두리번대며 윤아를 찾았는데 윤아는 자기 자리에 홀로 앉아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윤아는 다시 읽고 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야 혜은아! 비결이라도 있니?”
“아 쫌 가르쳐줘. 어떻게 이렇게 확 예뻐질 수 있는 거야!”
예전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혜은이를 뒷담하던 반여자애들이 이젠 모두 혜은이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아마 지애를 이은 혜은이의 대변신에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모르겠어. 그냥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됐어.”
하지만 혜은이는 정말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기도 모르는 듯 했고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얌전할 뿐이었다.
덧붙여 신기한건 그렇게 먹성 좋고 튼튼하던 혜은이의 변화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혜은이는 자주 점심을 굶었고 심지어는 아침을 거르고 오기도 했다. 이제는 무슨 무리의 여왕이라도 된 듯한 혜은이는 언제나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아이들의 김밥이나 빵 한두입을 얻어먹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무리엔 물론 윤아는 없었다.
혜은이 패거리는 이제 타학교에서까지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이 패거리는 혜은이를 필두로 미녀들만 모여있기 때문에 남자들한텐 대환영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혜은이를 자주 따라다니기 시작한 여자애들 몇몇이 정말 혜은이처럼 미녀로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깜짝 놀랐던 건 내 짝지 하연이었는데 그녀는 약간 귀여운 얼굴이긴 했지만 머리숱이 많이 없었다. 그러던 하연이가 혜은이 패거리가 된 후 언제부턴가 머리숱이 엄청 풍성해졌고, TV 샴푸 선전에서나 보던 머릿결처럼 머릿결이 장난아니게 찰랑찰랑했던 것이다. 게다가 약간은 앳돼보이던 하연이의 얼굴이 언제부턴가 굉장히 고혹적이고 요염하게 변해갔다. 중요한건 이제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찰랑거리는 머릿결이라는 것이다.
혜은이 패거리는 이제 전멤버 모두가 빼어난 미인들이 되어버렸으며 우리 학교를 비롯한 주변 모든 학교를 거의 군림하다시피 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갈수록 식사를 거르고 심지어는 심한 현기증 증세까지 앓던 혜은이가 수업시간에 돌연 쓰러진 것이다. 깜짝 놀란 남자아이들이 그녀를 일으켜 양호실로 데려갔으나 끝내 혜은이는 죽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정혜은 패거리는 사실상 해산되어버렸지만 그 멤버들의 입지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녀들도 이젠 혜은이 못지않은 절세미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난 하연이와 막 혜은이의 장례식을 갔다오게 되었다.
“하연아. 괜찮아?”
“응... 좀 혼란스럽기도 하네.”
“힘내. 너무 야위어 보여. 혜은이는 착하고 이쁘니까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응 그렇겠지. 근데 나 너무 힘이 없네.”
“걱정마.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 이게 꼭 혜은이 때문만은 아니야...”
나는 잠시 멍했다. 생각해보니 하연이는 꼭 친했던 혜은이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약간 기운없는 모습을 보여줘 걱정을 하게 했다.
“무슨 뜻이야?”
“나 아무것도 안 먹은지 이틀이 됬어... 거식증인가봐.”
하연이의 눈빛이 약간 절박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밥 사줄게. 가자.”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하연이의 손을 꽉 잡고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아니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하연이가 내 손을 뿌리쳤다.
“...그럼?”
“나 곧 죽을지도 몰라!”
“뭐?”
“지애도 그랬어, 혜은이도 그랬어. 나도 그래. 우리 패거리애들도 다 그래. 다 이상해.”
“무슨 말이야???”
“우린 아름다워. 근데 거기엔 대가가 필요한가봐.”
나는 갈수록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미인박명이란 말도 몰라? 우린 아름다움을 얻었어. 대신 우린 죽어야 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아무도 알지 못해! 이건 병이라고! 전염병이야!”
그녀의 아름답고 핏기없는 볼 위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그 영롱한 눈망울이 그날따라 더욱 더 그녀의 매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
하연이의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나도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의 키스를 받아주었다. 이 세상 어떤 쵸콜릿보다도 달콤한 절세미인과의 키스였다.
“사랑해. 이게 다야.”
하연이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고, 나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두근대는 심장과 약간의 몽롱하고 약간은 기분좋은 그 느낌을 만끽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하연이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혜은이의 죽음을 기점으로 많은 친구들이 하나둘 결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두가 다 혜은이 패거리들이었다. 기껏 학교에 꾸준히 나오는 몇몇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전부 양호실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종일 무기력하게 앉아있기만 했다. 애틋하게도 그녀들의 옆을 지키며 간호해주고 죽을 떠먹여주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으나 그녀들은 먹는 것마다 다 토해냈고 종종 느닷없는 실신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게다가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녀로 변해가는 여자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너무나 슬프게도 하연이의 자살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저기...”
조금은 허전해진 교실에서 홀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예쁜 여자아이였다.
“아... 음... 요즘은 다들 예쁘게 변해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네. 하하... 누구?”
“나 윤아...”
“아!”
윤아라 하면 지애와 혜은이와 함께 못난이 트리오로 불리던 여자아이였는데 지금 보니 굉장한 미인이였다. 아무래도 윤아도 지애와 혜은이처럼 ‘미인병’에 걸린 것 같았다.
“아 윤아... 알겠다. 왜?”
“저기... 하연이 소식은 나도 유감이야. 그러니까... 둘은 굉장히 좋은...”
“음 알겠어. 고마워.”
나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기분 나쁘게 하려던건 아냐.”
“아 괜찮아. 오히려 고마워.”
“아 천만에. 하하...”
예전의 윤아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예뻐진 윤아에게 별로 귀찮은 내색을 보인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윤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인병’에 걸린 여자들의 얼굴은 솔직히 정말 이성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집에 같이 가지 않을래?”
“엇? 어... 아 그래. 같이 가자.”
나는 선뜻 그 제안을 승낙했다.
사실 윤아는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혜은이가 예뻐진 후 근래 윤아가 혼자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늘 지애와 혜은이와 함께 셋이서 어둡게 지낸 윤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혜은이를 차마 친구라고 부르기 부담스러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아는 다른 ‘미인병’에 걸린 여자애들같지 않게 건강하고 활발한 것 같아 보여 안심이 됐다.
“저기 있지. 밥 꼭꼭 잘 챙겨먹어.”
“음? 무슨 의미야?”
“음... 밥 사주겠다는 거야. 하하...”
“앗 고마워. 하긴 요즘 도통 입맛이 없긴 해. 오늘은 급식도 안 먹었어.”
윤아의 그 말 한마디에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지마. 밥을 거르면 안돼.”
나는 약간 다급하게 말했다.
“고마워. 니가 사주는 거라면 맛있게 먹을게.”
윤아의 그말 한마디에 방금까지의 걱정이 눈녹듯 사라졌다. 갑자기 윤아를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연이를 잃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보내는 내 자신이 조금은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막 운동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 있지...”
윤아는 운동장을 조용히 가로질러 걷고 있던 우리의 침묵을 깼다.
“외로웠어... 혼자이기도 했고... 또 못생기기도 했으니깐. 근데... 너가 좋았어. 그래서 나도 지애랑 혜은이처럼... 예뻐지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기뻤어. 남자들은 음... 다 그렇긴 하지? 예쁜 여자를 좋아하니깐... 근데 나도 그렇게 됐잖아. 너한테 다가갈 수 있게 됐잖아.”
하연이의 눈물어린 마지막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난 네가 좋아. 이제 나도 예쁘잖아. 난 이제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 ...네가 좋아. .........왜 그래?”
나도 모르게 운동장 한가운데 멈춰있었다. 윤아는 어리둥절해했다. 예전의 윤아는 약간 마녀같은 이미지였다. 눈도 찢어져 있고 이빨도 뻐드렁니였다. 그런 윤아가 지금 내 앞에 서있다. 뻐드렁니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치아가 상당히 예뻤다.
“한번 웃어볼래?”
나는 느닷없이 윤아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다. 하지만 윤아는 정말 예쁘게 웃어주었다. 고른 치아가 분홍빛 입술 안에서 하얗게 빛났다.
“나도 널 잃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내 생에 가장 달콤한 두 번째 키스를 했다.
얼마 후 바로 옆반에 또 다른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미인병’에 걸린 여자들 대부분이 줄줄이 쓰러져 나갔다. 비교적 발병이 늦었던 ‘미인병’ 환자들은 이따금씩 커져가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젠 자신의 신체에 막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걸 깨닫기 시작한 여자아이들은 미인이 되어간다는 도취감보단 충격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특히 윤아도 그랬다. 친구들의 이따른 사망소식에 ‘미인병’의 정체를 알게 된 윤아는 너무나도 큰 공포감에 시달리며 매일을 눈물로 보냈다. 그런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윤아를 나는 꼭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는 하연이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노력할 것이라고 스스로 맹세했다.
언제부턴가 윤아는 밥도 먹지 않았다. 안 먹는다기보다는 못 먹었다. 먹는 족족 토해내댔기 때문이다. 갈수록 야위어가는 그녀의 모습과 핏기잃은 그 얼굴은 마치 하연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근방의 거의 모든 젊은 여자들은 다 아름다운 미인이 되어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윤아가 혼수상태가 되고 사흘후 밤이었다.
“윤아야. 나왔다...”
윤아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거의 미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그녀의 고혹적인 매력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미라라도 예쁘긴 예뻤다. 곁에 앉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윤아의 예전 모습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윤아는 예쁘다. 그거면 됐다. 짧지만 함께한 순간이 너무도 그립다. 무엇보다 윤아와 나눈 그 첫키스... 그립다. 윤아의 입술은 이제 연분홍색이 아니지만 그녀의 이빨은 여전히 희고 아름답다. 키스하고 싶다... 윤아의 자는 모습... 키스하고 싶다...
“키스... 키스해줘...”
깜짝 놀랐다. 그녀의 입술은 아주 옅고 흐린 목소리로 마지막 부탁을 하고 있었다.
“키스... 해... 줘...”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아니 방금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는 모든 기력은 쇠진한 것 같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입속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제발...’
갑자기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평온하게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왜...’
모든게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쌔근쌔근한 숨소리도 자꾸 희미해져갔다.
키스를 멈췄다. 달콤함도 짜릿함도 두근거림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무언가 물렁물렁한 것을 실컫 핥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결국 윤아는 죽었다.
세상은 지금 죽음, 동시에 아름다움에 물들여져 있다.
안녕하세요?
첫작입니다.
이토준지 시리즈 미인박명 소설판 리메이크작입니다. ^^
첫댓글 아, 예뻐지는게 좋은게아니게됬군요... ㅠㅠ
아뇨 그래도 이쁜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와 잼써요 ㅋㅋㅋ 그리고 신기하기도했다는;;;
ㅎㅎ 님도 곧 예뻐지실 거에요 ㅎ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해요 ㅎ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앗 감사해요 ^^
소재가 신기해요.^^ 후후후 그런데 전 읽으면서... 이거 혹시 악마와 계약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그럴수도 있겠죠. 이건 결말이 없는 소설이에요. 상상은 무한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