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넘어서
동해에서 서울로 산 오징어를 수송할 때에 상자 속에 바닷물을 담고 오징어를 넣는다. 그리고는 그 통 속에 꽃게 여러 마리를 넣는다. 꽃게가 오징어를 잡아먹는 오징어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오징어들이 서울까지 오는 도중에 같은 통 속에 꽃게가 없을 때에는 많은 숫자가 죽지만 천적이 되는 꽃게와 함께 수송케 되면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 꽃게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여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든다하여 스트레스를 몹쓸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생명력을 북돋워 준다. 마치 꽃게라는 스트레스 탓에 오징어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듯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레스와 고난이 삶에 도전이 되고 창조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고난에 부딪히게 될 때에 그 고난 속에 깃들어 있는 영적인 의미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체득하게 될 때에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고난이 자신을 해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겪은 고난의 삶 속에서 얼마나 의미를 깨닫고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Viktor Emile Frankl)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수용소 생활을 기록한 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썼다. 고통스런 수용소 생활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체력이 좋았던 사람들도 아니요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뜻을 깨달아 그 뜻에 자신을 헌신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고난을 싫어하여 이를 자기 성숙의 기회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이에 넘어져 좌절한다. 경제적인 조건이 향상되어지면서 고난을 회피하고 쉽게 편하게 살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추위와 배고픔, 고통과 고난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모른다. 인생의 깊이를 모르기에 사람답게 사는 길 또한 모르게 된다.”고 한 말이 새롭다.
이사야서에 이르기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이사야 48장 10절) 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 11절에서 이르기를 “무릇 징계(고난)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義)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하였다. 어차피 인생길에는 고난이 따른다. 그렇게 따르는 고난을 피하려 들지를 말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극복하며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길이다.
인간의 삶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난 없는 인생이란 애초에 없다. 문제는 누구나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그 뜻을 깨달아 그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책이 욥기이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은 사업이 몰락하고 자녀들이 횡사한데다가 자신은 몹쓸 병에 걸려 기왓장으로 자신의 몸을 긁으며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그가 고통의 자리에서 부르짖었던 절망과 탄식은 바로 인류의 아픔이요 탄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탄식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였기에 땅에 속한 그의 관심이 하늘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하였던 시절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영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욥기 23장에서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다. 그리고 해답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난 중에서 훈련시켜 ‘정금(正金)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내시고자 하심을 깨달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금 같은 믿음’은 믿음 중에서 그냥 믿음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 중에서 다져진 믿음을 일컫는다. 욥은 고난 속에서 다져진 자신의 믿음이 정금같이 귀한 믿음으로 자라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이루시고자하는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의 자리에서 그는 비전을 보게 되었다. “행복하고자 하는가? 먼저 고뇌를 알라” 투르게네프의 말이다.
국가도 이와 마찬가지다. 적의 침공의 위험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태평성대가 오래지속 되면 반드시 국가 위난의 어려움이 찾아든다. 임진왜란도 세종대왕이 이루어 놓은 국방의 시스템이 오랜 세월의 평화 속에 허물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존망의 위험도 지난 칠십여년의 세월 속에 건전한 국민정신과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가 이 국가위기를 극복하려면 온 국민이 나서서 정신을 새롭게 하고 전심전력을 다해 내부와 외부의 악들과 싸워나가야 한다. “무릇 징계(고난)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義)와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브리서 12장 11절).
특별히 주의 할 바는 외부의 악은 눈에 보이나 내부의 악들은 숨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간첩과 위선자, 사기꾼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상기하자. 특별히 부정선거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이는 만 가지 악의 근원으로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이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할 때가 아니다.
2023.10.23.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