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하종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을 닮은 아기를
등에 업은 앳된 엄마
유모차에 태운 앳된 엄마
가슴에 안은 앳된 엄마
웃다가 미간 찌푸리다가 눈빛 빛내며
무어라 무어라 재잘거린다.
그때 앳된 엄마들 사이에
빼곡한 밀림이 흔들리다가 사라지고
탁한 강물이 출렁이다가 흘러가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다가 흩어지는데
그 옆에 선 남녀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몇 해
자신을 닮은 아기를 키우는 앳된 엄마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이따금 만나
친정 부모님이 그립다고 말하는지
친정집 뒤란이 눈에 선다고 말하는지
한국인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 어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제각각 목적지 다른 시내버스를 타고
얌전하게 시댁으로 돌아간다.
-<입국자들>(2009)-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사실적, 서사적
◆ 특성
①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과 연상을 통해 시상을 전개함.
② 유사한 대상이나 연상 내용을 나열하며 시상을 전개함.
③ 서사적 진술을 통해 결혼 이주 여성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④ '앳된 엄마'의 반복을 통해 시적 화자의 대상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잘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자신을 닮은 아기를 / 등에 업은 앳된 엄마
→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 이주 여성임을 확인할 수 있음.
* 웃다가 미간 찌푸리다가 눈빛 빛내며 / 무어라 무어라 재잘거린다.
→ 오랜만에 만나게 된 베트남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들이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표현한 부분이다. 한국 생활에 고충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빼곡한 밀림이 흔들리다가 사라지고 / ~ /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다가 흩어지는데
→ 결혼 이주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의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시적 화자의 연상과 추측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그 옆에 선 남녀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 결혼 이주 여성들의 고통과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심한 한국인들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 제각각 목적지 다른 시내버스를 타고 / 얌전하게 시댁으로 돌아간다.
→ 같은 처지에 있는 베트남 출신 여성들과의 짧은 만남이 끝나고 각자의 현실로 복귀하는
장면이다. 서로를 위안하며 고된 타국 생활을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야속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 주제 :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애환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앳된 엄마들
◆ 2연 : 앳된 엄마들의 마음을 연상해 봄.
◆ 3연 : 앳된 엄마들의 대화를 연상해 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상과 애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떠나온 고국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을 '앳된 엄마'라고 호칭하며 그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에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비하여 제시함으로써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정주민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의 1연은 어느 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게 된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의 모습과 대화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2, 3연에서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시적 화자가 연상한 내용들이 나열되며 시상이 전개된다. 특히 2, 3연에서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열되고 마지막 행에서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로 돌아감으로써 시상이 마무리된다.
◆ 하종오의 작품 경향과 <입국자들>(2009)
하종오는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980년대 박노해, 백무산 등과 함께 민중 시인으로서 활동하였다. 2000년대 들어 하종오는 소외된 민중들에 대한 변함없는 지향성을 바탕으로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면서 무관심과 편견, 차별로 인해 소외된 이주민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2004년 <반대편 천국>을 시작으로 <국경 없는 공장>(2007),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배드타운>(2008) 등의 시집을 발행하며 조선족 노동자들과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고통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2009년 발간된 <입국자들>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시집이다. 하종오는 <입국자들>의 서문에서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 실정과 상황을 추구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이주민들에 대한 시인의 인간애와 따뜻한 동정과 연민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작가소개]
하종오[ 河鍾五 ] : 시인
출생 : 1954. 9. 24. 경상북도 의성
경력 : 1999~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83 민요연구회 운영위원
작품 : 도서, 기타
<요약>
하종오는 독특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시대적 고뇌를 탁월하게 그려낸 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출생
1954. 9. 24.
<데뷔>
1975년 『현대문학』에 「허수아비의 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현대 역사의 한과 민중들의 소망을 활기차게 노래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시의 실천성의 한계를 깨고 현장 연행을 위해 쓰여진 『넋이야 넋이로다』(1989), 본래적 자아를 찾아가는 구도적 자아의 행로를 장시로 담아낸 『님』(1999) 등을 간행하였다. 하종오는 독특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시대적 고뇌를 탁월하게 그려낸 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인생 행로를 도요새의 여정에 비유하여 상생과 합일로서 풀어낸 소설집 『도요새』(1999)가 있다.
<작품목록>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이들하고,
정,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넋이야 넋이로다, 어머니와 참꽃
그대에게 가는 길은 그대로부터 떠나오는 길, 쥐똥나무 울타리, 사물의 운명
도요새, 님
[네이버 지식백과] 하종오 [河鍾五]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