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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27. 큐티
여호수아 3:9 ~ 17
요단강의 물이 쌓이고
관찰 :
1) 말씀의 선포
- 9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선포입니다. 만일 이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여호수아는 앞으로 어떠한 지도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너무나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라면 이런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피할 길을 다 만들어 놓고, ‘내가 한 말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피할 것이라면 말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여호수아는 분명히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 10절.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 여호수아는 단순히 요단강을 가르고 강을 건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전체를 공략하고, 그 땅의 일곱 족속을 모두 쫓아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에 자신들이 동참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 영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형성된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이 세상에 에덴 동산을 이어서 새롭게 형성되는 뉴에덴 공동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바라보는 가나안 땅은 그런 하나님 나라의 의미로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약궤를 선두로 하여 요단강 도하를 통하여 시작됨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 실로 여호수아가 보는 하나님 여호와는 온 땅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온 땅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을 점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고, 그 땅을 되찾는 것은 마땅한 당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앞에서 요단을 건널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12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의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했습니다. 이들을 왜 선택했는지는 4:3에 나오게 됩니다. 이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신 일에 대한 증인으로서 요단강 강바닥의 돌을 하나씩 짊어지고 나가게 될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로 하여금 돌을 하나씩 짊어지고 나와서 그것을 쌓도록 했습니다. 그것으로 앞으로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요단강을 가르시고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하신 것을 영영히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자갈을 짊어지고 나간 것이 아니라 지파를 대표할 큰 돌을 짊어지고 나갔을 것입니다. 이들 열 둘은 장정으로서 큰 돌을 짊어지고 요단강 중심의 바닥에서부터 강 건너까지 큰 돌을 짊어지기 위한 사명을 위하여 부름받고 선택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요단강을 가르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증인들이었습니다.
- 13절.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 여호수아는 요단강의 물이 어떻게 갈라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혹시 조금이라도 틀려서 그의 말의 권위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고,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그는 자신이 들은 바, 믿음으로 본 바를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흐르던 물이 한 곳에서 쌓여 서게 됨으로 자연히 물이 쌓이는 곳으로부터 물은 그쳐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홍해를 가르시는 것과 또 다른 역사입니다. 홍해는 하나님이 바람을 통하여 가르셨지만(논리적인 설명은 불가능), 요단강의 물은 물을 벽돌처럼 쌓아 버리셨습니다. 이것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신적 역사일 뿐입니다.
2) 명령의 준행
- 14절.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 250여 만의 무리들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요단강 뒤에는 두 지파 반의 노약자와 여자들이 남아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가 제사장들에 의해 궤에 꿰어서 어깨에 메어 요단강으로 향했습니다.
- 15절.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 이들이 요단강으로 향한 때는 니산월(오늘날 태양력으로 3, 4월경) 10일이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도 니산월이었습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 지역은 많은 강수량으로 호수나 강들은 일 년 중 최고의 수위를 기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의 큰 무리가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요단강의 물은 니산월이 되면 수심 3 ~ 4m, 너비는 30m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을 밟았습니다. 그 때 그들의 발이 물을 밟고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발은 물에 잠겼습니다. 그 때 제사장들에게 두려움이 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 역시 담대함으로 발을 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발걸음이 지체하지 않고 다음 발걸음으로 이어지기 전에 요단의 물을 빨리 그치게 하신 것입니다. 물은 제사장들의 첫 발이 물에 잠기고 다음 발걸음이 이어지는 순간 그쳐지고 오른쪽 물은 쌓이기 시작하고 왼쪽 물은 흘러가서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 16절.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 흐르던 물이 멈추자 물은 역류현상을 보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도강하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여리고 북방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의 사드단에 가까운 아담 성읍 변두리로 물이 거꾸로 올라가 그곳에서 물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땅이 융기한 것도 아닌데, 요단강의 물은 그쳐지고 역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기에 어려움이 없게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 17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 놀랍게도 물이 갈라진 요단강은 질척거리고, 발이 빠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이르러 굳게 섰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굳게 서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는 모든 땅은 순식간에 마르게 되어 도강했습니다. 그 때 어린아이들과 가축들이 이동함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건너기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는 제사장들의 어깨에 꿰어서 들려서 그곳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어깨에 많은 하중이 가해졌겠지만, 그들은 그 무게를 견디고 백성들의 도강을 도우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곁을 지나며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모두가 다 경험했을 것입니다.
가르침 :
1)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정복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이 됩니다. 그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당시의 최고의 철기문명을 가진 가나안 족속들, 특별히 키가 2m가 넘는 거인들이 득실거리는 아낙자손들의 땅으로 들어가 그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승리를 당연시 했습니다. 요단강을 가르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통하여 그 일들을 백성들과 함께 할 것으로 인해 여호수아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이렇듯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구사하게 합니다. 그 전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진실한 명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진 것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2) 언약궤를 짊어진 제사장들은 첫째 담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이들은 넘실거리는 요단강을 언약궤를 짊어진 채 들어가야 했습니다. 첫발이 물에 푹 잠겨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두 번째 발걸음을 지체하지 않고 요단강 물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시고 이적을 이루셨습니다. 이들의 발걸음이 요단강에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의 물을 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들이 물속에 다 잠긴 후에야 요단강의 물을 가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요단강의 물을 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것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둘째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여덟 명이 궤에 꿰어서 언약궤를 짊어졌지만, 싯딤나무에 금으로 도금하여 두른 언약궤의 무게는 상당했습니다. 이 언약궤를 짊어지고 요단강 중심에 들어가 250여만의 백성들이 가축과 함께 요단강을 모두 건너기까지 서있는 다는 것은 보통 체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다른 제사장들이 돌아가며 언약궤를 짊어졌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셨을 것이고, 또한 이들의 체력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감당하기 위한 사역자의 믿음과 체력의 중요성을 보게 되는 장면입니다.
3) 하나님이 요단강을 가르셨습니다. 홍해와 다른 양상입니다. 요단강은 언약궤를 짊어진 제사장들을 기점으로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흘러가던 방향은 계속 물이 흘러가지만 이어지는 물이 없었기에 계속 마르게 되었습니다. 물이 흘러오던 방향은 거꾸로 20여km나 역으로 흘러가버리게 되어서 그 물 역시 마르게 되었습니다. 강바닥에 진흙 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도 모두 마르게 되어 큰 민족이 가축들과 더불어 도강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시고, 지구의 중력 상황에서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하여 여호수아의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높이 세워주셨고, 가나안 정복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의 두려운 일곱 족속들에 대해 그들을 모두 쫓아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진짜라는 확신이 여호수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겨지게 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훔쳐본 가나안 일곱 지파의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밀려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40여 년 전의 사건도 두려운데, 이제 바로 코 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나안의 족속들은 두려움에 가득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에 쓰임받는 자는 분명히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영적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분명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책임을 본인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아니라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강하고 담대함으로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음성에 참으로 귀 기울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허탄한 고백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는 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2) 사역자는 믿음에 대해서, 또 체력에 대해서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믿음도 부족하고, 건강도 부족함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건강에 주의하고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3) 주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에게 넘치게 부어짐으로 요단강을 특별한 방법으로 건너게 된 것과 같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특별한 어려움을 주님의 은혜가 부어짐으로 극복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