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조례 폐지에 분노한 장애인들 “탈시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탈시설 당사자들, 서울시의회 앞 긴급 기자회견 열어
“좋은 시설은 결코 없다. 탈시설권리 보장하라!”
25일, 본회의에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 및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심의 예정
“우리가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세요.”
_문석영 탈시설 당사자
“한 달에 200만 원 줄 테니 시설에 들어가라고 해도 저는 지역사회에서 살 거예요. 시설에선 자유를 느낄 수 없어요.”
_장동학 탈시설 당사자
“시혜와 동정만 받던 중증장애인들이 탈시설지원조례가 있어 당당한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갈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폐지가 된다고 하니 개탄스럽습니다.”
_김진석 탈시설 당사자
18일 오전 11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등이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가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김소영
17일, 서울시의회가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을 가결했다. ‘탈시설’ 용어를 전면 부정한 ‘서울특별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아래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또한 이의 없이 가결됐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이 통과된 다음 날인 18일 오전 11시, 뜨거운 뙤약볕 아래 70여 명의 활동가들과 탈시설 당사자들이 서울시의회 본관 앞으로 긴급하게 모였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가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서울시, 복지위에서 ‘장애인 자립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고 거짓말”
사회를 맡은 민푸름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수년간 투쟁하여 만들어 낸 탈시설지원조례가 단 15분 만에 폐지됐다. 탈시설 권리를 약탈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시에 탈시설지원조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푸름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민 활동가는 “유만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탈시월지원조례가 폐지되기도 전에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악안을 발의했다. 유 부위원장은 서울장차연과의 면담에서 ‘거주시설을 왜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지원 및 지역사회로의 통합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전환하냐’, 시설 입소 대기자가 200명이 넘어간다. 장애인거주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게 복지위 부위원장으로서 할 말인가”라고 규탄했다.
이정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고 시설을 ‘지역사회 주택’이라고 거짓말하는 자립생활지원조례가 개악된다면 서울시는 ‘자립생활을 지원한다’면서 시설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어제 복지위는 ‘의사 표현도 힘든 중증장애인은 시설보호가 더 적합하다’, ‘서울시는 자립생활 지원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거짓말을 누가 하고 있는가. 오세훈 시장, 서울시 복지정책실 공무원들, 시설관련인, 서울시의회 의원이라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7일 진행된 복지위 회의에서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서울시가 지원주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으나, 서울시는 지난 2월,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와상장애인을 장애인지원주택 입주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정 실장은 “장애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활동지원서비스를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2023년 6월, 활동지원 수급자 일제조사를 벌이며 서울시 장애인 389명의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시간을 중단하거나 삭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서울시에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 아닌 지역에서 함께 살자!”라고 쓰인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 탈시설 당사자 “장애인 자립 위해 탈시설지원조례 분명히 필요”
탈시설 당사자인 문석영 서울피플퍼스트 부대표는 “지난 4월, 동료들과 함께 서울시의회 앞에서 24시간 동안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공동행동을 진행했었다. 온 힘을 다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앞두게 되었다”고 분노를 표했다.
문 부대표는 “서울시의원들은 왜 탈시설 당사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가. 장애인들이 자립을 연습하고 지역사회에서 차근차근 살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탈시설지원조례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석영 서울피플퍼스트 부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또 다른 탈시설 당사자인 장동학 씨는 시설에서 10년을 거주했다. 장 씨는 “탈시설을 한다고 했을 때, 시설장은 ‘장애인은 나가서 혼자 살 수 없다’며 무조건 반대를 했다. 그럼에도 탈시설을 해 지역사회에서 혼자서 살아보고 싶었다. 자립생활을 하면서 주민센터가 어딨는지, 은행이 어딨는지 등 모르는 것도 직접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탈시설을 하고 지금은 임대로 전셋집을 얻어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장 씨는 “자립해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활동지원사님과 같이 밥을 준비하고, 반찬도 사러 가고, 낮에는 일을 한다. 퇴근 후에는 친구도 만나고, 주말에는 영화도 보러 가고 자유롭게 지낸다”며 “여전히 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빨리 탈시설해서 자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이 AAC(보완대체의사소통)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은 “일률적인 탈시설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했던 문성호 서울시의회 의원에게 공개서한을 전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문성호 의원은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자립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여 ‘자립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거주시설이 필요하다’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이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을 가지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립생활에 필요한 지원의 정도가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장애계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을 심의하는 본회의가 진행되는 25일에 서울시의회 앞에서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