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0일(금)
* 시작 기도
주님...
2022년도도 하루만 남긴 30일입니다.
올 한 해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돌아보면 여러 가지 상념과 회한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미련과 후회가 겹칠지라도 거기에 매이지 않고 오늘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사는 영원의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나의 연약함이 주님의 강함 되심을 믿사오니 나는 쇠하여질수록 우리 주님은 흥하여질 것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여행을 온 아내와도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전 11:1-10
제목 : 충돌하지만 영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지혜.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9 청연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 나의 묵상
코헬렛 곧 전도자는 지혜의 교사이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연구하고 살폈다.
이 일은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이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수고와 짐이다.
전도자가 묻고 또 물은 인생의 의미는 실상 모든 사람 안에 실재하는 궁극적 질문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다름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을 찾게 하는 물음이다.
그렇다면 전도자가 묻고 깨달은 바는 모든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며, 그가 인생에게 내린 결론은 모든 사람이 도달하는 인생의 결론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이다.
인생이 헛되고 무익한 결말에 이른다면 그것을 위한 인간의 지혜도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사람이 행하는 해 아래에서의 모든 수고는 하나님의 행동하심 안에 귀속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동하심은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다.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 최선의 삶이란 이생의 몫으로 주어진 것들을 한껏 즐기는 것이다.
곧 좋은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즐기고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언제 갑자기 재앙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전도자는 헛되고 무망한 인생의 일들을 나열한 후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곧 해 아래에 있는 인생들을 그 너머, 곧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떡 곧 빵을 물 위에 던져라.
그러면 여러 날에 도로 찾을 것이다.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기 몫을 지키는 대신 던져버리고 무분별하게 위험한 곳에 그것을 놓아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현명한 일이 되는 것이다.
반면 몫을 일곱이나 여덟 개로 나누어 간직하여도 재앙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
구름이 가득하면 비가 땅에 떨어지고 나무가 남쪽이나 북쪽으로 넘어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비가 떨어지는 것, 나무가 넘어지는 것은 사람의 영역 밖에 속한다.
그런데 안전함을 고집하는 농부는 바람을 살피고 구름을 살펴 씨도 뿌리지 못하고 추수도 하지 못한다.
사람이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하고 태아의 성장을 알지 못하듯, 그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
해 아래 인간의 모략, 자연의 이치의 배후에 하나님의 일이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 것이다.
어느 것이 잘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
빛은 실로 아름답고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닌가?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서 항상 즐거워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둠의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어찌됐든 인생의 모든 날은 헛되다.
젊은이여, 젊은 시절을 즐거워할지어다.
마음과 눈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몸의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이다.
전도자는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였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전체적인 결말은 ‘인생의 모든 날이 헛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말은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는 일반적인 지혜와 충돌한다.
이것은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는 각자 주어진 삶의 몫을 누리며 자기 자리에서 설실히 일한다.
나름대로 안전하게 살아가고 나름대로 먹고 마시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가 충동하면 이런 삶이 방해받고 일거에 몰수되기도 한다.
그토록 지혜롭게 삶을 붙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손상시키는 것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결정 너머에 하나님의 결정이 감추어져 있다.
빵을 물 위에 던졌으나 후에 얻듯이 지금 인생을 잃어버린 자는 나중에 자기 인생을 얻게 된다.
몫을 챙겼으나 재앙으로 끝이 나듯 지금 얻고 지키는 인생은 후에 잃어버리는 인생이 되고 만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전도자는 회의론자나 운명론자가 결코 아니다.
일반적인 지혜가 침묵하는 삶의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삶의 진실은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실체이다.
해 아래에서 난 인생은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도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음에 이른다(요 8:23-24).
만물 안에서 태어난 인생은 그 무엇으로도 만물 위의 인생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만물 위의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기적을 베푸셨다.
그것은 만물 위에 계신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의 말씀을 통해 아들의 생명 곧 영생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함이다(요 3:16).
영생은 끝이 없는 미래나 죽음 이후의 삶이 결코 아니다.
영생은 영원에서 태어나는 생명이며 위로부터 내어나는 생명이다(벧전 1:23).
그리고 영생의 본질은 영원 곧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다(요 17:3).
이 영생의 삶은 해 아래에 속한 인생을 영원으로 이끈다.
따라서 영원을 현재로 살게 하는 것이다.
‘영원한 현재’는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이 인간의 시간으로 틈입하는 실재이다.
전도자가 묻는 궁극적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영원’이다.
영원의 차원은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들며 소멸시키는 ‘시간의 힘’을 억누르는 유일한 힘이 있다.
그 영원은 존재하셨고 존재하며 존재하실 분이기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
오직 그 하나님만이 지나간 것에 대해 용서를 제공하며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제공한다.
그 분이 우리에게 그 분의 영원한 현존 안에서 안식을 제공한다.
인간의 세계에 하나님의 세계가 충돌한다.
얼마 전 이태원 할로윈 축제의 참사가 있었다.
아직 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한다.
저마다 주어진 삶의 몫을 누리며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한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한 순간에 이런 삶이 방해받고, 일거에 몰수되고 말았다.
그토록 ‘지혜롭게’ 열심히 삶을 붙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소멸하고 만 것이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 갑작스런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인생.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찾아오시고 이생을 넘어 영원으로 이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셔서 그를 믿는 자를 아버지 집, 영원으로 이끄신다.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 그는 영원을 현재로 사는 자이다.
나는 이 같은 영원에 무지한 자였다.
과거에 붙들리고 미래를 근심하며 헛되이 방황하던 자였다.
나름대로 인생을 붙잡고자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헛될 뿐이었다.
신앙생활을 넘어 목회를 하였건만 영원에 대하여 무지하니 안식이 없었다.
외적으로는 열매가 주렁주렁한 듯 보였지만 그 또한 날아갈 바람과 같은 것들이었다.
모든 것들이 나의 의의 열매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몰수되었다.
바로 그 때 하나님 곧 영원의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내가 처한 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자리요 또한 무덤이었다.
가장 낮고 비천한 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었다.
하여 나는 오늘도 영원을 사모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도 여전히 연약하여 과거에 매이고 미래는 불안하다.
그러나 현실의 눈을 들어서 영원의 하나님을 바라본다.
아들을 힘입어 영원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안에 영원의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온다.
과거의 나를 용납하고 이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삶 곧 영원한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과거에 매여 있던 나는 지극히 현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현세적인 삶을 최고로 끌어올리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였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너질 대로 무너져서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무너진 자리가 바로 우리 주님이 찾아오신 자리였고 그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며 주님과 함께 연합한 무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지난 날 지었던 모든 쓰레기와 같은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 시간이요 자리였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환골탈태하여 전혀 새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고 불안한 미래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 안에 영원으로 가는 현재의 힘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과 연합하는 영생이오니 그 믿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