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에 맞은 촬영 장소를 찾는 일을 ‘로케이션 헌팅(location hunting)’이라 한다.
그런데 그는 “헌팅 장소를 찾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라 함은 ‘머나먼 송바강’
촬영지를 찾아 홍콩을 경유해 사이공까지 날아온 SBS 이 강훈 피디를 일컬음이다.
로케이션 헌팅은 사이공에서 출발하여 ‘다낭’까지 차로 오르며 파월장병들의 주둔지를
찾는 일이었다. 우리를 안내할 ‘안하’라 불리는 운전사는 패망한 월남 공군 출신으로써
자신을 렌터카 사용 목록에 묶어서 면담 장소에 나타났다. 전시에 근무지가 ‘냐짱’
공항이었다기에 망설이지 않고 그를 콕 찍어 대장정에 올랐다.
안하에게 ‘도이 머이(Đổi mới/ 개혁·개방)’정책 이전 시절을 물을라치면, 창공을 날던
보라매가 깃털이 다 빠질 때까지 창살 속에 살았다며 벽돌만큼이나 단단하게 각인된
“흑역사”를 되작거렸다. 그리고 북쪽 사람들을 “박 개이(북쪽 개자식들)”라고
베트남 ‘땡초’처럼 매운 양념을 침에 버무려서 사방으로 마구 뿌려댔다.
안하는 강산이 변하도록 감방 생활을 했으면서도 구김이 없었고, 현지인답지
않게 흰 피부의 소유자였으며, 춤 솜씨는 제비가 형님으로 모시도록 화려했다.
물 찬 제비처럼 허공을 지르밟으며 인물값을 하다가 마누라에게 들켜 삭발까지
당하고서도, 운전대만 잡으면 탱고를 추듯 흥겹게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교대로 밟아댔다.
안하의 발놀림은 너무도 현란해서, 운전 주행시험에 거듭 실패한 자라면
춤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었고, 한발 더 나아가 면허 시험장 옆에 카바레를
들여놓으면 장사가 잘 될 거라는 망상까지 불러왔다.
파르스름하게 배코를 당한 뒤부터 우리는 그를 ‘율 브리너’라고 불렀다.
빡빡이 아저씨가 되기 전까지 그는 ‘제비 아저씨’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아군이
대통령궁을 폭격한 흑역사가 생각나서 냐짱 가는 차 안에서 넌지시 농을 놓았다.
“혹여 말예요. 안하가 그 조종사 아니우?”
“누구 말이에요?”
“왜 있잖우. 자기 대통령궁 폭격한 월남군 조종사.” 안하가 입 꼬리를 말면서 대꾸했다.
“내가 그것 부셨으면 강산이 변하도록 감방에서 벽돌 구웠겠소? 지금쯤 별을 달고 있겠지.”
“허긴 그려, 그런데 그렇게 못 한 것을 몹시 후회하는 소리로 들리는구려.”
“크크ㅌㅌㅎ”
제비 형님의 화려한 발놀림에 따라 긴 그림자를 끌며 ‘판 티엣’에서 출발한 차가
힘겹게 언덕을 오르다가 멈추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황량한 들판뿐이었다.
“형, 왜 여기에 차를 세우는 거예요?”
이 피디가 나와 운전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어, 그러게. 왜 여기에 차를 세우지?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면 모이를 찾아 차도로 나온 닭들고 마주치게 된다.
안하는 앞에서 얼쩡거리는 닭을 무시하고 달렸다. 차 앞으로 들어간 닭이
뒤쪽으로 나올 땐 속옷 차림으로 변신하여 혼비백산 달아났다.
닭을 피하려다가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외국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지론이었다. 그렇게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안하가 머리에 모닥불을 지피는 건기 끝 더위 고빗사위에서 뜬금없이 차를
세운 것이다. 그거도 나무 한 구루 없는 뜨거운 언덕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리에게 안하가 대뜸 “중따 리(함께 갑시다.)” 라고 외치며
언덕으로 향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펑퍼짐한 ‘코사크’ 족장의 궁둥이를
이고 가파른 언덕을 기어올랐다.
기세 좋게 오르던 안하가 정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맥도 모르고 헐떡이며 올라온
우리는 복날 개처럼 혀를 내 물고 움푹 파인 지형을 내려다보았다. 안하가 회전하는
지구를 잠시 멈추려는 듯 몸의 중심축을 두 다리에 고르게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곳이 한국 군인들이 근무하던 곳입니다. 냐짱에 근무할 때 자주 보았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덕 아래쪽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안하 손에는 말라비틀어진
아주까리 대 하나가 들려있었지만, 그건 틀림없이 받들어총 자세였다.
“여기가 한국 군인들이 보초를 서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호! 씬 깜언 (정말 고맙소) 우리가 지금 그것 찾으러 왔거든.”
남국의 땡볕 아래서 우리 형제들이 보초를 섰던 자리를 둘러보았다.
뜨거운 바람과 함께 흘러버린 세월은 이제 그곳을 영화 촬영 장소로 소개되고 있었다.
“한국 군인들은 아주 절도 있고 멋졌어요.”
안하가 목에 힘을 주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파르스름한 머리는 햇빛에 반짝거렸고
창공을 노려보는 눈빛에는 보라매의 매서운 기개가 엿보였다. 우리는 안하 가랑이
아래로 내려가 잃어버린 성배를 찾듯 시멘트 조각이 뒹구는 잡초 지를 헤집었다.
어림잡아 서른 해 전쯤 될 것이다. 자유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낯선 이국땅에서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며 젖은 눈으로 동녘 하늘을 바라보았을 우리의 형제들.
잡초만 무성한 자리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헤아리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비는 평화롭고 자유롭게 허공을 가른다.
냐짱 식당에서 얼음을 넣은 333 맥주를 들이켜며 서른 해 너머를 그려보았다.
탐욕스러운 외국 군대들이 “백역사”를 쓰겠노라고 총을 난사한 역사의 현장,
그곳에 근무했던 우리 형제들은 안녕하실까. 대물림하는 무서운 고엽제 후유증,
그 처절한 고통의 끝은 어디쯤일까.
전쟁은 1%도 안 되는 위정자들이 저지르고 고통은 나머지 인민들이 짊어졌다.
이것이 월남의 흑역사다. 피를 부르는 분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한탄의 고리를 꿰며 비극의 흑역사를 찍고 있다.
때로는 ‘샬롬!’ 이라는 그 거룩한 이름으로….
첫댓글 일지매님~
전쟁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고엽제 휴유증이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팔안이 온통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되어 있었습니다.
무더위 햇빛 강열합니다.
건강 유의 하세요.
가진 나라는 더 가지려고 침범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문제는, 경쟁하듯이 더 악랄한 무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고엽제도 그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일명 오렌지 가루...
그것 바르면 모기도 안문다고 팔과 다리에 문지르는
병사도 있었다 하니...ㅉ
방송작가이신것 같습니다. 글이 남다름이 느껴집니다. 제외삼촌도 맹호부대1기로 참전하여
지금 81세가 되어 고엽재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어데요. 작가 아닙니다.
90년대 초에 사이공 현지에서 수필
'흑역사' 처럼 '머나먼 쏭바강' 촬영을 도왔습니다.
안정효 작가님 모시고 영화 '하얀 전쟁' 촬영을 마치고.
시나리오 작가는.. 저 유명한 욕쟁이 이윤택 작가를
안정효 작가님이 묵었던 방에 모셨죠...
(18 소리를 욕이 아닌 것처럼 잘하는 기술을 전수하더니 구속...ㅉ)
(2018년 연극계에서 성추행 및 성폭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와,
여성 연극인 17명에 대한 성범죄 관련 혐의로 구속되었다.)
기정수님 집안도 흑역사의 피해자가 계시네요.
외삼촌분도 치료가 되지 않은 그 고통속에서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월남전이 5년정도 더
연장 되었더라면 저도 파병 명단에 올랐을 겁니다.
더이상 피해자가 발생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관심어린 답글 감사드립니다.
국가 유공자 신문 발행인을 알게 되어
일을 좀 봐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월남전에 참여 했던 분의 이야기는 가슴아팠습니다.
고엽제인줄도 모르고 모기 퇴치제 인줄 알고 발랐던 일들
제대후 고엽제로 인하여 이혼하며 어렵게 살면서 피부 갈라진 모습을
보여 주시며 엉뚱한 사람들은 유공자 대우를 받는데
자신은 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하시면서 힘없는 비애를 말씀 하실때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님의 글을 읽으며 그 시절이 생각나 이러한 비극이 안일어 나기를
바래봅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침몰한 이스라엘 배 선원 찾는다고 며칠을 바다위를 맴돌고
미국은 반세기가 넘은 자국민 유골을 소중하게도 모셔가던데..
어케 된거이 고엽제로 갈라진 증거를 보고서도 외면한답니까.
대가리들이 그러하니 10위 경제대국 / 6위 군사대국이라는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도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작전권도 없는 나라...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