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宮)의 여자 ●
'어째 분위기가, 친한 오누이 사이 같은 걸?'
불현듯 이마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인사를 한 뒤 방으로
갔다. 대체적으로 하얀색과 연분홍색이 주를 이룬 방이었다. 보통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이
긴 하지만, 붉은 색과 검정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로였다.
"방 예쁘죠?"
유시가 짐을 옷장에 정리하면서 말했다. 나는 꼭 많이 와 봤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의아해
하면서 물었다.
"와 봤어?"
"아, 카젠 제국에 공주님이 오실 때면 항상 이 방을 쓰셨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얇은 은빛 코트를 의자에 걸
고는 시녀가 내오는 과자를 한 개 집어 조각을 냈다.
"으윽- 젠장. 샬럿님의 영향이군."
나는 쇄놰를 당해(;) 버릇이 되버린, '과자 예쁘게 먹기' 예절이 손에 베어 나오자, 신음했
다. 그에 웃는 것은 유시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노을지는 전경이 아름다운 황궁
을 바라보았다.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내가 마그놀리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마계와 분위기가 비슷해서였다. 물론 마계
가 훨씬 아름답고, 재미도 있지만 인계는 인계 나름대로의 멋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곳
카젠 왕국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마계와 흡사하여─비록 마의 동산(흔히 천계놈들이 말하는
에덴 동산과 비슷한 것)이 없어 아쉽지만─친근감이 들었다.
"이곳이 맘에 드셨나요?"
"응. 굉장히 맘에 들었어."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전경에 빠져있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월광욕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시녀가 부르는 소리에 식사를 하러, 성으로 갔다.
쪼르르르-
'후. 해냈군.'
세이시온과 나란히 앉은 나는 그의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그 모양새가 썩 괜찮아서, 스스로
도 만족하고 있었다.
"킥. 예전에는 맨날 흘리더니, 오늘은 실수 안하네?"
그는 낮게 나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약간 열이 받아서,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 난 왕자님이 말하는 그 '예전'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신경전─나에게만─이 황제를 비롯한 황가 식구들과, 마그놀리아인들에
게는 굉장히 친근해 보였는지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천생연분이네, 뭐네 떠들어댔다.
"하하. 쥬니아. 얼굴 빨개졌어."
이거 화난거거든?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의 예쁜 이미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를 살짝 노려보는 걸
로 만족을 해야했다. 나는 술을 따르는 일이 무사히 끝나자, 음식을 먹으려고 테이블을 쭈
욱 둘러봤다. 음식의 종류도 비슷하긴 했지만, 간혹가다 낯선 요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파
슬리가 들어간 크림소스가 덮혀있는, 동글동글한 음식을 스푼와 포크를 이용해 집어 개인접
시 위에 놨다.
'이것도 칼로 썰어야 하나?'
나는 샬롯의 '모르겠으면, 무조건 썰어라.'라는 이론에 따라서 나이프를 집었다. 하지만 모
양이 동글동글해서 자칫하면 옆으로 튈 수도 있어 그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포
크로 그 한 가운데를 누르는 그 때….
삐용-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튀겼다. 그리고 그 즙은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었는지 고
개를 숙였던 세이시온의 얼굴에 정확히 강타했다.
'브라보.'
나는 순간 속이 시원해졌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참고 있는 걸 보자니 창피해서는 급
하게 유시가 챙겨준 손수건─그녀가 챙겨주지 않으면 챙길 생각도 안한다.─을 급히 꺼내
그에게 건네었다. 그런데 그가 받질 않는 것이다.
"화났어요?"
나는 그가 받질 않자, 화가 난줄 알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안 닦아?"
뭘? 나는 이런 나의 의사를 표정에 담아냈다. 그러자, 그는 손가락으로 즙(;)이 튄 얼굴을
톡톡 쳐댔다. 나는 그제야 말을 알아듣고 아주 툭툭- 그의 얼굴을 쳐댔다.
"히-"
나는 그의 웃음에,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거 그냥 한 입에 넣어도 돼."
일찍도 알려준다. 인상은 유에와 똑같은게, 아주 지 애비를 닮았다. 나는 그의 마족 화나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행동에 환히 웃고는 스푼으로 가볍게 떠서 입에 한움큼 집어넣었다.
그렇게 카젠 황궁에서의 첫 만찬은 끝이났다.
"Home is behind, the world ahead And there are many paths to tread.
Through shadow, to the edge of night Until the stars are all alight."
나는 오랜만에 느린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면서, 잔디밭에 엉덩이를 맡기고(;) 아름다운 하
늘을 바라봤다. 역시 달이 좋아. 마계와 같은 어둠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운 밤이었
다.
"Mist and shadow, cloud and shade All shall fade. All shall fade…."
가삿말이 굉장히 슬펐지만, 별로 느끼지 않고 별들만을 바라봤다. 인계에서 살아간지도 거
의 일년이 되어간다(참 멋대로 흐른다.). 그 때 나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가사 한번 슬프다."
약간 경계하면서, 노래를 멈췄을 때 들린 것은 세이시온의 목소리였다. 저녁 만찬 때의 일
이 생각이 나자 나는 아무말도 하질 않았고,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내 옆 자리에 앉는 그였다.
"그런 노랜 부르지마. 괜히 현실이 될 것 같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그를 이상한 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쳐다봐도 그는 나
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입을 열었다.
"조심하는게 좋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기분이 살짝 더러워진 나는, 일어나면서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가게?"
"월광욕은 혼자 즐기는게 좋거든요."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던 무렵 나는 다시 뒤돌아 말했다.
"있죠. 눈이요. 참 인상적이에요."
그의 색이 다른 두 눈을 가리키며 말하는 나였다. 내 말에 그는 약간 놀란 듯 했지만, 나는
피식 웃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말…. 그 천지개벽할 말을 듣지 못하고….
"마공주라…. 공주는 공주네."
* * *
"공주님. 진짜 너무 예뻐요!!"
"역시. 짧은 것도 괜찮다니까. 색 다르지?"
나는 거울 속에 있는 웬 인형(….)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바라보았다. 아주 맘에 드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마그놀리아 제 1 공주를 칭하는 크라운을 쓴 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분홍색 실크 롱 로브를 걸치고는 방울을 묶었다.
"공주님, 쥬얼리는 다 하신거에요?"
"응응. 걱정 마."
나는 뿌듯해하면서, 유시에게 말했다. 사실 옷에는 별로 신경을 안 썼던 나이지만, 나름대
로 이번에도 왕비에게 이겨보려고─게다가 카젠 제국이다. 여기서 주목 받으면 게임 오버인
셈이다.─차려 입었다.
"그럼 유시?"
"네, 공주님."
그녀는 문을 열어줬고, 나는 도도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호위기사인 에릭은─유에는 국왕을
호위하고 있다.─나를 보더니 약간 의아해 했다.
"쥬니아. 드레스 안 입었어?"
"아니, 입었는데?"
"근데 왜 답답하게 로브를…."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 입은 에릭은 긴 실크 로브 아래로 유일하게 비치는 내 보라색 벨벳
리본 구두를 쓰윽 보더니 끝말을 흐렸다. 나는 그에 당당하게 말했다.
"컨셉이야."
그리고는 카젠 제국 204주년을 축하하는 무도회장으로 당당하게 걷는 나였다.
위풍당당한 자태. 아름답게 빛나는 크라운. 아래로 보이는 벨벳 구두. 보라색 작은 가방.
허나 막히는 것은 실크 로브. 방울로 안을 볼 수 없게 해, 꽉꽉 막혀 숨을 조이게 하는
옷을 본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 세나. 예쁘구나."
나는 별로 얘기도 안하는 명분상 동생 세나 공주가 3기사단의 제크에게 호위를 받으면서
오자, 호의적으로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굉장히 친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에
단순하고 무식한 세나 공주는 얼굴이 뻘개지더니 말한다.
"정말요?"
"응응. 귀여워. 역시 세나는 하늘하늘한 옷이 어울린다니까."
나는 하늘색 레이스가 덕지덕지 붙은 파티 드레스를 보고는 말했다. 그에 활짝 웃는 세나였
다. 그녀는 아마도 다음에 내 옷을 칭찬해 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옷의 답답함에 할
말을 잠시 잃었던 그녀다.
"어,언니도 예뻐요!"
"그래? 고마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점점 무도회장에 가까워져 갔고, 각각의 호위기사가
성문 앞에 서 있는─이름을 호명하는 자─사람에게 초대장을 건네었다. 초대장을 받은 그
는 외쳤다.
"쥬니아 드 부어 오웬 마그놀리아 공주님 드십니다!"
"세나 드 칼렌스 샤를로트 마그놀리아 공주님 드십니다!"
두 공주가, 한 성문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시작은 독특해야 하는 법이다. 너무 서둘러서도
안된다. 나는 쌀쌀한 날씨 때문에 코트를 입은 자들의 정장을 받아주는─대게는 남자들의
옷을 받는다─시녀가 빨간 카펫 저편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특이하고
답답한 옷차림에 시선을 받고, 세나는 귀엽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에릭을 보고 살짝 웃었다.
"피식-"
"왜 그래."
나를 살짝 보면서 말하는 그였다. 나는 유시가 푸르기 쉽게 묶어 놓은 방울의 한 쪽을 쓰윽
잡아당겼다. 옷을 받는 시녀가 대여섯 발쯤 앞에 있는 순간이었다.
휘릭 -
예쁘게 보이려고 나는, 바람을 살짝 일으키는 마법을 썼다. 살짝- 하고 펄럭이더니, 핑크색
실크 로브 안에 있는 약간은 짧은 드레스가 드러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표정
을 유지하면서, 시녀를 직시했고 그녀는 약간 당황해하더니, 이내 나에게서 옷을 받아갔다.
"봐봐. 드레스 입었지?"
나는 갑자기 탄성을 지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쓰윽- 돌아본 뒤, 에릭에게 말했다. 그는 살
짝 손짓으로 엄지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에 나는 씨익 웃고는 자리를 찾아갔다.
샹들리에의 빛에 더욱 빛나는 크라운과, 타이트한 목걸이와 팔찌. 오픈 숄더의 무릎이 살짝
보이는 원피스의 진 분홍색 치마. 찰랑 찰랑 아름답게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은 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미를 이루었다.
"아바마마. 평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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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비현이 부르는 노래는 왕의 귀환에서 나왔던
'피핀의 노래'입니다. 아래는 가사 해석이에요.
집은 뒤에 있고 세상은 앞에 있네
또한 걸어야 할 많은 길들이 있네
그림자를 지나 밤의 끝자락으로
별들이 모두 환하게 빛날때까지
안개와 그림자 구름과 형상
희망은 힘을 잃고 모든 것이 희미해지리라
★
으으.. 잠수가 꽤나 길었죠?
이번 시험을 개판을 쳤긴 했지만
그래도 주요과목들은 잘봐서
엄마가 놀게는 해주시더군요=_=ㅋㅋ
헤헤.
곰돌님 말대로 오늘은 두 편이에요.
아! 글씨 색도 20회를 기념해서
회색으로 바꿔봤는데, 분위기 어때요?
후훗.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빙수랍니다>_<
메일도 환영이어요! >_<
★ angelofna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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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궁(宮)의 여자 - [제 20 화]
빙수가좋아a
추천 0
조회 182
05.10.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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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넹~ 넘길었어여~~ 근데이런.. 제강 이제 셤기간이라..ㅠㅠ
★ 헉. 길었군요 ㅜ_ㅜ.. 시험 잘 보시길 바래요!
분위기 너무 좋아요 저는 시험 다 끝났어요ㅠ
★ 진짜요? 우.. 빙수는 그럭저럭 본 듯해요. 분위기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두요~ 제가 얼마나 이 소설을 기다렸는데... 작가민 너무 하셨어요.... ㅠ_ㅠ
☆ .,, 죄송합니다 ㅜ_ㅜ ... 이를 어째요. 그래도 곰탱이님을 위해서 두편!! 해드렸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