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백년 동안 베일에 싸인 '금송곡(金松谷)'을 추적중에 있다.
그동안 다각도로 추적하였으나 결정적인 단서가 도출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족보를 조사하다가 눈에 띄는 지명을 발견하였다.
그 지명은 바로 '대인봉(大仁峰)'이었다.
'금송곡(金松谷)'에 묘소가 10여기가 있는 반면에 '대인봉(大仁峰)'에는 묘소가
3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구체적으로 8대조의 사촌형제의 묘소 2기와 7대조의 육촌형제 묘소 1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대인봉(大仁峰)'을 검색어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국사편찬위원회,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헌국고전번역원 홈피에 검색한 결과 '대인봉(大仁峰)'을
소개한 자료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한자의 의미로 볼 때 봉우리로 해석되는데, 이 '대인봉(大仁峰)'이 위치한 지역이
발견되지 않았다.
필자가 '대인봉(大仁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현재 '금송곡(金松谷)'의
위치가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대인봉(大仁峰)'의 위치를 파악하면 '금송곡(金松谷)'의
위치를 밝히는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금송곡(金松谷)'과 '대인봉(大仁峰 )'은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이 봉우리가
어떤 모습이기에 묘소를 썼던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되는 순간이다.
2025년 1월 21일(화) 문 암 올 림.
첫댓글 * 안녕하세요. "문암"님!
이렇게 방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즉(卽), 단흥(湍興)은 단흥이 아닌 서흥(瑞興)이다. 그러나 이는 반도(半島) 땅에 없다.
그렇다면 신증에서 말하는 황해도 서흥도호부의 군명(郡名)으로 "五谷(오곡),于次呑忽(우차탄홀),五關(오관),洞州(동주),隴西(롱서),瑞城(서성),玉谷(옥곡)"이라고도 했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으면 어떻겠냐 하는 것입니다.
오곡(五谷)은 5개의 깊은 골짜기가 있다.
오관(五關)은, 5개의 관(關), 고개가 있다.
롱서(隴西)는, 롱관(隴關) 곧 롱산(隴山)의 고갯마루 서(西)쪽 땅이다.
서성(瑞城)은, 그 지방의 대도회지다
이런 여러 '특이사항'의 공통점을 뭘까?
신증에서 말하는 '서흥군'의 또 다른 이름을 보면 : 특이한 곳이 바로 "롱서(隴西)"인데, "롱서"라는 땅 이름(地名)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붙일 지명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롱서'는 장안 서쪽의 감숙성 '롱산'의 서쪽 땅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황해도에 서흥군이 있고, 롱서는 서흥도호부 안에 있다? 그렇다면 조선팔도를 배열할 때, '황해도는 도성의 서쪽에 있다'라는 팔도의 배치과정과 딱 어울린다고 보아집니다.
서흥에는 "隴山亭(롱산정)"도, 隴西場(목장)도 있었다는 신증과 대동지지의 기록으로 보면 : 그렇게 배치를 하고 나면 : 전번에 올려 놓으신 "영상"의 금송(金松)과 설산(雪山)과 계곡과 호수[강(江)인가? 호수(湖水)인가?]가 어울리는 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사견(私見)일 뿐입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건강하세요.
늘 문암이 생각치 못한 정보를 깨우쳐 주시는 문무님께 감사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영감이 떠올라서 한편의 새로운 칼럼이 완성되었습니다.
칼럼이 완성된 이후 지인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황해북도 봉산군 삼천리에 '대인봉(待人峯)'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봉산은 저의 7대조와 8대조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족보에서 발견한 '대인봉(大仁峰 )'과 한자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늞 문무님의 댓글을 통해 '금송곡'이 있는 지역을 서흥군으로 보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문무님의 예리한 논리전개를 보면서 참으로 좋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문무님이 올려주신 여러차례의 댓글을 읽으면서 제가 미처 생각치 못한
점을 깨우쳐 주셔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족보에서 발견된 '대인봉(大仁峰 )'과 봉산군에 있다는 '대인봉(待人峯)'이
과연 같은 봉우리인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봉우리인지 여부를 규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지인이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여 그 전문을
소개합니다.
[ 대인동(待人洞) ]
황해북도 봉산군 삼천리 영역에 있던 폐동.
본래 서흥군 평리면의 지역으로서 대인봉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서흥군 용평면 삼천리로
개편되면서 페지되었다.
2025년 1월 22일(수) 문 암 올 림.
영감이 떠올라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21대조이신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묘소를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연유인지 아들을 비롯해 손자의 묘소의 위치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대조가 되시는 선조부터 평산군 월고리에
묘소가 있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그 이후 17대조와 16대조의 묘소도 같은 지역으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비로서 15대조부터 바로 '금송곡'에 안장되면서
그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14대조와 13대조 역시 같은 지역에 묘소를 안장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13대조는 평산군 신읍면에
묘소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12대조부터 시작하여, 11대조, 10대조, 9대조의
묘소가 '금송곡'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금송곡에 방계 선조까지 포함해 총 10여기의 묘소가 묻혀 있으나
8대조와 7대조의 묘소는 봉산군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묘소 위치의 현황을 간략히 말씀드렸습니다.
2025년 1월 22일(수)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