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갱년기의 격돌
강의가 끝나면 늘 하는 마지막 멘트 가 있다.
“여러분 , 입양 가족 만나 본 적 있어요?“
”아니요오~ “
그럼 우리 입양가족을 한번 만나 볼까요?
하면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딸의 영상을 띄운다.
”저는 입양했습니다, 입양은 함께 나누는 행복입니다, 입양은 부끄러운게 아닙니다. 가족이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 입양가정과 모든 가정은 다 똑같습니다, 난 입양이 좋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먼저는 다른 엄마한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날 입양하는 곳에다가 맡겼습니다. 그래서 김신혜 엄마한테 입양 됐습니다.
김신혜 엄마는 맨 날 모자를 씁니다. 왜냐하면 모자를 안 쓰면 할망구 같아서입니다. 모자를 쓰면 아주 예쁜 아가씨 같습니다. 오빠가 ‘할망구’는 욕이라고 합니다.
내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저의 진짜 이름은 권채희 였습니다. 그런데 , 지금은 유에스더 입니다. 난 권채희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엄마를 찾아야 합니다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꼭 닮았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의 딸 에스더에요 저처럼 웃긴 아이는 없을 꺼에요 사랑하고 고마워요.
언니 오빠들 우리 엄마 강의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요 안녕 ~
그 영상을 본 학생들의 반응은
와.~'너무 귀여워요.'
하며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데 도움이 되곤 했다, 강의 때마다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막내딸을 학생들은 사랑스럽게 안아 주곤 했었다
그 아이와 내가 만난 건 13년 전 내 나이 58세때 그 아이는 네 살 때 일 이었다 . 뇌종양 4년 차 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이는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 이었다
시설장은 뇌종양이 있다는 것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지며 아이의 입양을 허락하였다
그 아이와의 2년 동안은 정말 행복 했다
사내들만 키우다가 딸이 오니까 군대 같던 집안 분위기가 민간인 집으로 변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어디를 가든지 인사를 잘 해 인기를 독차지 했고 기막힌 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 2년을 지내고 뇌종양 6년 차 되던 어느 날 . 또 다시 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을 찾았다 MRI 결과는 의외로 암세포 괴사로 인한 완치 판정을 받았고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 없다고 했다.
그렇게 보물 같았던 아이가 10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고 코로나는 서서히 잠잠해 져 잤고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등교 거부와 가출이 반복되었다
그 어느 때 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아이가 잘못 될까 봐 두려웠다
위로 입양한 세 오빠들은 순둥이들이라서 그랬나? 사춘기가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딸은 오빠들과는 매우 달랐다. 내게는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입양한 딸이라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공무원들은 법적 근거도 없는 입양 가정 방문을 당당하게 하고 냉장고 문을 서슴없이 열며 사진을 찍어댔다 .
혹시 아이를 굶기기라도 하였나? 고기반찬이라도 제대로 먹이는지 살피는 듯 했다.
나는 처음에는 화가 나고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의 의미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그 아이의 진짜 문제 는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과 관계는 맺고 있었지만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었다.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가족과의 관계까지도 내다 버릴 의향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처럼 보였다
정체성 혼란이 사춘기를 맞아 낮은 자존감 까지 동반하여 최고조를 이루는 듯 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질타하지 말았어야 했다 딸이 선사하는 폭풍우를 그대로 맞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 이었고 아이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었다.
꿈에서라도 본 날은 더욱 그랬다.
우리의 관계가 여기서 이렇게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면?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에 예방 주사 맞는 기분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자고 다짐에 다짐을 해본다.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이라는 아주 오래된 영화 한편을 보면서 그래도 끝은 있구나.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한다.
아이를 믿어보기로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일 뿐이라고 누군가 귀띰을 한다.
그 아이를 이용 하여 자기실현 욕구를 채우는‘사랑‘ 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이 들자
. 그 사랑의 신비를 밑바닥에서 배우다니, 잔인하다.
나는 지금 내 평생에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어려움이 보이기 시작했고, 극도의 외로움도 보였다
그 아이의 정체성은 늘 불안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동안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학부모 회장으로 5.6학년은 운영위원으로 늘 학교를 드나들었던 늙은 엄마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엄마만의 큰 착각이었다,
다른 입양 부모들이 아이들이 부끄러워해 학교에 못 가겠다고 말했을 때 우리 딸은 너무 자랑스러워한다고 자랑질 했던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왜 아이는 정직하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지난 10년 동안 아이 때문에 충분히 행복했고. 충분히 누렸다.
이제 내가 아이에게 그 행복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는 곁에 없다 ,
결국 나는 홀로 남겨지게 되었고 우리는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 문제이고 너무 많은 수치심과 자기 정죄를 안고 살아간다고 배운다.
아이를 끌어안으며 ’ 너는 우리 집 보배야. 넌 소중해. 항상 널 응원할게.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야. 존중받아 마땅해, 조건 없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야‘
등등 온갖 좋은 말로 아이의 행동거지는 차제하고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하는 건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알아 차렸다
삶의 최고점 이 아니라, 골짜기와 심연 바닥에서 발견하고 만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과 가혹한 경험을 통해 목격해야만 깨닫게 되나보다
우리는 그가 다시 돌아온 것 만 으로도 기뻐했어야 했다
나는 분명히 바뀔 의향을 보여 주었다. 그 아이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하룻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만 했다
더 깊이 더 깊이 아이가 받아 들여 줄때까지 내려가야 했다. 아니 모든 자존심 까 뭉게고 내려가기로 한다 .
그러지 않으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어쩌면 내겐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 자신의 경력 성취를 자랑하려는 피할 수 없는 욕망이 있었다.
나의 독선은 다소 줄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 내 문제를 철저히 파악한 것처럼 보일 때 마다 사실은 더 깊이 내려가는 필요를 느꼈다 .
우리 행복의 토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면 분노 불안 절망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게 된 것이다 .
설득이 시작되었다 부드러운 대화를 시작 했다. 심리치료사가 건넬 만한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내겐 독선이 가득하다
숲속 외딴 오두막에 사는 사악한 마녀가 나오는 전래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지나가던 여행자 들이 찾아오면 마녀는 식사와 침대를 제공했다. 지나치게 편안한 침대는 다음 날 아침 나그네를 돌로 변하게 한다.
그 집에서 일하는 한 소녀는 어느 날 한 젊은이 침대에 나뭇가지, 돌맹이와엉겅퀴를 잔뜩 넣어 잠들지 못하도록 만든다. 밤잠을 설친 젊은이는 불평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그곳을 떠난다.
아이를 살리겠다고 집어넣은 사랑의 나뭇가지와 돌맹이들이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번민 하게 하던 그 아이는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집을 찾았다.
그 아이의 손에는 편지 한통이 들려 있었다.
‘상처받은 엄마 아빠께 !
저는 부모님께 상처만 드리는 불효녀 에스더에요 제가 이 편지를 적는 이유는 서로 간 에 쌓여 있던 말 하지 못했던 말을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이 편지를 읽고 계시는 부모님께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엄마 없으면 안 된다고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했었죠.
엄마 돌아가시면 따라 가겠다고 말하던 엄마의 껌 딱지가 이제 조금 컸다고 엄마를 부끄러워 했죠. 초등학교 저 학년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 했죠.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부터는 엄마를 따라 다니지 않았고 ,중 1이 되어서는 아예 체육 대회에 오지 말라고 했죠. 그 뒤에 가족들이 상처 받을 껄 알았지만 또 놀림 받을 까봐 두려웠어요. 거기서 까지 따돌림을 받기 싫었거든요. 제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토록 핸드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냥 외로워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제 모습을 좋아하는 친구가 절 버릴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미 너무 많이 버려져서 더 이상 버림받기 싫어요.
그리고 제 주위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건 성별이 뭐건 전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자상하니까요. 그래서 핸드폰에 집착을 했습니다.
저도 제가 왜 말썽을 피우는지 잘 모르겠어요. 잘해야지 ‘ 하고 정신 차리면 엄마랑 마주앉아 싸우고 있더라구요. 제가 말썽 피우는 건 부모님 빨리 돌아가시라고 부추기는 거라고 ’ 안녕하세요?‘에서 신동엽 아저씨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빠에게 여러 가지 지병이 있는 것도 저 때문인거 같아요.
요즘 엄마가 많이 바뀌셨는데 저도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 합니다. 속마음을 이야기 하고 나니까, 이제 편안해 졌어요. 불효녀 에스더 올림
그래, 딸 아,! 이번 계기가, 무너지고 낮아진 자존감을 복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를 돕기로 결심한다.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튼튼한 자존감을 세워 주기 위해 이번 일이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 되어 그 아이의 인생 이야기가 만들어 지기를 기대 해본다.
우리는 폭풍 속으로 던져 졌고 , 모든 의문이 해소 되지는 않았지만, 그 폭풍 속으로 던져 졌기 때문에 폭풍 한가운데서 서로의 사랑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관계가 한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순간 즉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많아지는 순간 얼마든지 폐기 될 수 있다고 사회는 말하지만 , 자녀 양육은 이런 현대적 태도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부모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고통을 자녀가 떠 안아야만 한다.
또 다른 쪽은 화해의 영역이었다, 용서할 능력과 의지 없이는 회복될 수 없음을 알았다
우리 부부가 그 아이에게 제대로 된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도 알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누구와도 화해하지 못했다. 우리 삶에 폭풍이 닥치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만 가능한 방식으로 견디고 심지어 성공할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아픔이 나중에 더 큰 아픔을 방지해 줄 수도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
그 아이가 내 곁에 있는 한 난 더 이상 어떤 슬픔도 고통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 그 이유는 지금의 고통이 정체성 혼란과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까닭이다
딸이 말한다
‘난 김신혜 엄마의 딸로 다시타어나 한살부터 살고 싶다‘고 요즘 너무 바빠 딸과 함께 할 시간이 모자라 거의 방임수준이어서 미안해하는 나에 대한 섭섭함일까?
아니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만감이교차하는 시간
‘ 어이 딸~ .부모는 내마음 대로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거 알지? 그러나 엄마는 널 선택했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듯이 하나님이 날 선택해 준 것과 같아’
여기까지 얘기 하고 나니 입양은 하나님과 동역 하는 아주소중한 일임을 깨닫게 한다
엄마 나는 엄마한테 어떤 딸이야? 나 키우면서 힘들지 않았어? 미안해, 예전 사진 보면 진짜 젊었는데 지금은 이쁘기만 한 우리 엄마 진짜 미안해요. 나 때문에 필요 없는 고생시키고 엄마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은데 내가 생각한 데로 엄마한테 표현을 많이 못 한 것 같아요. 사랑한다고 못하고 미안하다고도 많이 못 했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지금까지 날 키워줘서 날 버리지 않고 힘겹게 키워주어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계속 사랑할 거에용
딸!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맙고 오늘도 버텨주어서. 고맙다 엄마도 딸 때문에 여기까지. 왔구나 우린. 또.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야지
사랑하는 딸, 힘내자 그리고 엄마가 도울께! 사춘기에 마침표를 찍는 그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