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전문기자들이 직접 다녀온 둘레길 33
북악산은 서울의 주산이다. 예로부터 서울 시민의 친구였지만, 1968년 1월 이후로 통행이 금지됐다. 1·21사태, 즉 북한의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문이다. 그 후로 북악산은 군인들의 산이 됐다. 서울 한복판에 군사지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북악산 일부가 개방되고, 2009~2010년에 걸쳐 북악하늘길이 만들어지면서 북악산은 완전히 열렸다.
북한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형제봉 능선
북악산 완전 개방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서울둘레길’에도 희소식이다.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외사산(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과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을 잇는 장거리 트레일로 총 거리가 무려 178㎞에 이른다. 외사산과 내사산은 서로 연결되는데, 그것을 북악하늘길이 담당하게 된다. 북한산 보현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형제봉을 지나 북악산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악하늘길 답사는 대개 성북구민회관을 들머리로 하지만, 북한산둘레길 5구간 명상길 입구인 정릉탐방안내소로 잡았다. 형제봉 능선에 올라 북한산과 북악산이 연결되는 지점을 확인하고, 북한산의 기운을 따라 북악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다.
정릉탐방안내소 뒤편 주차장에서 명상길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지만, 둘레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르면 호젓한 계곡을 지나고, 은근슬쩍 형제봉 능선에 올라선다. 여기서 북악하늘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호젓하고 걷기 좋은 능선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긴 철조망을 만난다. 철조망 한편이 대문처럼 활짝 열려 있다. 1·21사태 이후 40여 년 만에 열린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능선길은 막힌다. 그곳에 군부대가 있는 탓이다. 할 수 없이 왼쪽 계곡으로 내려서 여래사 앞을 지난다. 여래사는 호국사찰로 극락전 안에 이준 열사를 비롯한 순국선열 373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잠시 극락전에 들러 절을 올리고 출발하면,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오른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능선에 올라서면 하늘마루 정자를 만난다. 군부대 때문에 500m쯤 되는 거리를 빙 둘러 온 것이다.
하늘마루에서 본격적으로 북악하늘길(2코스, 김신조 루트)이 시작된다. 정자 앞에 하늘교가 걸려 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건너는 도보전용 다리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하다. 다리를 지나면 노천 북카페로 도서가 비치되어 있고, 넓은 평상 여러 개가 놓여 있다. 봄가을에 햇살을 즐기며 책 읽기에 그만이다. 북카페 앞에서 2코스와 3코스가 갈린다. 왼쪽 3코스는 가장 최근에 생긴 길로 북악스카이웨이 다모정까지 640m쯤 이어진다.
2코스 방향으로 언덕을 오르면 북악하늘길의 최고 절경인 하늘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 서자 ‘우와~’ 감탄이 터져 나온다. 송곳처럼 하늘을 찌르는 보현봉이 왼쪽으로 비봉능선, 오른쪽으로 칼바위능선을 거느리고 있다. 칼바위능선 너머로 인수봉이 빼꼼 머리를 내민 모습이 귀엽다. 하늘전망대는 서울을 통틀어 북한산 보현봉이 가장 멋진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보현봉이 북한산의 정상이었다. 당시 백운대는 도성에서 먼 경기도 땅이었기 때문이다. 보현봉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수락산과 불암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강북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 아파트 숲 속에서 숨은그림찾기처럼 초안산, 개운산, 용마산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마루서 펼쳐진 600년 고도의 정취
전망대를 지나면 호경암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서울 도심과 남산,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1·21사태 때 총격전이 벌어졌던 이곳은 50여 개의 탄흔이 바위에 박혀 있다. 호경암에서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팔각정이지만, 역시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우회한다. 따라서 호경암부터 북악산의 주능선에서 벗어나 지릉을 타고 내려가게 된다. 길게 이어진 나무데크를 따라가면 남마루다.
남마루에서 바라본 서울은 제법 멋지다. 넘실거리는 북악의 산자락 위로 서울성곽이 출렁인다. 성곽 너머로는 빌딩숲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사실 서울은 풍수지리에 따라 디자인된 아름다운 계획도시다.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 하륜, 무악대사 등 풍수지리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학자와 승려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지금의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섰다. 그 결과 내사산으로 주산 북악산, 좌청룡 낙산, 우백호 인왕산, 안산으로 남산이 배치됐다. 맏형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4개의 산이 빚어내는 멋과 조화는 가히 일품이다.
information
●북악하늘길 가이드 북악하늘길은 총 4개의 코스가 있다. 서울성곽 옆 말바위쉼터에서 북악팔각정까지가 1코스(1,397m), 하늘교(하늘마루)에서 호경암~남마루~성북천발원지로 이어지는 2코스(일명 김신조루트, 1,950m), 북악스카이웨이의 숲속다리와 북카페를 잇는 3코스(640m), 정릉 아리랑고개 옆 하늘한마당에서 시작해 하늘마루까지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이어진 스카이웨이(3,200m)다. 문의 성북구청 02-920-3396).
●교통 북한산둘레길 5구간 명상길의 들머리는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 주차장이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3번 출구로 나와 143번, 110B 버스를 타고 정릉 종점 하차. 성북구민회관을 들머리로 하려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성북01번 마을버스를 탄다. 삼청각 앞에서 걷기를 끝냈으면, 우정의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1111, 2112번 버스를 타면 4호선 한성대입구역으로 나간다.
●맛집 걷기가 마무리되는 성북동 우정의공원 앞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맛집들이 많다. 그중 성북동집의 칼국수와 만두가 별미다. 칼국수·칼만두·만두(고기, 김치) 7,000원. 수육 2만5,000원.
/ 여성조선
진행 백은영 취재팀장 | 취재 월간 산 취재팀 | 사진 조선일보 DB
자료협조 서울특별시 관광과(www.visit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