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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봐야 하는가? 천재적이지만 망상에 시달리는 아들을 매일 돌보는 동시에 정신질환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싸우고 정신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려 투쟁하는 아버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멘탈 트래블러: 조현병과 투쟁한 어느 아름다운 정신에의 회고』는 시카고 대학교의 영문학 및 예술사 교수인 W. J. T. 미첼이 중증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아들 가브리엘의 삶과 죽음, 정신의 여정을 그린 회고록으로 아들의 정신병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기록이다. 또한 병을 앓는 당사자가 스스로의 병을 가지고 예술과 삶으로써 실험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중요한 책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는지 묻고, 정신병을 앓는 사람의 가족이 된다는 것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근본적 질문부터 정신질환의 당사자, 그의 보호자에 관한 질문을 포괄하는 문제작이다.
가브리엘 미첼은 21세의 나이에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18년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놀랄 만큼 창조적인 작품들을 남겼고, 아버지는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고자 했던 아들의 노력을 세상에 남기기로 결심한다. 광기란 황홀의 순간이든 우울의 순간이든 실연당한 가슴 아픈 순간이든 우리 모두가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겪게 되는 주관적 경험의 극단적 형태라고 가브리엘은 생각했다. 그는 조현병을 사형선고가 아니라 배움의 경험으로, 광기를 저주가 아니라 비판적 관점으로 바꾸고자 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고통으로 가득한 이 책은 가브리엘이 어떻게 아버지를 광기 안에서의 깨달음이라는 힘든 여정으로 이끌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정신질환에 직면하여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줄 것이다.
🏫 저자 소개
W. J. T. 미첼
시카고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의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하는 『크리티컬인콰이어리』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또한 ‘시각문화’가 학제 간 연구 영역으로 정착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블레이크의 복합 예술』(1978, 박사논문), 『아이코놀로지』(1986), 『그림이론』(1994), 『마지막 공룡 책』(1998) 등을 저술했으며,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로 미국현대어문학협회(MLA)의 제임스러셀로웰상(James Russell Lowell Prize)을 수상했다.
📜 목차
서문 9
1 “저는 이제 노숙자가 되어야겠어요” 15
2 ≪매드≫ 투어 34
3 치유가 되는 풍경 47
4 “내 머릿속에 뭔가 있어요” 67
5 황폐한 시간부터 ‘다 주얼’에서의 나날까지 81
6 비행과 추락 94
7 진단과 우회로 100
8 “이제 미래가 없어” 107
9 그 아이는 자신만을 위해 살기에는 너무 강인했다 115
10 가브리엘의 남겨진 뒷장들 128
11 Philmworx 135
12 보호자 되기의 어려움 155
13 가브리엘 미첼의 사례에 관하여 167
후기: 가브리엘에게 보내는 재니스 미저렐 - 미첼의 시 187
외할머니의 생일에 가브리엘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217
일러두기 220
더 읽어야 할 것과 더 보아야 할 것들 225
📖 책 속으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쓰고 싶은 책과 써야만 하는 책이다. 나는 첫 번째 종류의 책은 꽤 많이 썼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책은 내 아들 가브리엘 미첼의 삶과 죽음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는 38살에 자살하기까지 20년 동안 조현병과 사투를 벌였다. 이 책은 내가 쓰고 싶었다거나 쓰리라고는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던 책이다. 2012년 6월 24일,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 p.9
1991년 가을에 나는 가브리엘에게서 급하다는 전화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뉴욕 대학교에 입학한 지 몇 주 되지 않아서였다. 가브리엘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메시지를 확인한 즉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 p.15
가브리엘은 자신의 영화가 광기를 부정적 연상에서부터 긍정적 연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기를 “정신적으로 아픈”이라고 분류해서 낙인찍고 고립시키는 이름표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비판적 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가브리엘은 정상성과 광기 사이의 사회적이고 의학적인 경계를 탐구하고자 했고, 그 경계를 통해 인류가 치유 불가능한 정신장애와 대면할 수 있게 되는 시대를 예견하고자 했다. 그는 미셸 푸코의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즐겨 인용했다. “아마도 언젠가는 광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우리는 광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어떤 미지의 목적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의 영화는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광포한 정신 병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광기의 종족을 위한 안전가옥이자 피난처가 되는 새로운 행성으로서 말이다.
--- p.19
“내가 만약 미치게 되면 나는 정말 미치는 걸 잘하고 싶어. 광기계의 마이클 조던이 되고 싶은 거야.”
--- p.21
나는 ≪매드≫에 방문했던 기억이 조현병과 씨름할 때 가브리엘에게 일종의 무의식적 기억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병의 초기에 그는 환각적인 글씨와 만화,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기이했던 이미지는 “사랑”(초록색), “정체성”(보라색), “위험”(빨간색)과 같은 단어들이 각인된 문을 그린 것이었다. 가브리엘에게 사랑은 정체성 너머에 있는 어떤 곳으로 가는 문이었다. 정체성은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는 장벽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조현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맞서게 해주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 p.38
우리는 자크 데리다와 마르그리트 부부를 만나서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함께 조용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가브리엘은 데리다에게 그의 유명한 개념인 “해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사실인가요?” 가브리엘이 물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란다.” 데리다가 대답했다. “신문에서나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거지. 나는 정확히 그 반대로 생각한단다. 단어는 의미가 너무 많은데, 해체는 그 의미층들을 드러내주는 거지.” 가브리엘은 이 대답에 완전히 감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단어는 새 같은가요? 아니면 아예 쓰레기 같은 건가요?” 데리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둘 다일 수도 있겠지?” 그러자 가브리엘이 말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한테 항상 ‘왜’냐고 물어서 부모님을 성가시게 했거든요. 부모님이 저한테 그만 좀 물어보라고 했을 때 저는 ‘왜 나는 항상 왜냐고 물어보죠?’ 하고 또 물었어요.” 데리다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다.”
--- pp.50~51
가브리엘은 창문으로 가서 창살을 열어젖히고는 숨이 멎은 듯 서 있었다. 바다가 펼쳐져 있고 절벽 아래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는 것도 내려다보였다. 나는 가브리엘이 셔츠를 벗고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아빠.” 가브리엘이 말했다. “이제 기분이 훨씬 낫네요.”
--- p.54
?광기의 대화?에서 가브리엘은 어린이, 군인, 연쇄살인범들의 정신장애에 대한 신문의 헤드라인을 몽타주한 다음 카메론 디아즈의 얼굴을 비춘다. 그의 보이스오버는 격앙되어 떨리고 있다. 가브리엘의 마지막 생각과 감정은 희망이거나 절망이었을 수 있다. 비행의 환상에서 오는 희망이나, 망각으로 뛰어드는 것에 대한 절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위안은 없다. 오직 공포만이 있을 뿐.
--- p.114
가브리엘을 알고 지낸 많은 사람들은 가브리엘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가브리엘의 극심한 증상 발현은 친밀한 가족에게만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가브리엘은 가족에게는 자신의 분노와 절망과 과대망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그는 자신의 고통의 깊이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 p.118
우리가 시카고로 이사 가면서 그의 사적인 세계는 어슐러 르귄, 자크 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 헨리 루이스 게이츠, 프레드릭 제임슨, 줄리아 크리스테바,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프리드, 로버트 모리스, 타니아 브루게라, 앤터니 곰리 등등의 유명한 작가들을 포함하게 됨으로써 더욱 확장되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 또한 그의 환상 세계와 영화 시나리오의 일부가 되었다.
--- p.137
조력자인 보호자들은 자주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모든 책임이 한 사람 내지 두 사람에게만 쏠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질환의 원인, 치료, 진단에 대해서는 거의 합의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기분전환용 약물을 사용한 것이나 우리의 방임주의 교육관이 가브리엘의 상태의 원인이 된 걸까? 가브리엘의 상태를 조현병, 조울증, 혹은 분열형 인격장애라고 불러야 했을까? 그런 의학적 모델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지 않은가? R. D. 랭의 조현병 분석은 부재하는 아버지와 애정 없는 어머니로 구성된 문제 있는 핵가족이라는 그림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치료법은 환자를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때로는 새로운 가족에 입양되도록 하는 것을 요구했다. 이는 심지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불렸다. 또 다른 양극단은 정신질환자들을 공공수용시설에 집어넣어서 강제로 감금하고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었다. 조현병과의 투쟁을 보여주는 엘린 삭스의 자서전은 미국 정 신병원에서 사용하는 강제처치들(벽에 매트리스를 댄 1인실에 감금하거나 구속복을 입히는 등)이 주는 공포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조현병으로부터의 생존은 효과적인 약물과 말하기 치료를 찾아내는 것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pp.155~156
광기는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상태라는 푸코의 생각에 가브리엘은 반대하려 했다. 가브리엘은 광기를 자기 작품의 재료이자 방법론으로 만들려고 결심했다. 따라서 가브리엘의 활동은 조현병 자체와의 투쟁이었다. 자신을 무능력하게 하는 증상과 낙인에 대한 복합적인 저항인 동시에 반영이었던 것이다.
--- p.172
가브리엘은 광기를 통과하는 자신의 여정이 천재적인 조현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미지의 “아웃사이더”에게도 닿기를 희망했다. 무명의 괴짜 예술가들, 외상후증후군을 앓는 퇴역군인들, 미국 대도시의 거리와 시골길을 떠도는 이름 없는 부랑자들과 노숙자들, 그리고 때로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난민 들과 불안정한 추방자들의 공동체 모두를 포함하는 아웃사이더들 말이다.
--- p.174
가브리엘이 우리에게 준 것은 하나의 “작품”보다도 더 심오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조현병을 유용한 것으로 바꾸면서 조현병을 작동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이자 개념이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무한 큐브?를 결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앤터니 곰리가 그것을 세상에 구현되도록 했다. 가브리엘은 결코 9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장의 레드 카펫을 걸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조현병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잠시나마 조현병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가브리엘은 작품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완결될 수 없을 위대한 일을 나에게 남기고 떠났다.
--- p.182
🖋 출판사 서평
“나는 나의 병이 스스로 작동하게 하고 싶다”
정신의 여행자
나는 인간의 땅을 여행했네
남자들과 여자들의 땅을
그리고 차가운 땅의 방랑자는 결코 알지 못했을
그토록 무서운 것들을 듣고 보았다네
─ 윌리엄 블레이크, 〈정신의 여행자〉
‘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정상’을 벗어난 ‘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걸까.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우리는 시대마다 다른 문화와 전통 안에서 결정된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을 진리라 믿으며 산다. 그러나 『멘탈 트래블러』는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다양한 삶의 한 형태일 수 있음을, 또 우리가 정상이라 믿는 것이 오히려 광기의 한 형태일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멘탈 트래블러』는 정상과 비정상, 그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보고 듣고 탐험한 세계를 창조적 방식으로 증언하려 했던, 또 자신의 체험을 ‘광기’로 규정하며 배척하는 질서 세계를 탐구했던 어느 이름 없는 예술가의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다. 동시에 그 여정을 함께한 그의 여행 친구이자 보호자인 아버지가 써내려간 특별한 여행기이며, 정신병에 대한 귀한 기록을 담은 ‘광기의 역사’의 미시적 사례사이기도 하다.
21세(외국 나이로 19세)의 나이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가브리엘 미첼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정신의 여행자〉 속 화자처럼 ‘남들은 결코 알지 못했을’ 무서운 소리와 형상을 듣고 보는 고통을 겪는다. 그는 그 고통을 부정하거나 증오하는 대신 무의식의 심연 위에서 서핑 하듯 파도를 타며 정신의 바다를 여행한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경험한 카오스적 세계를 질서의 세계 속에 펼쳐 보이려고 시도했다. 그가 남긴 영화, 그림, 시나리오, 글 등이 그의 노력을 증명한다. 정신의 여행자 가브리엘이 여행한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그와 함께 특별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 책을 쓴 저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발병과 진단, 치료의 지난한 과정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쓰고 싶은 책과 써야만 하는 책이다. 나는 첫 번째 종류의 책은 꽤 많이 썼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책은 내 아들 가브리엘 미첼의 삶과 죽음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는 38살에 자살하기까지 20년 동안 조현병과 사투를 벌였다. 이 책은 내가 쓰고 싶었다거나 쓰리라고는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던 책이다. 2012년 6월 24일,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서문, 9쪽)
1991년 어느 가을날, 영화감독을 꿈꾸던 가브리엘 미첼은 뉴욕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진짜 삶’을 찾기 위해 노숙자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노숙자만이 현실과 접촉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안락한 환상 속에 사는 “아빠야말로 현실을 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현실을 탐험하겠다는 아들을 간신히 ‘정상성’의 세계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노숙자가 되겠다는 전화를 받은 후 가브리엘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간다.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아들이 갑자기 돌변해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공격적 존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가족에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저자는 아들이 조현병 진단을 받은 후 가족들이 느꼈던 충격과 절망, 고통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아들과의 평범했던 일상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광기의 징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잘못된 훈육 방법이 아들의 정신병을 유발한 것은 아닌지, 아들과 관계 맺기를 잘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온갖 생각들로 괴로워한다.
저자는 그날 이후 20년의 세월 동안 가브리엘과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담아낸다. 그 시간은 한 사람이 조현병 증상을 겪고, 의학적 진단과 싸우고, 정신보건 시스템의 미로를 헤쳐 나갔던 시간이자, 아들이 조현병으로부터 살아남도록 그를 도우며 살아간 아버지의 시간이며, 한 가족이 정신보건 시스템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거나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했던 시간이다.
“그들은 가족들을 정신질환의 세계로 함께 데려간다.”(158쪽)
정신질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그와 함께 정신질환의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호자는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치부되거나 환자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고 기관에 넘겨 버린 무능한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그들은 죄의식, 혼란, 분노, 회한의 감정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한편 조현병 진단은 불치병,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는 조현병 환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있지만, 조현병 진단을 받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정신병원 등으로 ‘추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브리엘 미첼의 정신질환은 가족들을 더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돕고 보호하기 위해 행했던 가족들의 세심한 노력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도 같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더 단단해진다. 가브리엘에게 어머니는 보험과 투약의 문제, 사회보장 혜택, 재무상태 등의 문제를 담당하는 현실적 수호자이자 예술가 멘토였고, 누나는 정신적 조언자이자 가까운 친구였고, 아버지는 영화, 스포츠, 독서를 함께하는 친구였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환자와 보호자라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광기를 주제로 고다르, 블레이크, 니체, 들뢰즈와 가타리 등을 함께 공부하는 배움의 동반자 관계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광기를 바라보기
가브리엘은 데리다에게 그의 유명한 개념인 “해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사실인가요?” 가브리엘이 물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란다.” 데리다가 대답했다. “신문에서나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거지. 나는 정확히 그 반대로 생각한단다. 단어는 의미가 너무 많은데, 해체는 그 의미층들을 드러내주는 거지.” 가브리엘은 이 대답에 완전히 감격한 것처럼 보였다. ??? “제가 어릴 때 부모님한테 항상 ‘왜’냐고 물어서 부모님을 성가시게 했거든요. 부모님이 저한테 그만 좀 물어보라고 했을 때 저는 ‘왜 나는 항상 왜냐고 물어보죠?’ 하고 또 물었어요.” 데리다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다.”(50~51쪽)
가브리엘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자크 데리다를 만났을 때 그의 유명한 개념인 ‘해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데리다는 ‘해체’가 단어의 다양한 의미층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데리다의 ‘해체’와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에게 ‘광기’는 ‘정상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의미층을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광기는 역사를 통틀어 모든 문화와 전통에서 발견되는 거야. 때로는 악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때로는 선으로 보이기도 해. 나는 이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20쪽)
가브리엘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싸우면서도 예리한 통찰로 광기를 보려고 시도하고, 광기를 통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려 했다. 가브리엘이 광기를 보려 했다는 것은 광기의 다양한 사례를 보려 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광기에 대한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해 나갔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R. D. 랭, 미셸 푸코, 에라스무스, 플라톤, 성경, 히에로니무스 보스, 프란시스코 고야, 윌리엄 블레이크, 히치콕, 피터 로빈슨, 프레더릭 와이즈먼, 스탠리 큐브릭, 장 뤽 고다르???. 가브리엘은 철학, 미술, 문학, 음악, 영화 등 광기에 대해 다룬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을 통해 광기를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담론의 차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권력과 광기와 종교가 깊이 엮여 있는 서구 문명에 대한 성찰을 포함한다.
가브리엘은 니체의 말처럼 광기는 집단과 정당, 국가, 시대를 뛰어넘어 더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종’의 고통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기와 정상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가브리엘의 예술적 여정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보편적 인간의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광기의 정치화에 대해 배웠고, 광기의 개인적 형태를 사회적으로 부과된 정체성이자 깊은 존재론적 파급효과를 가지는 사회적 구성물로 보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165쪽)
가브리엘의 세계는 어슐러 르 귄, 자크 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 헨리 루이스 게이츠, 프레드릭 제임슨, 줄리아 크리스테바,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프리드, 로버트 모리스, 타니아 브루게라, 앤터니 곰리 등을 통해 더욱 확장되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이 그의 환상 세계와 영화 시나리오의 일부가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광기와 정상성의 경계를 탐험했던 유일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조현병이라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서 나와 영화를 만들었다.”(154쪽)고.
가브리엘은 자신이 혁명가들, 예언자들, 순교자들, 예술가들, 몽상가들을 비롯해 이름 없는 아웃사이더들, 노숙자들, 버려진 사람들, 조용히 광기에 고통받고 감금된 사람들의 삶과 함께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광기를 통과하는 자신의 여정이 천재적인 조현병 환자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미지의 아웃사이더에게도 닿기를 희망했다. 가브리엘은 광기를 통해 광기 너머를 보고, 비정상이라 낙인찍혀 이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들과의 연대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나는 나의 병이 스스로 작동하게 하고 싶다”
생애 마지막 5년은 가브리엘의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다. 이 시기 그는 아웃사이더 예술가, 아웃사이더 영화가이자 반데카르트적 기하학 원칙을 발명한 아웃사이더 수학자이기도 했다. 아웃사이더 수학자로서 그가 만든 것이 〈무한 큐브〉이다. 현재 시카고 스마트 미술 박물관에는 ‘터너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의 조각가 앤터니 곰리가 가브리엘의 사후에 완성한 〈무한 큐브〉(148쪽 참조)가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가브리엘이 만든 큐브 모형에 기초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혼란한 정신 속에서 질서의 감각을 찾고자 한 가브리엘의 욕망에 기반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브리엘은 고대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철학의 역사를, 플라톤의 동굴이론부터 시작하는 영화의 역사를 작품으로 만들었고,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를 모델로 삼아 9시간짜리 〈광기의 대화〉라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나는 나의 병이 스스로 작동하게 하고 싶다.”(18쪽)
미셸 푸코는 광기는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가브리엘은 그 생각에 반대했다. 그는 광기를 자신의 작품 재료이자 방법론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정상성과 광기의 경계를 탐구하며 정신병이 영화와 예술, 문학 등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광기의 지도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 〈광기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정상성과 광기의 경계를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랐고, 이로써 광기를 그저 ‘정신적으로 아픈’ 것으로 분류해 낙인찍고 고립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비판적 틀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미셸 푸코의 예언처럼 “아마도 언젠가는 광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될 것”(19쪽)이라고 보았다. 지금 우리는 정상성이란 잣대로 광기를 규정하지만, 가브리엘은 언젠가 우리가 광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어떤 미지의 목적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9쪽) 이것이 “병이 스스로 작동하게 하고 싶다”는 말의 의미다.
격자와 소용돌이. 그것은 가브리엘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광기의 대화〉에서 사용한 두 가지 이미지이다. 이는 질서와 무질서, 합리성과 광기 사이를 유영한 가브리엘 자신의 이미지이자, 모순을 품고 있는 인간 삶을 가리키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모순적 세계가 정신의 바다 위를 항해한 가브리엘과 그의 아버지가 발견한 미지의 땅이다. 그러나 이 ‘차가운 방랑자’가 개척한 세계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여전히 거부되는 차갑고 가장 먼 세계는 아닐까.
“모든 것은 자신만의 소용돌이를 가지고 있다.”(1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