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건설사 갈등에 분양가만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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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입주를 목표로 했던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는 통상 준공 2년 전에 하는 일반분양을 아직 못 하고 있다. 공사비 증액과 분양가 산정을 놓고 시공사와 조합이 1년가량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준공이 6개월 이상 미뤄지면서 금융 비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조합에선 내장재를 수입품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착공 전 3.3㎡당 510만 원이었던 공사비는 800만 원대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도심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상당수가 건설사와 조합 간에 갈등을 빚거나 표류하고 있다.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전국 약 260만 채, 서울 약 50만 채 재건축이 속도를 내려면 주먹구구식 정비사업 체계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동아일보와 부동산R114가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 중 계획 확정 단계인 사업시행인가 단계 69곳을 확인한 결과 27곳(39.1%)이 2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 문제가 사업 지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곳은 19곳이다. 이들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건설사의 ‘깜깜이’ 공사비 인상 요구나 전문성이 없는 조합의 무리한 ‘고급화’ 요구가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원자재값 및 인건비 상승 외에 내부적으로 낀 거품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이용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인된 기관이 사업 추진 단계별로 수시 점검을 하는 등 공사비 변동을 투명하게 추적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사-조합 갈등에 재건축 지연-분양가 껑충… 일반수요자 한숨
[삐걱대는 재건축 사업] 서울 재건축 확정 40% 공사 지연
건설사, 구체적 내용없이 증액 요구… 수용 불가 조합과 갈등, 계약해지도
일부 조합 “수입 내장재로 고급화”… 상승 공사비, 일반 분양가에 전가도
“주먹구구 재건축 관행 재정비해야”
서울 등 도심 정비사업이 대거 지연되는 표면적인 이유는 원자재 가격 인상과 인건비 인상으로 인한 공사비 급등이다. 하지만 사업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주먹구구식 재건축·재개발 사업 관행이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진 현재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3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날 기준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전국에 260만8000채로 전체 아파트의 21%를 차지한다. 서울과 경기에 각각 49만9000채, 52만 채가 있다. 도심에 사실상 남은 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도심 주택 공급은 이 주택들을 어떻게 정비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하지만 건설사는 ‘묻지 마 수주’를 한 뒤 구체적인 내역 없이 관행적으로 공사비를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다. 조합은 이를 검증할 전문성은 갖추지 못한 채 최고급 내장재와 화려한 커뮤니티 시설을 요구하며 가격 거품만 키우고 있다. 이로 인한 분양가 상승과 공급 감소로 인한 피해는 일반 수요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급등은 돌이키기 힘든 흐름인 만큼 재건축·재개발 사업 관행을 뜯어고쳐 거품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 4000억 원 증액 요구에 내역서는 단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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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경기 성남시 은행주공아파트 조합은 시공사의 공사비 4000억 원 증액 요구와 함께 A4용지 3장을 받았다. 공사비를 8370억 원에서 1조2496만 원으로 기존 대비 49.3% 인상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정작 조합이 받은 자료에는 구체적인 인상 내역이 없었다. ‘1층 층고 높이 변경: 3200mm→4800mm(골조. 화강석 마감 증가)’로만 표시돼 있고 해당 항목에 대해 얼마나 인상되는지 액수는 없는 식이었다.
조합은 여러 차례 상세 내역을 요구했는데도 시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계약을 해지했다. 조합 관계자는 “설계 변경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공사비가 4000억 원 넘게 올랐다”며 “구체적인 인상 내역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시공사는 “구체적인 공사비 산출 내역은 착공 전후에 확정되기 때문에 현재 단계에서 인상 부분을 최대한 자세히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양측은 현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정비 사업장은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두 차례 공사비가 인상됐다. 첫 계약 당시인 2017년 3.3㎡당 498만 원이었던 공사비를 2022년 7월 609만 원으로, 지난해 4월에는 636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시공사가 요구한 것. 부대시설 등이 추가된 총 공사비는 7396억 원에서 1조1574억 원으로 56.5% 증액됐다.
4000억 원 넘는 공사비 증액에 부담을 느낀 조합 측은 공사비 인상이 적정한지 외부 전문업체에 검증을 맡겼다. 점검 결과 시공사가 요구한 4178억 원 중 190억 원(4.5%)은 시공사가 부담할 몫으로 결론이 났다. 공사장 인근 먼지와 소음 등 민원 해결 비용을 조합 몫으로 설정해 둔 데다 계약 당시 ‘수입 원목마루’로 명시된 자재가 알고 보니 중국산이었던 것이다. 조합은 이 점검을 토대로 수입 마루로 바꾸고, 시공사가 원하던 수의계약 대신 경쟁입찰로 비용을 절감하게 했다. 조합 관계자는 “일부 비용을 줄인 것도 다행이지만 공사비 인상의 근거가 명확해져 나머지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기 수월했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조합들 사이에선 일단 공사 계약을 하고 나면 건설사와 ‘갑을 관계’가 바뀐다는 불만을 내놓기도 한다. 이주, 철거 등이 일단 시작되면 공사가 지연될수록 금융비용 때문에 조합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유원제일1차의 시공사인 DL이앤씨는 2020년 3.3㎡당 486만 원이었던 공사비를 올해 715만 원까지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은 이를 받아들일지 검토하고 있다. 조합 측은 “공사가 지연되면 조합원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이다 보니 협상에서 조합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수입 내장재 요구하며 “공사비는 일반분양가 높여 해결”
조합 역시 지나친 고급 설계 요구로 재건축 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북아현2재정비촉진구역은 2022년 하반기(7∼12월)부터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마감재 선정을 놓고 갈등을 벌여 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됐다. 조합에서 마감재 항목으로 이탈리아산 아트월(대형타일)과 원목마루, 독일산 주방가구와 수전 등 고급 마감재를 요구한 것. 시공단은 조합 제안대로면 분양가를 845만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해 계약 해지 직전까지 갔다. 결국 지난해 12월 마루, 주방가구는 국산으로 변경하고, 공사비는 748만 원으로 결정됐다.
높아진 공사비로 인한 조합원 부담을 일반분양가에 전가하는 사례도 나온다. 광주의 한 재개발 사업장은 일반분양가를 놓고 갈등이 벌어져 착공, 분양을 못 하고 있다. 조합이 시공단에 최상급 브랜드를 요구해 내외장재, 마감재가 고급화됐고, 그 결과 공사비는 2019년 3.3㎡당 445만 원에서 지난해 말 3.3㎡당 706만 원으로 올랐다. 조합은 늘어난 조합원 분담금을 낮추기 위해 3.3㎡당 일반분양가를 2450만 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광주의 3.3㎡당 평균 분양가 1888만 원보다 30%가량 높은 가격이다. 시공단은 해당 분양가로는 미분양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일반분양가를 2186만 원으로 낮추고, 조합원 분양가를 890만 원에서 1190만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 “주먹구구 재건축 관행 재정비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정비사업의 ‘후진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수천억 원이 오가는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당사자인 조합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건설사 역시 수익성을 위해 ‘깜깜이’로 공사를 진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건설업계 관계자는 “모든 단지가 수입 내장재를 쓰고 스카이브리지를 만들려고 한다”며 “앞으로 공사비는 계속 오를 텐데 지금 같은 관행으로는 갈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 서울씨엠씨의 이정훈 본부장은 “한국부동산원,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이 공사비를 검증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이들의 검증 결과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