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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묵상글 ( 10/14 22:25, 04:50, 05:10.)
1) 저는 아래 몇 분의 글만 공유합니다.
1차 공유하는 묵상글< 전일 22시반 이전 > : 고인현 신부님. 호명환 신부님.
2차 공유할 묵상글< 04시 ~ 05시반, 07시 이후 > :
김찬선 신부님. 호명환 신부님. 이마르첼리노M 수사님.
* 가능하면 위와 같이 할 계획이나 개인 형편으로 그리 알 될 경우가 있습니다..
이 시간대 이외 여러 묵상글을 보시려면 전체공지란 " H. 260707. 카페 운영에 대한 고견을 주세요." 의
2번에 들어 가셔서 안내를 받으세요
** 오늘 묵상글 공유 : - 고인현 신부님 10/14 22:25 . 호명환 신부님 04:50 추가
- 김찬선 신부님 05:10 추가. 호명환 신부님 05:10 추가. 이마르첼리노M 수사님 04:50 추가
2) 정회원님 중 다른 묵상글을 공유하실 분은 오늘 묵상글을 이 뜨락에 게재하여 주시고
지난 묵상글은 “5-1. 소금(나눔) 뜨락 1”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3) 이 묵상글 뜨락은 전체 공지 "H. 260707" 2-1의 가-1), 나)를 실행할 계획입니다.
가-1) 프란치스칸 공동체나 개인 또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존중하는 분으로서 이 카페를 인계받아 운영할 의사가 있으신 분과 협의를 시작하고, 이 공간의 계속 여부도 합의가 되는 대로 즉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11월 대림시기(11/29) 이후 12월 중순 아니면 , 그 이전이라도 실질적으로 운영을 중단할 계획이오며
카페는 여러 자료를 활용하실 분을 감안 당분간 존속시킬 계획이기에, 2)의 회원분이나 제가 가끔 묵상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경우를 감안, 묵상글 뜨락은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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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http://www.ofmkorea.org/ofmhomily/586312
2026.10.14 20:39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11,47-54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불행 선언’이 이어집니다.
오늘 가장 아픈 말씀은 마지막 것입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다.”
‘지식의 열쇠’란 하느님을 알고 만나게 하는 열쇠입니다.
율법 교사들은 성경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으로 열어 주지 않고
도리어 복잡한 규정으로 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사목자들에게 늘 일깨웠듯,
말씀을 맡은 이는 문지기가 아니라 ‘문을 여는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 기리는 성녀 데레사가 환히 빛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열쇠를 치우기는커녕,
잠긴 문을 활짝 열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스무 해 가까이 메마른 기도와 씨름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모래시계만 쳐다보던 시절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 마흔 즈음, 상처 입으신 예수님의 상본 앞에서
깊은 회심을 겪고 관상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간 그 길을 아낌없이 글로 남겼습니다.
〈영혼의 성〉에서 그는 우리 영혼을 ‘수정으로 된 성(城)’에 비깁니다.
그 성의 가장 깊은 방에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기도’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어려운 규정이 아니라, 누구나 열 수 있는 문 말입니다.
그녀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과 단둘이 나누는 우정 어린 대화.’
얼마나 다정한 열쇠입니까?
배우지 못한 이도, 죄인도, 지친 이도 열 수 있는 문입니다.
데레사는 그 문을 열어 두고 우리를 부릅니다.
물론 그도 오해와 모함을 겪었습니다.
수도회를 개혁하려다 온갖 반대에 부딪혔고,
‘여자가 무슨 신학이냐’는 시대의 벽에 갇혔습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들처럼, 앙심을 품고 몰아대는 이들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노래했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게 하라.
아무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게 하라.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2티모 1장도 말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의 영을 주셨습니다.
친절·선행 주간의 눈으로 보면
데레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그녀는 깊은 신비 체험을 하고서도
기도의 참된 열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참되었는지는 무릎 꿇은 시간만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로 드러난다.”
그러니 관상과 친절은 두 개가 아닙니다.
깊이 기도한 사람은 반드시 이웃에게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그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
문을 열어 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선행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남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을 막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받은 은총과 길을 이웃에게 열어 주는가?
나는 내 영혼의 성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대화하는가?
나의 기도는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고 있는가?
주님,
남이 당신께 나아가는 문을 막지 않게 하소서.
제 영혼의 성 안에서 당신과 우정을 나누게 하시고,
그 기도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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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95?referrerAllArticles=true
2026.10.14. 23:32
오디세이아: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마침내 오디세우스는 참된 자아, 곧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회복된 자아로 귀가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집으로 돌아감(귀가)!
오디세이아: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리처드 신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인간 영혼이 본향을 떠나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필연적 여정을 드러내는 원형적 이야기로 성찰합니다:
"집"은 곧 우리가 존재하는 성령, 하느님 안에서의 참된 자아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는 바로 그 순간,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귀환입니다. 그 전까지 우리는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데, 오늘날에는 이를 외로움, 고립감, 그리움, 슬픔, 불안, 혹은 일종의 우울로 표현하곤 합니다.
성령께서 머무시는 내적 거처, 동시에 그리움의 자리로 불리는 가장 흔한 이름은 "영혼"입니다. 우리는 영혼과 함께 태어납니다. 시작 속에 이미 종말이 심겨져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그곳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이끌어 갑니다. [1]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움과 불만의 움직임은 트로이의 몰락과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본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실로 상징됩니다. 그들은 본향을 잊었거나, 이방 땅을 자기 집으로 삼았거나, 귀환에 대한 결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영적 여정에서 흔히 겪는 우회와 막다른 길을 잘 묘사해 줍니다.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본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며, 그는 곧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모범을 보여줍니다. 본향을 찾지 않는 이들은 오디세우스가 만난 "연꽃을 먹는 자들"로 상징되는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잊고 내적 깊이와 의식을 상실한 이들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노를 기억해 보십시오. 내륙의 나그네는 그것을 키질하는 부채로 착각했습니다. 그 노는 오디세우스의 인생 전반부의 직업을 상징했지만, 이제는 내적 작업을 위한 도구로 변모하여 밀과 쭉정이, 본질과 비본질을 식별하게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인생 후반기에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식별(discerment)"과 섬세함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오디세우스 여정의 종결을 의미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그는 참되고 온전한 자아, 곧 하느님 안에서의 자신에게로 돌아왔기에 본향에 귀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외적인 활동에 불과했던 항해와 노 젓는 날들은 끝났고, 그는 이제 내적 삶의 단순함과 깊은 뿌리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행위'를 억지로 이어가지 않아도 되며, 마침내 "인간 존재" 자체를 누리며 자기 안에서, 곧 하느님 안에서 집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디세우스처럼 우리도 이타카를 떠나 다시 이타카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참된 본향이 됩니다. 모든 것이 포함되고, 아무것도 버려지거나 미움받지 않으며, 심지어 어둠의 부분조차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쓰입니다. 모든 것이 용서받았습니다. 본향으로의 귀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인 C. P. 카바피(1863–1933)는 그의 유명한 시 「이타카」에서 이 깨달음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옮겨봅니다:
이타카는 이제 당신에게 아름다운 여정을 선물했습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당신은 그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정에서 얻은 큰 지혜와 당신의 풍부한 체험을 통해
마침내 이타카가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50년 전 임종을 앞둔 어머니 곁에 있었던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몸을 숙여 "엄마, 이제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떨리는 손은 제 얼굴 양쪽을 쓰다듬더니 이내 위로 올라와 제 머리 위에 얹혀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내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려 애쓰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주신 이 선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삶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Margaret O.
[1] Paraphrased from Teresa of Ávila, The Interior Castle, trans. Mirabai Starr (Riverhead, 2004), 129.
[2] See C. P. Cavafy, “Ithaca,” in The Complete Poems of Cavafy, trans. Rae Dalven (Harcourt, Brace and World, 1961), 36–37. Paraphrased by Richard Rohr.
Adapted from Richard Rohr, Falling Upward: A Spirituality for the Two Halves of Life, rev. ed. (Jossey-Bass, 2024), 57, 56, 59, 60.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Richard Bell, untitled (detail), 2022,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내적 성소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가 누구인지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을 밝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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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6.10.15 04:58
-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귀한 나
오늘 독서는 에페소서의 시작 부분으로서 신약의 가장 대표적인 그리스도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얘기하는 그리스도론 가운데 하나인데
오늘 독서에서는 이런 표현 곧 ‘그리스도 안에서’가 반복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선 우리 인간에게 은총과 사랑을 베푸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다 베푸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이런 묵상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귀하게 창조하셨구나!
하느님께서는 나를 끝까지 구원하시는 분이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난 참으로 귀한 존재구나!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저를
어쩌다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영적인 복을 내게 내리셨는데
그 첫 번째 복이 바로 천지창조 이전에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 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그때 이미 나도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저도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이것이 제게는
그 모든 걸 통해 저를 창조하셨다는 엄청난 말로 들립니다.
제가 태어날 때 저의 부모가 안 계셨으면 저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저의 부모의 부모가 안 계셨어도 저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렇게 따져가면 저의 조상 중 한 분이라도 안 계셨으면 저는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저를 위해 이 모든 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창조하신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고맙고,
저를 있도록 있어 주신 모든 조상님 또한 얼마나 고마우며,
이런 사랑을 받아 태어난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복되고 귀한 존재입니까?
이렇게 묵상하면 저는 이렇게 귀한 존재이고 복된 하느님 자녀인데 그런 줄 모르고
가끔, 아니, 자주 하느님의 자녀에서 인간의 자녀로,
인간의 자녀에서 욕망의 자녀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귀하게 저를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저를 끝까지 사랑하실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귀하고 복된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고 감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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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96?referrerAllArticles=true
2026.10.15. 05:03
하느님의 성실하심!~~~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모두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아주 유명한 기도요 노래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이 짧은 기도는 성녀 예수의 데레사, 곧 아빌라의 데레사가 평생 동안 체득한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과 앎을 잘 드러내 줍니다.
하느님의 성실하심!~~~
데레사는 스페인의 가르멜회 수녀로서 교회의 "교회의 박사"로 선포된 인물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신학자이자 공동체와 교회 안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깊은 신비 체험에 뿌리를 두고, 예언자적 기질을 지닌 그녀는 가르멜회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개혁 운동을 이어가며, 맨발의 가르멜회를 새롭게 일으키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녀의 이름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의 데레사"! 그녀는 그리스도와의 깊은 친밀성과 일치를 체험한 여인이었습니다. 환시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묘사하였고, 로마의 성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 성녀 데레사의 황홀경은 이를 장엄하게 표현합니다. 데레사의 저서 내면의 성은 영혼이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영적 성장의 단계를 설명합니다. 그녀는 이를 실제로 체험하며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영혼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하라, 내 영혼아… 어떠한 세속적인 것도 네 기쁨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느님의 위대하심 안에서 즐거워하라. 그분은 사랑과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분께서 네가 그 이름을 찬미하는 데 작은 역할을 하도록 도와주신다. 네 영혼이 진실로 말할 수 있도록: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그분을 높이 기리네!'"
성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
이는 바오로의 마니피캇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지식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너희는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며 종교적 위선을 꾸짖으셨습니다. 성녀 데레사도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수도회와 교회의 개혁을 추진하며 같은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용기는 데레사 성녀의 짧은 기도 안에서 표현되듯,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 아니 하느님에 의해 소유된 사람의 용기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 자신의 존재와 온전히 일치되어 계심을 늘 의식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저는 성녀 데레사의 전구를 청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나를 슬프게 하거나 혼란케 하지 말게 해 달라고요...."
"하느님에 의해 소유되어 있음을 온전히 의식하게 해 달라고요...."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니 완전히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설 때까지...."
하느님은 우리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영원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실하신 분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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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 마르첼리노 M. 수사님.
http://www.ofmkorea.org/ofmkfb/586321
2026.10.15 01:23
그리움이 물든 가을 하늘 아래
1. 가을 들꽃의 노래
돌담 모퉁이 마른 흙바람 속에
아무도 이름표를 달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높고 시린 하늘 아래
가장 맑은 목소리로 피어납니다.
여름내 초록 그늘 속에 숨죽였던 숨결,
서늘한 갈바람이 여윈 대를 스칠 때면
하얗고 보랏빛 작은 꽃잎 끝을 모아
낮게 흔들리며 건네는 노래.
"지나가는 발걸음이여, 잠시 머물러 보아요.
화려했던 봄날의 찬가는 아닐지라도
기울어가는 볕 한 줌, 새벽이슬 한 방울 머금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깊어가고 있습니다."
눈부신 노을빛을 꽃술마다 엮어
들판 가득 잔잔한 파도로 번질 때,
비워내야 비로소 눈이 부신 계절의 비밀을
휘어지는 줄기마다 조용히 새깁니다.
머지않아 서리 내리고 마른 잎 질지라도
우리의 노래가 서럽지 않은 것은,
차가워진 세상의 발치에 엎드려
가장 다정하고 소박한 빛깔로
가을의 마지막을 따스하게 안아주었기 때문입니다.
2. 금목서 향기로 여는 아침
어둠이 걷히는 뜨락,
문풍지 틈으로 향기 한 줄기 스며듭니다.
꽃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가을은 벌써 잠든 숨을 깨웁니다.
초록 잎 사이 작고 노란 꽃들이
밤새 품었던 향기를 찬 공기에 풀어놓습니다.
신발을 꿰어 신고 마당에 서면
이슬 맺힌 금빛 꽃송이들,
그 작은 것들이 건네는 향기에
오래 모난 마음도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가슴 깊이 숨을 들입니다.
살아온 날의 쓴맛 곁으로
그윽한 향기가 번집니다.
오늘도 곱게 걸어가라고,
아직 피어날 날이 남아 있다고.
작은 꽃들이 아침을 열어줍니다.
3. 금목서 위에 내리는 비
금목서 작은 꽃송이 위로
가을비 가만히 내려앉으면
향기는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빗물의 무게를 빌려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밭고랑엔 빗물 머금어
투명하게 차오르는 배추의 연한 속살,
처마 밑 마당귀에는
물방울 방울방울 매달고 미소 띤 국화의 얼굴.
붉고 노란 물감 곱게 찍어
만산(萬山)에 색조화장을 하시는 하느님,
비 내리는 가을 하루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향기롭게 물들어 간다.
향기를 품은 가슴으로 새날을 여는 이는 복되어라
4. 은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황매산 기슭에 기대어 핀
구절초의 환한 얼굴을 지나
가쁜 숨 고르고 또 고르며
천천히 정상을 오른다.
검은 머리에 슬며시 내리던 서리가
어느덧 머리칼을 온통 은빛으로 물들였다.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여름을 건너
내게도 이토록 깊은 가을이 왔다.
눈앞에 펼쳐진 은빛 억새의 바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서로의 어깨를 쓸며 일렁이는 물결.
그 낮은 수런거림을 품고
붉은 노을이 산 아래로 번진다.
더디게 옮기는 걸음마다
오래된 무릎이 지나온 길을 되짚는다.
뼈마디에 옹이처럼 박힌 서러움도
끝내 내려놓지 못한 그리움도
오늘은 억새 사이에 풀어놓는다.
바람은 어느 사연 하나 재촉하지 않고
가만가만 먼 능선으로 데려간다.
젊은 날 푸르게 타오르던 불꽃이
이제 가슴 깊은 곳에서
온유한 온기로 익어간다.
숨을 고르느라 멈춘 자리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산하가 열린다.
은빛 억새와 붉은 낙조 사이,
백발을 흔드는 바람 속에 오래 서 있다.
저무는 햇살 한 줌이
내 머리 위에도 억새 위에도
가만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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