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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8. 큐티
여호수아 4:1 ~ 13
후손에게 표징이 되는 돌 열둘
관찰 :
1) 요단강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가져오라
- 1절.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물론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여자와 자녀들, 노인들과 가축은 제외한 숫자였습니다. 이들이 다 지나가도록 언약궤를 짊어진 제사장들은 요단강의 가운데에서 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무리가 다 건너간 뒤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도강은 보통일이 아니기에 바쁘고 혼잡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런 일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마치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 2절.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 이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셔서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택하게 하셨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활용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무의미하게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반드시 분명한 일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 3절.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 요단강 가운데에 서 있는 언약궤를 짊어진 제사장들의 발 밑 주변의 돌 열둘을 택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숙할 곳에 두라 명하셨습니다.
- 4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 여호수아는 나중에 차차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중에 차차 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복종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5절.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열두 지파의 대표로 나오게 된 이들에게 명령해야 할 내용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열 두 지파의 대표들에게 아무 돌이나 주워오라 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돌을 그냥 들고 오라고 명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 돌을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는 것입니다. 어깨에 메라는 것은 들을 수 있는 한 가장 큰 돌을 골라서 그것을 짊어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6 ~ 7절에 나옵니다.
- 6절 ~ 7절.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대표가 어깨에 큰 돌을 짊어지고 나와야 했던 이유는 그 돌들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중에 후손들이 궁금해서 물어보아야 할 정도의 큰 돌이어야 할 것을 명하시고 있습니다. 이 돌들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서편으로 넘어가게 하신 것을 기념하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그렇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의 일곱 지파를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건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얼마든지 지키시고, 채워주시고, 복 주시고자 하시는 열망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 8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은 “~대로”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명령했고,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프로세스가 되면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교회의 지도자에게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성도들에게 말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프로세스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말씀입니다. 새로이 들려지는 또 다른 직통계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이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넘어서는 메시지로 바르게 말씀의 의도대로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또 다른 돌 열둘
- 9절.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는 않았지만 언약궤를 메고 강 가운데에서 서있던 제사장들의 발이 섰던 곳에 돌 열둘을 세웠습니다. 이 돌들이 얼마나 컸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돌들이 요단강 물 속에 세움은 하나님이 일하신 사건을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따른 것이라 할 것입니다.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 이 돌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새기고자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의식은 더욱 분명하게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3) 요단강 도강의 마무리
- 10절.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미루어 볼 때, 모세는 신명기에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것을 맡기면서 앞으로 되어질 많은 일들에 대해서 예언하고, 가르쳤던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모세는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모두 예언한 놀라운 예언자입니다. 그는 신명기에서 이미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에게 신신당부하는 내용들 중에 요단강의 도강에 대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렇게 자신의 다음이 되어 이스라엘을 인도할 여호수아를 철저하고 바르게 훈련시키고, 또 준비시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무거운 언약궤를 짊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았기에 속히 건너야 했습니다. 그들이 지체할수록 제사장들의 피로가 높아지고, 언약궤를 제대로 짊어지고 있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11절.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 모든 백성과 가축들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아무런 사고가 없이 모두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와 제사장들이 요단의 나머지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물이 몰려와 물에 잠기게 될 두려움 따위는 갖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요단강의 물이 자신들을 어찌하지 못하리라는 담대함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나가야 물이 다시 흐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들 제사장들이 나머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강을 이미 건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두 보여지는 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숨죽이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크신 일들을 함께 지켜보았고, 하나님의 큰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은 홍해와 달리 물이 끊어지고 또 역으로 흘러서 뭍을 드러낸 땅이 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무리였던 이스라엘이지만 빠른 속도로 요단강을 건넜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4) 두 지파 반의 거취
- 12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명한 것과 같이 완전무장하고, 전투를 위해 준비를 다 마친 채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처자식을 요단 동편에 두고가는 상황이었기에 전쟁 준비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요단강 건너의 무장 세력을 대항하기 위해서 이들이 먼저 요단강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호위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안전하고 보다 쉽게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 13절.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무장된 군인의 숫자가 약 사만 명 가량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숫자였고, 이들은 싸우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넌 용맹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준비된 자들을 예비하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또 가나안 정복 전쟁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여리고 평지는 여리고성 근교의 저지대로서 요단강에서 도보로 3 ~ 4시간 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선봉대가 진치며 여리고성 침략을 예비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일들을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역사를 기념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큰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단강에서 주워온 돌과 요단강 중앙에 세워놓은 돌들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심비를 세워야 합니다. 마음의 심비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통해 오늘날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2)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명령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승리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말씀 사역자들이 일어나야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증거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되고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사람들의 요구에 현혹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듣는 이들은 그러한 메신저의 인격을 넘어서는 말씀의 권위를 잘 분별하여 그 말씀앞에 바르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맡은 자의 책임이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성도들보다 더 엄중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순종하는 이들의 책임을 또한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두 지파의 대표들도 그 용도대로 사용이 되었고, 두 지파 반의 용도도 바르게 사용될 것입니다.
4) 이제 가나안 남북 연합 세력의 고리가 되는 강력한 성 여리고는 눈 앞 가시거리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수행해야 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코 앞까지 다가선 것입니다. 이제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바로 그 지경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기에 담대한 여호수아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목사로 부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대로 증거해야 하는 엄위한 책임감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대로 증거해야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메신저를 통해서 바르게 깨닫고 준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공연히 열두 지파의 대표를 세우라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사용하시고자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뽑힌 대표들이 백성들이 모두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왜 뽑혀서 언약궤 근처에 서 있어야 하는지 어리 둥절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요한 사명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들은 평생 후손들에게 자신들이 세운 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 죽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를 증거하며 요단강을 가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을 수 없는 증거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두 지파 반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