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 부근에 가면 마운트 버넌이라는 곳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저택과 농장이 보존되어 있다. 미국인은 물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관광지의 하나이다.
농장 안을 거닐면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워싱턴은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
어색하면 파머(farmer. 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 전통을 따라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 응당 국회의사당 안에
안장될 것으로 여겼다. 그 분위기를 잘 아는 워싱턴은 자기는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지금도 살던 저택 왼쪽 그것도 돌이 쌓여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
여러 차례 국회의사당으로 이장할 것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유언에 따라 옮기지 못했다.
보초 군인 두 사람이 교대해서 경호를 서고 있다.
워싱턴이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이블로 그가 얼마나 애독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섬기는 사람이
참다운 지도자라는 미국의 정신적 원천을 암시해 준다.
내가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던 미국의 지도자는 워싱턴보다 벤 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워싱턴보다 26년 선배였고 필라델피아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필라델피아 어디에 가든지 그의
삶의 향기와 흔적이 남아 있다. 필라델피아라기보다 프랭클린시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그의 무덤을 보고싶어 찾아다니다가 안내를 받아 발견한 곳은 일반인과 같은 묘소에 누워
있는 비교적 큰 돌비석 무덤이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가이지만 찾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으면 초창기 미국의 실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했고 미국 헌법제정에도 참여했다. 대서양을 왕복하면서 영국과 유럽의 문화·사상계와
교류도 많았다. 학문과 정신계의 친구들은 모두 유럽에 있었다. 미국인은 그를 과학자와
발명가로 평가할 정도로 존경하나 정규적인 과학교육은 전무했고 학교교육도 받은 바가
없었을 시대의 사람이다. 지극히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미국을
건설했다.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교회와 대학이 설립되었고 정치 지도자보다 사회지도자
들이 나라를 건설했다. 그 기반에는 기독교적 휴머니즘이 깔려 있다. 어떻게 보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반석 위에 세워진 건물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정치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의
부산물이었고, 민주정치는 인간다운 삶의 유물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 김형석 교수 저, "백년의 지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