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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실 때는 절을 해도 우상이 안되는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절을 하면 우상이 된다.
이는 사람을 신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며 이러한 풍습은 고대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현대에도 종종 목격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되는 생각과 믿음은 매우 문학적이고 원시적인 종교사상이다.
다음은 퍼온 글입니다.
제사를 거부하는 기독인들의 논거는 두가지 정도로 정리될 듯 하다.
*십계명 중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에 위배된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해야지 작고한 후에 제사 등으로 예를 표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중 우상문제에 대해서는 전작 [제사와 기독교의 음모]에서 이미 필자의 관점을 밝힌 바 있다.
이글에선 기독인과 효의 문제에 대해서 몇가지 지적을 할까 한다.
조상경배니 우상숭배니 하는 논쟁을 떠나서 ,누구보다도 어떠한 집단보다도 적극적으로 효도를 실천하고 있는 무리들이 기독인들임에 틀림없다면, 그리고 바이블이 그러한 교훈을 주고 있다면,기독인들의 필사적인 제사거부에 어느 정도 옹호해 줄 용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의도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질문에 적극적인 답변을 제출해야 되겠다.
*과연 기독인들은 효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고 있을까?
*바이블에 등장하는 주,조연들은 효도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바이블은 효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바이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는 어떻게 효를 실천했는 지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1)채찍과 당근으로 강요하는 토라의 효도 방법론
옛날, 고대 중동인들도 효도가 인류의 본질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한 덕목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방법론이 조금은 유치하며 한편으론 관념만의 효도를 강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게 한다. 물론 토라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강조하는 방법론이 채찍과 당근이라는 두가지 방안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실행해야만 하는 내용이라던가 형식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정작 소홀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지 토라의 내용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축복과 효도를 연결시켜 그 실천을 강조하는 당근을 우선 등장시키겠다.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출 20:12) >>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의 분부다. 그래야 너희는 오래 살 것이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에서 잘 될 것이다. (신 5:16) >>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오래 오래 살게 된단다....
부모를 공경하면, 생시에 여러 가지 축복을 받게 된단다....
어떠한가? 그대는 장수와 축복을 위해 효도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성공 사례가 있는가?
다음 순서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깃들인 채찍이 출현할 차례가 되겠다.
<<부모를 때린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 21:15) >>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 21:17) >>
<< 누구든지 자기 부모에게 악담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 부모에게 악담하였으니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 20:9) >>
부모를 때리고, 업신여기며,악담하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될까?
고대 유대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러한 사례가 드물지 않았단 반증으로 이러한 율법을 제정했을까?
아무튼, 구약의 편집자들도 효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해 주기로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부모에 대한 공경이나 효도를 축복받기 위한 목적으로 한다던가 아니면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한다면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너무나 서글퍼지지 않을까한다.
그건그렇고,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도 꽤들 있기는 있었나보다.
잠언의 경고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제 아비를 비웃고 어미를 깔보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밥이 되리라. (잠언 30:17) >>
<<제 부모를 저주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진다. (잠언 20:20) >>
이제 신약으로 넘어 가겠다. 신약의 주인공 예수는 어떻게 말했으며 행동은 어떠했는 지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하자.
2)효도에 관한 예수의 설교 모음
<<제자 중 한 사람이 와서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8:21) >>
제사거부에 대한 보편적 사회의 여론이 하도 가혹하다 보니, 그러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기독인들은 또하나의 위선책으로 소위 추도예배라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예수는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 마저 포기하길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가?
그대는 부모님의 장례식 마저 포기할 정도로 예수의 제자되길 원하고 있는가?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 9:61,62) >>
가족 구성원 자체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이 되겠다.
어떠한가?
부모님에 대한 효도니 식구들에 대한 염려 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하겠는가?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나는 분명히 말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상을 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 18:29~30) >>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고 상급을 받기 위해 부모마저 버리라고 예수는 가르치고 있다.
어떠한가?
그대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1,22) >>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죽게하는 그러한 패륜이 일어나야 인자가 다시 올 것이며 그러한 시기를 끝까지 참아야 구원을 얻게 된다는 예수의 예언이 되겠다.
어떠한가?
그렇게도 예수가 유혹하는 구원을 받고 싶은가?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마태 10:36,37) >>
부모님을 원수로 생각할 정도로 예수를 사랑해야만 예수의 사람이 될 자격이 있다 한다.
어떠한가?
그대는 그렇게해서라도 예수의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 다음은 예수가 몸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차례가 되겠다.
3)예수는 효자였을까?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읍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읍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듣지 못하였다. (누가 2:48~50) >>
신약의 주인공, 예수가 등장하여 처음으로 보인 행동이 가출을 하여 부모님 속을 썪인 일이라고한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터뜨린 육성을 보시라.
"왜, 나를 찾으셨읍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읍니까?" ....십년이 넘게 의붓 자식을 키우느라 온갖 맘고생으로 시달렸을게 뻔한 애비에게 그리고 애미에게 한 대꾸라 한다.
요셉은 그리고 마리아는 왜 요런 인간말종 예수에게 귀싸대기 한대 정도 올려 붙이지 못했을까?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마태 12:47,48) >>
소년 시절 가출하여 부모의 속을 뒤집었던 전력이 있던 예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듯 하다.
최소한 8명 이상 가족의 장남이었던 예수가 두번째 가출을 감행하고 난 뒤, 오빠가 형이 그리고 자식이 궁금하여 혹은 염려가 되어 찾아온 식구들에게 내뱉은 저 참혹한 대꾸를 보시라.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예수는 요따우로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도 포기한 인간 말종이 아니었나하는 의문도 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6,27) >>
기독인들이 예수가 효자였다고 우기는 유일한 장면이 되겠다.
여기에 등장하는 예수가 사랑했다는 그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인지 요한인지 혹은 예수의 동성애 상대로 의심받고 있는 나사로인지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아니, 막달라는 제외해야 겠다.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으니....
아무튼 자신의 사후, 모친의 생계 등이 염려되어 자신의 애제자에게 부탁을 하였다는 스토리인데,
이 삽화 역시 몇가지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우선 생시에 부모님에게 효도해야만 한다는 기독인들의 평소 주장에 위배됨을 지적코져 한다.
가출 그리고 부모,형제 가슴에 못을 박는 냉정한 태도로 일관했던 예수가 갑자기 그 마음이 왜? 바뀌었을까? 모친이 그렇게 걱정되었다면 평소에 효도를 실천할 것이지 왜 죽음 목전에서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예수의 제자들은 죄다 가족과 부모를 포기하고 그리고 재산 마저 헌납한 것으로 되어 있는게 소위 복음서의 기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예수가 사랑했다던 그 제자는 무슨 돈이 있어 어떻게 여유가 있어 갑자기 집이 생기고 마리아를 공양하게 되었을까?
그외 다른 의문도 있다.
예수는 최소한 6명 이상의 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마리아에게 수양 아들을 하나더 생기게 해야만 했을까?
게다가 평소 예수의 주장에 의하자면, 곧 종말이 오게될 터인데....
그러하다.
이 삽화는 예수의 종말관에도 어긋나고, 예수 공동체의 행동 강령에도 부합되지 않으며, 예수의 평소 부모에 대한 태도와도 모순이 되기만 한다.
예수의 신성만을 주로 강조하던 요한문서의 기록자가 예수의 인성면 역시 표현할 필요가 생겨 갑자기 삽입한 게 상기 삽화가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본다.
한가지만 더, 모친 마리아가 그렇게 걱정되었다면, 부활 후 예수는 왜 모친을 방문하여 문안드리지 않았을까?...이에 대한 해답은 그대의 몫으로 남겨 두겠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라이벌 바울은 효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지를 알아 보기로 하겠다.
4)조건부 효도를 주장하는 바울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1) >>
부모에 대한 효도 혹은 순종마저 주 안에서 하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는 바울의 이 가르침에 대해 그대의 감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기독인들의 사랑이 예수 안에서의 조건부 사랑임을 이미 알고 있다.
사랑도 조건부, 효도 역시 조건부 효도...바로 이러한게 기독교의 정체가 아닌가 한다.
바울의 주장대로라면, 예수 믿지 않는 부모에겐 순종도 효도도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떠한가?
우리는 부모에 대한 효도는 천륜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의 믿음은 그 천륜 마저 무시할 정도로 대단들 한가?
<<자녀 된 사람들은 무슨 일에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골로새서 3:20) >>
부모님이 그대에게 교회를 나가지 말라하고 예수를 포기하라 하며 제사에 필히 참석하라고 했을 때도 그대는 무조건 순종할까?
주안에서의 순종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표변하여 무조건 순종을 가르치는 바울의 위선이 가증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예로 부터 양지,봉양,입신양명,공대,불욕 등의 방법으로 효도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 지를 배우고 실천하고져 해왔다.
그러나 바이블은 효도의 실천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부모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만 한다던가....부모를 받들어 모시라던가.....그리고 치졸하지만, 소위 출세로 기쁘게하라던가...그외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부모를 욕되게 해서는 안된다....등의 효의 실행 방법론으서 바이블은 어떠한 참고 자료도 되지 못한다.
바이블 내용이야 어쨋던, 기독인들이 정말! 진심으로! 부모님에게 효를 실천하며 가족의 평화로운
상태를 기원하고 있다면, 필자는 더이상 시비를 제기하지 않겠다.
그러한 마음 가짐이라면 조상을 공양하는 의미로 절하는 것 쯤 그렇게 문제를 삼지 않으리라 확신 한다.
추도예배니 뭐니 그렇게 위선을 떨지 말고, 이번 중추절 차례에 참석하여 조상님들에게 큰절 한번 넙죽하라는 뜻이다.
맺음말로 그대들의 선생, 바울의 위선에 가득한 요구를 선물로 드리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도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는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2:16,17) >>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