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9:17)"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6)
(단 12:4-10)"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5.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슥 3:1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위의 말씀에서처럼 창세기에서 야곱은 12 아들에 대하여 예언과 축복을 합니다. 여기에서 12지파중 단 지파가 사라집니다. 계시록 7장에는 사라진 단지파 대신에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가 한 지파로 추가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한 사람은 강 이편 언덕에 있고 한 사람은 강 저편 언덕에 있는데 강 언덕에 선한 사람이 묻고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위에 있는 자가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영생하시는 아버지께 맹세하여 말합니다.
강물위에 서계신 주님(성령)은 흐르는 강 이편과 저편 사이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스가랴서에서는 포도 나무와 무화과 나무를 말하고 그 날에 서로 초대한다고 말합니다.
(신 32:21)"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롬 10: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롬 11: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교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는 자 사이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서로 돕는 관계이며 서로 초대하여 하나님의 일을 돕는 관계가 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기록된 단 지파는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역할이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처럼" "말굽을 물어 그 탄자를 뒤로 떨어트리게"하는 역할을 할터인데 여기서 말을 탄자는 누구이며 이를 뒤로 떨어트리는 단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 지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사라진 단 지파가 하나님 역사의 한축을 담당하는 역할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 민족은 여러모로 이스라엘과 유사한 문화 전통과 골상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임기를 마치고 2005년 8월 7일 이임하는 우지 마노르 이스라엘 대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이스라엘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스라엘은 고대왕국 시절 12개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사방으로 흩어졌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하나의 부족만 어디로 이동했는지가 미스터리예요. 그 "사라진 부족(lost tribe)의 성이 단(Dan)인데, 고조선의 시조가 단군 아닙니까. 재미있죠?"
단 민족이 그 역할을 수행할 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이루실 줄 믿습니다.
샬롬!!!
단지파 -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이었도다. (렘 50:6)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 (마 15:24)
내가 내 말들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 속에 너를 가렸나니
이것은 내가 하늘들을 심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함이었노라. (사 51:16)
단에 관하여는 그가 이르되, 단은 사자 새끼요, 그가 바산에서 뛰어 나오리로다.(신 33:22)
단지파 이동 경로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함께 모이라. 마지막 날들에 너희에게 임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단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 하나로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가의 뱀이요, 통로의 독사로서 말발굽을 물어 말 탄 자가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오 주여,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 [창세기 49 :1, 16-18]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 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사 46:11)
내가 네 씨를 동쪽에서부터 데려오고 너를 서쪽에서부터 모으리라. (사 43:5)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갈 3:16)
한민족이 이스라엘 단지파라는 증거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형법학자로 유명한 고 유기천 박사는 2014년 12월 18일 ㈜지학사에서
발행한 <세계혁명>에서“한국인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국은 매우 신비한 국가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과 이스라엘의 문화와 언어 사이에 나타난
광범위한 공통점29가지의 사례를 열거하였다.
이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바(Abba)라는 단어는 한국과 히브리어에 모두 있는데, 그 정확한 의미는 아버지보다는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빌 2:5,6,7,8]
그러나 단 자손들은 대를 이어 블레셋 민족과의 200년 간의 전투를 치르던 중 사사인 장수 삼손이
죽게 되자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어버리고 동북방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사사시대 단 지파중에서 나온 장수 삼손이 한 여인의 계략에 의해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마친 후 끝내
유업을 얻지 못하고 생활의 터전을 찾아 계속해서 동북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레바논 동쪽에서부터 시리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소련의 남부 중국의 북부경계의
일부를 타고 이와 같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알타이산맥을 넘고 몽고와 만주의 일부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마침내 우리 한국 땅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동양사(東洋史)에는 우리 한 민족을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와 같이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온 민족이라고 해서 그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단군은 단이란 밑에다 임금 군자 하나를 더 붙여서 단군이라고 부른 것이다.
한민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혈통인 사실은 생활풍속이 같고 제사법이 같고 언어상으로도
에미(엄마), 애비(아빠)라는 등의 같은 뜻의 말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물동이를 이고 다닌 사실이 없었는데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민족만은 물을 길을 때 물동이를 이고 다녔으며, 돌제단을 만들어 놓고 향을 피우며 굵은 베옷을
입고 곡을 하던 풍습이 같다. 이스라엘 민족은 양을 잡아 돌제단 위에 놓고 불을 질러서 제사를
지냈고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때 소를 잡아서 제사지내던 제사법도 같은 것이다.
또한 유월절을 기념할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동지날에 팥죽을 쒀서 문설주에 바르는 풍습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던 예복인 세마포 모시옷을 우리 민족도
같이 즐겨 입어 왔고, 두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같다.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
(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왕보다 왕비의 권력이 더 세다?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왕명(王名)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최근 발견돼 무덤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놓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만일 이 왕명이 피장자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신라왕릉 중 최초로 주인이 직접 밝혀진 무덤이 된다.
왕명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 일환으로 금관총 출토 환두대로(고리자루큰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박물관 측이 칼집 표면에서 녹을 걷어내고 확인한 글자는 이사지왕(王)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사료에서는 동일한 왕호를 발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사지왕 정체를 놓고 추측도 난무한다. 하지만 금관총은 왕비 등 여자 무덤이라는 게 국내 고고학계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관총을 여성 무덤으로 단정하는 것은 여성용 태환이식(고리가 큰 귀걸이)이 나왔기 때문이다. 피장자는 대도를 허리에 차지도 않았다.
대도 주인이라면 허리에 차는 게 마땅하지만 칼은 피장자 둘레에서 수습됐다.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시대의 금관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다. 그중에서도 1973년 쌍무덤인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금관이다. 그 크기도 높이 27.5cm, 직경 17cm로 이제껏 발견된 금관 중 가장 크다. 이 금관은 은제 허리띠 3개 등과 함께 발굴되었는데, 은제 허리띠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그 주인이 여자였음을 알려준다. 반면 남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 6개와 은관 1개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금동관은 구리에 금을 씌운 관으로 금관보다 한 단계 낮은 관이다. 이는 신라시대 왕비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금관에는 ‘우주수목’이 장식되어 있다. 이 장식은 알타이 신화의 본고장인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유목인과 신라인의 친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주수목 형상의 모델이 된 나무는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많이 나는 흰 자작나무다. 이 자작나무는 알타이 무속에서 평범한 나무가 아닌 성스런 우주수목으로 취급된다. 지표에서 제일 높이 우주의 한 중심에 버티고 선 구조물로서 고대인이 상상했던 무속세계의 하늘인 천계를 향해 상징적으로 뻗어 오른 나무를 뜻한다.
신라는 금金의 나라? 고대 한민족의 주도세력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만주 북부를 호령했던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과 고조선에서 비롯된 세력이다. 부여에서 파생된 세력은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했으며, 고조선에서 비롯된 세력은 바로 신라를 건국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북부여에서 망명한 인물로 <삼국사기>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주몽의 아들이라 적고 있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또한 <삼국사기>는 신라시조인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여섯 부족이 고조선계 유민遺民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신라의 건국세력이 백제나 고구려와는 다른 고조선계임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먼저 가장 보수적인 전통중에 하나인
무덤 양식이 똑같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積石,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금관총 유적 발굴 현장 전경. 무덤 중심 둘레에 정연하게 쌓아놓은 돌무지가 보인다.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 일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돌담으로 지은 집에 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로 돌제단을 쌓는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단(壇)을
쌓았으며(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제단 앞에서는 잔을 세 번 돌린 후 제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짓날의 팥죽과 유월절의 희생양
동짓날만 되면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곤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12:6, 23)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장자 재앙의 얘기가 나온다.
그 후로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 단지파의 자손들에게도 이 관습이 그대로 남아 동짓날 팥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의 피와 비슷한 색인
‘팥’이었다는 것. 그러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것은 단순한 절기음식이 아닌 ‘유월절 행사’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사 지낼 때 떡을 반드시 팥으로 하는 것도 팥이 양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2천년전 유대인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베두인족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유목·천막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다. 그중 베두인족은 결혼할 때 서약식을
한 후, 신부의 부모가 사는 천막 근처에 임시로 초당을 짓고 3일동안 신방을 꾸민다.
이때 이 초당의 주위에 ‘양의 피’를 뿌려 축복을 기원한다.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다만 양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신부의 온 몸을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처녀 때는 빨간 댕기를 하고 결혼할 때에는 빨간 치마에
빨간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고서 얼굴에 빨갛게 연지곤지까지 찍었던 것도 일종의
‘死者’귀신을 쫓기 위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베두인족들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사상도 유별나서
우리 여인네들처럼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딸만 낳으면 이혼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셈이다. 처녀들은 조선시대 처녀들처럼 머리를 길게 따 늘어뜨리고
다니는데 그러다 결혼하면 대개 머리를 틀어 위에 얹는다. 그리고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시에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있는 풍습이다.
한민족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흔히 한국인의 두뇌가 우수함을 보고 ‘제 2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70년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머리가 뛰어난 민족이며 그 다음이 유대인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하버드대의 역대 수석 졸업자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능 연구가인 영국의 얼스터 대 리처드 린 교수와 핀란드의 헬싱키대
타투 반하넨 교수가 세계 185개국 국민의 평균 지능지수(IQ)를 조사한 바 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남한이 평균 아이큐 106으로 세계 1위, 북한이 105로 일본과 함께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사실 홍콩이 107로 1위라고 하지만 홍콩은 나라라기 보다는 도시이므로 논외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평균은 홍콩보다 높으므로 사실상 1위는 한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94로 45위에 그쳤으니 이젠 한국인을 제 2의 유대인으로 부르기보다
‘유대인을 제 2의 한국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950년 1월경 모 일간지에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인류학 박사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각 나라 민족별로 골상의 형태를 오랫동안 연구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얼굴이나 유골을
보면 쉽게 어떤 계통의 민족인지 알 수 있다. 2년반 정도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유골을 보아 왔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나와 같은 유대민족 골격에 골상을 하고 있었다.”
동아백과사전에서도 한국인의 골격 구조와 골상이 ‘고대 유대인’의 골상과 동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인이 현재의 유대인들보다 순수 이스라엘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의 역경과 시련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 버려 성경상의
유대인들과는 거리가 먼, 노란 머리카락에 키 큰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 협동의 지혜를 배워 체질화함으로써 생활에
이를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특유의 농촌 취락인 키부츠나 협동 농촌인 모샤브이다.
그것은 일종의 우리네 두레나 품앗이, 계의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생활문화 뿐 아니라 골격, 골상까지 같아
지난 98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을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에서 찾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 초기 갑자기 출현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도 당시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제시했다.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가장 보수적인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무덤 양식마저 똑같다는 것은
같은 민족임을 말하는 것이다.積石(적석),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이러한 제사방식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장례 방식은 우리와 더욱 흡사하다.
가령, 상주들이 베옷을 입고 베로 건을 만들어 쓴 뒤, 향을 피우며 대나무를 짚고 곡을 한다든가
(창 37:34)·(역상 21:16), 곡을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라고 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이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인류사를 통틀어 사람이 죽었을 때, 베옷 입고 곡을 하는 민족은 오직 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뿐이다.
유대인들이 만주에 유대국가를 세우려고 했다는 비사(秘史)를 중국 매체가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격월간 시사잡지인 ‘비스타’ 최신호는 유대인들이 1930∼40년대 지금의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을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는 당시 만주 침략에 혈안이 돼 있던 일본과 수천년 유랑생활을 끝내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꿈이 일치된 결과였다.
1932년 2월 군사작전을 통해 하얼빈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은 처음엔 유대인 탄압정책을 전개했다.
당시 하얼빈에는 19세기 후반부터 핍박을 피해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2만여명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만주 개발에 유대인 자본이 필요했고, 유대인 입김이 강한 미국에서 우호적인 대일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만주에 유대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원하는 ‘복어계획’을
추진했다. 복어계획은 맛은 뛰어나지만 독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복어계획을 총괄한 야스에 노리히로(安江仙弘) 일 육군대좌는 “아시아에 이스라엘을 건설하도록
도와주겠다”며 유대인을 설득해 하얼빈 거주 유럽계 유대인은 물론 당시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던
5000여명의 중동계 유대인의 지지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일본과 독일이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복어계획은 백지화 됐다. < 베이징 = 김청중 특파원 >
복어 계획 (일본어 : 河豚計? ふぐけいかく)
1930년대에 일본에서 추진된 유대인 난민을 만주국으로 이주시키려던 계획이다.
1934년에 아유카와 요시스케가 처음 제안한 계획에서 시작되어 1938년의 5부장관 회의에서 정부의
방침으로 정해졌다. 육군대좌 야스에 노리히로, 해군대좌 이누즈카 고레시게등이 실무를 주도하였다.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이탈한 유대인들을 만주국에 정착시켜 자치구를 건설하려던 계획이었으나,
유대인 적대정책을 추진해가던 나치독일과의 우호관계 손상을 우려하여, 계획이 점차 흐지부지되었으며,
삼국군사동맹의 체결과 독일과 일본이 함께 연합국과의 전쟁을 개시하면서 실현가능성이 사라져
결국 계획은 무산되었다. [위키백과]
♠ 아무르강 = 흑룡강 하류는 신시, 고조선. 고구려. 부여 등 고대 한민족 조상들의 영토 중 일부이자
현재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당시 중국이 UN에 창립멤버이자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으로 가입되어
있어 승인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UN에서는 부득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 건국을
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음성이 단에서부터 나와 밝히 알리며 고통이 에브라임 산에서부터 나와 널리 알리느니라. 너희는 민족들에게 말할지니 곧, 보라, 예루살렘에 널리 알리기를, 순찰자들이 먼 나라에서 와서
유다의 도시들을 치려고 소리를 지른다, 하라. (렘 4:15-16)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 그분께서 그 소리를
온 하늘 아래에 이르게 하시며 자신의 번개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느니라. 번개가 있은 뒤에
한 음성이 우렁차게 울리나니 곧 그분께서 자신의 빼어난 음성으로 천둥소리를 내시는 것이라.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분께서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으로 놀랍게 천둥소리를 내시며 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큰일들을 행하시나니 (욥 37:2-5)
너희의 시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 하였나니그런즉
우리가 하나님의 후손일진대 하나님의 신격을 결코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새긴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주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들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니라. (행 17:28-33)
< 대한민국의 애국가 >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2.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기상 일세.
3.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다른 몇 사람들은, 그가 이방신들을
전하는 자로 보인다, 하니 이는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라. (행 17:18)
2천 년 전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개혁때까지 부과된 모형이며 바울과 사도들이 전한
참 메시야는 대한민국 땅에 여자로 임하신 성령님입니다.
2015년 토라력 6001년의 01월 01일 로쉬 하샤나 봉인이 열리고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사 46:11)
우리가 화평을 바랐으나 좋은 것이 오지 아니하였고 건강한 때를 바랐으나, 보라, 고난이로다! 그의 말들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의 강한 말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떨었나니 그들이 와서 그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그 도시와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을 삼켰도다.
보라, 내가 마술로도 길들일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로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슬픔을 이기고 스스로 위로하고자 할 때에 내 마음이 속에서 낙담하는도다.
먼 나라에 거하는 자들로 인하여 내 백성의 딸이 울부짖는 소리를 보라.
주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녀의 왕이 그녀 안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자기들의 새긴 형상들과 타국의 헛된 것들로 내 분노를 일으켰는가?
수확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끝났으나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였도다. (렘 8:15-20)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림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펴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인도시성 타고르 -
고조선 와당의 제작자는 단지파 코드를 남겼다
고대 히브리어 와당과 고조선 건국 시기
기존에 알려진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 3점 이외에 고조선 시대의 히브리어 와당 11점을 더 찾았다. 그리하여 대동강 유역에서 출토된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이 모두 14점으로 늘어났다.
14점의 고대 히브리어 와당을 분류하면, <도착했다>는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이 4점이요, <오엽화와 함께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라>는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이 4점이요, <잠언을 지휘하는 사사(삼손)가 통치한다.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회복된다>는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이 6점이다.
그리고 14점의 와당에 새겨진 고대 히브리어는 기원전 1,200년경에서 기원전 1,000년경 사이에 사용된 문자로 보인다. 이유인즉 「게젤달력」에 새겨진 고대 히브리어(Paleo Hebrew)보다 더 오래된 문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젤달력」은 예루살렘 서북서 약 30킬로미터에 위치하는 게젤 성읍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000년경(사울 혹은 다윗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도착했다>는 고대 히브리어가 새겨진 와당이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서 세워졌다는 증거이며 또한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1,000년경으로 확정할 수 있다. 고조선 시대의 수막새 가운데,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단지파 만이 가나안에서 여호수아가 분배한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고 동북방으로 이주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 있는데, [그림 1]을 보면 분명해진다. [그림 1]에서 '∩'형의 문양은 고대 히브리어로 '울타리'를 의미한다.
단지파는 지중해의 우수한 문명을 가져왔다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지파가 가나안(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소라 성읍을 떠나 한반도까지 와서 대동강 유역에 고조선을 건립하였다고 해서, 만주지역의 홍산문명(紅山文明, 요하문명)이 고조선의 문화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15세기에서 13세기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이집트의 청동기 문화와 블레셋의 철기 문화를 경험한 단지파가 지도자 삼손 장수를 잃고 지금의 레바논 남쪽 소라 성읍을 떠나 한반도까지 왔기 때문에, 대동강 유역에서 세워진 고조선은 이미 청동기와 철기를 결합한 우수한 문화의 터전 위에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제정일치 사회를 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에 지중해 연안의 팔레스타인에서 동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던 단지파는 알타이산맥 근교(지금의 중국 서북부)에 와서 약 200년간 우거하고 그리고 몽고(蒙古)를 거처 만주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대동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기서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지파의 이동 과정에서 중국의 주(周)나라를 세운 주역이 단민족의 비주류로 추정되며 또한 몽골초원의 유목민이 단지파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주는 자연히 몽고의 단지파 사람들과 한반도 고조선의 단지파 사람들과의 가교 역할을 할 수밖에 없으며, 몽골의 단민족과 한반도의 단민족이 융화되던 그곳에서 홍산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도피성의 귀면(鬼面)와당에 삼손 얼굴
고조선 건국초기에 제사장은 모세의 손자 요나단 가계(家系) 출신이었을 것이다(성경 사사기 18장 30절 참조). 그리고 대동강 유역에서 고조선 국가를 세울 때, 분명히 제사장이 거하는 도피성(성경 민수기 35장 6절)을 따로 정했을 것이다. 고조선 초기 도피성의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상오리(上五里)로 추정된다.
[그림 2]를 보면, 남쪽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저모산과 대성산 그리고 고방산으로 둘러싸인 입지가 외인들의 출입을 불허하는 도피성의 장소로 적격이다. 이러한 고조선의 도피성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곳인 소도(蘇塗)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도피성으로 추정되는 상오리에서 출토된 와당 중에 <잠언을 지휘하는 사사(삼손)가 통치한다.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회복된다>라는 고대 히브리어와 더불어 두 개의 얼굴이 새겨진 수막새에서, 그 당시 와당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삼손의 단지파 코드를 아래와 같이 풀 수 있다.
[그림 3]을 보면, 상단 ①의 얼굴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사사로서 활약할 때의 삼손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른 나귀의 턱뼈를 무기로 삼아 손에 들고 일천 명의 블레셋 군사를 쳐 죽이던 삼손은 나실인의 신분으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는데, ①의 귀면(鬼面)에는 삼손의 텁수룩한 수염과 머리카락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그림 3] 하단 ②의 얼굴은, 삼손이 미인계에 속아 잠복해 있던 블레셋 군인에게 붙잡혀 두 눈알이 뽑히고 수염과 머리카락마저 제거당한 수치스런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①의 귀면(鬼面)과 ②의 귀면(鬼面)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콧등과 콧방울은 삼각 꼭지점에 왕방울 모양으로 견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림 4]와 [그림 5]를 보면, 칼질을 당한 눈알과 초점 잃은 눈동자를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두 눈을 잃은 삼손을 표현하고 이어서 고대 히브리어로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늘나라)가 회복된다>는 문양을 새기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 백성들이 되는 우리 조상님이 얼마나 하늘나라를 동경하였는지 그 강렬한 염원이 담긴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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