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시즌2를 군부대 면회를 갔다가 보긴 했는데 자빠져 자는 바람에
내가 ‘스타워즈‘를 본 건지, 남양특집 구미호를 본 건지 스토리 소환이 전혀
안 돼서 다시 보았습니다. 원래 우리는 뭐든 꽂히면 될 때까지 하는 성격입니다.
‘신과 함께 시즌1이 1.000만 영화이었고 시즌2도 현재700만을 넘기며 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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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니 후속 작으로 1,000만을 넘긴 최초의 영화가 될 것
같은 조짐입니다. 저는 영화 장르를 별로 따지지 않고 되는대로 봅니다만
제가 아날로그세대인지라 스토리 없는 홍콩 액션이나 이성이 외출나간 F. S
영화는 징역에서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돈 주고 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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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가 2년 전에는 1년간 영화(드라마를 포함)를 1.000편 가량을
보았더라고요. 거의 밥만 먹고 일도 안 하고 영화만 보았어요. 행복했고요.
지금은 형편이 안 되지만 꼭 다시 한 번 내게 남은 시간의 1년을 영화만
보면서 보낼 날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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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2’는 웹툰이 원작입니다 웹툰 영화중에 생각나는 것은 ‘미생’
이라는 드라마가 성공을 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신과 함께‘는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은 모양입니다. 보통은 1편이 흥행하면 후속 작을 찍는 것으로
압니다만 ‘신과 함께’는 1.2편을 모두 찍어 놓고 따로 개봉을 한 것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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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우리 영화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1편 개봉해놓고 흥행에
성공했으니 얼마나 2편을 개봉하고 싶었을까요? 저는 1편을 보지 못했는데
‘죄와 벌’ 편에서는 차 태현이 김 자홍의 귀인 됨을 재판하는 과정이었고,
2편 ‘인과 연‘은 김수홍의 환생 여부 재판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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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강림이 왜 저승사자가 됐는지, 왜 그가 해원맥(주 지훈 역)덕춘과
(김향기 역)1000일 이나 차사 노릇을 함께 해야 하는지, 그들의 기억은 왜
지워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또 다른 신, 성주 신
(마 동석 역)도 새롭게 등장하기는 합니다. 성주단지에 모셔진 성주 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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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머물면서 세상의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주를
도와줍니다. 성주 삼촌이라는 세속의 이름으로 현현해 주식 투자를 하거나
기초연금을 하는 등 현실적 모습을 보여 웃기기도 하고, 사람들을 지키는
신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새로운 유머 코드를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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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성주 신의 증상이 지산에 남겨진 할아버지와
손주 때문인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또 다른 스토리 텔러, 내러이터에
더 가깝습니다. 성주 신은 현재로부터 1,000년 전, 해원맥과 덕춘이 세상을
떠날 때 저승차사를 맡았던 인물로 그들이 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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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습니다. 해원맥과 덕춘은 성주 신에게서 자신들이 잊고 있던 과거를
듣게 되지요. 죄와 벌‘이 저승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스펙터클로 가득한 내용
이라면 ‘인과 인’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엮이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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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한 영화입니다. 지나치게 모든 과거는 인물의 입을 통해 설명되고 전달됩니다.
강림은 강림대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성주 신은 성주 신대로 해원맥과 덕춘의
과거를 재구성해줍니다. 영화는 별로였는데 이 정재 이놈 저승사자 역 제대로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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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2에서는 하정우보다 마동석보다 이 정재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였어요.
영화를 다보고 왜 이정도의 영화가 흥행을 할까 생각해보았는데 '유불선'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한국판 단테의 ‘신곡’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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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때문 같기도 해요. 유, 불, 선, 가톨릭. 프로테스탄트까지 모든 종교의 관심은
지옥의 면피거든요. 인간은 죽음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어 그 순간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도 55년 동안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으니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 이미지의 대부분은 나사로가 지옥 불에 떨어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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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입니다만 사실 제가 이해한 지옥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구천이나
극락 같은 장소적의미의 지옥은 믿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재발견한 단테의 ‘신곡‘
에서도 지옥을 ‘장소적 의미’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제 생각에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단테가 살던 시절, 인류는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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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리가 장악한 노리개였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고정돼 있었고 소위 ‘거대한 존재의 사슬‘안에 먹이
사슬의 한 고리처럼 존재했습니다. 중세 인들은 성 어거스틴이 로마 멸망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원인을 인간 내면에서 찾아낸 4세기 이론을 아직도 신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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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습니다. 그 이론이 바로 ‘원죄론‘입니다. 어거스틴은 문화적으로 우월한 로마가
고트족과 같은 야만족에 의해 멸망당하는 이유를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오만
에서 찾았습니다. 그 이론이 단테가 신곡을 쓰기 시작한 1300년에도 맹위를 떨치는
삶의 교본이 됐습니다. 단테에게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할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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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정이며 하루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목적지로 가는 과정으로
건너뛸 수 없는 징검다리입니다. 단체가 의도한 내용을 700년이 지난 후, 번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삶의 여정 한가운데서 2.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3. 그곳은 지금 길이 숨겨진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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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지하세계로 데리고 갑니다.
그는 자신이 본 지옥은 죽은 다음에 가는 실제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신비한 미궁이라고 묘사합니다. 이곳은 수많은 강들이 구역을 나누고
괴물들이 그 경계를 지킵니다. 그는 1편 1행에서 ‘나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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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이 여정이 인류 보편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단테는 우리의 삶을 '여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단테는 ‘캄민’이라는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캄민이란 자신이 가고 싶은 목적지를 매일매일 걸어가는 길입니다.
고로 ‘캄민은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야 오늘이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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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로 가기 위해 내가 오늘 내딛는 발걸음 하나가 필수 불가결한 단계입니다.
단테는 인생이란 여정에서 오늘 이 순간을 자신의 삶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으로
낚아챘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용한 단어가 ‘한가운데’라는 표현입니다.
루이체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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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메조’라 표현 했는데 1행의 시작인
'넬 메조'에는 단테가 자신의 상상력에 기반 한 학문 전통과 그것을 통해 ‘신곡’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겨있습니다. 메조는 메조소프라노라는 단어에도 등장하듯
‘중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단테가 이 단어를 사용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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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가 자신의 고향 피렌체를 떠나 외국에서 외교관으로 재직할 때 피렌체에서는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이 있었고, 단테는 자신의 고향에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단테는 이 취약한 상황에서 결정을 합니다. 그는 피렌체를 넘어,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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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자신도 모르는 취약한 모습을 직시하고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단테는 그것을 발굴해내기 위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인페르노‘즉
'지옥'으로 내려갔습니다. 단테는 ‘메조’란 단어를 성경이 상징하는 헤브라이즘전통과
그리스, 로마 전통, 그리고 중세 신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탄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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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1265년에 태어나 그가35세가 되던 1300년, 지옥 여행을 시작합니다.
구약성서 시편90편 10절에 등장하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다‘라는 구절에 근거했습니다.
성서 전통이 단테에게 실질적인 숫자로서 ‘메조’란 단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면,
그리스-로마 전통은 메조의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짜임새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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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학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나열하지 않고 사건의 중간에서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하기에 서양 문학은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서 시작합니다.
단테는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메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며 미래와 과거가 만나 처음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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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1인칭
일 뿐 아니라 1인칭을 바라보는 3인칭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볼 정도로 성숙해졌습니다. 서양 전통에서 숲은 우주가 창조되기
전 혼돈의 상태며, 영웅이 되기 전 범인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 숲은 빛의 흔적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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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없이 캄캄합니다. 단테는 그곳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었습니다.
그곳으로 진입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이란 3행에 등장하는 '지름길'입니다. 삶을 위해 최적화된 유일한 길입니다.
단테는 천국으로 가지 위해 먼저 지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옥에서 자신이 버려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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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을 덜어낼 때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단테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왜 사십니까?
오늘이 당신의 삶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을 관찰하고 있습니까?
2018.8.10.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