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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사는 삶
사춘기를 맞은 막내딸 이 깔깔 웃다가 엉엉 울다가 자해도 한다. 생부모를 원망하다가 그리워하다가 외롭다고 하다가 싸우자고 시비 걸며 엉뚱한 소리도 해댄다.
생부모가 나 버린 것처럼 엄마도 나 버릴 꺼잖아‘ 하며 생떼를 쓴다.
다섯 아이 중 가장 사랑하고 예뻐했던 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한번 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오빠들 앞에서 그렇게 얘기해 준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 이유는 평소 오빠들은 엄마가 동생만 예뻐하고 자기들은 예뻐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기 까닭이다.
그래도 자기들은 한번 도 버림받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동생이 그런다는 것에 대해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네가 나를 버릴 찌라도 난 결코 널 버리지 않아” 라고 했더니
“그건 성경에 나오는 말이잖아”
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춘기가 이런 건가? 당황스러웠다.
한번 도 경험해보지 않은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내 딸이 아니다. 엉엉 서럽게 우는 아이. 안아주니. 안기며 더 서럽게운다. 이유를 모르겠다.
’뭐가 불만이냐고“ 물으니
‘없다‘ 고 한다
”네가 생모를 찾는 거 당연해, 오빠들도 그러고 싶지만. 엄마에게 미안해서 말 못하는 걸 꺼야 그래도 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우리 코로나19 끝나면 같이 생부모 찾으러 보육원 가보자. 엄마는 단 한번 도 너희들 생부모 찾는 일에 반대한적 없는데 넌 마치 엄마가 생부모 만나는 거 .싫어하는 것처럼 말하니까 섭섭해지려하네!“ 코로나로 인해 학교도 못가고 핸드폰에 잡혀 있더니 이상한 거 봤나? 의심이 들긴 했지만 딸과 친한 넷째아들에게
”넌 에스더가 왜 그런다고 생각해?“ 라고 물었더니
”이상한 동영상에 빠져 있나 보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 한다
”엄마는 왜 내가 보는 동영상 다 나쁘다고 말해“
”나쁘다고는 안 했어 너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했지“
’ 게임일 뿐 이야. 게임 리뷰‘
”그런 공포 게임 하면. 기분 좋아?“
”아니 별로 야 “
”그런데 왜 해“
”,그냥. 입맛도 없고 밥 먹기도 싫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딸의 행보가 염려스럽기도 하고 키는 엄마보다 더 크고 목소리도 엄마 보다 더 크다
이 나이에 사춘기 자녀 교육을 공부하는 갱년기 엄마는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이야기와 그가 쓴 책들을 두루 두루 훑어본다. 자식은 부모에게 갑이고 반항이 시작되면 길이 없다 홍해를 만났다. 내가 홍해 앞에 서있고 되돌아 보면 내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홍해는 어떤 의미일까 재해석 되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내 눈으로 목도하는 현장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 보라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위기가 클수록 영광도 크다
그러면서도 사춘기 바람은 괜찮을까?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폭풍은 왜 필요한 걸까? 모든 것을 받아들인 바다는 각종 오염 물질이 그 바닥에 쌓이므로 점차 썩어 물까지 오염 될 위기가 오면 거대한 태풍을 보내시어 바다를 뒤집어엎어 새롭게 바꾸는 폭풍은 정말 필수불가결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봄이면 유난히 심하게 불어대는 심술스런 돌개바람도 스스로 터트릴 수 없는 꽃봉오리의 볼따구를 마구 때려 터트리는 이치를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이것저것 말 안되는 이유를 대가며 사춘기의 정당성을 마구 만들어 내고 있다
나의 아이들이 수많은 가정 중에 나의 품으로 찾아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기에 누군가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에 다시 숙연해지는 시간이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덩달아 길어지고 사춘기를 연장선에 선 두 아들 그리고 사춘기가 막 시작된 막내딸 세 아이 틈에서 갱년기를 보내는 엄마는 늘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위태위태한데 드디어 거대한 폭풍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고 그 후폭풍 은 과연 어땠을까?
모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받아들이고 한마디로 뭔가 순식간에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훅하고 지나갔는데 이이들조차 자기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서로 끌어안고 울며 사과하고 먹을 거 사다주며 화해를 했다
발단은 사춘기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에스더에게 서로 조심 하자고 했는데 셋째가‘ 그게무슨 벼슬이라도 되느냐‘며 막내의 심경을 건드렸다
막내는 억울하다며 엉엉 울고 네 째가 딸을 옹호하며 셋째에게 어필 한다는 것이 그만 폭력으로 이어지고 키 190 몸무게 115키로 거구인 넷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셋째아들 중재에 나선 엄마는 엄마의 무능을 인정하고 엄마 사표 쓰겠다고 선언하고 그러나 할 말은 해야겠다며 ‘엄마의 자리가 너무 버겁다 그만 내려놓고 싶다 ’ 그런 식으로 주저리주저리 떠 든거 같다 세 아이는 서로 용서를 구하고 화해의 무드로 바뀌었다
한때 누리는 이상한 권리가 아닌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 모두 침묵하고 있다
코로나로 바뀌어 버린 일상, 모든 행사가 취소되니, 돈 쓸 일이 없어지고 외식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모아진 돈으로 장봐다가 가족들과 요리하며 나누니 아이들이 좋아라한다
맛난 음식 앞에 놓고 아이들과 깊은 대화 나누며 아름다운 교제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엄마 아버지는 교회에 모든 시간을 다 빼앗기고 아이들과 대면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나 코로나가 오고부터 공식적인 예배가 없어지고 집에서 가정예배로 말씀 나누고 찬양하게하시니 불신앙적인 두려움과 염려가 해결되니 감사하다
그때 깨달음이 왔다 교회에 가거나 예배에 참석하거나 주일을 잘 지키거나 혹은 아침 저녁으로 기도 생활을 준수하는 것이 모두 헛되다 이웃 사람들에게 정직하며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모두 헛되다 이런것들에 의지하여 구원을 기대하는 건 하망한 소망이다 물론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정직해야 하고 주일을 지속적으로 지키며 가능한 한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노력을 폄하 하는건 아니다 다만 그런 것 들만 의지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주변에 내 연세쯤 되면 대부분 모든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 않은가? 엄마아빠가 거기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아이들은 외로움에 치를 떨며 방치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게 맡겨진 어린 영혼들이 무방비상태로 세상 유혹에 던져지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방학은 자꾸 길어지고 있었다. 가족들의 삼시세끼 챙기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 큰아들에게sos를 치니 20kg 한 자루 메고 왔다
학교의 방학은 그야말로 아이들과의 전쟁이다 온종일 폰만 잡고 있는 아이들을 어쩌지 못해
그저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이들도 비상사태라는 걸 느끼고 있다 스스로 공부에 열중하며 성경말씀에 가까이 가고자 애쓴다.
코로나는 모든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만든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집안에서 서로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다툼도 없다 코로난지 입으로 난지 무서운 놈이 가족풍경을 새롭게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경필사하고 EBS 시청하고 문제집 풀고 서로 부족한 부분 채워 주고 함께 일하고 전에는 한번 도 해보지 않았던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칭찬하고 싶어도 칭찬 할 것이 없다고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 못한다고
투덜댔었는데.......
엄마는 늘 바빴고. 공부하자고 하면 첫마디가 ‘그거하면 뭐해 줄 껀데요? ’였다
반드시 댓가를 요구했던 아이들 앞에 요즘 같아선 홈 스쿨도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서로가 친근해졌다.
가족이란 서로 부벼 대고 마주해야 미운정고운정이 드나보다
코로나가 무섭긴 한가보다. 예배를 부담스러워 하던 아이들이 예배에 열심하게된 것 감사한 일이다
종말을 말할 수 있어 천국 소망을 가지게 된 것 또한 감사하다 성경에서 읽었던 말씀들이 실제 상황이 된 것에 대한 감사이다 성경필사를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팔이 아프다 면서도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이 감사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코로나19라는 주제가 있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했다
앞으로도 코로나처럼 학교도 교회도 갈수 없을 때가 찾아 올수도 있다 . 그때를 위해서 가정예배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미리 훈련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이대로만 나간다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와도 우리의 신앙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 생각 들었다
그리고 새날을 맞았다 코로나가 시작 되면서 드리기 시작한 가정예배 40일 분량의 사순절 묵상집 그 책이 끝나는 40일째 되던 날 아이들은 만세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가정예배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의 환호성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면 식탁을 정리하고 전날 묵상한 말씀을 노트에 필사하고 찬송 부르고 오늘 말씀 묵상 하고 기도제목 나누고 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줄 착각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이어진 가정예배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 또한 조마조마하지만 엄마랑 대화를 거부하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세 녀석에게 이 시간만큼은 얼굴마주하고 진지한 대화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조차도 부담스럽고 개인적으로 의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이 깊은 모양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라고 했더니
‘그럼 엄마 화 낼꺼잖아요‘
아직은 엄마눈치를 보는 녀석들이 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 억지로라도 하면 다 도움이 될 거야 힘내자 힘내 !’ 코로나가 삶의 패턴을 확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 뭘 또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여간 기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침밥을 먹고 책가방 메고 달려 나가는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보고풀 꺼라고 인사하던 때가 그립다
잠옷 바람으로 이불속에서 궁시렁 대는 녀석들 밥 먹으라 는 소리도 못한다.
시춘기는 그렇게 말하면 결코 좋은 대답 못 듣는 다는 철칙이 있다
밥 먹으라고 하면 “아. 알았어요. 아 알았다니까요” 결코 내가 원하는 답은 들을 수 없다
“밥 차려놨어 엄마 다녀 올께.”
목 끝까지 올라오는
‘공부도 좀 해 핸드폰만 하지 말고’ 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꿀꺽 삼킨다.
아이들이 공부안하는 이유가 누가 시켜서란다. 성인이 되어 아무도 공부 하라는 말 안하면
그땐 하고 싶어진다는 몹쓸 심리적 생태를 어쩌랴ㆍ 개학은 또 한 주간 연기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요즘 같아선 주먹밥 달인이라도 된 듯 ‘카레주먹밥 두부주먹밥. 새우주먹밥 연신 만들고 있다
아침마다 주먹밥을 싸는 여인 셋째아들은 무슨 이유인지 반찬을 안 먹는다.
넷째ㆍ아들은 고기만 먹는다. 다섯째 막내딸은 야채만 먹는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야채ㆍ와 고기를 섞은 주먹밥을 싸기 시작했는데 이제 집에 남아서 버리는 음식은 없게 되었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각종 의 것들을 모두 싸잡아 넣기 까닭이다
온라인수업으로 게으름의 극치를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밥을 먹기엔 번거로움이 있어 각자 자기 밥 갖고 들어가 수업에 임하며 알아서 먹는다.
그래도 저녁시간엔 반드시 모여 함께 먹는다. 식사 후에 갖는 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코로나로 인해생긴 우리가정의 대비책이다
경제는 어려워 질것이고 온라인수업은 자주 일어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좋든 싫든 붙어 있어야하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아마 살아내기 힘든 시간들이 계속 밀려올 것이라고 본다.
오늘은 아이들과 상대방 칭찬하기를 시도 해본다. 평소 하지 않던 거라, 얼굴이 화끈 거렸지만 시작하려니 칭찬하는 일에 참으로 인색한 삶을 살아온 거 같다 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이들과 서로 칭찬 하는 거 해봐야지 라고 마음먹는 순간 사단마귀는 ‘그런 거 하지 마 다 소용없는 일이야 ’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평소와 달리 아이들이 불순종하며 화를 돋구 는 하루였다. 다음 날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칭찬의 테잎을 끊는다
먼저 오빠들이 막내 에스더를 칭찬한다. ‘에스더는요 에너지가 넘쳐요. 가끔 저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에요 화나고 삐져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거리며 다가올 땐 귀엽기도 하고 사랑 안 할 수가 없어요 남들이 볼 때는 좀 불쌍하고 안 됐잖아요. 그런데도 어디를 가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고 씩씩하고 화끈하게 노는 거 보면 부러워요 사춘기인거는 맞는 거 같은데 가족들 힘들게 하다가도 금방 분위기 바꿔주는 게 참신기해요’
셋째 아들 진이를 칭찬할 차례다 ‘ 네 차례나 되는 힘든 수술 할 때 잘 참아내는 모습이 고맙고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대견해’. 에스더가 거든다 ‘오빠는 손 감각이 뛰어나서 그림도 잘 그리고 레고 조립도 잘하고 그래서 대단하다도 생각해요,’ 넷째 호현이는 ‘형은 영화나 책등 어려운거 이해 하는 거 보면 많이 부러워요’
이번엔 넷째 아들 호현이 칭찬할 차례가 되었다. 에스더가 먼저 입을 연다 ‘난 오빠가 우리 집 에 와줘서 좋아요. 운동 잘하는 오빠가 있어서 자랑스러워요’
‘에이 잘하는 건 아니지’ 쑥쓰러운지 호현이가 머리를 긁적거린다
샛째 아들 진이도 거든다 ‘난. 호현이가 동생 이지만 형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아요 .힘들 때 마다 도와주고 챙겨주고 기다려주고.’ 엄마가 끼어 든다 ‘그래 맞아, 호현이는 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뭐든지 함께 나누려고 하고 배려심이 누구보다 뛰어나지 ’
드디어 엄마차례다 엄마는 별로 잘한 게 없어서 가슴 졸이며 아이들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엄마는 요리를 잘해요 그리구 다 맛있어요 우리를 늘 보살펴주시고 늘 최선을 다한다는 거 인정 우리 안 데려 왔으면 고아원에서 20년 동안 썩었잖아요 엄마는 늘 뜻 깊은 조언과 말씀을 많이 해주는데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요 (으악! 요것들이 언제 이리 컷나? 잔소리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모 차례다 (오갈 데 없어서 우리 집에 함께 사는 지적장애 할머니) ‘ 이모는 사랑의 아이콘이에요 만나기만 하면 화이 파이브 하자고하고 끌어안고 ‘사랑 합니다’ 말하고 마을사람들한테 다 인사하고 심지어 외국인노동자들한테도 다 인사해요 이모는 우리 동네 유명 인사에요 국회로 보내야겠어요. 까르르 하하 호호
만장일치 박수로 서로 칭찬하기를 마감 한다 코로나는 수그러 들었고 일상으로 돌아 왔다
자녀들이 뭘 생각하며 뭔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다 온종일 뭐에 빠져있는지도 잘 모른다
마냥 걱정만 할뿐이다 아이들의 눈빛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행동도 많이 변했다 그저 당황하고 있을 뿐 이다 그 어떤 조치도 대책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저녁 식사 후 아이들과 찬양하나 부르고 성경필사 하고 기도 하고 그것만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반란 없이 잘 따라와 주는 것만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모세오경 훈련에 돌입했다 출애굽기를 통하여 구속자적인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는 지혜 얻어 순종의 훈련 말씀의 깊이를 알아 하나님의 목적과 뜻대로 행동하는 신앙으로 변화되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오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이 깨달아지는 은혜를 기대하며...젊었을 때보다 더 바쁜 활동지원사 .요양사. 입양강사등등 노년 쓰리 잡으로 돌입했다 아이들 일어나기도 전 주먹밥 내지는 김밥으로 아침을 준비해 놓고 이웃에 살고 있는 장애아동 학교 등교 시키고 오면 아이들은 다 사라지고 어지러운 밥상만 날 반긴다. 나 홀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지적장애할머니 세 시간 케어 하고 함께 점심 먹고 아이들 저녁을 준비해놓고 요양을 위해 집을 나선다. 6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족요양 시어머님 한 시간 케어하고 8시 기도회 마치면 하루를 마감 한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바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셋째는 컴퓨터. 수영. 피아노 다녀오고 다섯째는 수영. 드럼을 다녀온다.
피아노 모두 마치면 얼굴 마주치기 어렵다 코로나 끝나고 완전히 바뀐 우리가족의 모습이다
나의계획은 성공한 셈 이다 방안에 콕 박혀 사회성이 부족한 셋째아들을 어떻게 하면 방문 밖으로 나오게 할것인가? 고심하다 선택한일이다 코로나 전까지 치료 외에는 학원이라고는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아들에게 학원등록을 시켰더니 나는 왜 노는 시간도 없냐고 투정 한다
종종 씻는 문제로 다투기도 하는데 수영장에서 해결 할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한일이다
Sns에 푹 빠져있는 막내딸 어떻게 하면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게 할 것인가?
수영 다녀온 딸은 피곤한지 일찍 지쳐서 자고 있다
거꾸로 사는 삶 코로나는 우리로 하여금 거꾸로 사는 삶 을 가르치고 있다
이웃들과는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하고 가족들과는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만든다
평소 해보던 일이 아니라 어색하기 그지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맛난 음식 찾아다니는 사람이나 여행한번 못 가본사람이나 집에서 하루세끼로 만족하는 사람이나 모두 평등 하게 되었다
여행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코로나로 여행을 못하니 적응이 안 되어 정신과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고 여행을 못 다녀본 사람들은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거꾸로 의 삶이 하나도 싫거나 불편하지 않다
코로나가 끝나면 좋겠지만 그리되지 않을지라도 그냥 잘 적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