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공사장 출입문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 공사장 출입문의 2.5배가 더 긴 출입문이 생깁니다.
모두해서 18m의 길이가 된다고 합니다.
해군과 삼성에게 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공사장 문을 확장 하면서 또 해군기지 사업이 땅이 아닌
일반 도로를 무단으로 점용하려 합니다.
마을에서 도로점용 허가서를 보여 달라고 요청 하였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하는 이가 없습니다.
서귀포 시청에 민원을 냈습니다.
서귀포 시청 공무원이 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서귀포 시에서 도로 점용 허가를 해 주었으면 답변을 해 달라 했더니
측량을 먼저 하겠다고 합니다.
해군 펜스 바깥쪽 화단이며 삼거리로 들어가는 농로 인데
서귀포 시청 공무원은 측량을 핑계대고
해군에게 도로 점용 허가를 받았으면 그 문건을 보여 달라고
요청 하였더니 아직 결재중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결재중인지? 허가를 받았으면 받았다고 하면 될 텐데…….
강정주민은 이미 국가에서 국민으로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공사장 출입문 옆에서 노상 점심을 하고
땅콩 작업을 하고 마늘작업을 하였습니다.
15일 주일 전주교구와 수원교구에서
강정 평화 사목센타와 공소 건립을 위한 물품을 판매가 있습니다.
6월 9일 연중 10주간 월요일
주례 강론 김성환
우리가 방금 들었던 복음은 예수님이 산에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해서 산상설교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산상설교는 예수님 가르침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엑기스의 첫 부분이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복론 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됨으로서 행복을 찾고
또 높은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행복을 찾고
능력을 더 높임으로서 행복을 창으려고 합니다.
요즘 식물인간이 되어있는 모 재벌 총수가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부와 명예를 독차지한 장본인입니다.
해군기지 건설 성공을 못 시키면 삼성물산 문을 닫으라고
명령한 사람이고 그 부하직원들은 몸이 굳은 상태에서
명령대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연세가 72세인데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고
그 많은 부와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행복론은 사뭇 달라 보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든가
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든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행복론 중에서 첫 부분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루카복음에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이해가 되어 왔는데 마태오 복음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도 무슨 뜻일까? 물론 이해가 안 됩니다.
학자들은 루카복음의 가난한 사람들과 똑 같은 개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정의를 합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고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되었고
그래서 하느님께 하루, 하루를 의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발적 가난을 택한 수도자들은
이 범주에 들어 갈 수도 없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부와 명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도
이 가난한 사람들 범주에 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 예수회 선배 신부님께서 며칠 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정일우 신부님이 그 분이신데 이분은 74년도부터
도시빈민지역에서 살면서 18년 동안 그 분들과 동고동락을 하였습니다.
제가 예수회 지원자인 1988년 때 이분을 처음 만났고
그 처음 보는 순간부터 참 자유로운 분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그 생각은 이어졌고
또 많은 분들도 정일우 신부님을 보면
참 자유로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분께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그런 자유로움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그 자유로움을 도시 빈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로부터 배웠다.” 고 하셨습니다.
정일우 신부님에게 자유로움을 가르쳐 준 도시빈민들이
누구 입니까? 저는 오늘 산상설교의 첫 부분의 첫 마디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예수회 들어가기 전에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 살았던
상계동 철거민들과 6개월 정도 살았습니다.
어떤 한 가정의 과부인 어머님을 만났습니다.
이분의 가정은 상계동에서 한 평생 가난하게 살았는데
88올림픽 때문에 자기 집이 강제 철거되었고
다른 30여 세대와 함께 88년 명동성당에서 1년 동안
천막생활을 했고 다시 부천 고강동의 서울교구 땅으로 이사를 해서
8평 임시 조립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옆에는 경인고속도로가 있어서 소음이 말이 아니었고
주변 여건도 좋지 않아서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강제 철거도 억울한데 사는 곳이 이런 거지처럼
생활하게 되면 사람 삶이 망가질 수도 있고
또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 어머님은 신앙으로 담담하게 평화롭게
자식들을 키우며 살았고 정부에 저항을 할 때는 저항을 하였습니다.
매일 살아가기 위해서 의탁 할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분의 자녀들을 커서 한분은 결혼 했고 한분은 수녀원에 가셨고
한분은 수도원에 가셨습니다. 자녀들 모두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행복론의 뒷부분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곳 해군기지 앞에서 강정 공동체 제주 공동체 한반도 공동체
아시아 공동체 평화의 마을을 만들려고 하는 저희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지방선거가 끝났고 우리들의 앞길에는 더 많은 모욕과
박해가 올 듯합니다. 우리들은 그럴 때 더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