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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그 맛깔스런 겨울여행
* 일시 : 2010. 1. 16~17(1박 2일)
* 장소 : 강원 고성(高城) 일원
* 인원 : 4명
* 코스 : 서울~춘천~화천~인제~용대리~진부령~대대리~거진(1박)
거진등대~통일전망대~화진포 해수욕장~해양박물관~건봉사~서울
여행(旅行)이란 무엇인가? 무릇 여행의 참다움은 경치를 즐기고 풍류를 누리는 그런 곳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참여행이란 낯선 풍물로부터 자신의 삶을 견주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자신의 안목을 넓히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며, 그 동안 쌓아온 생각의 성(城)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인식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첫째 날...
우리 네 명은 학교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12시 정각에 출발한다. 최근에 구입한 이재원 선생님의 새 차 그랜저를 타니 승차감도 좋고, 기분도 좋고, 베리 굿...첫 출발이 아주 좋다. 차는 제비가 물 차듯 지난 여름 개통된 경춘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민간투자법에 의해 시행된 이 고속도로는 총길이 61.4km로써 2009년 7월15일 개통되었다. 서울시 강동구 하일동을 시점으로, 강일·미사·와부·화도·서종·청평·강촌 등 7개 인터체인지를 거치며, 한강·북한강·홍천강을 횡단하고 유명산·팔봉산 등을 통과하는 도로이다. 도로도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광도 아름답고, 날씨도 포근 쾌청하고, 우리들 분위기도 화기애애(和氣靄靄) 최상...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이런저런 웃음꽃을 활짝 피운다.
춘천시로 빠져나와 우리는 다시 화천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요즘 한창 절정기라는 ‘산천어 축제’를 보기 위해서이다. 5번 국도를 달리는데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듯하다. 산과 들, 온 세상 자연산천이 온통 하얀 설경(雪景)으로 신비의 동화나라에 온 것 같다. 온누리가 눈부시게 빛나는 은세계로다. 군데군데 빙어축제 포스터가 보이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빙어 잡는 풍경들이 눈에 많이 띤다.
드디어 화천천에 도착한다. 우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요 차산차해(車山車海)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 몰려든 듯하다.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는 대표적인 겨울축제행사로 매년 성황리에 개최하는데, 항상 수십만 명이 찾아와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고 한다. 올해는 1월9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얼지 않는 인심, 녹지 않는 추억”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산천어(山川魚)는 물이 맑고 차가운 1급수 계곡에서 서식하는 토종 민물고기로, 유선형의 우아한 몸매를 자랑하여 계곡의 여왕으로 불리운다. 또한 산천어는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알을 많이 낳아 예로부터 장수, 다산, 금슬, 다복을 상징하는 물고기로 여겨왔다고 한다.
화천 거리는 온통 화려한 축제 분위기다. 선등거리라 하여 선계(仙界)의 물고기 산천어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1만 7천여 개의 선등(仙燈)이 5km에 걸쳐 주렁주렁 장식되어 있는 빛의 거리이다. 환상적인 야경 속에 산천어 소망등을 보며 새해 소망을 기원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한다.
화천시내 거리를 한 바퀴 돌아 구경한 후, 우리도 축제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화천천을 두꺼운 얼음으로 얼려 각종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산천어잡기 체험, 얼음썰매 체험, 얼음축구경기, 길거리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우리 일행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다. 두꺼운 얼음에 구멍을 뚫고 견지낚시로 산천어를 낚아 올리는 장면, 릴낚시를 던져 잡아 올리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입장료(1인당 12,000원)도 너무 비싸고, 입장객에 비해 공간도 너무 비좁은 편이다.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라 사람들은 엄청 많이 몰려오는데,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무질서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화천을 뒤로하고 31번 도로를 달린다. 말로만 들었던 파로호(破虜湖)를 옆에 끼고 달린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파로호는 화천과 양구군에 걸쳐있는데, 화천댐 건설로 생긴 호수로써 6.25 전쟁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천 명을 사로잡아 수장(水葬)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하였다 한다. 그 끔찍한 역사적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얗게 눈 덮인 호수는 더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오음리를 거쳐 양구, 인제 쪽으로 달린다. 예전에는 이 도로가 비포장 산길인데다가 구불구불하여 곡예운전을 해야하는 굉장히 위험한 공포의 도로였는데, 지금은 양호하게 포장 확장되어 탄탄대로로 변해 있다. 시원스럽게 뚫린 긴 양구터널을 우리는 신나게 달린다.
달리는 도중, 이용석 선생님이 그 옛날 군 생활하였던 부대 옆을 지난다. 청년 장교시절 10km 구보, 혹한기 훈련, 야간 행군 등 무척 고생 많았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구슬땀 흘리며 구보했던 그 도로를 30여 년 만에 지나치니, 감개무량한 표정이다.
백담사 입구 용대리를 거쳐 진부령을 넘는다. 날씨는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익살과 해학으로 가득한 김형곤 만담을 들으며 우리는 배꼽을 잡는다.
진부령(陳富嶺)은 강원 인제군과 고성군 사이의 험준한 고개(해발 530m)로써 오래 전부터 관동지방과 영서지방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넘어가기가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는데, 지금은 도로와 교통이 워낙 좋아져 아주 손쉽게 금방 넘을 수 있다.
간성 대대리와 반암리를 통과한다. 이 고장은 그 옛날 내가 군 생활하였던 지역이다. 그 당시엔 대대리 검문소가 굉장히 위력 있고 까다로운 곳이었는데, 지금 보니 거의 폐쇄되다시피 초라하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반암리에는 여단본부가 위치하고, 해변가에서 포술훈련을 많이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비운의 복싱 선수 김득구의 고향 마을이기도 하다. 잠깐 회상에 잠긴 사이 차는 오늘 우리들의 종착지이자 최북단 읍 거진(巨津)으로 들어선다.
풍광 좋은 J여관으로 숙소를 정하고, 거진수산회센터 ‘어전횟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한다. 펄펄뛰는 활어회(우럭, 광어, 멍게, 개불)에 소주 한 잔씩,
캬~ 인생은 바로 이 맛이여! 일배일배부일배...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회 한 점 입에 넣고 바다 쳐다보며, 무궁무진 먹세그려
맛있게 식사를 한 후 근처 노래방에 가서 열창의 무대, 여흥의 시간을 가진 뒤 취침 상태로 들어간다.
둘째 날...
기상을 하여 거진 등대로 올라간다. 해돋이를 보기 위함이다. 등대 주변에는 울울창창 송림지대로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윽한 솔향과 함께 솔바람의 속삭임 가득하다. 망망대해(茫茫大海), 확 트인 바다위로 서서히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 흥분, 그 감동을 졸시(拙詩)로 대신한다.
거진의 일출
여행 중 새 아침
여명 헤치며 거진등대 오른다
신선 상쾌한 하루를 연다
별빛 따라 달빛 따라
낯설고 가파른 길 오른다
우리네 삶과 흡사한 길
보라!
저 거대하고 찬란한 발광체를!
힘차게 용솟음치는 정염의 불꽃을!
이 땅의 거룩한 수호신을!
장엄 경건한 순간이다
가슴 벅찬 감동의 장면이다
바다 뚫고 붉게 떠오르는 태양
새 힘과 용기 샘솟는 황홀함이여!
거진 앞 바다
축복의 바다 일출 보며
생명의 기쁨 누린다
꿈과 희망을 심는다.
등대 뒤편 해안도로를 가볍게 산책한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역시 바다는 동해가 으뜸이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쉬지 않고 넘실대는 파도, 끼루룩 끼루룩 우릴 반기는 갈매기, 천년세월 모진 풍상 겪으며 떠있는 바위섬, 고기잡이 떠나는 크고 작은 어선들...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용기와 희망이 용솟음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어린 동요도 부르고,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추억어린 군가도 불러본다.
엊저녁 식사했던 식당에서 도치알탕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도치 생선은 양양, 속초, 고성 등지에서 주로 잡히는 고기로써, 생긴 모양이 시커멓고 심통난 얼굴처럼 부풀어 오른 올챙이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싱퉁이’라고도 한다. 데쳐서 회로도 먹고, 알과 함께 끓이는 김치찌개는 특히 겨울철에 그 맛이 일품이다. 아침 바다를 보면서 식사를 하니 이 또한 색다른 맛이다.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이제 통일전망대를 향하여 달린다. 대진리와 명파리를 거쳐 북으로 북으로 돌진한다. 오른쪽엔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가 하얀 물거품을 쉼없이 토해낸다. 참으로 멋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다시금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통일안보공원에 들러 출입신청을 하는 등 소정의 절차를 밟은 후 민통선 검문소에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우리는 전망대 통일관으로 올라간다.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는 남북 분단의 설움과 망향의 아픔을 달래고,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1983년에 세워진 안보관광지이다. 육안으로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어 수많은 국내외 탐방객이 찾아오는 천혜의 관광지임과 동시에 분단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통일의 염원을 다지는 안보교육의 훌륭한 체험장이다.
“우앗, 금강산이 보인다!” 이용석 선생님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천하제일 명산 금강산, 꿈에 그리던 금강산, 말로만 듣던 금강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원경을 통하여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을 비롯한 옥녀봉, 세존봉 등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하얗게 눈옷을 입은 채 우리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깃든 감호,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 신선대, 해금강, 송도, 우리 GP, 북한 GP, 동해선 철도 등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쇼핑센터에서 ‘금강산의 사계’ 영상을 실감나게 관람하고, 방문 기념으로 평양소주도 한 병 산다. 돌아오는 마음이 왠지 무겁고 착잡하기만 하다. 이재원 선생님 말과 같이 외세에 의해 분단된 우리 조국, 하루빨리 통일되어 자주민족의 기치를 세계만방에 떨쳐야 하는데, 남과 북의 국방력을 합친다면 정말 막강한 강대국이 될 수 있을 텐데....분단을 넘어 시대를 넘어 평화 통일로, 그날이여 어서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統一), 통일이여 어서 오라!!
내려오는 길에 화진포해수욕장에 들른다. 수심이 얕으면서도 물이 맑고 깨끗하며, 수많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풍광이 매우 수려한 곳이다. 그래서 일찍이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 등이 세워졌고, ‘가을동화’ 같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해양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입장료가 5천원이라 이구동성으로 비싸다고 푸념이다. 이곳은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으로 패류전시관, 어류전시관, 아쿠아리움, 살아있는 산호섬, 해저터널, 입체영상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패류전시관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화석류, 박제품 등 1만5천여 종이 전시되어 있는데, 조개의 종류가 이렇게도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어류전시관에는 동해 물고기와 각종 열대어들이 서식 환경에 알맞게 전시되어 있는데, 정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비의 물고기들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아쿠아리움은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해저터널의 수중세계로, 무리지어 다니는 가오리, 상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대형 수족관 위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감동, 감동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원더풀 투더풀, 연달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또한 바다의 꽃인 산호(珊瑚)들이 형형색색 만발한 가운데 물고기들의 향연이 베풀어지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열대 바다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입장료 5천원이 아깝지 않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건봉산 밑자락에 위치한 건봉사를 향한다. 화진포에서 내려와 송정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계속 달린다. 예전에 내가 전포대장으로 근무했던 A포대가 나온다. 고개를 최대한 기웃거려 부대 안을 들여다보니 위병초소부터가 완전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저 안쪽에 155mm 포상(砲床)이 보인다. 계산해 보니 딱 30년 전의 일이다. 정말 감회가 새롭다. 피 끓는 젊은 청춘을 이곳에서 불사르지 않았던가.
K1소총을 어깨에 멘 병사들이 검문을 하며 건봉사는 민통선 안에 들어있음으로 일행 모두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 도로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모양이다. 민통선을 통과하여 계속 달리니 마침내 건봉사가 나타난다.
건봉사(乾鳳寺)는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 줄기에 있는 명승 사찰 중 하나로, 신라시대 원각사로 창건하였다가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중수하고 건봉사로 바뀌었다. 불행하게도 6·25 전쟁 때 화재로 거의 황폐화되었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不二門)과 부처님의 전신 치아사리,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 등이 문화재로 남아있다.
청아한 염불소리 산천을 울리고, 뎅그렁 뎅그렁 은은한 풍경소리는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관광객들이 대웅전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두루 관람을 한다. 우리도 뒤질세라 멋진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이제 마침내 귀가 길에 오른다. 44번 국도를 타고 진부령~원통~인제~홍천~용문~양평~양수리~덕소를 경유하여 서울로 돌아온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총 520km의 기나긴 여정...
인생은 활동하는 가운데 존재하며 무기력한 휴식은 죽음을 뜻한다. 여행(旅行)을 사랑하는 자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방학 동안에 시간을 내어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다녀오니 가슴 뿌듯하다. 금번 여행은 십점 만점에 십점이다. 시종일관 안전운행 해주신 이재원 기사 선생님, 총무를 맡아 수고하신 진영창 선생님, 우리를 줄곧 즐겁게 해주신 이용석 선생님,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 덕분에 역사상 가장 알차고 행복하며 맛깔스런 겨울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경인년(庚寅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합시다.
오우회(五友會) 파이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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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표현의 미흡함이여!
천하명산 黃山에서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정면 돌파!
五友會, 그 얼마나
고대하고 열망했던가
중국 안휘성에 위치한
천하제일경
꿈의 黃山 오르다
예로부터 수많은 山客들
詩人 墨客들
갈매빛 설레는 마음으로
핑크빛 부푼 가슴으로
오르내리는 최고의 황산
오늘 역시 人山人海
고봉준령, 만학천봉
기암괴석, 낙락장송
과연 五岳을 능가한 山勢
이 봉우리 저 골짜기
숨바꼭질하는 환상적 雲海
오우, 원더풀!
절로 나오는 감탄사 감탄사
이보다 더 웅장한 秘境
이보다 더 화려한 山水畵
어디에 또 있으랴
끝없는 돌계단
오르고 또 오르고
백아봉, 광명정
굽이 굽이 돌고 돌아
마침내 최정상
1865 蓮花峰 접수
一望無際
온 천하가 발 아래...
하이라이트 西海大峽谷
-아찔, 웅장, 장엄, 경이
붓으로 그린 것인가
칼로 조각한 것인가
創造主의 위대한 솜씨
다시 한 번 입증하다
목도꾼, 대나무 가마
이색적 진풍경,
올라갈 땐 他人
내려올 땐 親舊 되는
탁월 찬란한 황산
역사상
가장 감동적 산행
밀려오는 이 幸福感
아, 잊지 못할 黃山이여!
깊이 새긴 황홀한 추억이여!
2010. 8.
황산 산행기
* 중국여행 일시 : 2010. 8. 5(목) ~ 10(화)
* 황산여행 일시 : 2010. 8. 6(금) ~ 7(토)
* 여행 인원 : 5명
여행(旅行)은 지는 해를 잡으려는 몸짓이고, 그 햇살의 온도를 오래 간직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일상은 새벽처럼 신선하다.
여행하는 마음은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고, 사물을 소유하는 일보다 눈길로 만져본 풍경의 소중(所重)함을 깨닫는 마음이다. <행복한 여행자> 중에서...
우리 五友會(이재원 선생님, 이용석 선생님, 박성문 선생님, 진영창 선생님, 임한율 선생님 )는 금번 여름방학 동안에 5박6일 간 중국여행을 하였다. 상해, 황산, 항주 일대를 두루 관광하였는데, 그 중 감동적인 ‘황산 산행기’를 간략히 쓰고자 한다.
먼저 말해두는 것은, 이번 여행은 순전히 이재원 선생님의 헌신적인 봉사로 이루어진 점이다. 정말 노고가 많으셨다. 선생님이 중국어를 잘하는 연고로 여행사를 끼지 않고 우리 자체적으로 중국 대장정의 길로 뛰어들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 오우회는 이 자리를 빌어 이재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임가지 선생님의 친정 오라버니와 올케 언니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임 선생님은 중국 상해 출신의 중국어 회화교사인데, 상해에 거주하는 오빠 부부가 시종일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참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다.
나는 3년 전에 우리 학생들 수학여행 인솔교사로 북경(北京)에 다녀온 적이 있고, 이번이 두 번째 중국여행이다. 상해에서 황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도로는 무척 시원하고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양 옆에는 분홍색 유도화(油桃花)가 만발해 있다. 그리고 소금을 뿌린 듯 온통 하얀 꽃밭에서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재배한 국화(菊花)를 채취하는 광경이다. 이것으로 국화차를 만든다 한다.
다섯 시간 이상 달려 마침내 황산 입구에 도착,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잘도 달린다. 사뭇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 감출 길 없다. 10여 분 후에 버스는 운곡 케이블카(삭도) 승강장에 도착하고, 다시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20여 분 후, 백아령역(해발 1600m 지점)에 우릴 내려놓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 출발을 한다. 모든 등산로가 돌계단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이 매우 정교하고, 위험구간의 난간도 아주 견고하게 잘 만들었다. 관리도 잘하는 편이고, 특히 군데군데 돌과 시멘트로 만든 자그마한 쓰레기통이 이색적이다. 우리도 본받을 점이다. 30여 년 전, 당시의 지도자 등소평의 특별 지시로 황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8천 개의 돌계단, 케이블카 설치, 산상 호텔 건축 등 8년에 걸쳐 인민들의 피와 땀이 얼룩져 이렇게 훌륭한 황산(黃山)으로 개발되었다 한다.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다. 오늘 기온 34도, 화창 청명한 날씨지만 매우 덥다.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히고 숨이 턱턱 막힌다. 백아봉, 시신봉을 거쳐 한참을 오르니 최정상 연화봉이 보인다. 산행객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황산은 국제관광지니만큼 중국인은 물론이요 각국 관광객들이 찾아왔으리라. 형형색색 등산객들과 갈매빛 청산으로 조화를 이룬 황산은 더욱 아름답기만 하다.
올라갈수록 펼쳐지는 전망이 참으로 황홀하다. 여기저기 우뚝우뚝 기암괴봉(奇巖怪峰), 아찔아찔한 천애절벽(天涯絶壁), 우람한 바위틈에 뿌리박고도 굳건히 서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 이 봉우리 저 골짜기 자유자재 흘러다니는 운해(雲海) -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치 우리 설악산(雪嶽山) 울산바위 꼭대기에 서있는 기분이다. 흔히들 황산은 우리 설악산의 세 배쯤 되는 크기라고 한다. 안휘성에 위치한 황산은 남북 40km, 동서 30km, 총면적 1200㎢(서울의 약 2배)로 5개 시에 걸쳐 있으며, 70여 개의 봉우리와 20여 개의 골짜기가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실로 거대한 산이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돌계단은 더욱 가파르고 협소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가 몹시 힘들고 방울방울 구슬땀은 계속 떨어진다. 숨을 몰아쉬며 앞 사람 엉덩이만 보며 오른다.
시신봉, 광명정을 거쳐 마침내 최정상 연화봉(蓮花峰) 접수, 만세 만만세! 동그란 돌판에 ‘황산 연화봉 1864.8m’ 새겨진 정상 표지석 앞에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한다. 찰칵, 찰칵, 셔터를 계속 누른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렵다는 듯이.
일망무제(一望無際) - 정상에서의 조망이 대단히 좋다. 바람도 시원 상쾌하다. 참으로 장관이다. 모든 산봉우리들이 연화봉 꼭대기에 서있는 나를 우러러보고, 온 천하가 내 발아래 있는 듯하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아니 느낄 수 없다.
서포 김만중이 쓴 고전소설 ‘九雲夢’에 등장하는 봉우리, 성진을 비롯한 팔선녀의 무대가 되는 연화봉이다. 그럼 조선시대 김만중 선생도 이곳 황산 연화봉을 다녀갔단 말인가.
수원에서 왔다는 여대생 둘을 만났다. 여기서 만나니 더욱 반갑고 감개무량하다.
자, 이제 하산 시작.
한참 내려오다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일고 천둥소리까지 들린다. 황산같이 크고 높은 산에서는 일기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더니 정말 실감이 나는 대목이다. 후두둑, 후두둑.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했는데, 웬걸 마음 놓고 차분히 내린다. 그래 좋아 좋아. 무더운 날씨도 식혀주고, 정상의 멋진 조망도 이미 한 뒤니까...
비가 갠 여섯 시쯤 우리는 예약한 단하산장(丹霞山莊)에 도착,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묵는다. 워낙 큰 산이라 이런 산장이 꽤 많다고 한다. 우리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다음날 아침, 황산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 일찍 기상하여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뿔싸, 그 붉고 고운 아침 해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한 황산의 날씨여!
우리는 서운함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긴 후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길, 오르막길, 굽이굽이 돌고도는 길, 모두 인위적으로 만든 숨가쁜 계단이다. 도무지 흙을 밟을 수 없는 길이다.
우와, 여기가 바로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 - 서해대협곡은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웅장하고 장엄한 계곡을 일컫는다. 저 건너 쪽에 펼쳐지는 절묘하기 짝 없는 기암절벽과 수많은 노송들,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신비의 구름바다, 그야말로 수많은 시인(詩人)과 묵객(墨客)들이 앞 다투어 묘사한 3기(奇松, 奇巖, 雲海)가 한 폭의 훌륭한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황산 산행의 하이라이트, 말로만 들었던 감동의 현장, 눈앞에 펼쳐지는 절대비경의 서해대협곡. 오, 표현의 미흡함이여! 이를 어찌 말과 글로 형용할 수 있으랴. 원더풀 원더풀, 감탄사 감탄사의 연발, 쿵쾅쿵쾅 뛰는 심장, 밀물처럼 벅차오른 가슴....중국 여행 최고의 압권이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붓으로 그렸는가, 칼로 조각하였는가.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송강 정철이 ‘關東別曲’에서 금강산 절경을 보고 묘사한 것처럼, 바로 그 모습 그 상황이다. 창조주(創造主)의 위대한 솜씨에 다시금 경탄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상기된 표정으로, 도취된 기분으로, 감상하고 또 감상한다.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마음껏 담는다. 찍고 또 찍는다. 이런 황홀한 장면은 영원히 볼 수 없다는 듯이.
황산이 만리장성, 황하, 양자강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명물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명나라 학자인 서하객이 중국 명승지를 섭렵한 후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 5악(五岳)을 본 자는 다른 산을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黃山을 본 자는 또한 5악을 볼 필요가 없다.”라고 설파한 말이 과연 실감난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로 세 시간 여 동안 계속 하산한다. 배운정 휴게소를 통과 내려오는 도중에 기기묘묘한 형상의 봉우리와 바위와 소나무를 수없이 목격한다. 무송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소설 ‘수호지’의 배경 무송타호(武松打虎), 밥상 모양의 석상봉(石床峰), 구간마다 절벽 허리에 설치된 스릴 만점의 허공다리, 소나무와 기암절벽의 조화가 멋진 松林峰(송림봉), 하늘에서 날아 떨어졌다는 비래석(飛來石), 산행객들을 환영한다는 영객송(迎客松) 등등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띤다. 가끔 가마를 탄 채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노약자나 환자를 대나무 가마에 태워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올라간다. 그 비용이 꽤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목도꾼들이다. 생필품을 일일이 짐꾼들로 하여금 어깨에 메고 힘겹게 올라가는 것이다. 많은 물건을 메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한 계단 한 계단 정말 힘들어 보인다. 하산 길에 백 명 이상의 짐꾼을 본 것 같다.
약 스무 시간 정도의 황산 여행, 산에서 만났던 모든 것들과 헤어지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벌써 많은 정이 들었나보다. 이번 산행은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고 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벅찬 감동과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가득 안고 말없이 배웅하는 황산을 뒤로 한 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참으로 즐겁고 우의를 돈독히 하는 훌륭한 여행이었다.
우리 五友會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오우회 파이팅!
20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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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 안에 있는 연꽃바다
아름다운 항주 서호
우리는 항주(杭州) 서호를 향해 달린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항주시 입구에 ‘天都城 第一浪漫’ 글귀가 보인다. 하늘이 내린 최고의 낭만적 도시라는 뜻인가 보다.
중국 동해변에 위치한 절강성(浙江省)의 항주는 소주와 더불어 제일의 관광도시로, 용정차를 비롯한 녹차 재배와 비단으로도 큰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다.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上有天堂 下有蘇杭 -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이다. 도로에는 우리 기술진의 현대와 기아차가 많고, 삼성전자 등 우리 간판도 눈에 많이 띤다.
특히 항주는 중국 호수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서호를 끼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우리는 서호(西湖)에 도착, 유람선에 올랐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처럼 넓고 맑고 시원하다. 유람선 안내양이 서호에 대한 소개를 하지만 도무지 알아듣질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서호(西湖)는 중국 4대 미인(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 중 하나인 월나라 서시(西施)가 태어난 곳으로, 오나라 왕 부차에게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이 미인계로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 뒤 쓸개를 먹으며 원수를 갚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시선 이태백(李太白)은 이곳 서호에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달을 노래하였으며, 서호를 늘 절세미인 서시에 견주어 아름다움을 극찬했다고 한다. 또한 항주 태수를 역임하였으며 ‘적벽가’로 유명한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주변의 많은 사찰과 서호의 아름다움에 취해 사색을 많이 하고 그로 인한 수많은 글을 지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자연 경관이 빼어난 이 서호를 찾았으리라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조선시대 송강 정철 가사작품 ‘關東別曲’에도 서호가 등장하여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
‘금강대 맨 우층의 호의현상이 반공의 소소뜨니/ 서호 옛주인을 반겨서 넘노난듯’ (금강대 꼭대기의 흰 저고리 검은 치마로 단장한 선학이 서호 옛 주인 임포를 반기듯 나를 반겨 노는듯하구나.) 그럼 송강도 그 당시 여기 서호를 직접 여행하였는지 궁금해진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수에는 세 개의 섬이 떠있다. 총 면적 60㎢로 안개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삼담인월(三潭印月, 소영주) 섬으로 들어간다. 달 밝은 밤, 호수에 배를 띄우고 불켜진 석탑을 바라보면 마치 달이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을 한 바퀴 천천히 거닐면서 감상하며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마음껏 담는다. 서호의 빼어난 자연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많이 한다. 찰칵 찰칵, 다시는 오기 어렵다는 듯이....
호수에 떠있는 섬,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넓은 연꽃밭 위에는 멋들어진 부용정(芙蓉亭)을 비롯하여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서있고, 서로 연결해주는 다리 사이로 다시 호수가 만들어진다. 우거진 숲에서는 각종 새들이 온갖 교태를 부리고 있다.
서호를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송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도로 주변에는 팔뚝만한 굵기의 왕대나무가 즐비하게 서있고, 밭에는 호박, 토란, 참깨 등이 영글어가고 있다. 우리 한국의 농촌 풍경과 흡사하다.
항주인들은 항주가 옛날 송(宋)의 수도였던데 대한 자부심이 아주 높다고 한다. 그래서 항주에는 송과 관련된 유물이 많다. 송성(宋城)에는 옛 송나라 민속촌을 만들어 놓아 여러 가지 풍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꾸며 놓았다. 볼거리, 먹을거리를 비롯하여 당대의 결혼식 장면, 종교 의식 등 하나의 다양한 놀이 파크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자,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송성 대형가무 공연을 관람한다. 입장료가 1인당 240위안(한화로 약 4만5천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우리는 중국여행 기념으로 입장한다.
3천명을 수용하는 대형극장 안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로 꽉 차있다.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 송성가무쇼 - 쇼는 크게 4막으로 나뉘어 항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
1막은 ‘항주의 빛’으로, 고대국가의 탄생과 송나라의 건국, 태평성대한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황제의 생일 연회가 거행되는 부분에서는 무대를 온통 황금으로 치장하여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2막은 ‘금과 철마 전쟁’으로, 금나라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송나라를 구한 영웅 악비의 무용담을 담고 있는데, 거대한 분수가 솟아오르고 말이 무대를 달리며 대포를 쏘는 등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무대효과를 보여준다.
3막에서는 ‘아름다운 서호, 아름다운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서호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4막 ‘세계는 여기서 모인다.’는 우리 한국을 비롯, 일본, 대만, 인도 등 각 나라의 민속의상을 입고 전통춤을 추는 무희들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 쇼는 세계 3대 공연 중 하나라는데,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해 버린다.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 五友會는 더욱 행복한 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상해 관광(임시정부 유적지, 예원, 동방명주)
상해 거리는 생각보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느낌이다. 서울과 다름없이 여기저기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으로 들어간다. 바글바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닭요리에 국수와 맥주를 시킨다. 그런데 닭고기가 아직 덜 익었는지 군데군데 피가 보인다. 이른바 반숙 요리...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 익은 부분만 몇 점 뜯어 먹는데,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열심히 취식한다. 나중 알고 보니 이 반숙 닭이야말로 이곳 특요리라 한다.
식후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상해임시정부 유적지(上海臨時政府遺跡地)’로 향한다.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직접 보고 듣고 느끼니 더욱 실감이 난다. 비록 날씨는 삼복 더위지만~~
마당로에 위치한 청사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단체 관광하는 우리 한국 청소년들이 사진을 찍는 등 법석이다.
우리는 안내원의 소개를 받으며 여기저기를 관람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이역만리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음으로 양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여러 구국 단체들이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백범 김구(金九) 선생을 주축으로,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일제 탄압을 피해 건립한 상해 임시정부 청사.....
구조는 1층 회의실, 2층 집무실, 3층 요인 숙소와 전시관으로 되어있다. 항일투쟁시기의 활약상을 간략히 소개하는 비디오 영상도 시청하고, 이봉창 윤봉길 등 주요 인사들의 사진과 함께 옥양목 천으로 만든 태극기도 걸려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선열들의 고결한 애국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빛바랜 여러 사진들을 보노라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진다.
다음 코스는 예원(預園)이다. 예원은 상해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정신적 문화적 지주로 일컬어지는 커다란 정원(庭園)이다. 명, 청 시대의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건물 지붕과 처마는 마치 커다란 학의 날갯짓처럼 특이해 보인다. 몇 년 전, 북경 이화원을 갔었는데 그곳의 웅장하고 호방한 스타일에 비해 이곳 예원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게 치장하는 등 좁은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고 있다.
입구의 둥그스름한 담벽, 복을 상징하는 각종 전설적 동물들의 그림, 나무와 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치밀하게 치장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그리하여 이곳 예원은 “강남 정원”이란 별명이 붙었다 한다.
아름다운 호수 한 가운데 날렵하게 서있는 호심정(湖心亭), 구불구불 멋진 다리 구곡교(九曲橋), 삼수당, 양산당 등 두루두루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아끼지 않고 카메라 앵글에 부지런히 담는다. 이런 장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듯이.
저녁에는 상해의 랜드마크라 일컫는 동방명주(東方明珠)로 향한다. 그야말로 백만 불짜리 야경(夜景)이다. 홍콩의 야경보다 더 환상적이고 휘황찬란한 것 같다. 상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동방명주는 황포강변의 포동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방송 관제탑인 이 건물은 높이가 무려 468m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한다. 이 수신탑은 크고 작은 11개의 구로 이루어져 잇는데, 구(球)는 진주를, 황포강(黃布江)은 옥쟁반을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진주가 옥쟁반에 떨어지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우리는 동방명주 맞은 편 강변에서 야경을 즐긴다. 이 건물의 화려한 진가는 밤에 드러난다. 서서히 어둠의 땅거미가 내려지고 여기저기 찬란한 조명등이 켜지면 우주로 향하는 듯한 절정감을 맛본다. 때마침 우리 앞으로 수상 유람선이 그림처럼 유유히 스쳐지나간다. 마치 거대하고도 화려한 한 덩이 불꽃과도 같다. 우와! 인산인해(人山人海), 수많은 관광객들 입에서 일시에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특히 야간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많다. 역시 상해는 아름답고 우아한 중국 제일의 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이제 내일이면 5박 6일의 중국여행을 마무리 짓고 귀국길에 오른다. 상해, 황산 산행, 항주 서호, 송성 가무쇼 등등....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긴 매우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우리 오우회(五友會)와 함께 많은 사랑도 나누고, 물심양면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의 고마움은 가슴 깊이 각인되었다.
재충전으로 활기찬 삶을 위하여, 파이팅!!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