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홀로산행과 ‘유아독존’에 대한 단상
서울 근교의 산들을 여기저기 오르기 시작한지 어언 15년이 넘었다. 그 동안 청계산,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 근교의 것은 수십번씩, 약간 멀리 예봉산, 용문산도 십여번, 조금 더 멀리는 고대산, 치악산, 설악산 등..... 이제는 가본 산의 가짓수나 횟수들이나 어느 하나도 그 숫자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할 만큼 햇수는 오래되고 산행수도 오륙백회를 훨씬 넘게 되었다. 금강산은 관광차 가보고..
고교 동창들과의 산행이 주된 것이었지만 법대동기들과의 산행 이력도 7년이상! 대부분이 단체산행이었고, 학업을 같이해온 공통된 인연만으로 서로들 간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이해와 아량으로 홍진(紅塵)의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나 회한들을 한 번에 창공으로 날려 버리는 그런 것들이었다.
학창시절의 추억보다 더 좋은 안주감이 또 있을까? 고급의 양주가 아니더라도, 각자 자진해서 가져온 막걸리 한 병, 쐐주 몇 잔이면 세상에 더 부러운 술자리는 없었다.
산행은 그 자체만으로서 우리들 정신의 피로회복제요 신진대사제이며 심신의 단련제로서 충분했다.
그런데 산행은 반드시 단체로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같이 갈 동료가 없어 부득이하게 혼자 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내 자신의 고독감의 욕구에 의하여 스스로 원하여 홀로산행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갈 때는 누구나 한결같이 깨닫게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홀로’이며 이 ‘홀로’는 때로는 욕구가 되어
우리를 고독하고 싶어 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는 ‘고독’이라는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자유’의 영역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주사이에 나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생사간에 인생은 독립하는 것이며 내 자신의 인생은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라는 석가의 말씀은 세상에서 독립된 특수한 상황에서 즉 ‘고독’이라는 ‘힐링’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를 공명(共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세밑 나는 홀로 청계산엘 갔다. 원터골 입구에서 옥녀봉쪽으로 가다가 진달래 능선 쪽으로 내려 왔다. 며칠전 내린 눈들이 등산로의 좌우로 아직 녹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내일(來日)이 ‘설’이라 산은 비교적 한산하였으며 내려오는 길은 북향이어서 아직 굳게 얼어 있는 빙판길이 올라갈 때 보다 훨씬 위험스러워 긴장했다. 그렇지만 이 긴장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법대 카톡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탄핵시국에 관한 보수 대 진보의 논전도 어느덧 나의 관심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나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직장관련 양 진영의 극한적 이해 대립도 이미 나의 뇌리에서 멀리 살아져 버렸다.
결과적으로 산행을 마치고 산기슭 한 편의 음식집에서 ‘혼밥’을 시켜놓고 기다리다가 문득 나 혼자서만 넓은 가게 안에 멍하니 홀로 앉아 음식을 주문해 놓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최근 케이블로 방영되고 있는 ‘일본방송’인 제이티브이의 《고독한 미식가》 (일본어: 孤独のグルメ ; 註 참조)의 소개글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소개글에서는 비록 ‘혼밥’을 먹는 행위에 한정하여 말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고독한 행위야 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고독한 미식가의 소개글에는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이라 할 수 있다”-
며 혼밥을 적극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산행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동창들에 의한 단체산행은 그 추억거리의 동질성에 의하여 여타의 잡다한 단체의 것과 달리 잠시나마 시간과 사회에 얽 메이지 않는 그들 만에 적용되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운 동질적 공간을 형성해 내지만, 홀로 산속에서 자신만의 과제로서 깔딱 고개를 넘어야 하는 쟁투의 과정에서도 시간과 사회로부터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으며, 이것 또한 오늘의 나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하며, 그 극복의 평등한 과정을 거쳐 최고의 ‘힐링’에 이르게 하는 ‘나’의 유아독존의 지위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홀로산행을 감행할 것이며, 혼자서 산에 가는 행위를 결코 고독한 것이라고만 하지는 않을 생각임을 여기에 밝혀 두고자 한다.
註- 《고독한 미식가》 (일본어: 孤独のグルメ こどくのグルメ 고도쿠노구루메)는 후소샤의 《월간 PANJA》에서 1994년에 연재를 시작하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만화이다.
1인 무역회사의 대표이자 독신주의자인 이노가시라 고로가 홀로 소박하고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일본 고유의 음식 맛을 즐기는 이야기
2012년 1월 4일부터 TV 도쿄에서 드라마 버전 방영을 시작했고, 현재 시즌5에 걸쳐 방영하고있다.
첫댓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삶이 ,,,홀로로 출발
요사이 혼밥, 혼술 얘기가 많은데 홀로 등산은 혼산(?)이라 해야 하나... 그래도 열심히 등산을 다닌다니 좋습니다.
진우가 몰라보게 어른이 된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혼자가 자유롭지요. 행운을 빕니다.
위 글 내용 말미에, 깜빡하여 누락한 다음 내용 추가 합니다.//
다만 홀로산행은 많은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단체산행보다 더욱 진중(鎭重)한 마음가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 속에는 인간에게 매사에 자중(自重)하라는 석가의 가르침 또한 포함된 것으로 보이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홀로산행예찬은 단체산행이 안 될 때의 보완적인 경우나 홀로만의 사색이 극히 그리워질 때에 사색용 정도의 안전성이 담보된 근교산행, 잘 아는 코스, 등산로의 필수적 이용등의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음도 함께 밝혀 둔다.
후우~ 진정 그님의 "혼등"을 즐길 줄이야!! 이유 불문코 경이롭다. 추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