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한국문학사 유일무이한 판소리 SF 활극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2호(2023.05.15)
미래과거시제
배명훈(외교97-01)소설가
북하우스
‘한국 SF가 가진 역량을 대중에게 알린 작가’. 2005년 데뷔 이후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배명훈 동문이 7년 만에 신작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는 최근 3년간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집중적으로 집필한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더욱 경이로워졌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 고래상어 그림을 감상하러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났다가 함정에 빠진 돈 쓰는 로봇 마사로 이야기(수요곡선의 수호자), 비말 차단을 위해 파열음을 완전히 제거한 미래 세계(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시간 여행을 둘러싼 한 연인의 사랑스러운 미스터리(미래과거시제), 판소리 형식으로 펼쳐지는 유일무이 요절복통 로봇 전투담(임시 조종사), 종이처럼 2차원의 형태로 날아온 외계의 존재들(접히는 신들), 잠들어 있는 의식과 듀얼 가상현실이라는 구상(알람이 울리면)까지, 배명훈 동문은 언어와 시간과 공간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꿈’과 ‘만약’의 세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상상과 성찰이 맞물린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한 ‘임시 조종사’는 고루 탁월한 이번 작품들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렵게 로봇 조종술을 익혔지만,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지내다 먼 타국의 부름을 받아 떠나는 인물 지하임의 요절복통 모험담이다.
재미가 보장된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판소리 형식이다. 작가는 근대소설 이전의 언어에 천착해 말의 근원까지 낱낱이 풀어헤쳤다가 쌓아 올려 판소리 형식으로 창작했다고 술회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유일무이한 과학소설이 아닐까. 아니리(장단 없이 말로 연기하는 사설)로 시작해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중중모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귀로 듣고 있는 듯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한편 낯선 형식과 대비되는 인물들의 친숙함이라는 장치는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배명훈 동문은 출판사와 유튜브 인터뷰에서 “SF소설이 과학에서 출발한 장르이긴 하지만 현대 SF는 문학적 측면이 무척 중요하다”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때, 언어와 규칙을 조금씩 바꿔보고, 옛날 언어로도 써보고 다른 톤으로도 이야기해보는 등 실험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부심을 갖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계속 달려가는 작가”라며 “천천히 읽어보시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대표작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 동문은 2005년 SF 공모전에 단편소설 ‘스마트 D’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워’, ‘안녕, 인공존재!’, ‘총통각하’, ‘예술과 중력가속도’, 장편소설 ‘신의 궤도’, ‘은닉’, ‘청혼’, ‘맛집 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빙글빙글 우주군’,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등을 썼다. 2010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