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 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 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꺼지지 않는 횃불로>(198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향토적, 비판적, 상징적
◆ 특성
* 반복법과 설의법을 통해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강조함.
* 자연을 의인화하여 강한 생명력과 덕성을 표현함.
* 대상을 향한 화자의 정서 및 태도는 '자부심'과 '믿음'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섬진강 → 남도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 상징
* 보라 → 섬진강의 당당함을 보여주려는 어조
*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 → 소박한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함.
* 어둠 → 부정적인 외부의 조건
* 그을린 이마 → 민중들의 고단하고 고달픈 삶
* 영산강 →섬진강과 함께 남도를 대표하는 강
*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 섬진강과 영산강이 남도 전체를 감싸고 힘차게
흐르는 모습
* 몇 놈 → 부정적 존재, 후레자식과 같은 의미
* 퍼낸다고 → 위협적 행위
* 지리산 → 무등산과 함께 남도를 대표하는 산으로, 민중의 건강한 모습을 연상시킴.
*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긍정과 교감의 행위
* 후레자식들 → 막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사람. 남도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반민중적 세력들
*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절대 마르지 않는다는 화자의 강한 확신이 담김.
남도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함.
◆ 제재 : 섬진강(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중의 상징)
◆ 주제 : 민중의 소박하고 건강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
[시상의 흐름(짜임)]
◆ 1 ~ 11행 : 섬진강(민중)의 저력과 포용력
◆ 12~26행 : 호탕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기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인은 섬진강을 젖줄 삼아 살아가는 남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과 설움을 드러내 보이는 한편, 그것을 감싸 안고 달래는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섬진강. 독특하게 의인화되어 있는 그 강물은 강변을 적시며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꽃등'을 달아주기도 한다.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이 이름 없이 살아가는 민중의 의미라면, 그들의 '그을린 이마'에 '꽃등'을 달아 주고 싶은 게 시인의 마음일 터이다. 섬진강은 때로는 영산강 물줄기를 불러 얼싸 안고 돌아가는 한편 지리산과 무등산 사이를 굽이쳐 흘러가며 그것들을 하나로 감싸 안기도 한다.
그러나 섬진강은 그렇게 넉넉한 마음을 보이면서도 끝내 한이 맺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보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으로 표현된 착취자들. 그들이 아무리 남도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고 해도 남도 민중들은 결코 위축되거나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몇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문원각>'에서-
[작가소개]
김용택 : 시인
출생 : 1948년 9월 28일, 전라북도 임실
학력 : 순창농림고등학교
수상 : 2012년 제7회 윤동주 문학대상
2002년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
경력 : 2003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2002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고, 전북작가회 회장,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덕치초등학교에서 30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대부분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정감있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연작시 「섬진강」의 경우, 시적 서정성만이 작품의 지배적인 정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의 일상이 조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현실의 각박한 변화와 농촌의 퇴락을 비판과 풍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기도 한다.
이 연작시는 첫 시집 『섬진강』(1985)을 통해 묶이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용택의 시적 경향은 보다더 직관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정서를 담는 격조 있는 서정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특히 소월시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와 같은 작품에
이르면 더욱 분명하게 하나의 시적 개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가 다루고 있는 시적 언어의 소박성과 그 진실한 울림은 토속적인 공간으로서의
농촌이 지니는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현대적 변화를 연결해주는 정서적
감응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일상의 체험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소탈함과
절실함을 동시에 긴장감 있게 엮어내는 시적 상상력은 독자적인 시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가 부박한 모더니즘에 휩싸이지 않고,
격정적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정서적 균형과 언어적 절제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시로써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첫시집 『섬진강』(1985) 이후 『맑은 날』(1986), 『꽃산 가는 길』(1988),
『누이야 날 저문다』(1988), 『그리운 꽃 편지』(1989),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강 같은 세월』(1995),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1996),
『그 여자네 집』(1998), 『콩, 너는 죽었다』(1998), 『그리운 꽃편지』(1999),
『누이야 날이 저문다』(1999), 『나무』(2002), 『연애시집』(2002),
『그대 거침없는 사랑』(2003), 『그래서 당신』(2006),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2008), 『수양버들』(2009),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2013)
등을 간행하였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들려주는 어린이 동화집과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펴냈다.
시 해설집 『시가 내게로 왔다』(2001)를 비롯하여 산문집 『김용택의 어머니』(2012),
『김용택의 교단일기』(2013), 『내가 살던 집터에서』(2013),
『살구꽃이 피는 마을』(2013) 등이 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12년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용택 [金龍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