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분명 신드롬이다. 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에 폭 빠져있다. 영상을 보며 그의 연주를 듣는 즐거움은 물론, 그가 했던 말들을 찾아 읽고 듣으며 그의 매력에 빠져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알고리즘으로 요즘 내가 유튜브를 열기만 하면 그의 음악과 더불어 그에 관한 영상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귀가 즐거운 것은 물론 눈도 즐겁고 가슴까지 출렁인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그가 지난 7월 29일 130년 전통의 세계 최대 클래식 축제인 영국 BBC 프롬스에 베토벤의 <황제로>당당하게 데뷔했다. "예브게니 키신이 2000년 프롬스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영상을 봤는데, 정말 놀라웠다."며 "그때부터 프롬스에서 연주하겠다는 꿈을 가져왔다." 고 털어놓은 임윤찬. 이제 멋진 커리어를 지닌 주목받는 신예로서 아흡 살 때부터 동경해 왔던 꿈의 무대에 올랐을 때 그의 가슴이 얼마나 방망이질했을까. 또 그날의 데뷔 연주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연습했을 것인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품 <황제>에 대해 그가 말했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와 희망을 갖는 유토피아를 묘사하려 한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세상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귀한 상을 거머쥔 것은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피아니스트만 해도 오래전부터 여러 굴지의 콩쿠르에서 입상해 현재 꾸준히 활동을 하며 사랑받고 있는 연주자들이 많다. 그중에도 유독 임윤찬이 클래식 팬들뿐만이 아니라 신드롬 수준으로 대중의 사랑까지 받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깊이 사랑하는 그의 치열 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가 큰 몫을 했으리라. 어떤 곡이든 작곡가의 정서적 깊이를 심층 탐색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노력,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고 온전히 쏟아붓는 연습시간, 그리고 스승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 자신의 음악인생에 대해 유창하진 않으나 진지하게 쏟아내는 그만의 언어를 들 수 있지 않을까.
2년 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시상식에서 60년 역사상 열여덟 살 최연소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부터 임윤찬의 말은 일반의 기대를 한참 벗어났다. 자신은 커리어에 대한 야망이 없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하고만 사는 게 꿈인데, 그렇게 되면 수입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연주활동을 한다면서 이어지는 말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 콩쿠르 출전은 내년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되는데 그 전에 제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어요.'' 자신은 아직 너무 준비가 안 된, 너무 부족한 음악가라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을 받아서 올해 들어서 가장 심란한 마음이라고. 마음도 무겁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으며 지금까지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아직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온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 마당에 그가 수줍어하며 언급한 '심란하다' 라는 단어가 특히 놀라웠다. 그래서 울림이 컸고 더 관심을 끌었다. 인터뷰 같은 것은 사양하고 싶은 듯한, 그러나 천천히 또박또박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10대 소년의 얼굴에서 맑디맑은 순수가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