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조금은 씨니컬하게.. 2005/02/16 12:00
유서를 써 놓았는가?
영정사진을 찍어 놓았는가?
때때로 이런 말들의 각색으로 누구에게나 골고루 부여된
죽음에 대한 막바지 일방로에 대해 냉소적 절망이 담긴 유머를
서로에게 던지며 웃기도 하는데...
이 필수적인 준비들에 대해서 너무 소흘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마치 우리는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 처럼 말이다.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은것일까?
우리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다른 세계에 언제고 갈 것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며, 당장 한 시간후도 우리는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서,
수 많은 약속을 하며 시간을 밟아가며 죽음으로 다가간다.
때때로 내가 죽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때 퍼뜻 뇌리에 스치는 것은,'좀 전에 내가 뭘 하려다가 말았지?'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하려고 했던것, 그리고' 나 없는 내 가족들은
어떻게 내 죽음을 받아 들이며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전 한때 쇼펜하우어,' 니이체'의 인생론과 '까뮈'의 '이방인',
'이상'의 '날개'등을 탐닉하며, 무거운 음악에 빠지고, 염세적인 무게에 짖눌려
내 자신을 붙잡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때가 있었다.
의욕없는 시간을 그저 연명하면서, 어차피 죽음에 직면할 인간들이 이렇게 바둥대봐야...
차라리 내가 선택한 죽음을 기쁘게 받아 들이자...
아마도 에이즈환자나 암 말기환자들의 자살동기는 이런 자포적 상념때문일것이라고 이해된다.
지금까지 그 세계가 연장되었다면, 난 아직 식물인간처럼 살았을것이다.
그때의 후유증인지, 난 지금도 일반 만화책이나, SF 공상과학의 영화나 책을 읽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너무 추상적인 예술에도 별 관심이 없다.
터무니 없는 상상의 세계는 인간의 현실로 부터 억지로 나를 분리시켜서
외면 당한것 처럼 느꺼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생전에 그 사람과 나와의 연결된 것과,
그리고 앞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과 앞으로 공유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시간들로 아쉬움에
애통하며 진작 함께 서두르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된다.
나와 별다른 인연을 갖지 않은,
가끔 가까운 사람의 가족의 죽음을 듣고, 상가집을 가게 된다.
입구에서 부터 스산함 가운데..분주히 움직이는 가족들 속에서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찿아낸다.
나와, 그 인연의 사람과의 관계를 계산한 액수의 돈이 담긴 내 이름이 적힌 흰 봉투를 내민다.
그리고, 죽은자에 대한 나와의 연결을 애써 끄집어 내며, 상투적인 아쉬움의 표정을 짓고
상투적인 위로를 한다.
설사, 그 사람이 죽음에 별 동요가 없다 한들...이것은 단지, 산자끼리의 인사일 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픈 이 죽은자의 손을 만졌고, 육성을 들었고...
그러나 지금은 다시는 재생되지 않을 과거일 뿐으로 탓을 돌리며...
때로 슬퍼하기도 하고, 때로는 덤덤하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이라면, 나 또한 함께 슬픔에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곧 이어 푸짐한 상차림이 일회용그릇에 담겨져 나오고, 그 음식을 입속에 넣으며,
죽은자의 얘기를 들어 주게 된다.
모두 산 사람들을 위한 잔치이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숙제처럼 해 치우는 느낌이다.
그러나, 정작 진지한 듯...아무런 감정도 없는 나의 이중면에 튀어오르는 비웃음을
애써 바닥에 짓 누르고 말이다.
한쪽에서는 어린 아이들끼리 웃고 장난치고...그러나 어른들은 자못 엄숙한데...
난, 그저 친한 사람의 슬픔 내지, 의무에 내 예의를 다 하고 온 느낌이다.
돈 몇푼 디밀고, 잘 먹고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사람과 나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기도 한다.
죽은자의 모습은 영정사진 한장의 순간적인 이미지로 잠깐 내게 남았을 뿐이다.
나.
'나'라는 사람.
내가 오늘 씼어 내고 맛사지 해대고 돈 들여 바르고, 먹고, 소중하게 가꾸고 했던
이 살점들이, 언제고 소각장의 한갖 처리물로 태워진다.
내 얼굴 한장이, 애써 근엄한 액자에 담겨져 향을 피운 뒤에서 고요히 웃고 있을때
다른 사람들도 내 죽음에 이렇게 덤덤하게 왔다가...곧 잊게 될 것이다.
나에 대해서 뭐라고들 말 할까?
'잘 죽었다?'
'아깝게 죽었다?'
물론, 이런 뒷 얘기들은 그 들의 몫이고...난 들을 수도 없는 돌아오지 못할 세계에서
새로 만난 세계에 대한 적응에 힘들어 할 수도 있고, 아마도 애쓰고 있을것이다.
물론, 날 사랑하는 친구들과 내 가족들은 다르겠지만...
그 아픔까지 생각하려면, 지금 너무 버겹다.
난, 준비된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장, 내 손때가 묻은 메모들로 남편이 배신감을 느낄 나도 모르는 부속들이 남아 있을것인데..
하나도 정리되지도...준비 되지도 않고, 그저 막연하게 살고 있다.
잠시 난 죽음을 초월한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며.
내 앞을 지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표정도 그런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죽음을 선고받은 지극히 일부 사람들은 정말 마음이 덤덤하고 태연할 수 있을까?
우리가 교회에 가고, 하나님을 믿는자들은 믿음생활로 보장된 천국을 정말 담담하게 받아 들인다.
또 그렇게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내심 나머지 생에 대해 애착을 과연 버릴 수 있게 될까?
혼자만의 천국행에 즐거워 해야 한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감정은?
그런데, 슬퍼하며 왜 울까?
얼마전 길은정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난 그녀의 웃음속에서 절망을 애써 가린
삶의 애착을 진하게 느꼈다.
그리고, 곧 그녀의 연소되는 신음도 웃는 영정에서 환청처럼 들었다.
어쩜 앞으로의 내 모습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고...
이건, 지금 내겐 너무 재수없는 소리다.ㅎㅎ
또 다시 나를 흔들어 깨운다.
아! 죽는거..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그냥 이렇게 살자^^
덧붙여...
돈으로 죽음을 바꾸지 못하게 한것에 대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할 뿐이다.
아! 못 말리는 나^^...여기서도 김대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인간, 만약에 죽음을 돈 주고 바꿀 수 있다면, 지구도 팔아 먹을 인간이기 때문이다.
♬Adagio in C Major BWV 564 by J.S.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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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혜원 님 좋은 글에 덧붙여...는 군더더기일 것 같습니다. 멋진 글 가져오신다고 수고하신 토카타 님~ 장엄한 음악도 잘~듣습니다.
토카타님. 고맙습니다. 바흐의 파이프올겐 연주와 아주 잘 맞습니다^^ 혼날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어휴 ~ ㅠㅠ;;
이 음악을 제 글에다 옮기려다 실패했심댜. 투 터치 아날로그로 ㅎㅎ다시 짱구 굴리며 떡 주물렀더니, 아예 소리가 안남. 포기. Asta luego!
Ms. Lee, si usted desea no morir, usted debe amar a alguien.
글과 음악이 효과를 더 내게 만듭니다,,글 무겁게 잘 보았습니다,,,^^**
혜원씨! 드디어 블로그에 음악이 떴군요. 수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아주 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토카타님, 덕분에 심재철국회의원이 음악만 조타고 난리네요.ㅎㅎ 음악이 아주 효과가 있어서, 닷컴 메인에도 떴네요. 고맙습니다^^
김진우님!! @&$&*^#&!^#$)!*$)*%&)_#&%(&$(@)&$?????????? 잘 못 했떠요...싹싹~ ~ ^^*
번역 입니다. Ms. Lee, if you wish not to die, you must love somebody.
진우님^^ 썸바디가 누굽니까? 저 지금 죽게 생겼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