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을 탄식하는 노래 「탄로요(歎老謠)」 생의 최절정기에 무서운 건 세월>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늙음을 탄식하는 노래’ 「탄로요(歎老謠)」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가 72세이던 1812년경에 지은 작품이다. 그는 이 글을 통해 늘그막의 삶(老境)에 이르러, 욕심을 줄이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니 겨우 마음의 평온을 얻고 재앙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앞서 늙음에 직면한다.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늙고 나서야 한가로이 사는 맛을 알게 되었다(老得閑居味)”고 전원생활의 여유롭고 한가한 즐거움을 읊었다.
우리에게 늙음이란?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게 거침없이 하고픈 대로,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인 것 같다. 비록 육체가 노쇠해졌더라도 어떠한 사회적 가정적 얽매임 없이, 내 꿈을 펼칠 수 있고 ‘한가롭게 살아 자유롭기 그지없는(閑適自在)’ 나이다. 우리는 자연의 도(道)에 따라 늙고 병들어 죽는 게 숙명이다. 번민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러한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고로 석양처럼 붉고 우아해야 하는 노년은, 생의 최절정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 저자 윤기(尹愭) 선생은 죽는 날까지 ‘늙음을 긍정하고 노경(老境)을 즐기고자 했다. 그러나 윤기는 늘그막에 친구도 없고, 돈도 없어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생의 최절정기에 제일 무서운 건 세월뿐‘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이 글에서 노화에 따른 무기력해진 신체적 변화를 서술하다가 마지막 몇 구절에서만, 그저 마음의 평온이나마 희구하며 스스로 늙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어쩔 수 없이 늙음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 한편 돌이켜 보니, 육체적으로 늙어가는 노화의 징후를 느끼기 시작하는 때는 아마도 50대에 이르러 오십견에 시달리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전에 귀밑머리가 흰빛으로 변한다거나, 시력에 노안이 생긴다거나, 썩은 이빨을 뽑는다거나, 또는 기력이 저하 되는 신체적 변화를 겪기도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에이고” 신음 소리를 쏟아내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특별한 외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심한 야간 통증의 고통에 잠 못 이루는 오십견의 고문을 당하면서 늙어감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도 가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보고 별짓을 다 해봐도 쉬이 통증이 사라지질 않았다. 어떤 때는 괜찮다가 또 어떤 때는 힘줄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근 2년을 시달려야 했다. 그때마다 이제 내 육체가 이미 늙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다 50대 말(2019년)에 약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드나들다가 겨우 살아난 후, 건강을 챙기면서부터 나는 앞으로 나의 삶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60대인 요즘에는, 하루라도 운동하지 않고, 걷지 않으면 저승사자가 문 앞에 올 것 같은 두려움에 내 스스로 위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나의 생을 자유롭게 거침없이 내가 하고픈 대로 내 의지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마지막 주어진 의무로 알고 그저 묵묵히 살고자 한다.
○ 더하여, 나이가 드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가는 모임이 있는데, 어제 갔다 왔다 생각했는데 오늘 또 모여 등산을 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 내일은 또 모여 등산을 가는 것으로 착각하지 싶다. 그리고 선배 한 분이 형수님과 손자를 맡아 키우는데 “아침에 5살짜리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저녁에 손자가 5학년이 되어 돌아오더라”며 세월의 빠름에 스스로 놀란다고 한다.
이에 젊었을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여겼는데, 환갑을 넘기니 하루가 일순간이고 돌아서니 1년이다. 혹자는 내 생애 동안 무엇을 남기고 갈까? 고민하는 분이 있는데 사실 인간은 남길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또한 인간에게 젊음도 순간이고 또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나, 제일 무서운 것이 세월인 것 같다. 살아보니 아무리 젊게 살고자 노력한다 해도 나이에 따른 신체적 변화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잘 사는 것일 게다.
◉ 지금부터는 옛날 우리 선조들의 늙음에 대한 글귀를 살펴보겠다. 봉건시대 시인묵객들은 자신이 늙어감을 안타까워하면서, 고려후기 문신 역동(易東) 우탁(禹倬 1262~1342)의 시조 <탄로가(歎盧歌)>를 자주 읊어댔다. "한 손에 가시 쥐고 한 손에 막대 잡고, 가는 청춘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랬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또한 당나라 이태백(李太白 701~762) 시인은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카락, 저녁에 흰 눈이 되었구나(朝如靑絲暮成雪)”라고 한탄했다. 아무리 버텨봐야 세월을 이길 수가 없다. “양쯔강 삼협 그 거센 뒷물결이 앞 물결 밀어내듯, 나도 한 시대 신인이었지만 이제 흘러간 인물(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이라고 했듯이 자연스레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그게 세상 이치다.
○ 조선전기 문신이었던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1483년(64세), 말년에 지은 <늙음을 탄식하다(歎老)>라는 ‘先’ 운의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 “강해의 풍류로 시와 술(詩酒)에 미쳐 놀던 시절, 삼십 이년 전의 일들을 회상하노라면, 그 당시도 지난 일이 온통 꿈만 같았는데 이젠 또 그 위에 삼십 이년을 더했네그려.(江海風流詩酒顚 回頭三十二年前 當時往事渾如夢 今又加三十二年)”라며 늙어감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젊은 시절 서거정(徐居正)은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며 부교리(副校理)에 올랐다가 1453년 당시 실세였던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따라 명나라에 종사관(從事官)으로 다녀오면서 그는 장안에서 거칠 것이 없는 전도유망한 문사(文士)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시와 술(詩酒)에다 풍류로써 미쳐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듯 자신이 64세의 늙은이가 되었다고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 또한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의 스승이었던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의 칠언절구 <꽃을 보고 늙음을 탄식하다(對花歎老)>에서, “봄바람도 역시 공평치 않아서, 온갖 나무 꽃피워도 사람만은 혼자 늙게 한다. 억지로 꽃가지 꺾어 흰머리에 꽂아보지만 흰머리와 꽃은 서로 어울리지 않네.(東風亦是無公道 萬樹花開人獨老 强折花枝揷白頭 白頭不與花相好)”라고 읊었다. 봄바람이 아무리 꽃을 피우더라도, 백발노인의 머리카락을 검은 머리로 돌려놓지는 못한다고 탄식하였다.
한편 예나 제나 노경(老境, 노년기)을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먼저 건강한 육체와 정신, 노년을 함께 해야 할 마음 맞는 벗들과 생활을 영위할만한 경제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다음 사언고시(四言古詩) 「탄로요(歎老謠)」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의 작품이다. 여기 ‘늙음을 한탄하는 노래’ 「탄로요(歎老謠)」는 저자가 72세이던 1812년경에 지은 글로, 평성 가(哿) 운을 압운한 사언 고시(四言古詩) 28구이다. 윤기(尹愭) 선생은 죽는 날까지 ‘늙음을 긍정하고 노경을 즐겼던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삶’을 본받고자 했다. 그러나 윤기는 늘그막에 친구도 없고 돈도 없어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탄로요(歎老謠)」에서 그는 그저 마음의 평온이나마 희구하며 스스로 늙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견지한다. 이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노화로 인해 무기력해진 자신의 신세를 드러냈다. 시력과 청력의 저하, 탈모와 낙치, 현기증, 기억력 저하, 온전치 않은 걸음, 의지와 다른 몸의 움직임 등 노화에 따른 증상들을 기술했다. 게다가 가난까지 더해진 암담한 늘그막 신세에 대한 자조적인 서술이 이어졌다. 다만 마지막 몇 구절만 노경(老境)을 긍정적으로 읊었을 뿐이다. 욕심을 줄이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아 겨우 재앙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고 자평한다. 어쩔 수 없이 늙음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모습이 완연하다.
*<늙음을 탄식하는 노래[歎老謠]>* 윤기(尹愭 1741~1826)
細語不聞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謂聾也可 귀머거리라 해도 되고
小字莫辨 잔글씨를 읽지 못하니
非瞽而那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랴
坐傴立僂 앉으면 구부정하고 서면 곱사등이라
髮禿齒墮 머리카락 벗겨지고 이빨은 빠져
頭目暈眩 머리와 눈이 어질어질하고
神精牿鎖 정신마저 꽉 막혔네.
若墜烟霧 마치 안개 속에 빠진 듯하다가
輒騰痰火 곧장 담화(痰火, 가래)가 들끓으니
當言忽忘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잊고
能履亦跛 걸음걸이조차 절룩거리며
呼甲爲乙 갑을 부르면서 을이라 하고
欲右曰左 오른쪽을 가려다가 왼쪽으로 가니
家人誚譏 집안사람들 나무라며 비난하고
親知嘲簸 친지들은 비웃고 놀려대네.
氣旣不充 기운이 이미 충만하지 못하니
志從而惰 뜻도 따라 게을러져
束閣詩書 시서(詩書)는 시렁에 묶어 두고
嗒然喪我 멍하니 나조차 잊은 채로 지내며
縱歎腹枵 텅 빈 배를 탄식하면서도
猶恥頤朶 오히려 주제 넘은 것은 바라지 않아
北窻風卧 바람 부는 북창 밑에 눕고
南簷暄坐 따스한 남쪽 처마 아래 앉았어라.
事物不嬰 일체 사물에 상관하지 않아
身心俱妥 몸과 마음이 두루 평온하니
而今而後 지금에 이르러서야
庶免於禍 재앙을 면할 수 있겠네.
[주1] 멍하니 나조차 잊은 채로 지내며 : 원문은 ‘탑연상아(嗒然喪我)’인데, 멍하니 자신조차 잊은 상태를 가리킨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南郭子綦)란 사람이 안석에 기대앉아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데, 멍하니 마치 짝을 잃은 것 같았다(嗒焉似喪其耦). 안성자유(顔成子游)란 사람이 곁에서 모시다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형체는 본래 마른나무처럼 할 수 있고, 마음은 본래 식은 재처럼 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남곽자기가 대답하기를 “언아, 너의 그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는데, 네가 그것을 알았나 보다.(偃 不亦善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 汝知之乎)”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2] 주제넘은 것 : 원문은 ‘이타(頤朶)’인데 ‘타이(朶頤)’와 같다. 타이는 턱을 움직이며 먹어선 안 되는 어떤 것을 탐내는 모양이다. 《주역》 〈이괘(頤卦) 초구(初九)〉의 “자기의 신령스러운 거북을 놔둔 채 나를 보고서 턱을 우물거리니 흉하다.(舍爾靈龜 觀我 朶頤 凶)”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