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라는 달콤한 환상과 선동에 속아 전쟁터의 소모품으로 사라져간 청춘들.
2022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휩쓸며 마스터피스로 자리 잡은 전쟁 드라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인 영상 기술로 재해석하여, 기존 전쟁 영화들이 보여주던 낭만과 영웅주의를 완벽하게 배제했다.
쥐가 들끓는 참호 속에서 오직 허무와 파괴만을 남기는 전장의 실상과 가슴 시린 결말을 복기해 본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참혹한 전사자의 군복 세탁 과정을 보여주며 숨을 막히게 한다.
피 묻은 군복을 빨아 이름 태그를 무심하게 떼어내고, 영웅을 꿈꾸며 입대한 17세 소년 파울 보이머(펠릭스 카머러)에게 다시 지급하는 오픈 시퀀스는 너희는 그저 다음 소모품일 뿐이라는 차가운 경고를 던진다.
학교 선생님의 선동에 홀려 서부 전선으로 향한 파울과 친구들이 마주한 것은 포탄과 독가스, 그리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생지옥이었다.
참호 속에서 소중한 친구들이 낙엽처럼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가는 것을 보며 소년들의 눈동자는 점차 잿빛으로 변해간다.
영화는 지독한 대조의 연출을 통해 전쟁의 본질적인 불합리함을 폭로한다.
쥐가 들끓는 참호에서 빵 한 조각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과 달리, 후방의 고위 관료들은 호화로운 기차 안에서 따뜻한 스테이크를 썰며 정략적인 휴전 협상을 논한다.
그 시각 전방에서 프랑스군 참호에 침투한 파울은 적군을 찔러 죽인 뒤, 서서히 죽어가는 적군의 주머니에서 그의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처절하게 절규한다.
이 장면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부품이 되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정신이 붕괴되어 가는 청년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며 마침내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를 기해 모든 전투를 중단하는 휴전 협정이 체결된다.
그러나 전쟁의 영광과 꼰대 같은 명예에 눈이 먼 프리드리히 장군은 휴전 발효를 고작 15분 남겨둔 상황에서 비정한 최후의 총공격 명령을 내린다.
파울은 또다시 무의미한 돌격에 내몰렸고, 백병전을 벌이다 등 뒤를 찔리는 치명상을 입는다.
시계가 11시 정각을 가리키자 사방에 씻은 듯한 정적이 찾아오지만, 파울은 그 평화를 누리지 못한 채 참호 계단에 기대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숨을 거둔다.
사령부가 본국에 날리는 일일 보고서의 내용이자 타이틀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국가 시스템이 개별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잔인한 은유다.
수천 명의 청춘이 참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음에도, 전선 경계선이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부는 현 상황을 이상 없음으로 요약해 버린다.
죽은 파울의 시신은 전사자 명단에도 제대로 오르지 못한 채, 새로 입대한 어린 신병에 의해 인식표만 뜯겨 나간다.
이 신병의 등장은 전쟁의 잔혹한 톱니바퀴가 다음 세대로 계속 대물림될 것임을 암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압도적인 영상미와 잿빛 진흙탕의 질감, 심장을 옥죄는 사운드를 통해 전쟁터의 공포를 안방극장 시청자에게 그대로 배달하는 작품이다.
후방의 이기적인 판단과 전방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교차시키며 인간 존엄성의 파괴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평화의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작품으로, 주말 저녁 넷플릭스를 통해 영웅주의가 거세된 진짜 전쟁의 참혹함과 묵직한 반전 메시지를 느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