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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커피 생산지
오늘날 커피는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중남미, 아시아 등 약 60개 국가에서 재배되고 있다. 기후적으로는 열대, 아열대 지역에 속하고 위치는 대개 적도를 중심으로 남위 25°~북위 25° 사이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커피벨트(coffee belt), 또는 커피 존(coffee zone)이라고 부른다.
커피는 농작물이기 때문에, 생산량은 해마다 조금씩 바뀔수 있으나 전체적인 방향은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커피 소비가 지속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커피는 어디에서 얼마나 생산되는 것일까?
1. 아프리카
아프리카 커피의 생산량은 꾸준하게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1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커피나무의 원산지로 커피를 처음 발견한 전설의 배경이 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전체의 4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우간다, 코트디브아르 커피의 생산량도 상당하다. 두 나라의 합이 아프리카 전체 35% 정도이다.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 산 기슭에서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마운틴 커피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탄자니아 커피는 가장 아프리카다운 커피로 알려져 있다.
2. 중남미
지역별로 보면 중남미에 주요 산지가 집중되어 총생산량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브라질은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18세기 초 프랑스를 통해 커피가 도입된 이후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여 현재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 되었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원두의 크기가 고르고 품질이 우수해서 생산량 대부분이 최고급품으로 수출되고 있다.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있으며 격조 높은 커피 생산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메이카는 커피의 모든 매력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블루마운틴을 생산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쿠바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인 이곳은 커피 애호가들에겐 꿈의 섬이다. 섬 전체가 1000~2500m의 고지대로 커피 품질이 우수하다.
3. 아시아
아시아는 전 세계 생산량의 약 3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베트남의 생산량이 아시아 전체의 57% 수준으로 가장 많다. 2000년에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인 콜롬비아를 따라잡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커피 생산국으로 18세기 중엽 네덜란드에 의해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자바 섬에서 생산되는 원두는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고 인정을 받고 있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의 커피 생산국은 인도이다. 인도에서는 자연으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이용해서 건조하는 몬순커피가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고종황제가 러시아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인 웨베르에게 처음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1년간의 공사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고종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커피를 즐겨 마셨다.
1902년에는 서울 덕수궁 옆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 빈관(賓館)이 세워지고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운영되었다. 손탁 빈관의 주인이었던 손탁(Sontag)은 독일계 러시아 여인으로 1885년 10월 초대 주한 러시아공사 웨배르를 따라 내한하여 25년간 한국에서 생활하였다.
손탁은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각종 언어에 능통했고 한국어도 빠른 속도로 습득하면서 명성황후의 신뢰를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궁궐에서 양식 조리와 외빈을 접대하는 일을 했다.
손탁을 신뢰한 고종과 명성황후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비밀스런 대외교섭 업무를 맡겼고, 친러반일을 위해 수고한 보답으로 1898년에 방 5개짜리 양옥을 지어 하사하였다. 손탁은 이 양옥을 서구 풍으로 인테리어하고 빈관을 경영하였는데 너무 협소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1902년 10월 2층 양관을 신축하여 손탁으로 하여금 영빈관을 경영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손탁 빈관의 출발점이 되었다.
손탁 빈관은 거액의 내탕금으로 신축했기에 사실상 한국 정부 직영의 영빈관 호텔이었다. 손탁 빈관에는 외국 문물을 접했던 개화파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 때 종군기자로 들어온 마크 트웨인이 프레스룸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게 되면서 커피는 단지 왕실의 기호품으로만 그치지 않고 중앙의 관료, 서울의 양반, 지방의 양반으로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커피는 서양문물의 상징이었다.
1911년에 박정애가 ‘부인다옥(婦人茶屋)’이라는 다방과 유사한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당시 다방에서는 과자와 소라와 전복도 팔았고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판매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암울한 시절에도 한량들은 다방에서 노닥거렸다.
커피를 최초로 순 한글로 표기한 것은 1913년 ‘국민보(國民報)’이다. 1914년 10월 10일에 개관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조선호텔은 객실 52개와 한식당, 양식당, 커피숍, 댄스홀 등을 갖췄다. 조선호텔은 오늘날 호텔 1층이나 지하에 자리 잡은 커피숍의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커피의 확산은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하던 모더니즘의 바람을 타고 이루어졌다. 커피는 한잔에 10전이었다. 조선인 남자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60~80전이었으나 커피 값은 대단히 고가였다.
그러나 당시 유행의 첨단을 걷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커피를 마시는 일은 단순히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문화적 쾌감을 맛보는 행위였다.
1930년대 다방의 주 이용 고객은 20~30대로 신문기자, 배우, 문인, 화가, 음악가, 인텔리 층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다방은 영화배우, 문인, 예술가, 유학파 등이 주로 개업하였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그 당시에는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옥상정원에 최초의 노천카페를 운영하였다. 이 시기는 다방의 르네상스 시기였다.
한국에 커피의 대중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해방과 함께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가 유통되면서 한국의 커피 문화는 인스턴트커피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1950년대에는 아침을 못 먹은 사람들을 위해 계란 노른자만 따로 그릇에 담아 커피와 함께 제공하는 한국식 모닝커피가 유행했다.
1961년 5․16군사혁명 이후 커피가 외화낭비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수입 커피 판매를 금지하였다. 그후 규제가 풀리면서 다방망국(茶房亡國)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다방이 생겨났다. 1960년 후반에는 음악다방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이 때 다방은 연인들에게 약속과 추억의 장소였다.
1970년대에는 야간 통행금지로 인해 심야다방이 성행하였다. 심야 다방의 주인들은 일반 커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격이 비싼 ‘비엔나커피’를 기본 메뉴로 설정하기도 했다. 시내 중심가와 대학가 주변으로 커피숍이 등장하고 다방에서 커피 배달을 하는 레지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1978년 4월, 정부는 커피 수입의 자유화를 최종 확정했다. 그 해 1,400만 달러였던 커피 수입액은 이듬해 3,1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커피 자동판매기가 시판되자 1979년까지 전국에 4,000여대가 설치됐고, 하루에 100만 잔 이상을 판매됐다. 이후 1985년까지 15만대가 보급됐다. 커피 자판기는 다방에 영향을 미쳤다.
1993년에는 다방 외에 여타업종에서도 커피를 팔 수 있게 되면서 커피 인구는 급증세를 보였다. 반면에 서민의 대화 장소이자 성인의 오락공간이었던 다방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IMF 외환 위기는 커피 시장과 다방에 타격을 미쳤다. IMF 이전 3만개에 달했던 다방은 이후 9천여 개로 줄어들었다.
1999년에 미국의 대표적 커피업체인 스타벅스의 한국 진출을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외국 프렌차이즈 및 한국 토종형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도시의 다방은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고, 고급 커피 전문점이 그 자리를 개신하게 되었다.
테이크아웃(take out) 문화가 형성되면서 걸으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고, 커피전문점을 사무실로 애용하는 ‘코피스족(coffice族, coffee+office)’,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글루미족(gloomy族)’ 등도 출현했다. 인스턴트 커피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한국의 커피시장 규모는 세계 11위. 인스턴트커피로는 세계 1위 수준이다.
커피 관련 직업
1901년, 루이기 베제라(Luigi Bezzera)에 의해 세계 최초의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이 만들어지면서 이탈리아에서는 바리스타(barista)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커피 문화가 확산되면서 로스터(roaster), 블렌더(blender), 커퍼(cupper), 큐그레이더(Q-grader) 등의 전문직이 생겨났다.
바리스타(barista)
바리스타는 ‘바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에스프레소를 뽑고 이를 베이스로 여러 가지 커피를 만드는 직업이다. 쉽게 말해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이탈리아의 패션, 오페라, 미술, 요리, 어느 것 하나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이탈리아의 바리스타에게는 커피가 화가의 물감과도 같다. 입으로는 손님과 쉴 새 없이 떠들지만 20~30초 만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아내는 그들의 손놀림과 눈빛은 커피를 단순히 마시는 음료의 차원이 아닌 맛, 향기, 색의 삼위를 일체시키는 예술가들 같다.
로스터(roaster)
로스터는 ‘커피를 볶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드는 사람이다. 로스팅은 한 잔의 커피를 완성시키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커피제조 과정의 꽃이라고도 한다. 그런 만큼 로스터의 역할은 중요하다.
블렌더(blender)
블렌더는 여러 종류의 원두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사람이다. 보통 로스터와 블렌더를 겸하기도 한다. 블랜더는 각기 다른 생두의 품질 감별에서부터 맛 평가는 물론이고 블렌딩 이후의 맛과 향에 대한 안목과 종합적인 분석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 종합적인 안목 등 수준 높은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직업이다. 해마다 기후 변화나 작황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생두를 가지고 일관된 맛이 나도록 블렌딩하고 로스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블렌딩 데이터는 각 회사의 노하우이자 극비 사항으로 취급되며, 유명 커피회사의 베타랑 블렌더들의 경우에는 악대 연봉을 받는 고급 기술자들도 존재한다.
커퍼(cupper)
커퍼는 커피 감별사이다. 매년 수확하는 커피를 평가하여 가장 가치 있는 커피를 골라내는 일을 한다. 커피 원산지의 기후와 재배방식을 이해하고, 경사도, 배수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커피 맛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하고 커피의 향과 맛, 본질에 대해 감별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커퍼에 의해 이루지는 일련의 평가 과정을 ‘커핑(cupping)’이라고 한다. 냄새 맡기(Sniffing)에서 시작한다. 생두를 가지고 흥흥거리며 향기를 맡는 ‘스니핑(sniffing)’과 후루룩거리며 들여 마시는 ‘슬러핑(slurping)’이 커핑의 기본이다.
커피에 물이 닿으면 거품 막이 형성된다. 그 막을 스푼으로 깨뜨릴 때마다 각기 다른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혀 전체에 커피를 골고루 뿌려 재료의 다각적인 맛을 보는 과정이 뒤따른다.
커피는 열과 습기에 의해 맛의 왜곡이 많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감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커퍼는 진중하고 정밀하게 맛보고 다시 뱉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커피를 감별한다.
큐그레이더(Q-grader)
큐그레이더는 커피 품질의 등급(grade)을 정하는 일을 한다. 먼저 수입하는 생두의 외관을 보고 1차로 원두를 평가하고, 그 다음 로스팅한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원두를 분쇄한 뒤 냄새를 맡아 품질을 평가한다. 이후 분쇄된 원두 위에 물을 부어 완성된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최종 품질을 평가한다.
커피의 확산
최초로 커피가 발견된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농사를 짓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는 커피의 열매를 채취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는 유기농 커피로 유명하다.
최초로 커피를 경작한 나라는 예멘이었다. 후에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전까지 예멘은 오랫동안 대량 커피 생산국이었고, 예멘의 모카는 수출항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모카 항구의 이름이 커피를 지칭하게 되는 차명현상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커피는 예멘의 북쪽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퍼져나갔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순례를 온 이슬람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급속히 이슬람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1575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 가게인 ‘키브한’이 들어섰다.
커피는 이슬람 제국 오스만 투루크가 유럽과 무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처음 커피를 접한 유럽인들은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배척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가 커피에 세례를 주면서 종교적인 문제는 해결되고 커피는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커피 하우스는 서구 세계에서 17세기 중반부터 오픈하기 시작했다. 1645년 이탈리아에서, 1652년 영국에서, 1672년 프랑스에서, 1683년 오스트리아에서, 1721년 독일에서 열렸다.
지금처럼 커피에 우유를 넣거나 달게 먹는 방식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되었고, 네덜란드에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커피를 대량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으며, 런던에서는 커피숍은 싼 값에 지식을 공유하는 토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1775년~1783년) 중에 커피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오늘날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 열매의 양은 약 8백만 톤에 이른다.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국제 교역물이다. 전 세계에서 커피 재배로 약 2천만 명이 일자리를 얻고 있고, 연간 약 4천억 잔이 소비되고 있다. 목동 칼디가 발견한 야생의 나무 열매 하나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커피의 기원
지구촌 제1음료를 꼽으라면 단연 커피이다. 커피의 역사는 6-7세기경에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다. 커피의 첫 발견은 에티오피아의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남달리 성실한 목동 칼디는 염소를 보살피는 데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염소들의 습관이며 즐겨 먹는 목초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살피므로 칼디의 염소들은 건강하고 성장 속도도 빨랐다.
가뭄이 계속되자 칼디는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고 있었다. 칼디는 그 열매가 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염소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칼디는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다. 잠시 후 칼디는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 에티오피아는 이슬람 세력 아래에 있었던 때였다. 칼디는 이 신기한 사실을 인근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알렸으나, 수도사들은 이 열매가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 던져버린 커피 열매가 불에 타면서 특이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도사들은 불에 타다 남은 열매를 수거하여 뜨겁고 검은 커피 음료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수도사들은 커피가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때부터 수도사들은 밤에 기도할 때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이슬람 수도사가 채소를 익혀먹기 위해 물을 끓이던 중 호기심이 발동해 근처에 있던 커피나무의 열매를 달여 먹어본 것이 커피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하면 자존심 강한 아랍인들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졸음을 이겨내려고 애쓰던 중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검고 쓴맛이 나는 열매를 건네준 것이 커피의 시초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커피의 품종
오늘날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커피의 품종은 크게 아라비카(Arabica) 종과 로부스타(Robusta) 종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 카페인 함량이 낮은 편인 아라비카 종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아라비카 종은 향미가 우수하고 신맛이 좋아 고급스런 커피로 대접받는데, 열대의 고지대에서 재배된다. 아라비카 종의 주요 생산국은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인도, 콰테말라, 에티오피아 등이다.
아라비카보다 카페인 함량이 약 2배 정도 높고 거친 맛이 특징인 로부스타 종은 주로 700m 이하의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로부스타 종의 주요 생산국은 인도네시아, 우간다, 인도, 아이보리 코스트, 베트남 등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은 로부스타가 아라비카의 아버지뻘이 된다. 로부스타 종과 또 다른 종의 커피나무 사이에서 ‘종의 합성’이란 육종 기술을 통해 탄생한 것이 아라비카 종이기 때문이다.
로부스타는 강한 맛을 내기 위해 블렌딩(Blending)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인스턴트커피에 사용된다. 캔커피나 자판기커피, 믹스커피는 대부분 로부스타 종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고급 커피, 더 일상적으로 말하면 테이크아웃 잔에 들고 다니는 그 커피들은 대부분 아라비카 커피이다. 한마디로 로부스타 종보다 아라비카 종이 더 고급 커피이다.
아시아 쪽에서는 로부스타가 맛과 향이 떨어진다고 소외 되고 있지만 유럽 쪽에서는 오히려 로부스타 블렌딩을 선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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