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족의 기원과 뿌리!
2017.02.13
중국이라는 국명은
중국 신해혁명( 1911-1912) 이후 부터 사용한 이름이다
그전에는
지나국으로 불리워졌다.
차이나는 지나의 서양식 발음이다.
지나는 변방이라는 뜻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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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을 영어로 표기하면 China(支那)이다.
‘가지 지(支) + 나라 이름 나(那)’ 즉 ‘곁가지 나라’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불렀고,
China는 '변방의 나라' 라는 뜻이다.
원래 중국(中國)이란 말은 ‘가운데(中) 나라(國)’ 라는 뜻인데,
동양의 과거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어느 지도(地圖)에도
중국해(中國海)란 표기는 없다.
단지 동지나해(東支那海), 남지나해(南支那海)라고 표기되어 사용했었다.
지나(支那)란 뜻은 ‘따로 세운 나라’ 라는 뜻이며,
지점(支店) 혹은 지사(支社)과 같은 말이다.
세종대왕(1397-1450)의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을 보면, ‘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로 우리가 늘 이야기하던 강남(江南)이니라.’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국이란 이름이 생기기 전에는
그곳은 우리에게 늘 곁가지인 강남(江南)이었을 뿐이다.
그러면 중심이 되는 본국은 어디인가?
예전에는 동이족(東夷族)이 본국(本國)이고,
한족(漢族)이 지나(支那)였다
현재 중국(中國)측의 사전(辭典)을 찾아보면,
“중국(中國)이란 나라 이름이 아니라 중원(中原. 황하강 중부)
즉 나라의 한 가운데, 천하(天下)의 중심지(中心地)이며,
중국(中國)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서 나라 이름으로 사용치 못하도록
신해 혁명(1911-1912) 이후에 나라 이름으로 처음 사용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中國)은 신해혁명(辛亥革命) 당시 쑨원(孫文손문)이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으로 나라 이름을 제정한 것을 줄여서 중국(中國)이라 불렀다.
즉 중국(中國)이란 국호(國號)는 신해 혁명(1911-1912) 이후에 최초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中國)이란 호칭은 과거 중국 기록에 여러 번 언급되었다.
맹자(孟子)의 진양북학우중국(陳良北學于中國)
혹은 목천자전(穆天子傳)의 수우중국(樹于中國) 등에 기록된
중국(中國)이라는 글자는 그 나라 내에서 임금이 있는 가운데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중원(中原)은 황하(黃河)강 중부 일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결국, 오늘날 쓰이는 중국(中國)이라고 호칭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에는 왜 중국(中國)을 한자로 ‘지나(支那)’,
영어로 ‘China’ 라고 호칭했을까?
중국 민족은 한족(漢族)이 근간을 이룬다.
한족(漢族)의 기원과 뿌리는 화하족(華夏族)인데,
화하족(華夏族)은 남방(南方) 타이족(傣族태족.다이족)의 방계(傍系)이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 먹고 주로 육식을 하였으며 행동이 문란(紊亂)하고 자유스러웠다.
또한 어린 아이가 칭얼거리는 듯한 발음의 언어를 구사했다.
화하족(華夏族)이라는 명칭은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하(華夏)가 민족(民族)의 명칭으로 처음으로 기재되었다
진(秦. BC 221-206)의 진시황(秦始皇)이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를 마감하고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을 불완전 통일하면서 화하족(華夏族)은
부단히 사위(四圍)의 여러 족속과 혼혈(混血) 융합하는 과정을 밟아 성장 발전을 하였다.
그 이후, 한(漢. BC202-AD220)의 유방(劉邦)이
중국 대륙을 최초로 완전 통일하면서 드디어 한족(漢族)이 형성되었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 말한다면 한(漢)의 유방(劉邦) 이전에는
한족(漢族)이 없었다는 것이 된다.
황하(黃河)강 유역 일대를 터전으로 한족(漢族)은
유사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이(四夷)
즉 동이(東夷).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과 충돌 교섭하는 사이에
그들을 흡수하고 동화시켜 민족적으로 발전 팽창의 과정을 밟았다.
한족(漢族)의 뿌리인 화하족(華夏族)은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북상하여 황하(黃河)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북방 동이족(東夷族)과 문화 양식이 다르다.
예컨대 동이족(東夷族)이 온돌 문화라면 화하족(華夏族)은 침대 문화이다.
중국 사람들 중에 온돌(구들장)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조선족(朝鮮族)일 가능성이 크다.
화하족(華夏族)은 그들이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말과 언어를 알타이어족(Altay language)이 아닌 남방 계통의
티벳어(Tibet language) 계통의 한장어(漢藏語)를 사용한다.
그들은 동일한 황인종들임에도 불구하고
북방 알타이어족들과 다른 유럽 언어 구조와 동일한 남방계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화하족(華夏族)의 활동 무대는 주로 중국 중부 및 남부 지역이었고,
동이족(東夷族)의 활동 무대는 중국 북부 지역이었다.
동이(東夷)는 말을 타고 활을 잘 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인데,
동쪽(東)에서 큰 활(大弓)을 메고 다니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동이족(東夷族)은 황하(黃河)강 이남 유역은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양자강(揚子江) 지역은 쌀을 수경 재배 2모작 하는 지역으로
수전(水戰)에 익숙지 못한 기마병(騎馬兵)들이 쳐들어 왔다가 진흙탕에 빠져 엄청 고생을 겪곤 했다.
그래서, 몽골 원(元)나라 이전의 이민족 정복 왕조들은
중국 북부 지역만을 차지하고 만족했다.
중국 최초의 청동기(靑銅器) 문명이
하(夏. BC 2,205-1,766) 나라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구(靑丘) 배달(倍達)의 치우 천황(蚩尤, BC 2,707년 즉위)이 개척한
청동기(靑銅器) 문화가 중국으로 전해져 하(夏. BC 2,205-1,766)의 청동기 유적을 낳았고,
하(夏) 다음으로 은(殷. BC 1,600-1,046). 주(周. BC 1,046-771)로 전해졌다.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의 문명은 알고 보면,
동방의 배달국(BC 3,897-2,333)과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에서 전파된 것이다.
그래서, 하(夏). 은(殷). 주(周) 시대까지만 해도
중국 지역은 동이족(東夷族)이 나라를 세웠고
동이족(東夷族)이 지배했기 때문에 동이족(東夷族)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에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항상 이상적인 인간 즉 군자(君子)가 되어야 한다고 늘 설파하면서
구이(九夷=동이東夷. 고대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고,
고인(古人. 동이족)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고대 중국의 전통은 동이족(東夷族)의 전통과 대부분 같았다.
하지만, 진(秦. BC 221-206). 한(漢. BC202-AD220)을 거치면서
미개한 화하족(華夏族)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고유 전통이 대부분 무너져 버렸다.
대만(Taiwan) 대학의 서량지(徐亮之) 교수는 ‘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BC 2,000년경 한족(漢族)의 뿌리인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황하(黃河)강 및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동이족(東夷族)이 경영하고 있었다.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라고 하였다.
지금 중국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의 뿌리 조상들은
동이족(東夷族)이 지배한 이후에야
겨우 중국 땅으로 들어온 것이며,
그들이 중국으로 들어올 무렵에는
이미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명이
만주(滿洲) 일대에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을 때이다.
러시아(Rusia)의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Shirokogoroff)는
중국사(中國史)에서 "BC 3,000년경 동이족(東夷族)은
이미 황하(黃河)강의 중류와 하류에 살았으며,
지나(支那)족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 천자 배달(倍達)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인
강회(江淮) 지방에 진출하였다" 고 주장했다.
중국(中國) 란저우(蘭州) 대학 생명 과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한족(漢族)과 소수 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는데,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은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라고
2007년 02월 13일 발표했다.
한족(漢族)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양(西洋)의 개념으로서 민족(民族)이란 언어, 생활 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 집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한족(漢族)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그 심리적 습관이나 문화, 생활 양식 뿐만 아니라
언어 자체도 다양하고 서로 틀리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한족(漢族)이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민족으로서 성장 발전해 왔다면
그 또한 민족이라 할 수가 있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한족(漢族)은 이미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다
http://cafe.daum.net/kgf2029/NnS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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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2867§ion=section78§ion2=&mc=
'중국사'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사'다!
첫댓글 중국에서 훈민정음 원본을 찾으면 되는 데 그렇게 될까요?
이율곡의 행적과 그 친척족보........그리고 중국에서 이씨왕조의 족보가 있을까?
이런게 나와야죠.
고려도 중국에 있었다면 왕씨가 많이 있을 건데 그 왕씨족보를 찾으면 쉬울 겁니다.
중국 각지역에 조선시대 자료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십만양병설도 조작됬다는 것을 본것 같네요.
이순신이 목숨을 걸고 지킨 녹둔도(사슴언덕) 전투가 사할린 섬이라고 하네요.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해란강이 몽골수도 울란바토르 동쪽으로 흐르는강.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구한 말 이전부터 해란강(헤를렌)은 유목족의 중요한 강이기 때문
바이칼호에서 동남쪽으로 만주를 가다보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기 때문
일제 36년간 30만권의 책을 거둬 불태웠다고 하지요
왜곡하고도 남을 시간이지요.
해방후도 이병도는 서울대학 교수.
60년대 문교부 장관까지 지냄
결국 100년간 왜곡-그걸배움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역사 왜곡을 찾아내는 것은 과학수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유물적 증거와 역사적 증거 두가지를
찾아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 라쳐서 어려움이
많다고봅니다
실제 임진왜란에서 싸운 이순신의 바다는
양자강 일대와 산동성 일대
그리고 요녕성 일대,
한반도 남해안 잔적 소탕작전 등으로 방대한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중일기에서 절강에서 강소까지 바다를 지켰다고 나온 것이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산동성 동래현 지방과 양자강 항주 근처도 부산으로 불리운 적이 있다.
상당히 근거있는 추론이라고 공감 합니다.
남북통일 이후에 극동 이해관계국들과의 공동연구 작업이 필요한 사안이라 봅니다.
http://cafe.daum.net/sisa-1/dqMu/25664
대륙조선사의 실체...지명위치
중국역사는 5%도 안된다고 말한 중국 양심적인 락자가 감옥살이 한다고,
숭실대 이을형 전 교수가 밝혔지요-- 내글 한민족이 중국지배 중.일도 인정했다 참조
요즘 출몰해 우전 님을 괴롭히는 자들이 있지요. 자세히 관찰하면 짚히는게 있을겁니다.
네 몇명이 있네요.
유전자 변형 친일파 인간이거나,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 는 범어로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고려와 비슷한 말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구요. 또 경기도와같고요, 이것을 또 기내라고도 부릅니다. 즉, 지나, 고려, 중국, 경기도, 기내등은 모두같은 뜻이죠.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네..그렇군요.
<삼국유사>와 <중국 요사지리지>에서 "요하를 일명 압록이라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서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며,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동과 요서의 기준은 어디인가!
거란족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요(堯)라고 하였으며,
여진족이 나라를 세우고 금(金)이라 하였다.
금나라를 세운 사람이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의 손자(김함보)이라 나라이름을 금.
이후 후금.청나라로 바뀜.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진도출신의 고려인이라고 하네요.
한족(漢族) 역사의 올바른 혈통적 정의는 이렇다.
.진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견융족 역사고 한족은 견융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수,당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선비족 역사고 한족은 선비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요나라는 단군조선의 후예 거란족 역사고 한족은 거란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금나라는 고구려(대진국) 후예 여진족 역사고 한족은 여진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원나라는 흉노와 고구려 후예 몽골족 역사고 한족은 몽골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청나라는 고구려(대진국) 후예 여진족 역사고 한족은 만주족에 의해서 지배받다.
화하족의 나라라면 고작 주나라.송나라.명나라 정도라 할 수 있다
http://cafe.daum.net/sisa-1/f8lD/738
충신 김종서가 지킨 진짜 조선의 4군지역을 찾았다
http://cafe.daum.net/sisa-1/f8lD/737
경주에도 원숭이가..
http://cafe.daum.net/sisa-1/dqMu/25664
대륙조선사의 실체...지명위치
http://cafe.daum.net/sisa-1/f8lD/732
통일준비정부, ‘간도협약 무효’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제기
@우전 간도는(한반도 1.5배 -연해주 포함됨) 1905년까지 실질적으로 조선이 지배했다가,
을사능약으로 외교권 박탈당해서 1909년 조선 허락없이 일본이 청나라한테 넘겨 준것이 간도협약..
그래서 100년만인 2009년 정부가 국제사법 재판소에 간도 되찾기 제소했지요.
우리가 정신나간 나라라서 유엔에 제소했을까요?
중국땅을 청나라가 지배하기전에는 조선땅이 간도보다 더 넓어겠지요..
조선왕조실록도 일본이 36년간 왜곡하고 해방후 지금까지도 고쳤거나 왜곡한게 많다고 봅니다.
원본을 확인하고 필사본을 확인해야 되겠지요.
이병도 제자와 기타 학자들은 필사본을 가지고 배우고 가르쳤겠지요.
세종때 설치한 4군의 실제위치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