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교육 발전사]에 소개 될 [함안문인협회 발전사]의 글 입니다. 함안문인협회 회원이라며
상식으로 아셔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양해를 구해 [알림글][소개] 두 난에 올립니다.
[알림글] 난에 올린 글은 한 달 후에 삭제하겠습니다.
함안문인협회 발전사
이 상 규
○ 태동
현재의 함안문인협회와 함안문학은 아무래도 그 뿌리를 ‘살여울동인’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함안농업고등학교에서 교지(1964)가 만들어지고 있던 그 보다 조금 앞서 군내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문학에 대한 교감이 잦아지고 있었다. 이영호, 윤태환, 김상환, 박원돈 등이 주축이 된 동호인들은 해방과 6.25 등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메마르고 거칠어진 어린 가슴들에 포근하고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을 불씨를 모으자는 뜻을 가지고 회원을 모아 동인회를 결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살여울동인회’다.
당초에는 ‘여울’이라고 회명을 정하였으나 당시 현대문학을 통하여 등단, 활동하고 있던 마산의 이광석 시인의 조언으로 ‘살여울’이라 명명하게 되었고 1963.1.21일 창간호를 내게 되었다. 회원으로는 군내에 재직하는 교사들로 고문에 황창규(교육과장), 이기수(교육회장), 회원으로 서일조(함안교), 김상환(문암교), 이규일(사촌교), 조동래(함안교), 윤확숙(윤태환:외암교), 박원돈(군북교), 이영호(함안교), 선영자(군북교) 등 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살여울 제1집은 동인지라고 볼 수 없으나 아무튼 어린이들에게 문학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회원 상호간의 글쓰기다짐의 시작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체 158면으로 된 등사본으로써 깨알 같은 글씨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데서 회원들의 정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편집 구성을 보면 관내 초등학교 학생의 운문과 산문이 89편, 회원작품이 32편이 실렸다. 당시 살여울 동인들의 각오와 감회는 서문 ‘책머리에’ 윤태환의 ‘살여울에 부치는 노래’에 담겨 있다.
‘그 첫째가 창조하는 교사라는 천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를 부단히 갈고 닦으면서 상호간의 교분으로 마음의 양식을 높이자는 것이고, 그 둘째가 우리와 함께 호흡하여 우리들 행동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동들에 잠재된 꿈과 아름다움을 가꿔 주는데 힘쓰자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살여울’은 창간에 그치고 말았으나, 이때 참여했던 회원들의 열정과 재능은 자기 계발의 계기가 되어 뒤에 이영호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작가로, 박원돈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극으로 각기 당선되어 문학의 길을 걷게 되었고 김상환, 윤태환은 훗날 함안문인협회의 산파역이 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상규는 함안중학교 교지 ‘삼봉(1958), 함안농업고등학교 교지 ’갈밭(1963)‘ 창간에 참여하여 나름대로 함안문학의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 창립
이후 조현술이 외암초등학교 별천분교에 재직하던 1985년, 경향신문에 ‘시인아저씨가 들려준 노래’가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등단하고 창작집 ‘까치골에 뜨는 달’을 내고 뒤이어 1989년 함안문인협회가 결성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함안문학은 긴 동면기에 접어들었다.
함안중학교의 교지 ‘삼봉(1958), 동인지 ‘살여울(1963)’, 함안농업고등학교 교지 ‘갈밭(1964)’ 이후 이렇다할 문학운동이 없었으나, 조현술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1985)되고 가야초등학교 출신 홍진기 시인이 함안종합고등학교로 전근(1988)되어 오자 함안에서는 실로 20년 만에 다시 문학의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교직과 생업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항상 문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나름대로 자기 내면의 세계를 가꾸고 있던 ‘살여울’의 윤태환, 김상환, ‘갈밭’의 이상규, ‘함안공론’의 안상규 등은 홍진기 시인을 주축으로 관내 국어교사들과 함께 충무동 소재 곰다방에 자주 모이기 시작한 것이 1988년이었다.
이후 만남이 거듭될수록 뜻은 더욱 굳어져 1989년 5월 10일 “함안문학회”가 조직이 되고 회장에 윤태환, 부회장에 이복재, 총무에 조현술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총산하의 정식 문인협회지부를 목표로 한 과도기적 모임임을 전제로 하였으며 빠른 시일 내 중앙의 인준을 받자는 것이 전 회원의 바램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드디어 1990년 6월 23일 말산리 소재 함성식당에서 ‘함안문인협회’ 창립대회를 갖기에 이르렀다. 임원으로는 기왕에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홍진기(시)를 회장으로, 김연동(시조) 부회장, 조현술(아동문학)을 사무국장으로 각각 선임하였으며 이날은 창원에서 황선하 시인도 참석하여 격려를 하였다. 창립에 참여한 회원은 안상규, 이규석, 구자운, 홍진기, 김상환, 윤태환, 황인대, 강형중, 이상규, 이영호, 홍성화, 조현술, 김병수, 강재오, 이명호, 이달균, 조용오, 장영수, 이영자, 이복재, 박성신, 이향희, 정경영 등 23명 이었다.
이후 홍진기 회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1990년 7월 28일 한국문인협회(회장 조병화) 함안지부로 정식 인준(문협 제 90 - 088호)을 받게 되었다.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었으며 이로써 우리 함안에도 유일하게 중앙의 승인을 받은 예술단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한껏 고무된 회원들은 10월 21일 함안면 소재 조연현의 생가를 방문, 고인의 문학 맥을 잇자고 다짐하였으며, 이러한 각오가 ‘함안문학’ 창간호로 결실이 맺어진 것은 1990년 12월 10일이었다. 창간호에서는 소박하나마 석재 조연현의 특집을 다루었고 경남 문인들의 축하의 글, 회원들의 작품, 아라백일장 학생작품들로 구성하고 홍진기 회장의 머리말과 이광석 시인의 축시 격려로 각오를 다졌다.
○ 현재
해를 거듭해 오는 동안 ‘함안문학’은 내실을 다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회지를 발간하여 왔고 2010년 현재 제21집을 준비 중에 있으며, 올해는 함안출신 문인들과 함안을 대상으로 한 문인들의 작품으로 사화집 ‘여항산그늘 낙동강에 드리우고(가칭)’도 발간할 예정으로 작품을 모으고 있다.
그 동안 회원들도 치열하게 정진하여, 이상규(시), 이영자(시), 이명호(시), 권충욱(시), 정미영(시), 안춘덕(시), 신순희(시), 정혜자(시), 조명래(시), 조승래(시), 강홍중(시), 권선자(시), 강재오(시조), 윤태환(시조), 장영수(시조), 이남순(시조), 구자운(수필), 김상환(수필), 이강섭(시. 수필), 강동규(수필), 이병유(수필), 조정모(수필), 조평래(소설), 조정래(소설) 등이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외 구자순(시), 김경연(시), 김태영(시), 노승문(소설), 박향순(시), 송기선(시), 안연희(수필), 오경자(시), 이명성(수필), 이문자(시), 조선옥(시), 주경효(수필), 함태임(시) 등이 등단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고 올해는 김일영(시), 이상익(시), 김재순(동시) 등 새 식구를 영입하여 현재 40명의 회원이 활동 중에 있으며 창작에 매진하는 한편, 백일장, 시화전, 시낭송대회, 문예창작반 운영, 문학의 밤, 문학기행, 문학강연 등의 행사도 꾸준히 개최하여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 동안 함안문인협회는 홍진기(1,2,3대) 창립회장을 필두로 김상환(4대), 이상규(5,6대), 윤태환(7대), 강재오(8대), 권충욱(9대), 이명호(10대), 이강섭(11대)이 역대 회장을 맡아 협회를 탄탄하게 가꾸어 왔으며, 지금은 장영수 창립회원이 회장(12대)을 맡아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정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2009년에는 경상남도로부터 우수예술단체로 표창을 받는 등 함안예총과 더불어 함안예술의 견인차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격동기에 한국 현대문학의 좌표를 정립하여 굳건하게 지켜 온 석재 조연현 선생(함안면 출신)의 문학 업적을 조명하는 일이다. 그는 강희근 시인(경상대학교 교수)의 표현대로 좌익문학에 대항하여 ‘한국문학의 문패’의 역할을 자임한 그 공적에 대하여는 어떠한 찬사로도 미치지 못할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이와 아울러 고 이석 시인(본명 이순섭: 군북면 출신)을 비롯하여 모더니즘 시의 독보적 위치를 구축한 문덕수 시인(예술원 회원: 법수면 출신) 등의 업적에 대해서도 차제에 헤적이고 엮어 펼치는 일도 고향 텃밭을 지키고 있는 함안문인협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시인, 咸安郡誌 집필위원)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복사하여 저장해 두었습니다. 함안교육사에 반영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