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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시인
1939년을 전후하여 <문장>지에 추천되어 등단하여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작활동을 한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3인에게 붙여진 시파의 한 명칭이다.
1946년 이들이 3인 공동 시집 <청록집>을 간행하면서 <청록파>라 불리어졌는데, 이 3인의 초기 시풍은 자연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한국 고유의 서정과 율격을 지닌 공통점이 있다.
특히 우리 시 사상 처음으로 인생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자연에의 완전한 귀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자연파>라고도 한다.
<청록집>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이 시집은 A5판으로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책명을 따왔다고 하며, 박목월의 <나그네>를 비롯하여 모두 15편이 수록되었고, 조지훈의 시는 <봉황 수>등 12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박두진의 시는 <향 현> 을 합하여 12편이 수록되어 총 39편이 수록되었다.
세 시인은 각기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나 율조를 달리하고 있으나, 자연의 본성을 통하여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는 시 창조의 태도는 공통되고 있다. 서정주는 이러한 공통점에 근거하여 "자연파"라고 호칭 한 바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광복직전의 일제치하에서 쓰여진 것으로서 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하려고 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민요풍의 시형식도 그러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조지훈의 전아한 고전적 취미도 한국인의 역사적 문화적 인식을 일깨우는 뜻이 있으며, 민족의 문화 적 동질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일제 치하의 민족의 굴욕을 극복하려 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저항적 요소가 보이고 있음도 그러한 정신적 자세와 연결되고 있다.
박두진에 있어서 자연인식은 원시적 건강성과 함께 강렬한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기독교적 신앙에서 빚어진 의연하고 당당한 의로움의 생활 신념과 관계되고 있다. <향현>에서 보이는 "침묵의 산에서 불길이 치솟는 심상"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일제 시대의 민족적 수치를 극복하려는 기세를 읊은 것이라고 평가된다.
요약하면,
조지훈(1920. 12. 3 ~ 1968. 5. 17) : 선미(禪美) 깃들인 고아한 풍류
박두진(1916. 03.10 ~ 1998.09.16) : 그리스도교 정신을 바탕으로 초기에는 자연을 읊다가 차츰 사회현실에 대한 의지를 노래
박목월1916. 1. 6 ~ 1978. 3. 24) : 향토색 짙은 순수한 자연의 서경
청록집은 일제 말기의 단말마적인 국어 말살정책의 상황하에서 우리말로써 편찬된 것으로서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을 드높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각 시인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봅시다.
[조지훈]
1. 시인, 본명은 동탁(東卓). 경북 영양 출생. 혜화전문 졸업. 1939년 <문장>에 '고풍 의상'으로 등단한 청록파의 일원이다. 조지훈은 청록파의 공통적 주제였던 '자연'에 대한 추구와 함께, 관조적이며 고전적인 품격의 시를 독자적으로 형성한 시인이다. 광복 후의 시작(詩作) 활동에서는 현실 감각을 갖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회고적 정신에 바탕한 민족적 정신, 전통에의 향수, 불교적 선미와 같은 특징을 유지하였다. 시풍은 고전적, 민족적 경향을 보인다.
<청록집>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작품들은 우리말을 우아하게 잘 갈고 다듬어 자연을 노래하거나 민족의 정서와 전통에의 향수, 불교적 선감(禪感) 등을 잘 다듬어진 서정으로 표현하였다. 불교 세계에 대한 관심은 종교 의식을 일깨워주어서 이렇나 요소들이 작품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선미(禪美) 깃들인 고아(高雅)한 풍류'를 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6·25 전쟁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의 시는 동양적, 고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참여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전쟁 종군시를 썼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 정신과 역사 의식으로 참여시, 저항시를 썼다. 이러한 사회시들은 대부분 시집 '역사 앞에서'에 수록되어 있는데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초기 시에 비해 떨어진다.
주요 시집으로는 '청록집',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 등이 있다.
2. 본명 동탁(東卓). 경북 영양(英陽) 출생.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惠化專門)을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19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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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동탁(東卓).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혜화전문 문과를 졸업했다. 오대산 불교전문 강원 강사를 거쳐 해방 후인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1947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8년 5월 17일 사망하였다. 조지훈은 1939년 <<문장>>에 <고풍의상>과 <봉황수>를 정지용의 추천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단했다. <고풍의상>은 그 표제가 말하고 있듯이 한국의 고전적 생활문화에 담긴 여성적 품위를 노래하고 있다. 작품 속에 표현된 한국의 전아한 고전미는 독자로 하여금 평화적 삶의 내적 질감을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또 <봉황수>에서는 궁전 건축미의 몇 가지 요체를 예각적으로 묘사하면서 조선 시대에 주권을 행사한 주체자들과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을 대비하여 피지배자의 시대적 고통과 비장감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의식과 민족의식을 서정적 대상을 삼는 초기의 시적 성과는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펴낸 <<청록집>>에 집약되어 있다. 해방 직후에 조지훈은 순수한 시정신을 지키는 사람만이 시인으로 설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개성의 자유를 옹호하고 인간성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적 열정은 시집 <<역사 앞에서>>에서 지사적인 목소리로 나타난다. 당대 정치의 부패상과 사회적 부조리, 민족 분열과 동족 상잔이라는 타락한 현실을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특히 <다부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바탕 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적 국면을 절실하게 묘사한 전쟁시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고전문학의 연구와 한국문화 일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문화사서설>>을 내기도 했다. 시집 <<청록집>>, <<풀잎 단장>>, <<조지훈 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 등과 수필집 <<창에 기대어>>, <<시와 인생>>, <<지조론>>, <<돌의 미학>> 등을 간행하였다
< 승무> 해석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문장] 11호(1939년 12월호) -
【해설】
조지훈이 19세 때, 착상 11개월, 집필 7개월만에 완성. 절에서 재(명복을 비는 불공)를 올릴 때 처음 승무를 보고 그 감격을 작품화하기 위해 미술전람회의 ‘승무도’를 보고 넋을 잃는 등 갖은 고생 끝에 완성하였다.
승무는 승려의 옷차림을 하고 추는 춤이다. 시인은 이 춤에서 번뇌를 이겨내고자 하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히 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오동잎이 달빛을 받으며 떨어져 내리는 밤. 아무도 없는 빈 무대에 황촉 불을 켜 놓고 춤을 춘다.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떨쳐 버리려는 몸짓이며, 가없는 영혼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발돋움일 터이다.
'복사꽃 고운 뺨', '까만 눈동자' 같은 관능적인 아름다움이나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라는 표현을 보면,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하여 세속적인 영화(榮華)를 멀리하고 승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연유를 밝히지는 않는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세속은 어차피 번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춤 동작은 그 번뇌를 떨쳐 버리려는 몸짓에 걸맞게 완급을 드러내 준다. 멎는 듯 움직이고 움직이는 듯 멎는 그 동작을 통해 우리는 고뇌를 이겨내려는 한 여승의 자기 정화의 몸부림을 보는 듯하다.
발은 이 번뇌의 땅을 디디고 있지만, 눈은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향해 있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표현이 드러내 주고 있는 바, 지상적ㆍ세속적인 번뇌를 통해 여승은 종교적ㆍ초월적으로 승화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관】
▶종류 : 자유시, 서정시, 낭만시
▶성격 : 불교적, 고전적, 선적(禪的), 묘사적, 심미적, 전통적, 주정적(主情的)
▶어조 : 대상에 대한 예찬적 어조, 고전적인 우아한 어조
▶운율 : 내재율, 4음보격
▶핵심어 : ‘번뇌는 별빛이라’
▶표현 : 은유, 영탄, 대구법
▶배경
- 시간적 : 가을 중추 무렵(오동잎, 귀또리, 달빛), 밤중(삼경, 지새우는)
- 공간적 : 자연 환경, 옥외(오동, 별, 달) → 절의 뜰(용주사?)
▶제재 : 승무
▶주제 :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세속 번뇌의 초극)
【구성】 - 수미상관(首尾相關)
▶도입(제1∼제3연) : 정적 분위기(무대 묘사) - 춤추려는 찰나의 여승 모습
▶전개(제4연∼제8연) :
- 제4연 : 무대와 배경(시간적ㆍ공간적 배경)
- 제5연∼제8연 : 춤의 동작 - 동적 분위기
▶결미(제9연) : 춤의 종료 - 밤의 정적(배경)
【특징】
1. 불교적, 선적 분위기 - 정서의 바탕은 초속(超俗)의 경지
2. 전통적 정서, 율동미, 운율미를 교차시켜 고전적 아름다움을 그림
3. 예스러운 시어를 구사하여 고전적 전통미를 살림
4. 비유, 상징에 의한 심상으로 심미적 정감을 드러냄. - 암시적 언어
5. 닦여진 시어(언어의 조탁-하이얀, 감추오고, 살포시), 감각의 치밀성
6. 각 연의 종결에서 감탄형어미(레라, 워라)나 조사(이여, 야, 이라) 사용으로 음악적 효과를 냄.
7. 유음 'ㄹ' 사용 : 부드러운 느낌
8.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술, 묘사 중심의 서술, 유장한 가락
【이 시에서의 ‘시적 허용’】
이 시에 보이는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 감추오고, 모두오고, 감기우고, 이밤사, 귀또리) 등은 사투리, 신조어, 비문법적 표현이다. 시에서는 어감, 운율감 등을 살리기 위해 이러한 말들이 허용된다. 이 시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고전적 언어미를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어휘ㆍ시구 풀이】
<사(紗)> : 생견(生絹)으로 발이 성기게 짠 얇고 가벼운 옷감의 한 가지.
< 나빌레라> : 정녕 나비라고 해야 옳을 것이로다. "-ㄹ레라 :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음을 영탄조로 다짐하는 어미.
< 고깔> : 중들의 머리에 쓰는 건(巾)의 한 가지.
< 박사(薄紗)> : 얇은 사(紗).
< 대(臺)> : 물건을 바치거나 올려놓는 바탕이 되는 것의 총칭. 여기선 '무대'의 뜻.
< 외씨보선> : 외씨 모양으로 조붓하고 갸름하게 지은 버선.'보선'은 '버선'의 사투리.
< 아롱질 듯> : 아롱아롱한 무늬가 생길 듯.
< 세사> : 세상일.
< 삼경> : 밤11시부터 다음 날 새 벽1시까지.
< 고마와서 서러워라> : 서러움을 느낄 정도로 아름답구나. 굳세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리고 가냘픈 아름다움이 주는 느낌. '승무'를 추는 여인의 애련미(哀憐美)를 표현한 것이다.
<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시간의 경과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함초롬이 밤이슬을 머금은 오동잎 잎마다 기우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데'의 뜻이다.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문법적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표현이지만, 장삼(長衫)의 긴 소매로 크게 호선(弧線)을 그리면서 춤추는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긴 소매로 허공을 휘저어서 하늘이 더 넓어 보인다는 뜻이다.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한껏 고조된 춤의 동작을 표현한 것, 돌아설 듯한 동작을 취하다가 갑자기 가볍게 날아가는 듯한 동작을 취하느라 다리를 사뿐히 들어올려 치마 아래 감추어졌던 버선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세속적인 삶의 번거로움에 시달리지만 번뇌도 승화시키면 '별빛(해탈의 경지)'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내용 풀이】
▶제1연 : 이 시는 대단히 음악적이고 그 조탁된 언어의 영롱성과 미묘하게 다루어진 율조가 구슬 같다. 춤의 가락에 어울리는 유장(悠長)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운율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십분 살린 작품이다. 이제 막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하는 이 첫 연에서 ‘나빌레라’는 가장 빛나는 시어이다. 즉 ① 참신한 은유(고깔〓나비)이고, ② 유성음인 ‘ㄹ’이 세 번이나 반복됨으로써 부드럽고 경쾌한 어감을 준다. 다음 연의 ‘파르라니’도 이에 해당된다.
▶제2연 : 1연에서는 ‘고깔’을, 2연에서는 춤을 추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파르라니 깎은 머리’로 표현하고 있다.
▶제3연 : 이 시는 지은이가 19세 때 착상하여 11개월, 집필을 시작한 지 7개월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수원 용주사에서 재(齋)를 올릴 때, 처음 승무를 보고 그때의 감격을 작품화하기 위해 미술전람회에 가서 승무도를 넋없이 바라보기도 하였고, 국악원에 가서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듣고 비로소 이 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하였다.(<시의 원리>) 이 해설에 의하면 1∼3연까지는 ‘무대 묘사를 뒤로 마루고 직입적(直入的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리려는 데 해당한다. 즉 ‘고깔, 머리, 볼’로 춤을 마악 시작하려는 찰나의 여승 모습이 3연까지 이어진 것이다.
▶제4연 :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는 ‘잎사귀마다 달빛이 비친다’의 뜻이 아니라, 잎사귀가 떨어질 때마다 달을 가리우곤 하기 때문에 ‘달이 진다’로 표현한 것이다. 4연은 ‘무대를 약간 보이고’의 부분인데, 깊어가는 가을밤과 넓은 무대의 시간적ㆍ공간적 배경이다.
▶제5연 : 비교적 빠른 박자에 맞추어 춤추는 장면이다. ‘돌아설 듯 날아가며’는 날렵하고도 경쾌한 춤의 동작이다, 1∼4연까지의 정적(靜的)인 배경이 동적(動的)으로 전환되었다.
▶제6연 : 춤의 동작이면서도 거의 정지한 순간의 장면이다. ‘까만 눈동자’는 젊음을 말하는 관능적 표현이며, ‘별빛’은 종교적인 영원한 소망을 뜻하고 있다. 즉 염원의 경지로 향하는 정신의 집중이 ‘별빛’에 모아진 것이다. 단순한 동작의 춤이 아니라 종교적 염원과 결합됨으로써 신비롭게 승화되고 있다.
▶제7연 : 복숭아꽃 빛의 고운 뺨에 아롱아롱 떨어질 듯한 두 눈에 맺힌 눈물 방울이야말로 속세의 정한(情恨)에 시달리면서도 번뇌를 이겨낸 정화(淨化)의 별빛이다.
▶제8연 : 팔이 휘어지면서 감기우고 다시 겹쳤다가 뻗는 손이, 마치 깊은 마음 속의 소원을 비는 거룩한 합장인 것 같고.
▶제9연 : 이 밤이야말로 귀뚜라미도 함께 울어 새우는 밤인데, 얇은 옷감의 하이얀 고깔은 곱게 접은 모습이 마치 나비와 같구나.
7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젊은 여인이 속세의 인생고를 초월, 높은 세계를 지향하는 영혼의 승화된 아름다움을 보인다. 8연은 느린 박자에 맞추어 춤추는 대목으로 ‘유장한 취타에 따른 의상의 선(線)’을 나타낸 부분이며, 9연은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한 달빛과 동터 오는 빛으로서 끝 막는 부분이다.
이 시는 ‘자연과 인공의 극치’(정지용의 추천사)로서 감각적이고 섬세한 관찰미는 국어가 도달한 가장 높은 경지의 시이다.
【감상】
작품의 서두는 승무의 우아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승무를 추는 이는 젊은 사람이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곱다는 것을 보건대 그는 여자인 듯하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인이 승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가 어떤 이유로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번뇌를 이기기 위하여 가다듬는 손길과 춤의 움직임이다.
춤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밤이다. 뜨락에 쓸쓸히 널린 오동잎 잎새마다 달빛이 비추는데 승무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이겨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추어지는 것이다. 그 춤의 절정이 제6, 7연에 나타난다. 검은 눈동자를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을 바라보는 간절한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흰 고깔 아래 보이는 고운 뺨은 어떤 우수를 머금은 듯하고, 맑은 두 눈에는 어쩌면 고뇌의 눈물이 아롱질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세속의 세계를 떠나 모든 것에의 집착을 버리고자 한 터이기에 번뇌는 별빛처럼 아득히 멀리서 반짝인다. 그 다음 연에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란 바로 이 별빛 같은 번뇌마저 떨쳐버리려는 간절한 심경의 표현이다. 작품의 서두와 마지막에 되풀이되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구절은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음미할 때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 김흥규: <한국의 현대시>-
이 시인의 특징은 즐겨 고전적인 제재를 선택하여 그가 구사하는 섬세한 언어 감각과 형식의 균형과 조화의 미로써 한국적인 정조를 고조하는 데 있다. 이 <승무>도 이러한 견지에서 감상해야 할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시의 리듬을 효과적으로 내기 위하여 그가 구사한 섬세한 언어를 몇 곳 지적하면, ‘나빌레라, 파르라니, 감추오고, 정작으로, 외씨버선, 살포시, 모두오고, 이 밤사’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섬세한 말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종교적 의미의 춤을 나타내는 형식미에 있어 균형과 조화의 완벽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대소 행과 행이 길어 표현이 느리다는 평도 듣지만, 그 느림이 오히려 승무의 의상이나 성격에는 더 적합할는지도 모른다. (김현승)
<여승의 탈속의 몸짓...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우리가 애송하고 있는 조지훈의 <승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곧바로 그 시 전체를 구성하고있는 세 가지 정보의 회로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얇은 사’ ‘고깔’ ‘박사’와 같은 의상 정보에 관한 것이고, 다음은 ‘나빌레라’의 비유어에서 보듯이 나비와 같은 자연물에 관한 정보,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그 신체 정보이다.
셰익스피어의 ‘기저귀’와 ‘수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이 시에서도 의상은 인간의 ‘미와 진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 코드로 작용한다. 반복형으로 강조된 ‘얇은 사’와 ‘박사’는 우리가 보통 때 입고 다니는 ‘두터운 무명’ 옷감의 재질과 대립하는 것이고, ‘하이얀’ 빛깔은 삶의 쾌락을 나타내는 색동옷과 대칭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절제와 정화를 나타낸다. 그래서 그것들은 ‘남성에 대한 여성’, ‘속에 대한 성’, ‘축제에 대한 제례’의 탈중력 상태의 문화 코드를 형성한다.
그리고 1연과 2연에 나오는 고깔은 은유와 환유의 각기 다른 비유의 양상을 통해서 ‘자연코드’와 ‘신체코드’에 연결된다. 즉 1연의 ‘나빌레라’는 고깔을 나비에 비유한 것으로, 얇고 하얀 천의 재질이 나비의 나래와 동일시되고 그 형태는 나비의 모양과 결합된 은유이다. 의미만이 아니다. 부드러운 순음과 유음이 겹친 ‘나빌레라’의 기호 표현(어감)은 무엇인가. 가볍게 나부끼고 있는 것과 관련된 의태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1연의 그 비유의 구조가 ‘고깔은 나비이다’라는 유사성에 의해 이루어진 ‘은유’인데 비해서, 2연의 그것은 ‘고깔을 머리에 쓰다’의 근접성으로 구성된 환유이다. 말하자면 왕관이 그것을 쓴 왕을 상징하듯이 ‘고깔을 쓴 삭발한 머리’는 바로 여승, 승무를 추는 무희를 나타내는 환유적 상징물이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최상부를 가리키는 머리는 당연히 그 최하위에 있는 발과 대립되는 신체어로서 땅에 대한 하늘, 육체에 대한 정신, 쾌락에 대한 금욕, 감정(발산)에 대한 이성(억제)을 나타내는 문화적 코드이다. 더구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승려라는 신분만이 아니라 금욕적인 탈속의 의지를 강화해 준다.
단순하게 말해서 고깔의 의상코드가 나비의 자연코드와 합쳐진 것이 춤(무)이며, 삭발한 머리의 신체코드와 결합한 것이 불교(승)이다. 그러니까 「의상=자연=신체」의 세 코드가 은유와 환유의 시적 장치를 통해서 하나로 수렴되고 승화된 것이 바로 그 <승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조지훈의 <승무>를 읽는다는 것은 그 첫머리에 제시된 고깔(의상)-나비(자연)-머리(신체)의 관계가 어떻게 선택, 결합되어 진전되어 가는가를 추적하고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신체코드로 볼 때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3연에 이르면 ‘두 볼에 흐르는 빛’(얼굴)이 되고, 5∼6연에 오면 손과 발의 춤사위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신체코드는 ‘복사꽃 뺨’과 ‘까만 눈동자’로 올라가 본래의 머리 부분으로 돌아간다.
의상 코드 역시 1연의 고깔이 5연에 오면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로 장삼과 외씨버선으로 바뀐다. 그러나 하늘로 비유된 그 긴 장삼과 사뿐히 위로 올린 외씨버선의 모양은 다시 하늘로 상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론 의상은 신체의 연장이고 또 춤사위와 관련된 것으로 ‘손-소매-장삼’에서 ‘발-버선-외씨버선’으로 내려오는 신체 기술과 동일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볼에 흐르는 빛’처럼 의상의 환유체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경우에서도 빈 대에서 소리없이 녹아 내리는 황촉불로 그 하강의 이미지를 지속시켜 준다. 촛불은 신체를 에워싸고 있는 ‘빛의 의상’이 된 것이다.
자연코드는 신체와 의상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인접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나비-지는 오동잎과 달빛-별빛’의 순으로 역시 ‘상승-하강-상승’의 율동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빛’은 두 불에 흐르는 빛과 빈 대위에서 소리 없이 녹아 내리는 황촉의 불빛과 삼중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침하해 간다. 신체의 빛, 문화의 빛, 자연의 빛… 이 세 빛은 서로 다른 코드에 속해 있지만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운’ 소멸의 빛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그 빛들은 모두가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향해 합장을 한다.
손이 소매가 되고 소매가 장삼으로, 장삼이 하늘로 바뀌어 가듯이 두 볼에 흐르는 빛은 촛불이 되고 그 촛불은 다시 떨어지는 오동잎 이파리마다 지는 달빛이 된다. 그러나 외씨버선이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오르듯이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던 두 검은 눈동자는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으로 향한다. 그 별빛은 촛불처럼 녹아 흐르지도 않고 달처럼 기울다가 소멸되지도 않는다.
승무는 이렇게 세사에 시달리는 번뇌와 복사꽃 육체의 들뜬 열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날아오르는 몸짓인 것이다. 그것은 밤과 침묵 속에서 배어 나오는 빛이다.
원래 승무라고 하면 고깔, 장삼과 함께 의례 법고가 나오게 마련인데 웬일인지 조지훈의 시에는 법고를 비롯해 모든 소리가 일절 배제되어 있다. 무성영화를 보듯이 시 전체가 말없이 녹는 황촉불같이 빛과 몸짓에 의해 연출된다.
이 침묵을 깨는 것이 마지막 귀또리의 울음소리이다. 묘사가 설명으로, 즉 발신코드가 수신코드로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승무의 아름다움이나 신비함, 그리고 그 성스러움이 결정체를 이룬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지상으로 가져오고, 그 심연 속의 빛을 소리로 옮기면 승무의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가 될 것이다. 의상, 자연, 신체의 세 코드는 다같이 춤의 발신코드에 속해 있는 것이지만, 귀또리는 그 어느 코드에도 속하지 않는다. 의미론적으로는 나비와 달빛과 같은 자연코드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기능을 보면 춤과는 직접 관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귀또리는 춤이나 춤을 추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감상하며 묘사하고 있는 시인과 관계된다. 발신코드에서 고깔과 나비, 검은 눈동자와 별빛이 하나인 것처럼 수신코드에서는 귀또리-시인이 동격이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 멀고 너무 조용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발 밑에서 우는 가냘픈 귀또리 소리에 의해서만 어둠에 둘러싸인 그 빛의 감응을 겨우 짐작할 수가 있다. 춤을 굳이 언어로 바꿔놓은 이 시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승무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의 고전미나 불교의 열반을 나타내는 <승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의미는 그 침묵하는 것들을 귀뚜라미 같은 가냘픈 소리로 옮기는데 있다.
‘누가 춤을 보면서 춤과 춤추는 사람을 떼어낼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말대로 <승무>의 세계는 번역 불가능한 것이다. 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작업, 그것이 시인 조지훈이 평생을 두고 썼던 그 시의 의미였을는지도 모른다.
- 이어녕: <다시 읽은 한국시>(조선 일보.1996. 9. 9) -
<승무>의 문제점으로는 우선 무용으로서의 전통예술을 언어로 포착하려 시도한 그 무모성을 들 수 있다. 한국적 불교예술인 이 승무는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몸짓에 속한다. 언어가 근본적으로 이차원의 시간 (計器)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언어가 힘으로 설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것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뿐이라면, 언어로 하나의 몸짓을 포착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따라서 무의미의 나열 혹은 여백의 기술(記述) 이상일 수가 처음부터 없다.
둘째, 2행으로 시종하는 조지훈 시 전체의 문제인 시 구조에 대한 무신경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무기교주의는 단순한 직유에서 그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이 무기교주의를 커버하고 있는 것이 소위 언어의 리듬과 이에 연하는 시어의 고정성이다. ‘소이다, 노니,’ 따위의 시어의 편재(偏在)는 스스로에 도취하고, 정신의 압살(壓殺) 작용을 할 따름이다. 말하자면, 언어로 대지를 가는 투박성이 아니라 손장난에 해당되는 것이다. 무기교주의의 표방이 혹 대인풍(大人風)의, 혹은 선비 기질의 드러냄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시 정신을 한정하며, 더구나 현시적(現詩的)인 것일 수 없다. 여기에도 그 파탄은 선험적으로 놓여있다.
셋째, 이 시의 요체가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구절의 번뇌와 별빛의 동질성은 불교미학에의 미달이거나 그것에의 초월에 해당되고 만다. 결국 불교미학을 빗겨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1939년에 쓰여진 추천작 <승무>의 이 조숙성은 이미 시어의 선험성(先驗性)과 무기교주의의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정지 상태에 머물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부터 ‘흔들리는 별빛’일 수 없었던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문자의 세계보다 비교를 절(絶)할 정도로 위대한 것일 수는 있이도 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이를 알아차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그가 젊음의 매우 주요한 시기에 비속비선(卑俗非善)의 접점에서 방황했음도 또한 사실일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조숙성과 조급성이 마주치게 되며, 전자에 의한 시어의 선험성이 지닌 폐쇄성과 후자에 의한 사회성이 시형의 갈등 없이 타협하기에 이른 듯하다. 이 타협 상태는 그의 시작(詩作) 전체를 최소한 시이게 한 것이면서 동시에 어느 한쪽도 철저화시키지 못한 이유일 수 있다. (김윤식: <한국 현대문학 명작사전>)
【‘승무’의 시작(詩作) 과정】- 조지훈 : <나의 시 나의 시론>
내가 참 승무를 보기는 열아홉 살 적 가을이다. 그 가을 어느 날, 수원 용주사(龍珠寺)에는 큰 재(齋)가 들어 승무 밖에 몇 가지 불교 전래의 고전음악이 베풀어지리라는 소식을 거리에서 듣고 난 나는 그 자리에서 곧 수원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고 말았다. 재가 파한 다음에도 밤 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없이 서 있는 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정을 느낄 땐 뜻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에 부딪침을 깨닫는다. 이리하여 그 밤의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고 지내 왔었다. 춤을 묘사한 우리 시가로 본보기가 될 만한 것이 아직 없을 때이라 나에게는 오직 우울밖에 가중되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한마디의 언어, 한 줄기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로움에 싸여 있던 내가 승무를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리게 된 것은 내 스무 살 되던 해의 첫 여름의 일이다. 미술 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金殷鎬)의 <승무도>(僧舞圖) 앞에 두 시간을 서 있은 보람으로 나는 비로소 무려 7. 8 매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다. 움직임을 미묘히 정지태(靜止態)로 포착한 이 한 폭의 동양화에서 리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발견이었으나, 이 그림은 아마 기녀(妓女)의 승무를 모델한 성싶어 내가 찾는 인간의 애욕, 갈등 또는 생활고의 종교적 승화 내지 신앙적 표현이 결여되어 그때의 초고(草稿)는 겨우 춤의 외면적 양자(樣姿)를 형상하는 정도의 산만한 언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통해서 내가 잡지 못해 애쓰던 어떤 윤곽을 잡을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 초고를 몇 날 만지다 그대로 책상 위에 버려 둔 채 환상이 가져오는 소위 시수(詩瘦)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 승무로 인하여 떠오르는 몇 개의 시상을 아낌없이 희생하기까지 하였으나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용주사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을 연결시키고도 왜 시를 형성하지 못했던가? 이는 아직 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 혼의 흐름의 표현이 부족하고 혼의 흐름에 치중하면 춤의 묘사가 죽는,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 정신과 육체, 무용과 회화의 양면성을 초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초극하고 한 편 시를 만들기는 또다시 몇 달이 지난 그 해 10월 구왕궁 아악부(雅樂部)에서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한 가락을 듣고 난 다음 날이었다. 아악부를 나서면서 나는 몇 개의 플랜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이 시를 이루는 골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접적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의 샘솟는 노출을 정화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皎皎)한 달빛과 동터오는 빛으로써 끝막을 것.
이것이 그때의 플랜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추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중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고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 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라 하고 말았다.(후략)
【해석상의 문제점】
서울여대 이승원 교수는 계간 시지(詩誌) [시안]에 발표된 <교과서 수록 시작품의 문제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의 오류와 제재 선택의 부적절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승무>는 교사용 지도서나 참고서에 ‘세속적인 번뇌의 초극’이라는 철학적 주제의 시로 제시돼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시인이 생전에 <승무>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은 ‘인간의 애욕 갈등’, ‘생활고의 종교적 승화’, ‘관능의 정화’ 정도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시 연구자들의 현학적(衒學的) 언술(言述)이 많이 작용한 탓’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현학이 중학교 시 교육에 그대로 수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특히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시구는 시인이 ‘아무리 세파에 시달린다 해도 당신의 번뇌는 별빛처럼 찬란하고 아름답다’ 정도의 뜻을 담아낸 것임에도 ‘번뇌는 현실ㆍ지상의 상황, 별빛은 천상적(天上的)ㆍ초월적 세계를 나타낸다’는 식의 설명으로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관념적인 이해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발췌)
- [한국교육신문](1998. 9. 14) -
<대표 작품>
고풍의상(古風衣裳)
1939년 4월 <<문장>>에 발표된 조지훈의 작품.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함께 펴낸 시집 <<청록집>>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일제 치하의 한국문화와 전통적 가치를 시화한 조지훈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전통적 건축물이 지닌 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처마 밑으로 구슬로 만든 발을 내린 운치 있는 달밤의 광경과 한복을 입은 미인의 요조하고 품위 있는 동작을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지고", "밝도소이다", "흔들어지이다" 같은 아어체의 문투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기품 있는 고전미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와 함께 시각 영상에 의존하는 감각어들을 적절히 배치한 시적 수사는, 실제적인 것과 환상적인 미의식을 결합하여 사물의 현실감을 한층 고양시키는 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부연을 묘사한 "하늘로 날을 듯이" 같은 표현은 기와 지붕의 선을 청마루에서 바라본 것으로 묘사의 진실성을 얻고 있고, "두견"새의 소리의 청각영상은 깊은 밤의 인상과 연결되어, 밤 깊은 시간 잠 못 이루는 심정이 정서적으로 통합되고 있다.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비단천만이 나타낼 질감을 여인의 요조한 걸음 동작과 융합시킴으로써, 한국여인과 그 의상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는 거문고를 튕기면서, 곧 부드럽고도 맵시 있게 한국의 전통춤을 출 여인의 고아한 자세와 분위기를 마음 속에 그리면서 상상적 구도 속으로 독자들을 유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율격이 6박율과 3,4박율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려한 형태를 이룬 점도 또한 평가할 만하다. 이처럼 고전적인 한국 문화를 세련된 감각어로 써낸 데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맞서 문화주체성, 역사주체성을 드러내려는 시인의 시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승무(僧舞)
1939년 12월 <<문장>>에 발표된 조지훈의 시작품.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승려가 춤추는 현장을 보면서, 승려의 춤사위와 의상의 움직임이 어우러진 달밤의 산사를 묘사하고 있다. 작품의 율조는 느린 2박율과 4박율을 겸용하였고, 시상의 전개는 거의 시각적 영상을 정태적으로 포착 배열하고 있다. 시인은 먼저 흰 빛 고깔을 접어 쓴 모양을 나비에 비교함으로써 젊은 승려의 고운 자태를 암시한다. 이어서 황촛불이 밝혀진 넓은 법당과 늦은 달빛에 젖어 있는 오동잎 등 주변적 풍광이 소묘된다. 그리고 승복의 넓은 소매와 춤 동작이 어우러진 순간을 포착하여 "돌아설듯 날아가"는 동작과 함께 넓게 휘두르는 소매 자락이 묘사되고, 정결하고 맵시 있는 버선이 춤동작의 축으로서 포착되고 있다. 계속해서 춤추는 여승의 정신적 지향이 일순간에 번뇌를 초월하고 정신적 열락에 드는 모습은 "별빛"에 모두운 눈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별빛은 불승이 세속적 번뇌를 초극한 상태에서 찾은 불교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는 춤시위를 한동작 더 묘사하여 불심(佛心)을 환기시키는데, 손을 모으는 춤사위를 선정(禪定)에 드는 듯한 엄숙한 합장과 비교함으로써 세속적인 놀이의 춤사위가 아닌 "거륵한" 뜻을 일깨운다. 마지막 결사에서는 귀뚜리가 우는 깊은 밤이면서 동시에 승무의 감동에 의해 지새는 밤이라는 뜻을 담고, "이밤사"의 강조어를 배치하여 감흥이 심화되었음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이 시에는 정태적 묘사와 한 순간의 동작의 묘미를 포착하여 표현하는 놀라운 관찰이 어울려 있다. 춤 차체의 예술성에 관한 시적 인식과 함께 승무만이 지니는 정신미와 불심의 시화(詩化)가 어우러져 전통적 문화유산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봉황수(鳳凰愁)
1940년 2월 <<문장>>에 발표된 조지훈의 시작품. 조선왕조의 한 고궁을 제재로 하여 민족의식을 나타낸, 조지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일견 산문시와 같은 형태로 씌어 있으나, 4박율을 중심으로 정연한 율격미도 갖추고 있다. 작품에서는 먼저 낡은 고궁의 형상과 빛이 바랜 색조감에 이어 주인 잃은 산새들의 둥우리 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화자의 시선은 고궁의 내부로 이동하여 옥좌를 보면서,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쌍룡을 그리지 못하고 봉황을 그려넣은 사실을 알려주고,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시적 화자가 회고하는 옛 조선조차 사실은 종속적 지위에 놓여 있어, 주권국가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 시적 화자는 추녀 밑에 깐 추석을 밟으며 품계석이 늘어선 넓은 내정을 거닌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그 옛 영광을 암시하는 품계석이 지금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함을 말하면서 주권 상실의 시대적 고통을 고지시킨다.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봉황새"가 소리쳐 울 것을 갈망한다. 이러한 작품의 의미 맥락에 따르면 주권 상실의 고통에 주제의 비중이 놓여 있고, 저항적, 의지적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함축적인 효과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봉황수>는 하늘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말을 굳이 "구천(九天)"이라고 쓰는 데서 보이듯, 한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교양미가 식민지시대의 주권상실의 울분과 비장감과 잘 어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완화삼
조지훈의 초기 작품.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 대한 화답시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도 시 <나그네>와 같이 나그네가 등장하고, 산촌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나그네의 길 떠남과 구름의 흐름 그리고 물길의 심상을 융합하여 정처 없는 유랑을 암시한다. 여기서의 유랑에서는 두 가지 함의를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식민지 시대의 뿌리 뽑힌 한국인 상이며 다른 하나는 고향을 벗어나 자유로이 떠나고 싶은 지향성이다. 그러한 의미와 함께 한국 선비의 풍류스런 멋을 완화삼이라는 긴 적삼에서 풍기는 넉넉함의 인상과 결합시켰으며, "술 먹는 마을의 저녁 노을"을 배치, 박목월의 <나그네>와 정서적 일체감을 이루어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달빛에 젖으며 밤길을 걸어 떠나는 나그네의 "한 많음"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마무리에서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시적 감성, 섬세한 화자의 관찰이 어울려 있음을 보게 된다. 지사적 한을 지녔던 시인인 조지훈의 시적 정서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록집(공저)
박목월(朴木月), 박두진(朴斗鎭), 조지훈(趙芝薰) 3인 시집. 1946년 6월 6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국판, 반양장, 114면. 서문이나 발문 없이 박목월 편에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 편에 <봉황수>, <고풍의상>, <승무>, <완화삼> 등 12편, 박두진 편에 <향현>, <묘지송>, <도봉>, <설악부> 등 12편으로 모두 3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동인지나 유파의식을 바탕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문장>>을 통하여 데뷔한 여러 시인들 가운데서 해방 직후에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모여 발간한 시집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라는 점과 일제말 민족어를 갈고 닦아 이루어진 시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박목월은 민족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향토성이 강한 소재를 형상화시켰으며, 조지훈은 사라져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과 시선일여(詩仙一如)에의 지향을 보여줌으로써 동양적이며 전통지향성을 간직한 선비의 기풍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박두진은 주로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박목월이나 조지훈에 비하여 기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신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청록집 은 해방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시집으로서, 일제말 암흑기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 해방 후 최초의 창작시집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시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풀잎단장
조지훈(趙芝薰)의 첫 번째 시집. 1952년 11월 1일 창조사에서 발행되었다. 1000부 한정판, 국판, 85면.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펴낸 <<청록집>>을 첫 시집으로 본다면 이 시집은 두 번째 시집이 될 것이다. 5부로 나누어 '절정' 편에 <아침>, <산길>, <풀밭에서>, <묘망(渺茫)>, <그리움> 등 7편, '창'에 <밤>, <창>, <풀잎 단장> 등 7편, '고사(古寺)'에 <마을>, <산>, <고사>등 7편, '파초우' 편에 <낙화>, <파초우>, <고목>, <완화삼> 등 7편, '석문'에 <봉황수>, <향문>, <고풍의상>, <승무>, <율객> 등 7편 등 모두 35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이 시집에는 <<청록집>>에 실렸던 작품이 전부 재수록되어 있고, 대부분의 시편들이 8.15 광복 전에 씌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나타나 있는 조지훈의 시적 특질은 <<청록집>>의 작품경향과 거의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동양적 자연친화의 사상과 불교적 선감각(禪感覺) 및 고전적 미의식을 단아한 언어와 리듬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지훈은 한때 탐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도 했고, 이 시집 이후에는 역사의식이 강하게 투영된 일련의 시를 쓰기도 했지만, 그의 시세계의 본령은 이 시집의 작품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승무>를 들 수 있는데, 이 시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여 승무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점점 고양되어가는 정조를 전아한 음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 밖에 <고사>는 불교적 선감각을 잘 살린 작품이고, <파초우>는 자연친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사무사(思無邪)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체로 이 시집의 작품들은 고전적인 한유(閑悠)의 미와 불교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의 원리
조지훈(趙芝薰)의 시론집. 1953년 6월 20일 산호장(珊瑚莊)에서 간행되었다. 4?6판, 160면. 1959년 3월 20일 신구문화사에서 국판 238면으로 증보되어 간행되었다. 지은이의 서문 외에, <시와 우주>, <시의 인식>, <시의 가치> 등으로 나누어 시의 본질과 원리, 자작시 제작의 주변 경험담 등을 엮었다. 증보판에는 <시의 감상>이 더 들어가 있다. 이 저서는 시의 창조적 해설이라는 목표에 입각하여 저술된 책으로, 시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서이다. 저자는 먼저 시란 “독특한 언어로 구성”되는 언어예술이며 보편적 진실을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제1편 <시의 우주>에서는 무질서한 데서 점차 질서와 통일과 조화를 지향하게 된다는 회남자(淮南子)의 우주관에 입각하여, 시는 무한한 세계에서 형성되는 유한한 작품, “유한을 계기로 이루어지는 무한자의 의욕의 표상(表象)”이라고 하였다. 이어 시는 미적 감성에 의해 창조되는 언어적 표현체라고 인식하고, 정서적 융합으로 오성(悟性)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유기론적 시관을 보이고 있다. 2편 <시의 인식>에서는 시의 창조적인 여러 요소들을 시작(詩作) 과정을 통해 설명하는 한편, 시에 나타나는 미적 효과로서 우아미, 소박미, 비장미, 감상미, 관조미, 상징미, 골계미 등을 예증하였다. 또한 시의 기법으로서 생략과 부연, 해조와 변조, 과장과 반복을 설명하면서 산문적 특성과 운문적 특질도 비교하고 있다. 3편 <시의 가치>에서는 "우리의 정신이 이제까지 자각하지 못하였던 진실과 선과 미를 깨닫고 그 용해융합(溶解融合)의 정조 속에서 자아의 모순을 극복하며 정신의 파괴된 균형을 복구하고 이해득실의 염(念)을 초월할 수 있다."는 데 시의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병(病)에게
<<사상계>> 1968년 1월호에 발표된 조지훈의 시작품. 이 작품은 평생동안 병고에 시달렸던 조지훈이 마침내 병이 자신과 친숙한 관계임을 재인식하고, 그로부터 삶에 대해 심화된 인식을 얻었음을 작품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병을 인격적 존재로 설정하였다. 병은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는 존재이나 화자와는 늘 친숙한 관계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병은 화자에게 "휴식"을 권고하고 또 삶의 "외경"스러움을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허무"를 더 다정한 소리로 속삭여주기도 한다. 3연에서는 병이 오히려 화자의 병을 돌보면서 이마를 짚어 준다는 새로운 관계가 나타난다. 병자인 화자는 병의 주름짓고 여윈 모습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회고하며 "좀더 성실하게" 살려던 결의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죽음을 예감하기도 하고, 자신과 병은 서로 공경하는 사이이지만, 병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면 병은 오히려 떠나가 버린다고도 한다. 결사에서 시적 화자는 병과 함께 차를 마시며 삶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작품의 이러한 착상에서 전개에 이르기까지, 병에 시달리던 시인이 그 병과 더불어 인생을 오히려 깊이 있게 이해하고 경외심까지도 갖게 되었으며, 건강과 병의 구분도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허무한 것임을 암암리에 일깨우고 있다. 여기서 죽음에의 초월을 추구하는 시인의 통찰력과, 허무감을 초극하려는 일종의 정신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조지훈의 말기 작품 가운데 시심의 원숙한 경지를 알려주는 주목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박두진]
1. 호는 혜산. 경기도 안성 출생. 1939년 '향연', '묘지송' 등이 <문장>에 추천되어 등단. 이화여대, 우석대, 연세대 교수 역임.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초기에는 자연에 대한 싱싱한 생명력과 기독교적 신앙의 바탕 위에서 긍정적인 선미를 모색했고, 후기에는 특히 민족의식과 정의감을 표현했다.
박두진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일종의 '메시아'의 상징이며,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매개적 존재로 표현된다.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해, 청만사, 1949>
작자 소개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경기 안성 출생.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박두진의 작품 세계 :
박두진의 시는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정신적인 경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일종의 '메시아'의 상징이며,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매개적 존재로 표현된다.
시기적으로 볼 때, 박두진의 시세계를 해방과 6.25를 분기점으로 하여, 이상향에 대한 강렬한 희원을 보이는 초기의 경향(<청록집>과 <해>의 세계)과, 민족의 구원에 대한 소명 의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며, 기독교적인 종말관이나 신앙적 갈구가 나타나는 후기 경향(<오도>,<거미의 성좌>,<인간 밀림>의 세계)으로 나뉘어진다.
요점 정리
성격 : 열정적, 상징적, 예언적, 미래 지향적
특징 : ① 강렬한 남성적 의지 ② 4음보의 급박한 리듬
제재 : 해
주제 : 민족의 웅대하고 기쁨에 찬 미래상 추구
어휘와 구절
살라먹고:'사르다'와 '먹다'의 합성어. '사르다'는 '불태워 없애다'의 뜻, 여기서 '먹고'는 본래의 뜻인 '식(食)'보다는 '사르다'를 강조하는 역할
늬가사:'늬'는 '너'의 방언. '사'는 방언에서 쓰이는 강세 보조사
칡범:'갈범'의 방언. '갈범'은 범을 표범과 구분하여 일컫는 말
애띤:'앳된'의 잘못된 표기. 여기서는 '천진 난만하다'의 뜻.
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천진하고 참신한 해(희망과 광명의 상징)가 솟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해'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새로운 역사의 빛을 의미한다,(돈호법,의인법,반복법)
산 너머∼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로 이 강산을 덮고 있는 '어둠'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광명을 안겨줄 '해'야 어서 솟아라. - 어두운 시대를 한꺼번에 밝히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대한 갈구를 드러낸 것이다.(반복,의태,의인,돈호법)
달밤이 싫여,∼달밤이 나는 싫여……. : 사람들이 서로 해치고 억압하고 약탈하며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나는 싫어. '달밤'은 신비스럽고 낭만적인 시간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속성이 표출되는 시간이다. '골짜기'의 음습한 분위기와 연결되면서 부정적인 현실을 암시한다.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홀로래도 좋아라. : 여기서 '청산'은 '해'의 광명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세계, 곧 이상의 세계이다. 이상의 세계가 오기만 하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절실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훨훨훨'은 '이글이글'과 마찬가지로 의태법으로, 기쁨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 꿈이 아닌 현실엣 광명과 희망의 상징인 '해'를 만나면 좋겠다는 뜻이다. '청산'으로 상징되는 이상 세계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 미와 추, 선과 악의 존재들이 대화합하여 모여 앉아 낙원의 기쁨을 누리며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46년 5월에 발표되었으나 씌어진 것은 8·15 해방 전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어둠'이란 일제하의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중 인물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라고 간절하게 외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어둠'이다.
그는 사슴과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노는 세계를 갈망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속해 있는 세계는 사람과 사슴과 칡범이 서로를 두려워하며 해치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것을 인간적인 의미로 풀이한다면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고 억압하고 약탈하며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의 모습이 된다.
이 작품의 의미는 이러한 어둠의 시대,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에 있다. 작품의 급박한 호흡은 그 소망의 절실함 때문이며, 반복되는 말들도 또한 그 때문이다.
제1연에서는 우선 `해야 솟아라'라는 말이 수식어를 덧붙여 가며 반복된다.
그 해는 산 너머서 어둠을 불태워 먹고 이글이글한 빛과 천진난만한(애띤) 모습으로 떠오를 광명의 원천이다. 그것은 자연의 해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한꺼번에 밝히는 새로운 세계의 빛을 의미한다. 이러한 빛을 기다리는 그의 괴로운 모습이 제2연에 보인다. 그는 번민과 비애로 가득한 골짜기의 어두운 달밤이 싫다.
제3연부터 끝까지는 드디어 해가 찾아 왔을 때 누리게 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때에는 밝은 빛 아래 티없이 맑은 자연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청산'이며, `사슴, 칡범, 꽃, 새, 짐승'들이다. 청산은 훨훨 깃을 치며 한껏 아름다울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사슴, 칡범 등 온갖 자연물들과 `애띠고 고운 날' 즉, 티없이 밝고 순결한 삶을 누릴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그리는 이상의 세계는 단지 조국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적 상상 속의 낙원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의 세계에서까지 일체의 갈등이 해소된 화해로운 경지이다. [해설: 김흥규]
'해'의 시인이요, 자연 교감의 정신을 불러 일으킨 박두진의 첫 시집 {해}의 표제가 된 이 작품은 8·15 해방이라는 벅찬 기쁨 속에서 민족의 웅대한 기대와 민족의 이상을 구가하던 시기에 씌어졌다.
이 시는 '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광복의 기쁨을 제시하는 한편, 어둠이 걷힌 '청산(靑山)'에서 광명한 조국의 미래사, 민족의 낙원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뜨거운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광복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 속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갈등을 빚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이 평화롭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둠'·'달밤'·'골짜기'·'칡범'·'짐승'은 악(惡)과 추(醜), 강자(强者)의 이미지를, '해'·'사슴'·'청산'·'꽃'·'새'는 선(善)과 미(美), 약자(弱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시인은 이들의 대화합을 추구하며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시인은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의 어머니인 '해'가 돋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원시인(原始人)의 원초적 신앙인 태양 숭배와 같은 경이(驚異)와 복받치는 희열(喜悅)로 '에덴 동산'을 연상시키는 조국 광복의 신천지를 예찬하는 동시에, '달밤'으로 표상된 민족의 오랜 슬픔을 배척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희망찬 미래의 조국을 상징하는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라고 외치며, '사슴'과 '칡범', '꽃'·'새'와 '짐승'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사는 영원한 평화와 공존 공영의 '고운 날'을 꿈꾼다. 그 '고운 날'은 결국 '해가 솟은 청산'으로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이상향이자, 민족의 영화로운 역사가 펼쳐질 해방된 조국 강토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시에서는 당시대적(當時代的) 조국 해방의 기쁨이 영시대적(永時代的) 이상향의 추구로까지 연계·발전되고 있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연현은 이 작품을 가리켜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다."고 평하고 나서 "박두진은 이 한 편의 시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시기적으로 볼 때, 박두진의 시 세계는 해방과 6·25 전쟁을 분기점으로 하여, 이상향에 대한 강렬한 희원(希願)을 보이는 초기 경향 <청록집>과 <해>에서, 민족의 구원에 대한 소명 의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며, 기독교적인 신앙적 갈구(渴求)가 나타나는 후기 경향(<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 밀림>)으로 나뉘어 진다.
시집으로 '청록집', '해', '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 밀림', '하얀 날개' 등이 있다.
2. 경기 안성 출생.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3. 호는 혜산(兮山).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시 <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해방 후에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연세대·이화여대·우석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시아자유문학상, 3·1문화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8년 9월 16일 사망했다. 1946년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발간한 <<청록집>>(1946)에서는 일제 말기 한국인의 겨레 인식과 저항적 자세를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화하고 있다. 그는 시집 <<해>>(1949)와 <<오도>>(1953)를 간행하면서 기독교적인 이상을 시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시적 방향과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강렬한 민족의식과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서, 사회적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시집 <<거미와 성좌>>(1962), <<인간밀림>>(1963) 등은 현실의 격동을 체험하면서 삶의 의지와 적극적인 비판의식을 중요시하게 된 시인의 변모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시기의 시는 의성어?의태어나 직유적인 표현, 파격을 이루는 산문 형태의 시적 진술 등에 의해서 격렬한 정서의 충동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수석열전>>(1973), <<포옹무한>>(1981) 등의 시집을 발간한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시는 내밀한 자기 인식에 근거하여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두루 섭렵하는 절대적이고 신앙적인 경지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는 시를 윤리와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기법의 세련보다는 주제의식의 심화를 가져온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 <<청록집>>(공저, 1946), <<오도(午禱)>>(1953), <<거미와 성좌>>(1962), <<인간밀림>>(1963), <<하얀 날개>>, <<고산식물>>(1973), <<사도행전>>(1973), <<수석열전>>(1973), <<야생대>>(1977), <<포옹무한>>(1981) 등이 있으며, 1984년에는 범조사에서 <<박두진 전집>>을 간행하였다. 이외에도 시론서 <<한국현대시론>>(1970),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1976) 등이 있다.
<대표 작품>
해
1946년 5월 <<상아탑>>에 발표된 박두진의 시작품. 발표 당시 평론가 조연현은 한국시에서의 한 `절정'을 작품화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광복 후의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건국의 이념 수립과 창조적 기세를 시화한 것이다. 정한이나 애상미에 바탕하지 않고 저항적 자세를 기조로 하여 의기를 드러내고, 기대와 투지가 깃든 장엄성을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시인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 이 시에서 `해'는 신생국의 탄생을 예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연에서는 “어둠을 살라먹고"와 같이 부정적 힘을 이겨내려는 세찬 정열과 야성적인 투지에 의해서 어둠을 부정하고 있다. 이어 제2연에서는 `달밤'의 비애감을 거부하고, 제3연에서는 삶의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해가 솟아오름을 찬양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양순한 `양'과 살벌한 육식동물인 `칡범'이 공존하는 평화적인 삶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처럼 이 시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논리를 극복한 민주적 평화공존의 새 이념이 건국의 기틀임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산문적 율격 또한 시인의 저항적 자세를 지속적으로 이끄는 시 형태로 기능하고 있다.
청록집(공저)
박목월(朴木月), 박두진(朴斗鎭), 조지훈(趙芝薰) 3인 시집. 1946년 6월 6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국판, 반양장, 114면. 서문이나 발문 없이 박목월 편에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 편에 <봉황수>, <고풍의상>, <승무>, <완화삼> 등 12편, 박두진 편에 <향현>, <묘지송>, <도봉>, <설악부> 등 12편으로 모두 3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동인지나 유파의식을 바탕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문장≫을 통하여 데뷔한 여러 시인들 가운데서 해방 직후에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발간한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문장≫ 추천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여 엮어졌으며,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라는 점과 일제말 민족어를 갈고 닦아 이루어진 시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박목월은 민족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향토성이 강한 소재를 즐겨 다루고 있으며, 조지훈은 사라져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과 시선일여(詩仙一如)의 경지를 관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두진은 주로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기독교사상과 결합시킴으로써 독특한 정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청록집≫은 해방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시집으로서, 일제말 암흑기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 해방 후 최초의 창작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도(午禱)
1953년 대구 영웅출판사에서 간행된 박두진의 세 번째 시집. 국판 양장 84면으로 되어 있다. 이 시집의 서문에서 시인은 <산에 살어>, <해수(海愁)>, <한아름 해당 꽃이>, <고향> 등 네 편을 제한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대구 피난 생활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집에는 <자서(自序)>가 있고, 제1부에 <비(碑)>, <오도> 등 5편, 제2부에 <아침에>, <오월의 기도> 등 4편, 제3부에 <너는>, <아침의 시> 등 여섯 편, 제4부에 <아버지>와 <고향> 2편, 제5부에 <학>, <달과 말> 등 6편, 총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에서는 세 가지 주요한 심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돌, 바위 등의 견고한 물질 심상으로, 이를 통해서 시인은 격동하는 역사적 추이를 냉엄히 투시하면서 초월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초기시편에서도 볼 수 있는 빛의 심상으로, 이러한 빛의 심상을 통해서 시인은 현실적 삶의 고통과 종교적 신앙세계를 무리 없이 융합시키고 있다. 그가 빛의 심상을 작품에 자주 사용하는 것은, 빛의 심상이 지닌 보편적 가치 때문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바다의 심상으로, 시인은 바다의 순수함과 흰 갈매기의 날아오름을 통해서 절대자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빛, 돌, 바다, 갈매기 등 물질 심상은 영적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시인이 발견한 일종의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실세계의 물질적 구성과 그 있음의 변화에서 시인은 절대자를 은유적으로 느끼며 영혼의 지향을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밀림
1963년 일조각에서 발간된 박두진의 여섯 번째 시집. 국판 양장 총 171면으로, 1부에 <자는 얼굴>, <인간밀림> 등 8편, 2부에 <수심(水深)>, <도봉모일(道峯暮日)>, <천마산미로(天摩山迷路)> 등 14편, 제3부에 <전설>, <꽃사슴> 등 6편, 제 4부에 <선언>, <신생의 노래> 등 9편, 끝으로 5부에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너> 등 5편, 총 4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은 4?19학생운동과 5?16 군사쿠데타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창작된 작품들이다. 가령 <팔월의 강> 같은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영광스럽던 해방의 의미가 변질되어 버렸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배암'과 `이리'로 암시된 부정적인 세력을 거세게 비판한다. 이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민간정권을 보편적 진실로 생각하고 있던 시적 화자가 일제의 군국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하는 듯한 군부독재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록 그것이 시적으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이러한 시적 화자의 대응은 당대의 지식인 일반이 공유하고 있던 가치관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시인은 강물이 넓은 바다에 이르듯이 민족주의가 세계적 보편주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한마디로, 시대의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영원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 체계의 확립이 바로 이 시집의 중심 주제라 하겠다.
수석열전
박두진의 연작시. 이 작품은 1972년 8월 ≪시문학≫에 발표되기 시작하여, 1976년 5월까지 ≪현대문학≫에 발표된 연작시이다. 이 중에서 <<현대문학>> 1973년 12월호에까지 발표된 것을 묶은 것이 시집 <<수석열전>>(일지사, 1973)이며, <<현대문학>> 1974년 8월호부터 1976년 5월호까지 연재된 작품을 묶은 것이 <<속 수석열전>>(일지사, 1976)이다. ≪수석열전≫의 서문에서 시인은 수석이 “자연의 정수이자 핵심"이면서 아울러 “어떤 초월적인 본체의 한 현현"으로서, 시인의 시정신과 일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돌이란 가장 견고한 물질이자 시간적인 비의(秘意)를 지닌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의 시에서 돌은 <천대산상대(天台山上臺)>처럼 절대자가 노닐던 성스러운 처소, 날음의 의미를 함축한 잠, <인수봉>처럼 순결한 가치의 형상체, 모든 흔들림을 견디면서 고정되어 있는 심적 자세 등으로 다양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이처럼 박두진은 이 연작시편들에서 돌의 미학과 관련된 우리의 문화, 풍속, 역사, 자연, 가치질서 등의 여러 층위를 총체적으로 수석의 세계와 융합시켜, 한국의 형이상학을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박목월]
1. 시인. 본명은 영종. 경북 월성군 출생. 동시로 출발했으나 1939년 <문장>에 '길처럼'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46년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청록집'을 내어 광복 후 우리 시단에 큰 공헌을 하였다.
민요적이고 향토성이 짙은 짧은 서정시를 주로 썼다. 6·25 이후에는 자신의 생활을 소박하고 담담한 어조로 표현하면서 초기 시와는 달리 현실성을 수용하였다.
작품 경향을 보면, 초기에는 자연을 소재로 한 동양적 이상향 곧 선경(仙境)을 그리다가 중기에는 인간의 끈끈한 정을, 말기에는 죽음과 신앙의 문제를 제재로 한 시를 썼다.
그의 작품 세계는 4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는 '청록집' 시대로 향토적 서정과 민요적 율조로 인간의 본원적 애수를 그렸으며, 압축되고 세련된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2기는 '산도화' 시대로 '청록집'의 시 세계를 더욱 심화시켜 동양적인 분위기에 질량감 있는 언어로 회화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살려 냈다. 3기는 '청담' 시대로 인생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 드는 경향을 띠면서 시어가 다소 늘어져 사설조의 리듬과 내용의 변혁을 가져 왔으며, 4기는 '경상도 가랑잎' 시대로 문명 비판적인 경향을 띠면서 지적 요소가 짙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주요 시집으로는 '청록집', '산도화', '난(蘭)·기타', '경상도 가랑잎' '무순', '크고 부드러운 손' 등이 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1986년에 나온 ‘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에서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대생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라고 아래와 같이 밝혔다.
목월이 피난시절 대구에서 알게 된 H씨 자매가 있었다.
자매가 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그를 자주 찾아왔다.
처음에는 흔히 있는 팬과의 만남 정도로 대했다.
그러는 사이 휴전(1953년 7월)이 성립되었다.
목월은 가족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대학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자매도 상경했다.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목월의 생가터.
언니가 결혼을 하자 이번엔 동생이 혼자 목월을 찾았다.
동생의 가슴에 사랑의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목월도 그녀에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1954년 초봄부터, 두 사람이 서울의 밤거리를 함께 거
니는 날이 많아졌다.
목월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있는 가까운 시인 Y를 불러
H양을 만나 자신을 단념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Y씨를 만난 H양, Y씨의 말을 듣고 나서,
“선생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저는 다만 박 선생님을 사랑할 뿐,
이 이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제주의 초가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 바람이 불어 왔을 때
목월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제주 생활이 넉 달째 접어들어
겨울 날씨가 희끗 희끗 눈발을 뿌리던 어느날
부인 유익순이 제주에 나타났다.
목월과 H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그녀는
두 사람 앞에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보퉁이에는 목월과 H양이 입고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한복 한 벌씩이, 그리고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물론 H양에 대해서도 그녀는 전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고달픈
객지 생활을 위로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 앞에서 H양은, “사모님!”하고 울었다.
목월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
제주의 초가 설경
그 하숙생활은 그후 두 달 남짓 끌다 끝났다.
유익순 앞에서 울었던 H양은 목월을 단념하게 된 것이다.
결국 목월은 H양과의 이별 후 제주에 좀 더 머물다
1955년 초봄 가정으로 돌아왔다.
부인 유익순은 돌아온 남편에게 한마디도 탓하지 않고
반갑게 그리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옮겨 온 글
2. 본명 영종(泳鍾). 경북 경주(慶州) 출생. 1935년 대구 계성(啓星)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弘益)대학 조교수, 1961년 한양(漢陽)대학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희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3.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1월 6일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1935년 대구 계성중학을 졸업하였다. 1939년 <<문장>>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홍익대,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65년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고, 68년 한국시인협희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3년 시전문지 <<심상>>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자유문학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1978년 3월 24일 사망했다. 박목월은 초기에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향토성이 조화를 이룬 자연친화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여 특유의 전통적 시풍을 이룩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는 고유의 정서와 리리시즘을 일상적인 삶의 체험과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실에서의 갈등이나 대립을 초극하기 위한 의지를 노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시는 삶의 애환에 대한 정서의 자연스러운 감응을 통해서 현실과 마주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산도화>>(1955), <<난?기타>>(1959) 등의 시집에서 잘 드러난다. 후기시는 <<경상도의 가랑잎>>(1968)에서처럼 카랑카랑한 경상도 방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가운데 고향의 토속적인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곧 시인이 자신의 시 세계의 변화를 토착어의 리듬 속에서 수용해 내는 것이자 삶의 본바닥인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저변에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보다 여유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정신적 달관의 자세가 놓여 있다. 시집으로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난 기타>>(1959), <<경상도의 가랑잎>>(1968), <<무순>>(1976) 등이 있다.
<대표 작품>
나그네
박목월의 초기시. 5연 10행 수미쌍관의 짤막한 시형으로 되어 있다. 시 속의 나그네는 '길은 외줄기'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술 익는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방랑의 고독한 운명에 놓여 있다. 이러한 나그네의 고독감은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외줄기 길을 정처 없이 가야만 하는 나그네의 처지와 저녁놀을 배경으로 한 마을의 평화로운 경치가 대조를 이루면서 나그네의 외로움은 더욱 배가된다. 그러나 나그네는 그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있다. 즉 속세에 대한 미련이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한탄 없이, 구름 속에 달이 가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처지는 고독하지만, 결코 슬프거나 비참하지는 않다. 한편, 이 시의 나그네가 보여주고 있는 초연과 달관의 자세는 박목월의 초기 시에서 나타나는 자연친화사상의 맥락에서 잘 이해된다. 박목월은 일제 말기에 자연에 몰입함으로써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는데, 시 속의 나그네가 마을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박목월의 입장을 연상시킨다. 그의 시가 시인의 주관적인 느낌보다는 서경적인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러한 나그네의 특성을 더욱 더 강화시켜 준다.
청록집(공저)
박목월(朴木月), 박두진(朴斗鎭), 조지훈(趙芝薰) 3인 시집. 1946년 6월 6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국판, 반양장, 114면. 서문이나 발문 없이 박목월 편에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 편에 <봉황수>, <고풍의상>, <승무>, <완화삼> 등 12편, 박두진 편에 <향현>, <묘지송>, <도봉>, <설악부> 등 12편으로 모두 3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동인지나 유파의식을 바탕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문장≫을 통하여 데뷔한 여러 시인들 가운데서 해방 직후에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발간한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문장≫ 추천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여 엮어졌으며,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라는 점과 일제말 민족어를 갈고 닦아 이루어진 시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박목월은 민족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향토성이 강한 소재를 즐겨 다루고 있으며, 조지훈은 사라져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과 시선일여(詩仙一如)의 경지를 관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두진은 주로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기독교사상과 결합시킴으로써 독특한 정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청록집≫은 해방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시집으로서, 일제말 암흑기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 해방 후 최초의 창작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산도화
1955년 영웅출판사에서 발간된 박목월의 첫 개인시집. 공동시집인 <<청록집>>의 시세계와 유사하다. 이 시집 역시 서경성이 돋보이며, 간결하고 짤막한 시형과 자연친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경적인 묘사에 치중하면서 서정으로의 변이를 꾀한다든지, 종결부에 포인트를 두는 수법은 ≪청록집≫에 실려 있는 <윤사월>이나 <청노루>와 흡사하다. 그 중 <산도화>는 특히1,2,3편 모두 서경적인 경치 묘사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시인은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 속에서 오직 생명들의 움직임만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산도화의 개화, 암사슴의 움직임, 새소리, 햇살 등이 인간의 세계와 떨어져 있는 자연의 비경(秘境)을 시인은 단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 시에서는 색채 감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석산(石山)의 보랏빛과 산도화의 색깔, 물빛 등의 선명한 색상 대비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山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山桃花/ 두어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산도화 1>)라는 구절은 그 구체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기로 하여 자신의 시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시인이 자연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산도화≫는 박목월의 초기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난. 기타
박목월의 제2시집. 1959년 12월 10일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청록집>>을 제1시집으로 간주하면 <<산도화(山桃花)>>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시집이 된다. 4.6판, 고급양장, 142면. 제1부에 <야반음(夜半吟)> 등 17편, 제2부에 <모과수(木瓜樹) 유감(有感)> 등 6편, 제3부에 <정원(庭園)> 등 20편, 제4부에 <등의자(藤椅子)에 앉아서> 등 6편, 제5부에는 <후일담(後日譚)> 등 10편, 모두 59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서 박목월은 초기 시의 자연 친화적 경향에서 벗어나 생활 현실을 노래한다.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그릇./ 풋나물무침에/ 新苔./ 미나리김치. / 투박한 보시기에 끓는 장찌개. // 실보다 가는 목숨이 타고난 祝祿을. / ?禱를 드리고/ 젓가락을 잡으니/ 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素饌>)에서 잘 드러나듯이, 시인은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하여 애정을 느끼면서 감사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시인은 대상을 단순히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애환과 작은 기쁨을 느낄 줄 아는 한 인간이다. 이 시기의 시에서 가정을 소재로 하여 시인의 솔직한 심정을 읊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이 시집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생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도 눈에 띄는데, <하관>은 그 대표작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혈육간의 이별을 “형님! /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라는 구절로 응축시켜 표현하고 있다.
경상도의 가랑잎
1968년 민중서관에서 발간된 박목월의 시집. 박목월의 후기 시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그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시집은 향토적인 정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시인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와 가락이 시에 많이 차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이별가>)나,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만술 아비의 주문>) 등은 그 구체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고향 사람들의 말투와 가락을 빌려서 그들의 순박함과 인정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던 그의 중기 시의 특성이 보다 더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한편, 이 시집에서는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의식이 드러난다. 강소천, 조지훈 등과 같은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해 시인은 생의 무상감을 깨닫게 되고, 노년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청파동>, <이?삼일>).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으려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라는 구절에서 보이듯이 시인은 죽음이 대단히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로 그의 시는 죽음에 대한 의식과 달관이 주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