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원창 길을 따라서
유기섭
강원도 원주의 부론면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강변에 설치되었던 흥원창 길을 따라 옛 역사를 더듬어본다. 흥원창은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서 한강 지류인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설치 운영되었던 조창 중 하나이다. 당시 전국에는 13개의 조창이 있었다고 한다. 각지역의 세곡을 모아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조선조 후기에 와서 그 기능이 대체되고 소멸하여 그자리엔 돌비만 남아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한때 번창하였던 조창조운이 쇠퇴한 강변길을 따라 걸으며 그때의 후하였던 세상 인심도 흐르는 강물따라 변하고 있음을 가슴으로 새긴다. 백성들이 어려움속에서도 농사를 지어모은 세곡을 중앙관청에 실어나르며 조정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었을 백성들을 상상해본다. 한나라의 왕조가 번창하기위해서는 재정이 튼튼하여 일반 백성들이 기근과 어려움에 처하였을때 조정에서 백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배곯지않게 국민을 다스리는것이 치세의 으뜸가는 덕목이었을 시대. 우리 조상들의 속타는 마음들이 모여 조정에 정성을 다한 아픔이 서린 현장임을 잊을 수 없다.
숱한 외침과 자연재해로 인한 국난의 시대를 살며 관민이 일치하여 힘을 모아서 어려움을 헤쳐나왔을 선조들의 정신이 깃들여있음을 생각하니 찾는이 드문 강가에 홀로 서있는 돌비를 바라보지만 외롭지않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수백 년 전 원시농경사회인 그때 논과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강을 따라 운송하고 다시 조정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 흥원창의 역사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역사와 함께하고있으리라.
오래된 사진을 통하여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거슬러가며 땟목에 목재나 물건을 싣고 운반하며 노저어 가던 풍경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게 조명되며 오랜세월동안 우리와 함께 역사를 써내려온 이곳 강변의 애환과 삶의 모습들이 눈에 아로새겨온다. 한때는 뱃사공들의 고단한 일상의 모습들이 낭만에 젖어드는 감성을 불러오기도하였는데 이면에는 어쩔 수없는 삶의 쓰린 모습이었음을 나중에야 깨우치게되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서도 국가에 내는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느라 힘이 들었을 우리조상들의 궁핍한 일상의 모습들이 전개되며 가슴이 아려온다. 조세납부는 백성들 모두가 피할 수없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민된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가족의 씀씀이를 조여가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갔을 선조들의 삶의 모습들이 점철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숙여진다. 백성의 할바를 다하기 위하여 굽어진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운명앞에서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던 지나간 세월의 아린 흔적이 오늘따라 이곳 흥원창 옛터 돌비 앞에서 아프게 되살아난다.
- 영덕문학 2024년 제 54집 게재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