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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보살(正趣菩薩)
극락, 또는 해탈의 길로 빨리 들어서는 길을, 그 방법을 일러주는 보살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아난야가민(Ananyagamin)이다. 안이란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안야란‘그 밖에’‘~과는 다른’이라는 뜻이며 가민은 가다라는 동사의 변화 로 ‘안야가민’하면 다른곳으로 간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에 안이 결합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면 좋다. 하나의 목표를 정해두고 그곳을 향해서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이행(無異行)이며 정취(正趣)라 한역한 것이다.「화엄경」<입법계품>에 보면 거기서는 29번째 선지식으로 이 정취보살이 등장한다. 선재동자가 보살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오로지 용맹정진하여 물러서지 않고 겁없는 보살,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목표로 삼은 그 곳으로 묵묵히 그리고 힘차게 걸어가는, 머뭇거리지 않는 ,뜻한 바 오로지 그 길로 가기 때문에 정취보살이라 했을 것이다.
일광보살(日光菩薩)
범어로는 수르야프라바(Srya-prabha)이며, 일광변조보살(日光遍照菩薩). 일요보살(日曜菩薩)이라고도 한다.약사불의 두 협시보살 가운데 한 분으로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요, 찬란한 원광으로 중생들의 온갖 재앙을 두루 비춰 소멸시키는 보살이다.
약사불의 협시로 모실 경우 몸은 적홍색이고 왼손바닥에는 태양을 올려놓고 오른손에 넝쿨로 된 붉은색 꽃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한다. 그러나 약사불의 협시가 아닌 일광보살 독자적인 형태일 경우는 다르다. <약사본원경>이나 <관정경>과는 달리 <대일경>에 근거를 둔 까닭이다.범어로는 수르야프라바사나(Srya-prabhasana)이며 일광명보살이라고도 한다 현도태장계만다라 제개장원 9존중 가장 서쪽, 즉 가장 아래쪽에 안주하는 보살이다.
밀호는 위덕금강(威德金剛)이고 종자는 카(Ka)며 삼매야형은 붉은 보배다.
형상은 온몸이 살색이며 오른손은 팔을 펴서 손바닥을 세워 몸쪽으로 향하게 하되 중지와 무명지와 소지를 약간 구부린다. 왼손은 주먹을 약하게 쥐어 배꼽 위치에 두되 보주를 올려 놓은 연꽃을 잡는다. 연꽃의 봉오리 즉 보주가 있는 쪽은 왼쪽어깨 위로 걸친다. 대체로 이 보살은 <<대일경>>과 <<대일경소>> 에서 얘기하고 있으며 태장도상(胎藏圖像)등에도 나온다. <<현법사의궤>> 제2와 <<청룡사의궤>> 중권에서도 이 보살을 지장원 9존 중 가장 서쪽에 두고 제개장원 가장 서쪽에는 제개장보살을 안치하여 현도만다라와 그 앉은 자리를 달리한다.
일광보살은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본업을 삼는다. 제장(除障)이 본업이라면 현도만다라에서 제개장원에 일광보살을 안치함은 당연한 일이다. 무분별법은 모든 희론을 떠났으며 옳고 그른 두 가지 변(邊)을 여의었다. 일광보살은 무분별의 불이일체법을 실현하는 보살이다. 모든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나면 태양이 찬란하게 비추듯이 모든 번뇌와 차별이 사라지면 두 변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일광보살은 월광보살과 함께 해와 달이 온누리를 비추어 만물을 자라게 하고 더위를 식히듯이 중생의 보리를 자라게 하는 보살이다.
일광보살의 산스크리트명은 수르야 프라바(Surya prabha)로 수르야는 태양을 의미한다. 태양이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 하여 일광변조보살(日光遍照菩薩), 또는 일요보살(日曜菩薩)이라고도 하였다.
월광보살(月光菩薩)
범어로는 찬드라프라바(Candra-prabha)이며 전달라발라바(戰達羅鉢羅婆)라 음역한다. 월광변조(月光遍照).월정(月淨)이라 번역한다. 이 월광보살에 대해서는 네 가지 설이 있다.
①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세에 보살행을 닦으면서 국왕의 몸으로 나투었을 때의 이름이다. 이 왕은 대위덕을 갖추었고 나중에 노도차바라문에게 머리를 시여하여 보시바라밀을 성취하고는 월광보살이라 불리게 되었다.
② 약사여래의 협시로서 오른쪽에 위치하며 왼쪽의 일광보살과 대칭되는 보살이다. <약사여래본원공덕경>에 의거하면 이 보살은 일광보살과 함께 무량무수의 보살 가운데 상수가 되고 점차 보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 보살은 우유빛 몸을 드러내고 거위자리(鵝座)를 탔으며 손에는 월륜(月輪)을 쥐고 있다.
③ 진언밀교에는 2종의 월광보살이 있다. 하나는 금강계 만다라 현겁 16존의 한 분으로 달처럼 맑고 시원한 진리의 법락(法樂)을 베풀어 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태장계 만다라 문수원(文殊院) 가운데 한 분이다. 밀교의 소의경전인 <대일경> 에는 이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월광동자라는 이름으로 <<대일경경소>>에 비로소 보인다. 금강계에서는 월광보살이 미세회 등 제2원의 서쪽에 있고 밀호는 청량금강(淸凉金剛) , 삼매야형은 반달형이다. 태장계에서는 문수원 중 묘길상의 오른쪽 묘음보살과 무구정광보살 중간에 있다. 밀호는 위덕금강(威德金剛), 삼매양형은 청련화를 반달위에 둔다.
④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안회의 전신이라고 한다. 일본의 묘락대사의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제6권에 "<청정법행경>에 이르기를 월광보살은 안회라 칭하고 광정보살(光淨菩薩)은 중니(仲尼)라 칭하며 가섭보살은 노자라 칭한다고 했는데 이는 천축에서 진단(震旦)을 가리킨 것"이라 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노자는 가섭보살이요, 공자는 광정보살이며, 안회는 월광보살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월광보살은 약사불의 협시이듯 중생들의 몸과 마음의 질병을 다스리고 있다.
약왕보살(藥王菩薩), 약상보살(藥上菩薩)
일광, 월광보살이 모든 제난을 제거하는 보살이라면 이 분은 좀더 좁혀진 병에 대한 처방이 으뜸가는 보살이다. 자신의 몸을 남김없이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정신을 치영하게 보여 주신 분으로 공양할 때에 그 불이 1천 2백년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범어로는 바이싸쟈라자(Bhaisajya-raja)이며, 좋은 약을 베풀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의 두 가지 병고를 구완하고 >簫求 보살이다. 아미타불의 25보살 중 한 분이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과거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지 겁에 유리광조불이 있었으며 그 나라의 이름은 현승번(懸勝幡)이고 그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상법 중에 일장이라고 하는 한 비구가 있었다. 총명한 데다 지혜가 뛰어났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대승여래의 위없고 청정하며 평등한 큰 지혜를 널리 설하였다.
그때 청중 가운데 성수광장자(星授光長者)가 대승의 평등하고 큰 지혜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이 너무나 기뻐 설산에 나는 양악으로 일장비구와 승려들을 공양하고는 원을 발하였다. "이 공덕으로써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오니 만약 어떤 중생이든지 제 이름을 듣는 이는 세 가지 병고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그때 장자에게는 전광명이라는 아우가 있었는데 형과 함께 제호와 양약으로 일장비구와 대중들에게 공양하며 큰 보리심을 발하여 원대로 성불하였다. 그때 대중들이 성수광장자를 약왕이라 찬탄하였고 전광명을 약상이라 칭찬하였다. 그것이 마침내 약왕.약상의 두 보살이 된 것이다. 약왕보살은 모든 원을 성취하고 미래세에 성불하게 되면 정안여래(淨眼如來)가 될 것이라 하였다. 정안의 범어 이름은 비말라네트라(Vimala-netra)이다. 약상보살도 또한 성불하면 정장여래(淨藏如來, Vimala-garbha)가 된다.
<법화경> 제6권 〈약왕보살본사품〉에 는 과거 무량항 하사 겁에 일월정명덕여래 (日月淨明德如來)가 있었고 그 부처님의 수명은4만 2천 겁이며 그때 일체중생희견 보살이 있었는데 고행을 닦고 정진하여 일심으로 부처님 되기를 구하기 1만 2천 년, 마침내 현일체색신삼매를 얻었다고 하며 그 보살이 바로 현재의 형상은 머리에 묘보관(妙寶冠)을 쓰고 감발은 귀밑으로 드리워졌으며 몸은 아침의 햇살처럼 눈부시고 왼손은 정(定)을 표현하며 주먹을 쥐어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혜(慧)를 상징하며 구름위의 태양을 가리킨다. 대비구세(大悲救世) 상이다.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
상불경은 범어 사다파리부타 (Sadapa-ribhuta)의 義譯이다.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는 이'라는 뜻이다.
<법화경>제20 <상불경품>에 등장하는 보살이다. 줄여서 불경보살 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 인행을 닦을 때의 모습이다.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상법말(像法末)에 보살비구가 있었는데, 욕설로 꾸짖고 막대기나 기왓장 돌멩이로 때리고 하는 못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을 향해 "나는 그대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장차 불성을 계발해 부처님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하고는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배하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상불경"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한다.박해를 가한 비구와 비구니,우바새와 우바이들은 지옥에 떨어졌는데 상불경보살의 역연(逆緣)에 의해 다시 지옥에서 인간의 세계에 태어나 성불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상불경보살의 역연을 바탕으로 번뇌절복의 방법과 역연의 공덕을 설하였다.
천태대사의 <법화문구> 제10권에서는 상불경을 해석하면서, "안으로는 불경(不輕)의 마음을 간직하고, 밖으로는 불경의 경계를 존경하며, 몸으로는 불경의 행을 실천하고, 입으로는 불경의 가르침을 펴며, 사람들에게는 불경의 눈매를 짓는다"라고 하였다.
이 보살은 항상 입으로 <법화경>의 가르침을 설하고 몸으로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마음으로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다.
상불경보살은 사람들에게 불성이 갖춰져 있음을 일깨워주는 보살이다. 범부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아니, 아무리 일러주어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상불경보살은 바로 이처럼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성의 내재를 일깨워 줄 뿐 아니라 불성을 계발하면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펴는 보살이다. 본래 상불경보살은 <법화경>을 비롯하여 어떠한 경전도 외우거나 읽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예배만 행할뿐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 보살이 입으로 말만 앞세우는 이가 아니라 실천을 중요시하는 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많은 겁이 지난 뒤 이 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사부대중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묘음보살(妙音菩薩
범어로는 가드가다스바라(Gadgadasvara)이며, 번역한
이름으로는 묘후(妙吼).묘음(妙音)이라 한다. <정법화경>에서는 전자를 쓰고 있고 <묘법연화경> 제24품에서는 후자를 쓰고 있는데 후자쪽이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동
방의 정화수왕지불(淨華宿王智佛)이 계시는 정광장엄국(淨光莊嚴國)에 머물고 있는 보살이다. 옛적에 묘장엄왕의 왕후 정덕(淨德)부인이 운뇌음왕불(雲雷音王佛)에게
10만 가지의 악기로 1만 2천 년 동안 연주하여 음악 공양을 올리고 아울러 팔만 사천의 칠보 바리때에 향기로운 음식을 받들어 공양한 공덕으로 정화수왕지불이 있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때의 이름이 묘음으로 바뀐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 사바세계에 와서 문을 듣게 된다.
묘음보살이 몸을 한 번 움직이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온갖 칠보의 연꽃이 비내리듯 하며 백천 가지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거대하고도 장중한 오케스트라가 자연스레 펼쳐지는데 이 악기들은 연주하는 자가 없이
스스로 그렇게 소리를 낸다고 한다. 따라서 묘음보살은 엄청난 위신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묘음"이라는 그 이름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보살의 모습은 혀으<법화경>〈묘음보살품>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 보살은 눈이 광대하기가 푸른 연꽃잎과 같고 그 청명함은 백천만 개의 달을 합한 것처럼 눈이 부시다. 그 얼굴은 단정하여 이보다 뛰어난 이가 없고,
몸은 진금색으로서 무량한 백천의 공덕으로 장엄되어 그위덕이 한량없고 광명이 그 몸으로부터 나와 온 세계를 두루 비춘다. 낱낱의 상호가 원만구족하여 마치 나라연
(那羅延 ; 금강역사)의 견고한 몸과 같다.
이 보살은 수많은 삼매를 증득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겨 드는 삼매는 보현색신삼매(普現色身三昧)이다. 이
삼매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라하기도 한다. 묘음보살의 일정한 모습이 없는 것은 중생들을 교화 하고자 34응신을 나투므로 일체의 색신을 다 나타내는
삼매에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광장엄국토에 돌아가 <법화경>을 설하고 있다.
삼매의 경지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는 보살이 묘음보살이다.
지혜가 많아서 한량없는 삼매를 얻고 34身을 나타내어 여러 곳에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설법한다.
지난 세상에 10만 종의 풍류를 운뢰음왕불(雲雷音王佛)에게 공양하고 동방의 일체정광장엄국(一切淨光莊嚴國)에 태어나 8만4천 보살에게 둘러 싸여 사바세계에 와서 영산회상에서 석존께 공양하고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가다. 묘음보살의 신비스러운 신통력은 바로 삼매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는 여러 가지 삼매를 성취하는데 살펴보면,
묘당상삼매(妙幢相三昧)
말 그대로를 풀이하면 묘한 깃발을 한 모습인데 그것은 일체의 모습을 뛰어넘은 무상(無相)의 상이라 한다.
법화삼매(法華三昧)
모든 현상의 본체를 공(空)으로 보되 현상이 나타난 모습을 등한시 하지 않고 그 본체와 현상의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中)의 진리를 나타낸다.
정덕삼매(淨德三昧)
맑고 깨끗한 덕을 몸에 갖춘 것으로 그 맑고 깨끗함이란 유와 무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수왕희삼매(宿王戱三昧)
예로부터 갖춘 지혜의 힘으로 자재롭게 움직인다. 더욱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유희일진대 거기에는 업의 속박이 없다.
무연삼매(無緣三昧)
인연이 없는 중생까지 구제한다.
지임삼매(智印三昧)
세간과 출세간, 전체와 부분 등에 대한 갖가지 지혜를 갖춘다.
해일체중생언어삼매(解一切衆生言語三昧)
일체중생의 언어를 잘 이해하여 그들에게 알맞는 가르침을 편다.
집일체공덕삼매(集一切功德三昧)
모든 공덕을 다 갖춘다.
신통유희삼매(神通遊戱三昧)
어떤 것에도 사로 잡히지 않고 자재롭게 심신을 움직인다.
혜거삼매(慧炬三昧)
지혜와 광명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인도한다.
장엄왕삼매(莊嚴王三昧)
훌륭한 덕으로 장엄하여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감화 시킨다.
정광명삼매(淨光明三昧)
맑고 깨끗한 광명을 놓아 번뇌를 없앤다.
정장삼매(淨藏三昧)
마음을 온통 깨끗한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불공삼매(不共三昧)
붓다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신집중이다.
일선삼매(日旋三昧)
태양이 쉼없이 돌면서 지상의 만물을 비추듯이 모든 만물을 비추어 살린다.
그러나 이보살을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삼매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이다.
현일체색신삼매는 보현색신삼매(普現色身三昧)라고 하는데 갖가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들 뭇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몸을 변화시켜 나투는 것을 의미한다. 34가지 중생신의 모습에다가 4가지의 성인의 몸, 즉 성문, 연각, 보살, 부처님의 모습으로 몸을 변화 시킨다.
법기보살(法起菩薩)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나오는 보살로 산스크리트명은 다르모가타(Dharmogata), 바로 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법기 또는 법용(法涌)이라 했다. 그런데 반야계 경전에서도 이 보살이 등장하니 거기서의 이름은 담무갈(曇無竭)이다. 다르모가타의 음역이다. 구체적으로 [소품반야바라밀다경] 권10의 {살타파륜품(薩陀波侖品)}에서는그가 동쪽 중향성(衆香城) 에서 머무르면서 법을 설한다 했다. 바로 그 중향성이 금강산에 실제로 존재한다. 만폭동의 마지막 폭포인 화룡담에서 내륙 산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백운대가 나오고 곧이어 높이 1천3백81m의 봉우리가 눈 앞을 가로 막는데 그것을 중향성이라 한다. [반야경]에 말하는 이곳이 법기보살이 머무는 거주처임이 분명하다. 법기보살은 반야의 법을 일으키는 보살임에 틀림없다. 금강산의 숱한 사암에서는 법기보살을 좌상 혹은 입상의 형식으로 봉안했다는 사실이 기록에 전한다.
상제보살(常啼菩薩)
산스크리트명은 사다프라루디타(Sadaprarudita) 살타파륜(薩陀波崙)이라 음역.
보자보살(普慈菩薩) 또는 상비보살(常悲菩薩) 이라고도 한다.
어릴때부터 울기를 잘해서 중생들이 고통세계에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울며, 부처님 없는 세상에 나서 공한림중(空閑林中)에서 걱정하여 또 운다고 하여, 용 귀신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상제보살은 금강산 중향성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법기보살에게 법을 구하는 구도자로 묘사되고 있으니 법기보살과 더불어 상제보살은 금강산 그 불연 깊은 대지에서 진리를 찾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아련히 전해 주고 있다. 상제보살은 6백만가지의 반야바라밀 삼매문으로 고통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을 반야의 밝은 지혜로 인도할 것이다
상제라는 이름이 있게 된 인연에 대해서는 <대지도론>96권에 기록되어 있다.보살로 16선신의 그림에는 [반야경]의 수호자라고도 한다. 묻기를, 어찌하여 살타파륜 즉 상제라 이름합니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상제라 합니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답하기를, 어떤 사람의 말을 빌리면 이 보살은 어려서 울기를 좋아하였기에 상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보살이 대비심으로 매우 부드러워서 중생이 악도에 떨어지거나 가난하여 굶주리거나 늙고 병들며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을 보면 그로 인해 슬피 울므로 그래서 뭇사람들이 그를 상제라고 하였다. <반야바라밀다경> 제398권 에서는 또 이렇게 설한다. 상제보살마하살은 본래 반야바라밀다를 구할 때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진귀한 보배와 재물을 돌아보지 않으며 명예를 좇지 않고 공경을 바라지 않으며 반야바라밀다를 듣게 되면, 그 생각으로 환희에 가득 차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너무 기쁜 나머지 엉엉 소리를 내어서 울되 하루에서 때로는 일주일 내내 지나가지만 시간 가는 줄 잊어버리고 잠자고 식사하는 것도 입으며 피로한 줄을 모르고 춥고 더운 것을 생각지 않으며 안팎의 모든 경계에 대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제라 한다.
이 보살은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불도를 추구하고 공한한 숲속에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한정 울어대기도 한다. <대품반야경> 제27권 외에 <도행반야경> 제9권 <살타파륜보살품>에 의하면
이 보살이 꿈속에서 동방에 반야바라밀의 위대한 법이 있음을 꿈꾸고 법을 구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하다가 악마들을 만나 그들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면서, 마침내 2만리를 지나 간다바티에 이르러 다르모드가타(Dharmodgata)를 만나 법을 얻고 간다라에서 <대비바사론>을 편찬하기 이전에 이미 반야를 유포한 실제인물이라 한다.
용수보살(龍樹菩薩)
용수(龍樹;Nagarjuna),그는 대승불교의 모든 학파에서 제2의 부처님으로 추앙될 만큼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서 공(空)의 논리를 체계화한 중관파(中觀派)의 시조다.
인도의 대승불교를 연구하여 그 기초를 확립하여 놓아 대승불교를 크게 선양하였다.
인도 제14조이며 공종(空宗)의 시조이다.
여러 가지 역사적인 고증으로 보건대 그는 남인도 출신의 총명한 브라만이었다.
남인도 사타바나 왕조의 왕이었던 '가우타미푸트라 샤타가르니'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것을 보면 그는 기원후 2세기 후반과 3세기 전반 사이(A.D.약 150~250)의 인물로 추정된다.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되는 구마라집의 [용수보살전]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4베다, 천문, 지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하였다.
천성이 총명한 브라만으로서 세명의 친구를 두었는데 이들은 인생의 향락은 정욕을 만족하는데 있다 하고 이성에 대한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 나머지 몸을 숨기는 둔갑술로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모두 범해 임신시키는 일까지 벌였다.
그들의 소행임을 눈치챈 왕은 군사를 부려 땅위에 모래를 뿌리게 한 다음 그들의 발자국이 모래위에 새겨지자 창칼로 그 주변의 공중을 찔러대 세명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피흘리며 죽어갔고 용수 자신만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이 사건을 통해 용수는 욕락은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것을 깨닫고 절에 가서 가비마라에게서 소승3장을 배우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설산지방으로 갔다.
거기서 늙은 비구를 만나 대승경전을 공부하고 후에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대승경전을 구하여 깊은 뜻을 잘 통달하였다.
용수는 또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 왔다고 하며, 남천축의 철탑을 열고 금강정경을 얻었다 한다.
용수(龍樹)보살은 불멸후 6백년 경에 남인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마명보살의 뒤에 출세하여 대승 법문을 성대히 선양하니 이로부터 대승불교가 발흥하였으므로 후세에 그를 존중하여 제2의 석가,팔종의 조사라고 일컬었으며 선(禪)의 전등(傳燈)으로는 제14조가 되고 있다.
용수가 남인도 지방에서 종횡무애로 미묘한 설법을 하며 외도 및 소승교파들을 여지없이 논파하고 올바른 진리로써 대승의 법을 높이 깨닫지 못하고
한갓 복업선과(福業善果)만을 위주하고 기복작복의 도법을 고작으로 믿으며 구원하고 있으므로 용수의 고매하고 원대한 자리이타의 원융무애한 성
불의 이상론은 당대의 교계는 물론 일반사회에 까지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굉장한 논의를 야기
시켰다.
"복업과보는 이 세상의 으뜸이라 어느 누가 구하지 않으며 소원하지 않으리오? 이것을 존자는 일체 다 버리고 오직 불성만을 설하며 깨달으라-하니 대체 불성이란 어떠한 것인가? 좀 보여주시오!"하며 윽박하여 논전을 벌리는 것이었다.
"불성을 보고자 하거든 먼저 무아(無我)의 경에 들지어다!"용수는 진정 간곡하게 설하였으나 미혹한 관념에 사로잡힌 둔근한 청중들에게 용이하게 통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용수는 전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중에게 둘러 쌓여서 설법을 하고 있었다."불성이 큽니까? 작습니까?""큰 것도 아니요, 작은 것도 아니며 넓은 것도 아니요, 좁은 것도 아니며, 복된 것도 아니요, 죄스러운것도 아니며, 또한 생도 아니요 사도 아닌 것이다."
이때 홀연 설법하는 용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다만 일륜의 밝고 맑은 둥근모양이 공중에 나타나며 허공에서 이와 같이 설법하는 소리만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대중은 모두 신비경에 도취되어 숙연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대중가운데서 극진히 찬탄하는 낭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 이것이야말로 불성의 실상(實相)이요 무상삼매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모양이 만월과 같은 곳에 불성의 뜻은 확연하며 허명하였도다!"
이와 같은 찬탄을 듣자 용수보살은 비로소 몸을 나투면서 엄숙하게 한 수의 게송을 읊었다.
몸은 둥근 달의 형상을 나투어
모든 부처님의 체(體)를 보였도다.
설법은 그 형상이 없는 것으로
소리와 빛이 아닌 것을 말하였도다.
이 설법은 능히 청중을 깊이 감화시켜 즉석에서 출가를 원하며 용수의 제자가 된 사람이 무수 하였으며 윤월원명의 상을 찬탄한 그 낭낭한 음성의 주인공은 가나뎨바라고 하는 한쪽 눈이 먼 청년이었다.
가나는 외눈, 뎨바는 하늘이라는 뜻이며 그는 바라문 출신으로 학식과 변재가 출중한 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는 멀리서 용수의 높은 도성을 듣고 논의하기를 결심하고 찾아온 것이었으나 이 위대한 선법을 듣고는 진심으로 경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법회가 파한 후 용수를 다시 뵈옵기를 청하였다.
뎨바가 위의를 단정히 갖추고 방장실로 들어감에 용수는 이미 그 비범한 자질을 간파한지라 정중하게 그를 맞았다.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용수는 곁에 있는 쇠발우를 들어 묵묵히 뎨바의 면전에다 놓고 청수를 철철 넘치도록 붓는 것이었다.
이것을 묵묵히 지켜보던 뎨바는 선뜻 품에서 바늘하나를 꺼내서 그 쇠발우의 청수 속에 던졌다. 이 순간 용수의 안색은 깊은 유열(愉悅)에 빛났다. 이후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간담상조하는 현묘한 법론을 전개하였다. 뎨바는 용수의 대법을 이어받아 제15조가 되었으며 중남부 인도의 외도 및 소승교파를 변파(辯破)하여 대승불교를 크게 진양하였으나 외도의 원한을 사서 비장하게 순교하였다.
불교의 보살2끝
불교에서 보살의 종류3
무착보살(無着菩薩), 세친보살(世親菩薩)
유식학파를 개창한 맴버들은 미륵(彌勒,Maitreya) 무착(無着,Asanga, A.D.310~390) 세친(世親,Vasubandhu, A.D.320~400)이다.그러나 이들 중 미륵은 실존인물이 아닐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무착과 세친은 유식학파의 체계를 공고히 다진 실존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인도 서북부 간다라 지방의 페샤와르에서 태어났다. 무착은 형이고 세친은 아우였다. 처음 이들은 소승불교에 귀의해서 소승불교에 남다른 공로를 끼쳤으나 나중에 대승으로 전환했다. 유식학의 본격적인 발전은 아우 세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착은 대승 보살의 길로 향하는 강한 열정과 대자비의 정신이 철철 흘러 넘치는 감성의 소유자였음에 비해 세친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날카로운 이성의 소유자였다. 불교의 모든 개념들을 세분화하여 그것을 정리해 나간 세친의 주저[아비달마구사론]은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논서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교과서로 일컬어질 정도로 불법의 세밀한 분석과 정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을 정도다.
무착은 이렇게 뛰어난 세친을 대승불교로 개종 시킨다. 무착의 주저[섭대승론]도 가히 유식철학의 개론서라 할 정도로 유식의 주요개념을 총망라하고 있을 뿐더러 유식의 가르침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 도리인가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용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관불교가 너무 공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입장을 제거하는 허무론에 치우쳐 있기에 그 약점을 극복하고자 모든 것의 입지 기반으로서 식(識;마음)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마음이 변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는 유식현상학(唯識現像學)이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망자를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영계(靈界)의 안내자를 인로왕보살이라 한다. 한국 사찰의 불전 하단에는 죽은이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한 영가단이 있으며 그 뒤편으로는 감로탱화(甘露幀畵; 망자나 아귀에게 감로수를 베풀어 구제하기에 감로탱화라 한 것이다)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망자들이 생존시 속세에서의 생활상과 아귀, 의식승, 7여래상이 차례대로 그려져있으며 그 7여래상 좌우측에 망자들을 이끌고 정토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과 관세음보살 및 지장보살이 보인다. 그러나 인로왕보살이 따로 있는지 아니면 망자들을 정토로 이끄는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 지장보살을 인로왕보살로 보는지 확실치 않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우란분재나 49재 때 나무 대성 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이라는 번(幡)을 도량에 설치하여 망자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해 줄 것을 발원하고 있다.
호명보살(護明菩薩)
석모니불이 보살로 있을 시절, 당신께서는 깨닫기 바로 직전에 도솔천에 머물렀는데, 그를 일러 호명보살이라 한다. 호명이란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중생을 보호하고 그 길을 밝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도솔천에 태어난 호명보살처럼 바로 다음 생에서 붓다가 될 보살, 아니 현재 비어 있는 그 붓다의 자리에 앉게 될 보살을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 한다. 일생보처보살이 도솔천에 태어나는 이유는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등의 도솔천 아래의 하늘은 게으름과 욕정이 어느 정도 남아 있고 도솔천 보다 위에 있는 화락천과 타화자재천은 고요한 선정만 좋아한 나머지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풍재보살(豊材菩薩)
범어로는 보가바티(Bhogavati)이며 자재주보살(資財主菩薩)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지혜만으로도 원만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지만 복덕만으로도 원만한 삶을 살지 못한다. 가장 원만한 삶이란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여야 한다. 이 풍재보살은 복덕과 지혜를 고루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보살이다.
<대일경소> 제16에 의하면 "명비(明妃) 자재주(資財主)는 능히 자재하게 구하는 자들에게 시여하는 보살이다"라고 하고 있다. <태장계만다라존위현도초사> 제6에도 "오른쪽의 활짝 핀 연꽃은 불과(佛果)의 지혜이기 때문에 재물을 상징하고 왼쪽의 봉오리진 연꽃(合蓮)은 중생의 심지 (心地)에 부처님의 종자를 함장하고 있는 것이어서 의당 풍부할 수밖에 없다. 두 송이의 연꽃은 복과 지혜의 상징이다. 어깨위에 연꽃을 걸쳐 놓은 것은 곧 법게에 시여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라고 한다.
복덕(재물)과 지혜를 함께 갖춘 분을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양족존이다. 풍재보살에게 귀의하여 풍재보살을 염하고 풍재보살을 조성하며, 풍재보살의 종자를 관하는 자는 영원히 기갈에서 벗어나며 헐벗음에 시달리지 않으며 거처가 없어서 고통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한다. 풍재보살은 중생을 이끌어 보리의 바른 길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먼저 열어 놓는 보살이다. 현도태장계만다라 관음원 중 제3행 백신관자재보살 (白身觀自在菩薩) 서쪽, 즉 아래쪽에 안주하는 보살이다.
밀호는 여의금강(如意金剛)이며 종자는 사(sa), 삼매야형은 두 줄기 연꽃이다.
형상은 몸의 살결은 희고 왼손에는 활짝 핀 한 송이의 연꽃과 아직 피지 않은 연꽃 세 송이를 함께 지니되 활짝 핀 연꽃은 오른쪽 어깨 위에 걸치고 봉오리 연꽃은 왼쪽 어깨에 걸쳐 놓는다. 오른손은 팔을 약간 구부리되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한다. 무명지와 소지를 구부려 어깨 앞에 들고 있으며 붉은 연꽃좌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한다. 밀호가 "여의금강"이듯이 모든 원하는 바를 원만하게 성취시키는 보살이다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범어로는 아카사가르바(Akasagarbha)이며, 혹은 가가나가르바(Gag-anagarbha) 라고도 한다.
번역하여 허공장 또는 허공잉(虛空孕)이라고도 한다.
허공장보살은 서방으로 80억 항하사 수의 세계를 지나
"일체향집"이란 불국토가 있고 거기에 승화부장불(勝華敷藏佛)이 계시는데
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보살이다.
<허공장보살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보살이 모든 삼매를 구족함은 큰 바다와 같고 계법을 이룩함은 수미산과 같으며
인욕하는 마음은 금강과 같고 진정한 용맹은 질풍과 같으며 지혜는 허공처럼 광범위하고
항하사의 모래와 같다. 여러 보살 가운데 홀로 뛰어남은 큰 당기(幢)와 같고 열반의 길을 향해
나아감은 위대한 도사(導師)와 같으며 빈궁한 자에게는 감로수를 준다. 선근을 지팡이로 삼아
열반의 다리를 밟고 해탈을 사다리로 삼아 생사의 배를 건너며 모든 이교도를 굴복시킴은 사자와
같고 더러운 소견을 씻어 버림은 우수(雨水)와 같으며 번뇌의 적을 부숴버림은 벼락과 같다.
이 보살은 또한 승화부장불의 위신력을 빌어 사바세계를 정토로 변하게 하고 일체 대중의
두 손에 여의마니(如意摩尼)를 주어 갖가지 보물이 비오듯 내리게 하며 병을 제거하고
복을 얻게 하기 위하여 모든 다라니를 설하는 보살이다. 따라서 이 보살을 생각하면
큰 힘을 얻어 모든 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보살이 갖는 공능은
허공처럼 광대무변한 자비와 지혜일 것이다. 선악의 행을 나타냄은 밝은 거울과 같고
부끄러움 아는 자를 덮어줌은 훌륭한 옷과 같으며 질병에 신음하는 자에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더위에 시달리는 자에게 시원한 바람과 같다는 것이다.
허공장보살에는 오대허공장(五大虛空藏)이 있는데 중앙의 법계허공장, 동방의 금강허공장,
남방의 보광허공장, 서방의 연화허공장, 북방의 업용허공장이 있으며 형상도 일정하지 않다.
부사의혜보살(不思議蕙菩薩)
불가사의한 지혜를 지닌 보살로 범어로는 아씬트야마티닷타(Aci-ntyamatidatta)이며 현도태장계만다라(現圖胎藏界曼茶羅) 제개장원(除蓋障院) 가운데 9존이 있고 그 중앙에 안치한 보살이다. 이 보살은 방편과 실제가 본래 둘이 아닌 부사의한 지혜를 중생들에게 시여하여 중생들의 지혜 없음을 끊고 제거하고자 하는 본서(本誓)를 품고 있는 보살이다.
이 보살의 진언은 <대일경> 제2 <보통진언장품>에 나오는데 "나무 삼만다 옴"이다. 종자는 우(u)이며 이 부사의 진언 "우"은 무생삼매에 극하였다. 다만 법문에 약간의 차별이 있을 뿐, 제법이 필경에는 평등함을 알기 때문에 능히 갖가지 번뇌 악업으로 여래의 사업을 삼아 무간지옥속에서 삼선(三禪)의 법락을 받으므로 부사의 해탈문이 라고 한다. 만일 이러한 해탈문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설사 오랫동안 생사에 처하더라도 언제나 염증을 내거나 나태한 생각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종자(種子) 우(u)가 진언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밀호는 난측량금강(難測量金剛)이며 삼매야형은 보주형(寶株形)이다. 형상은 온몸이 황백색이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세워 오른쪽 사선으로 향하게 하고 무명지와 소지를 구부리고 엄지는 무명지를 눌러 이른바 검인(劍印)을 맺었으며 왼손은 주먹을 쥐되 연꽃 위에 여의주를 올려 놓은 지물(指物)을 지니고 있다.
<대일경> 제4 <밀인품(密印品)>에 이 보살의 인계와 진언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그에 의하면 이 보살은 지혜의 손 즉 오른손으로 진다마니보형(진다마니보형)을 집지하
고 있다. 이는 부사의한 지혜를 상징한다. 그 진언은 "나무 삼만다 못다남 살마사 발리포라 사바하"라 한다. <대일경소> 제13의 해설에 의하면 이 진언은 여의주와 같다.일체 중생의 뛰어난 원(願)을 만족시켜 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이 부사의혜보살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 연꽃과 종자.진언이 모두 부사의하여 어떠한 중생, 어떠한 장소, 어느 때이거나 모두 원만하게 원을 만족시켜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보살이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하는 분이다.
향왕보살(香王菩薩)
범어로는 간다라자(Gandha-raja)이며 건타라자 라고 음역한다. 이 향왕보살은 향왕관음(香王觀音)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보살의 설법의 향기가 온누리에 두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왕이 그 국토에서 가장 자재한 것처럼 이 보살은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온 법계에 자재하다는 것을 뜻한다. 관음보살의 부속보살이다.
<향왕보살다라니주경>에 의하면 이 보살의 탱화는 크게 하거나 작게 하여도 무방하다고 한다. 몸의 살결은 우유빛이고 얼굴 모습은 매우 단정하며, 머리에는 천관(天冠)을 쓰고 목에는 영락(瓔珞)을 걸었다. 오른팔은 아래로 드리우고 다섯 손 락을 모두 폈으니 이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그 다섯 손가락 끝에서는 각기 감로수가 흘러나와 천상을 제외한 오도중생(五道衆生)에게 시여하고 손 아래에 흑귀(黑鬼)를 위무하고 있다.왼팔은 팔꿈치를 굽힌 채 손에 연꽃을 들어 가슴 앞에 안치하였는데 이 연꽃은 이 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대에서 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향왕보살이 깔고 앉은 좌대는 살아 있는 연꽃좌이다.목 뒤 원광이 있고 위에는 산개가 있다. 오색이 찬란한 비단으로 의복을 삼았는데 겹친 옷자락이 어깨 위로 연결 되었으며 한가닥은 붉은색이고 다른 한 가닥은 황색이다.
만일 어떤 구도자가 증익(增益)을 원하거나 혹 죄의 소멸을 원하면 이 보살을 본존으로 받들어 수행하는 법은 반드시 향왕보살법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 수법(修法)할 때는 이 향왕보살 악에 네 치의 방단(方壇)을 설치하고 꽃이나 향을 공양해야 한다. 그리고 기름으로 등을 사르고 한밤중에 일어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향왕보살다라니주를 1,008편 지송한다. 만일 새벽이 오기까지 졸거나 잠자지 아니하고 오로지 일념으로 이 향왕보살다라니주를 지송할 수만 있다면 복덕과 지혜를 비롯하여 구하는 바 모든 소원들이 원만하게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이 <향왕보살다라니주경>은 고려대장경이 바탕이 되어 신수대장경에도 실려 있는데 우선 이 다라니를 10만 편지심으로 지송한 뒤에 다라니지송의궤에 따라 단을 차리고 지송하라고 한다.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범어로는 바즈라가르바(Vajra-garbha)이며 금강장.금강태(金剛胎)라고도 한다. 현겁 16존(尊)의 한 보살이며 금강계만다라 미세회.공양회 등 외원방단(外院方壇) 북방4존 가운데 제3위에 위치하는 보살이다.
밀호는 지교금강(持敎金剛).입험금강(立驗金剛)이며 종자는 바(Va), 삼매야형은 네개의 독고저(獨股杵)에 의한정상(井狀)을 하고 있다. 이는 4지(四智)에 만지(萬智)를 포섭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원경지.묘관찰지.평등성지.성소작지의 네 가지 속에 온갖 지혜가 갈무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형상에 있어서는 청백색의 몸을 드러내 놓고 왼손은 주먹, 오른손에는 청련화를 쥐고 있으며 꽃 위에 독고저를 올려 놓고 있다. 대체로 이 보살은 현겁 16존의 한 분으로서 그 이름이 모든 대승경전 속에 자주 나타나는데 <화엄경>제6회<십지품>에 특별히 열거하여 상수보살로 삼고 있다.
<십지경론>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찌하여 금강장이라고 하는가. 장(藏)은 곧 견고하다에 바탕을 두어 이름한 것이니 비유하면 수장(樹藏)과 같다. 이 말은 나무가 매우 단단하면서도 꽃과 잎을 갈무리하고 때가 이르면 그 꽃과 잎을 돋우어 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또한 "품고 있음"을 장이라 한다. 견고하기는 금강과 같다. 그래서 금강장이라 한다. 이는 이 보살의 선근이 나머지 모든 선근 중에서 그 힘이 최상이어서 금강처럼 견고 하고 또한 능히 인천도행(人天道行)을 생성시킨다. 다근 선근들이 이 보살의 선근을 파괴할 수 없으므로 금강장이라 한다.
<금강정대교왕경소> 제2권에서는 "금강장은 여타의 금강보살 가운데서도 상수이기 때문에 견주(堅主)라고 한다. 일체 모든 금강보살들의 기이하고 희유한 일들이 다 이 금강장보살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그런 이유로 해서 출생과 아울러 입험금강이니 지교금강이니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여타의 금강보살이란 금강당보살.금강애보살.금강등보살.금강예보살. 금강아보살 등처럼 악에 "금강"의 호가 오는 보살이다. 수많은 금강보살들이 모두가 이 금강장보살로 말미암아 위로는 부처님이 되기를 추구 하고 아래로는 중생제도(上求佛學 下度衆生)의 불사를 짓는 것이다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범어로는 바즈라파니(Vajra-pani) 바즈라다라(Vajra-dhara)이며 집금강보살 비밀주보살이라고도 한다. 보통 금강저를 쥐고 있는 보살을 가리키며 혹은 특별히 밀적금강역사(密迹金剛力士)를 지칭하기도 한다.
증일아함 제22권 <수타품(須陀品)>에 "밀적금강역사는 여래 뒤에 위치하며 손에 금강저를 잡는다"라 하고, <대일경> 제1 〈입진언문주심품(入眞言門住心品)>에 "어느 때 바가범께서 여래가지광대금강법계중에 머무시니 일체 금강저를 지닌 자가 모두 모여들었다"고 하며 19명의 집 금강(執金剛)을 열거하고 있다. 태장만계다라 금강수원(金剛手院)의 제존을 통칭 금강수라고 하는데 이는 금강수가 개별적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통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강수보살에게는 깊은 뜻과 얕은 뜻이 있는데,얕은 뜻으로는 비밀주는 야차왕 (夜叉王)을 가리키며, 이는 야차왕이 금강저를 잡고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호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강수보살이라 한다. 그러나 깊은 뜻으로 본다면 야차왕은 곧 여래의 삼밀(三密)이다. 이 삼밀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서로 알 뿐 설사 미륵보살이라도 오히려 비밀신통에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 비밀 가운데 가장 비밀하여 소위 심밀(心密)의 으뜸이 되기 때문에 비밀주보살이라 하고 능히 이 인(印)을 갖고 있으므로 집금강이라 한다고 <대일경소> 제1에는 기록되어있다.
한편 <이취석(理趣釋)> 상권에서는 "금강수보살마하살이란 이 보살은 본래 보현보살이다. 비로자나불로부터 친히 오지금강저(五智金剛杵)를 받았고 금강관정을 받았으므로 금강수라 한다"라고 하여 보현보살과 같다고 하였다.
<보리장장엄다라니경>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에 문수보살을 안치하고, 갖가지 영락으로 장엄하며 연꽃 위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발우를 받들어 부처님께 올리는 모습을 짓게 하고, 부처님의 오른쪽에는 금강 수보살을 그리되 일체 보배로써 몸을 장엄한다. 얼굴 모양은 분노로 성내는 형상이고, 손에 금강저를 잡고 빙빙 돌리는 형태를 짓는다. 그러면서 연꽃위에 두 무릎을 꿇고 여래를 우러러 뵙는다"라고 하여 문수보살과 동격에 놓고 있다.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범어로는 바즈라가르바(Vajra-garbha)이며 금강장.금강태(金剛胎)라고도 한다. 현겁 16존(尊)의 한 보살이며 금강계만다라 미세회.공양회 등 외원방단(外院方壇) 북방4존 가운데 제3위에 위치하는 보살이다.
밀호는 지교금강(持敎金剛).입험금강(立驗金剛)이며 종자는 바(Va), 삼매야형은 네개의 독고저(獨股杵)에 의한정상(井狀)을 하고 있다. 이는 4지(四智)에 만지(萬智)를 포섭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원경지.묘관찰지.평등성지.성소작지의 네 가지 속에 온갖 지혜가 갈무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형상에 있어서는 청백색의 몸을 드러내 놓고 왼손은 주먹, 오른손에는 청련화를 쥐고 있으며 꽃 위에 독고저를 올려 놓고 있다. 대체로 이 보살은 현겁 16존의 한 분으로서 그 이름이 모든 대승경전 속에 자주 나타나는데 <화엄경>제6회<십지품>에 특별히 열거하여 상수보살로 삼고 있다.
<십지경론>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찌하여 금강장이라고 하는가. 장(藏)은 곧 견고하다에 바탕을 두어 이름한 것이니 비유하면 수장(樹藏)과 같다. 이 말은 나무가 매우 단단하면서도 꽃과 잎을 갈무리하고 때가 이르면 그 꽃과 잎을 돋우어 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또한 "품고 있음"을 장이라 한다. 견고하기는 금강과 같다. 그래서 금강장이라 한다. 이는 이 보살의 선근이 나머지 모든 선근 중에서 그 힘이 최상이어서 금강처럼 견고 하고 또한 능히 인천도행(人天道行)을 생성시킨다. 다근 선근들이 이 보살의 선근을 파괴할 수 없으므로 금강장이라 한다.
<금강정대교왕경소> 제2권에서는 "금강장은 여타의 금강보살 가운데서도 상수이기 때문에 견주(堅主)라고 한다. 일체 모든 금강보살들의 기이하고 희유한 일들이 다 이 금강장보살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그런 이유로 해서 출생과 아울러 입험금강이니 지교금강이니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여타의 금강보살이란 금강당보살.금강애보살.금강등보살.금강예보살. 금강아보살 등처럼 악에 "금강"의 호가 오는 보살이다. 수많은 금강보살들이 모두가 이 금강장보살로 말미암아 위로는 부처님이 되기를 추구 하고 아래로는 중생제도(上求佛學 下度衆生)의 불사를 짓는 것이다
무언보살(無言菩薩)
이 보살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반드시 부처님의 가르침에 걸맞는 말만을 하므로 무언보살이라고 한다.
<대방등대집경> 제12권 <무언보살품>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라자그리하(Rajagrha)의 사자장군(師子將軍) 집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때 허공에서 여러 천신이 말하였다. "동자여, 마땅히 법을 염(念)하고 법을 사유하며 항상 말할 적에는 세상의 일을 말하지 말고 세상을 벗어난 출세간의 법을 분별하여 말할 것이며, 항상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하고 말을 적게 하며 세상일에 온갖 번거로운 느낌이나 시시콜콜한 관심을 일으키지 말며 이치에 동자가 이 말을 듣고 다시 울지 아니하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없었으며 7일 만에 얼굴빛이 환하고 사람을 보고 기뻐하며 눈을 감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사자장군 부부에게 일렀다. "이 아이는 상서롭지 못하니 키우지 않음이 좋겠소. 왜냐하면 벙어리이기 때문이오." 이 말에 장군부부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무언(無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아이가 비록 말은 못하지만 그 몸의 바탕은 원만히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으니 이 아이는 상서롭지 못하거나 박복한 사람이 아니며 반드시 복덕이 있음이 분명하오." 이어지는 경전의 내용에 의하면 사리불이 무언동자가 전생의 죄업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하자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 사람은 큰 보살이니 그런 생각으로 무언동자를 경멸하지 말라. 이 동자는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여러 가지 선근을 심어 보리도에서 러나지 않느니라." 무언보살은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말이 없었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무언이라 한다. 그러나 <대방등대집경>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나 펴기 위해서는 네 가지 무애변재를 갖추어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이익을 주고 이끌어들인다. 무언보살은 세간의 언어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일깨워 준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가 언어에서 비롯되며 세상의 온갖 시비가 언어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무언보살은 가르친다. 몸과 마음과 언어로 짓는 온갖 죄업도 결국은 언어가 기초가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입은 재앙의 문"이라 하였다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
범어로는 아크사야마티르보디사트바(Aksayamatir-Bodhisattvah)로 <대방등대집경> 제27권에 등장하는 보살의 이름이다. 무진혜보살(無盡蕙菩薩).무량의보살(無量意菩薩)이라고도 한다. 현겁 16존의 한 분이며 밀교의 금강계만다라 삼매야회(三昧耶會) 바깥쪽 단의 북방 5존 가운데 서쪽단의 보살이다. 사바세계에서 무진무여(無盡無餘)의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발심하되 위로는 다함 없는 제불공덕을 구하고 아래로는 다함없는 중생을 제도하므로 무진의보살이라 하였다.
밀호는 정혜금강(定慧金剛).무진금강이며 종자는 비(Vi), 삼매야형은 상운택오색운(上雲澤五色雲)이다. 그 형상은 하얀 살결을 드러내어 왼손은 주멸을 쥔 허리 사이에 두고 오른손을 꽃구름을 잡았다.
<대방등대집경> 제27권 <무진의보살품>에 의하면 무진의보살은 동방으로 무수억의 세계를 지나면 불순 세계가 있고 거기에는 보현불(普賢佛)이 있는데, 이 보현불을 모시고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보살이다. 보현불이 사바의 석가모니 부처님 회상에 모인 사리불등의 대중들을 위해 무진의보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이 보살은 일체 모든 법의 인연과보가 무진의라는 이름이 붙게 된 동기라 할 수 있다.
일체 모든 법이 가히 다할 수 없기 때문이며, 보리심을 발함이 불가진이기 때문이며, 내지는 방편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물진이라 한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을 닦으며 그 마음은 자비희사(慈悲喜捨)에 한량이 없다.
그리고 네 가지의 포섭법을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중생계가 다함이 있으면 이 보살의 뜻도 다하겠지만 중생계가 다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의 뜻도 다함이 없다. 그래서 무진의보살이라 한다. <법화경>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인연 과 자비 공능을 드러내기 위해 출현하기도 하여 우리 한국불교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보살이다. <대방등대집경>에서는 이 보살이 불순세계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집설법회 중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보살들과 함께 오는데 불가사의한 상서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안보살(普眼菩薩)
원각경(圓覺經)><보안보살장(普眼菩薩章)>에 부처님의 대고중(對告衆)의 대표로 등장하는 보살이다. 종밀이 찬술한 <대방광원각경대소> 제6권에서는 보안보살을 일컬어 보안지보여래(普眼智輔如來)라 표현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우리나라 여말선초의 희양산 사문 함허득통(涵虛得通)이 해석한 일명 <함허소> 상권 <보안장(普眼章)>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햇빛이 두루 비추는 것을 "보"라 하고 명료한 근(根)을 "안"이라 한다. 이른바 보안이란 마치 햇빛이 두루 비추어 밝히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아 비지(悲智)를 보운(普運)하여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음을 말한다. 앞의 <보현장>에 이어서 보안의 물음을 제기한 것은 어째서인가. 문수는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요, 보현은 닦음을 표현한 것이니 오수(悟修)의 이치가 이미 드러났지만 닦는 방법을 밝히기 어려우므로 이 보안보살이 등장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환(幻)과 같은 삼매를 닦고 익혀 위대한 적멸 바다에 증입(證入)케 하기 위하여 기수(起修)의 방법을 열어 놓은 것이다.
자타의 신심은 신기루와 같아 본래 공하고 범부와 성인,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하나의 경계로 통한다. 유일하게 청정하여 법계에 항상 두루한 것은 이 보안보살이 관하는 바다.
이로써 방법을 삼고 이로써 관(觀)을 지으면 다른 악도의 갈래를 밟지 않고 곧바로 깨달음의 큰 길을 답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바른 방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관은 정사유(正思惟)의 관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의거하여 닦으면 어찌 그 어느 행인들 이루지 못할까 보냐. 또한 어찌 그 어느 환인들 여의지 못할까 보냐. 행이 이미 이루어지고 환을 이미 여의였다면 원각의 경지에 달아 들어가지 못할까를 염려할 게 뭐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가 보안보살이 보현보살 다음으로 이어서 의문을 제기한 까닭이다. 환을 여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을 알고자 한다면 <보안장>을 보라. 몸과 마음이 환이라 의보와 정보의 관이 멸하면 청정하고도 뚜렷이 밝은 부처님의 경계가 드러나리라. 보안보살은 환(幻)을 여의고 행(行)을 닦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보적보살(寶積菩薩)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무량의경>과 <법화경>을 설할 때 대고중, 즉 청법대중이었던 팔만의 보살 가운데 한 분이다. "보배가 모이고 쌓인다"라는 뜻인데 이 보살의 이름을 딴 보적부의 경전군(群)이 있다. <승만경> <대아미타경> <부자합집경>과 같은 대승경전들도 모두 이 보적부의 경전들이며 방등부(方等部)에 속한다.
<대지도론> 제7권에 "보적왕자보살은 베살국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며, 제9권에는 "대지도초품중시방제보살래석론제십오(大智度初品中十方諸菩薩來釋 論第十五)"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는 "이때 동방으로 항하사등 제불의 세계를 지나 그 세계 가장 끝에 다보(多寶)라는 나라가 있고 보적이라는 부처님이 계시어 지금 현재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한다"라는 경의 내용을 기술하고 이에 대한 논(論)이 이어진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일체세계가 무량무변하다면 어떻게 그 세계가 가장 끝머리에 있다 할 수가 있는가. 가장 끝머리라고 하면 이는 가장자리가 있다는 상(相)에 떨어진다. 만약 세계에 가장자리가 있다면 중생도 한정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이 낱낱이 무량한 아승지의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에 들게 한다면 다시 새로운 중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다보라고 했는데 보물에는 재보와 법보가 있다.어떠한 보배가 많아 다보라고 했는가. 즉 두 가지 보배가 다 있다. 또한 많은 보살의 법성(法性) 등 모든 보배를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다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불호를 "보적"이라 했는데, 보적불은 곧 보적보살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보적이란 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팔정도(八正道) 등 모든 법보가 빠짐없이 집적되어 있는 보살이란 뜻이다. 이 보살이 처음 태어날 때 온갖 보물이 쏟아졌는데 땅에서 보물이 솟고 하늘에서 보물이 내렸으며 사방에서 온갖 재보가 밀려 왔기 때문에 보적보살이라 한다. 또한 이 보살이 중생들에게 이익을 줌에 있어서도 재보와 법보를 아낌없이 베풀어 정신적으로 맑고 박학하며 풍요한 삶을 누리게 한다
불공견보살(不空見菩薩)
범어로는 아모가다르싸나(Amogha-darsana)이다. 불공안(不空眼)보살 또는 정류보살(正流菩薩)이라고도 한다. 현겁 16존의 한 분이며 금강계만다라 삼매야회.미세회.공양회.항삼세갈마회 등의 각 윤단(輪壇) 밖 동방(아래쪽)의 네 보살 가운데 북방(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자리에 안주하는 보살이다.
<대방등대집경보살염불삼매분> 제2권 <불공견본사품>에 이 보살의 인행과 본사(本事)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이 보살은 과거 무량한 아승지겁 전에 현재의 미륵보살로 출현한 사자의보살과 더불어 수행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이름은 사자보살이었다. 또한 이 보살이 불공견이라 불리게 된 데에는 이 보살이 오안(五眼 ; 肉眼.天眼.蕙眼.法眼.佛眼)을 갖추어 항상 법계의 중생에 대한 평등과 차별을 관찰하여 모든 악을 제거하고 올바르게 선한 길로 이끌어 무여열반에 나아가게 하므로 불공견이라 하고, 또한 모든 일을 성취시키며 자성이 본래 청정하고 불성이 본유함을 가리키는 보살이므로 불공견이라 한다는 것이다.
밀호는 보견금강(普見金剛) 또는 진여금강(眞如金剛)이다. 진여의 불공(不空) 함과 보견의 견(見)이 어울려 불공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종자는 아흐(Ah)이며 삼형(三形 ;삼매야형)은 일고안(一고眼)이다. 즉 부처님의 눈으로 중생을 보고 혹업번뇌(黑業煩惱)를 꺾어 파하는 묘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형상은 살결색에 왼손은 주먹을 쥐여 허리에 안치하고 오른손은 연꽃눈(蓮華眼)을 쥐고 있다.
현겁 16존에 "불공(不空)은 연화안이다"라고 하고 있다.인계(印契)는 불안인(佛眼印)을 맺고 있다. 태장계만다라에서는 지장원 가운데 위쪽으로부터 제2의 자리에 있으며 밀호는 보관금강(普觀金剛)이며 삼형은 연꽃 위의 불두(佛頭)로서 연꽃 위의 광안(光眼)을 하였으며 종자는 카(Ka)다. 형상은 온몸이 살색이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얹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세워 약간 올려 어깨 밑에 두고 왼손은 연꽃 위의 불두를 들고 있다. 그리고 붉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진언과 인계는 금강계 만다라와 같다. 대체로 이러한 모습의 불공견보살은 <대일경>에 그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
<법화경> <법사공덕품> 제19와 <심지관경(心地觀經)><아란야품> 제5 그리고 <아미타경> 등의 청법대중으로 등장하는 보살이다.
천태대사가 저술한 <법화문구> 제10권에 "이제 상정진에 대하여 말한다면 곧 십신(十信)의 제3심이다"라고 해석하여 상정진보살의 행위(行位)는 52위(位)의 계위 가운데 십신의 제3위인 정진심(精進心)의 위에 있다고 한다.
52위란 <보살영락본업경>에 설해진 대승보살의 52단계의 수행의 계위를 말한다. 10신(信).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10지(地)의 계위를 합한 것이다. 보살의 계위는 이 밖에도 <범망경> <화엄경> <인왕경>등에 40위.41위.51위 등이 설해지고 있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설해진 10신위는 신심(信心).영심(怜心).정진심(精進心). 혜심(慧心).정심(定心).불퇴심(不退心).회향심(回向心). 호법심(護法心).계심(戒心).원심(願心)이다. 즉다시 말해서 정진심의 위는 52위 가운데 제3위로서 불퇴전의 마음의 단계까지도 오르지 못한 자리다. 적어도 불퇴전의 위치에 올라야만 보살이라 할 수 있다.
52위에 대해 별교(別敎)와 원교(圓敎)의 입장이 다르다.별교에서는 10회향 이하를 범(凡)이라 하고 초지(初地)이상을 성(聖)이라고 한다. 또한 범 가운데서도 10신을 외범(外凡)이라 하고 10주.10행.10회향을 내범(內凡)또는 삼현(三賢)이라고 한다.
범부 중에서도 내범에 들지 못한 외범, 그 외범에서도 이제 겨우 세번째 단계에 오른 이를 어떻게 보살이라고 할수 있을까. 바로 이 상정진보살은 중생들의 그러한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해 출현한 보살이요, 항상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바로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첩경임을 몸소 가르쳐주는 보살이다. 상정진이란 항상 끊임없이 정진 하는 보살이라는 뜻이다. 정진이란 어떠한 큰 위치만을 내세우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가장 가깝고 가장 작은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내는 보살이요, 그 가르침을 이웃과 사회에 전하는 이가 바로 상정진 보살이다
보살의 종류가 너무 많아 대표 보살만 정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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