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 산책(3)
조세용(시인, 건국대 명예교수)
o 고리
‘1) 껍질을 벗긴 고리버들의 한 가지. 옷 따위를 담는 상자(고리)나 키 따위를 만드는 데 쓰인다. 2) 고리버들의 가지나 대오리 따위로 엮어서 만든, 상자 같은 물건. 주로 옷 따위를 담는다.(『우리말 큰 사전』)’의 뜻을 가진 이 낱말은 ‘대오리나 버들가지로 엮어 만든 그릇’의 뜻인 중국계 한자어 고로(栲栳=栲栳)(『한한대사전』 권 10, 937 참조)(栲 고리 고, 栳 고리 로(『훈몽자회』, 중, 13)에서 모음이화 과정을 거쳐 변형된 귀화어이다. 이 낱말의 동의어로는 ‘고리’에 ‘상자’라는 의미의 접미사 ‘-짝’이 첨가된 ‘고리짝’과 귀화어가 되기 이전의 원어인 ‘고로(栲栳)’, ‘버들고리’로 만들었다는 의미의 ‘유기(柳器)’가 있다.
『우리말 어원사전(태학사, 1997)』에서는 이 낱말의 어원을 ‘행리(行李)’의 일본어 발음인 [kori]로 보고 있으나, 이는 큰 오류라고 생긱된다. 왜냐 하면 『한한대사전』 권 12, 294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행리(行李)’의 뜻은 ‘1) 사자(使者)나 사신(使臣), 2) 사신으로 나감, 3) 당대(唐代)에 관부(官府)에 딸리어 고관의 앞과 뒤에서 수행하던 사람. 4) 여행함, 또는 여행하는 사람. 5) 여정(旅程), 또는 종적. 6) 여행할 때 지니고 다니는 물건’ 등의 뜻이었고, 또한 위의 16세기 전승 조선한자음서인 『훈몽자회』에서는 이미 ‘고로(栲栳)’가 ‘고리’로 변형되어 귀화어가 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o 과녁
‘활터에서, 쏘는 화살의 표적으로 만들어 놓은 물건.(『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1) 활을 쏘다. 갑옷을 뚫음. 2) 군(軍)에 관한 일을 이르는 말. 3) 병기 이름 등의 뜻’을 가진 중국계 한자어(『한한대사전』권 13, 51쪽 참조) ‘관혁(貫革)(貫 관(『신증유합』하, 46 , 革 니근 갓 혁(『신증유합』상, 26)에서 ’ㄴ‘과 모음 사이에서 ’ㅎ‘이 탈락되고 다시 ’ㄴ‘음이 연철, 응고화되어 귀화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 낱말의 통시태는 ’관혁(貫革)>관역>과녁‘이다.
o 과일
‘과실을 먹을거리로 일컫는 말. (『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1) 과실나무에 열리는 열매. 2) 수확, 성과, 공적.’의 뜻을 가진 중국계 한자어(『한한대사전』권 7, 3쪽 참조) ‘과실(果實)(果 여름 과, 實 여믈 실『신증유합』, 상, 10)’로 이 한자어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같은 뜻으로 쓰여 오다가 ‘과실’이 유성음인 모음 사이에서 ‘과’로 유성음화되었다가 16세기 말기 이후 ‘ㅿ’의 완전 소멸로 ‘과일’ 형태의 귀화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 낱말의 통시태는 ‘과실(果實)>과>과일’이다.
o 과판
‘1) 국화 모양의 장식이 달린 여자의 머리에 꽂는 꽂이. 2) 국화 모양을 새긴 쇠나 나무의 판(『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중국계 한자어 ‘국화판(菊花瓣)(菊 구홧 국(『훈몽자회』상, 7, 花 곳 화(『훈몽자회』,하, 4, 瓣 판(『훈몽자회』하, 5))에서 귀화된 낱말이다. 위의 16세기 전승 조선 한자음서인 『훈몽자회』에서 ’국화(菊花)‘가 이미 ’구화‘로 ’ㄱ‘ 탈락된 형태의 귀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낱말의 통시태는 ’국화판(菊花瓣)>구화판>구와판>과판‘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O 관디
‘벼슬아치가 입던 정복(『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1) 관(冠)과 허리띠. 2) 관을 쓰고 허리띠를 맴. 3) 옷 차림, 또는 치장. 4) 복제(服制)를 갖춤. 5) 예의를 익히도록 함. 6) 관직을 비유하는 말. 7)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8) 남자를 이르는 말.‘ 등의 뜻을 지닌 중국계 한자어(『한한대사전』권 2, 298 참조) ’관대(冠帶)(冠 곳갈 관 (『훈몽자회』, 중 , 22) , 帶 (『훈몽자회』,중 23)에서 변형된 귀화어이다.
이 낱말은 『번역 소학(1517)』에서는 ‘관’로, 『조선어사전(1920)』에서는 ‘관듸’로 변형되었다가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모음(1936)』에서는 다시 단모음화되어 ‘관디’로 변형되어 귀화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 낱말의 통시태는 ‘관(『번역소학』, 8, 16)>관듸(『조선어사전』)>관디’이다.
o 광
‘세간 따위의 물건을 넣어 두는 간(『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의 어원인 한자어 ‘고(庫房)(庫’ 곳 고(『훈몽자회』중, 19, 房 집 (『훈몽자회』중, 4)‘은 중국 고문헌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 광해주 5년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 침구편에 최초로 ‘경혈(經穴)의 하나’의 뜻으로 출현하며, 17세기 중국어 학습서인 『중간 박통사언해 (1677)』중, 39와 『역어유해(1690)』상, 16에는 ’자븐 것들 녓 집(잡은 것들을 넣어 두는 집)‘으로,『중한사전(고대 민연, 1989)』에는 ’곳간, 창고‘로 출현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 이 한자어는 17세기를 전후하여 두 나라가 함께 사용했던 한자어로 추정된다.
이 한자어 ‘고(庫房)’은 ‘고’으로 유성음화되었다가 다시 ‘ㅸ’의 소멸로 ‘ㅸ>ㅗ(ㅜ)’로 변천, 변화되어 ‘고’으로 변형되었고, 다시 동음생략으로 ‘광’으로 변형되면서 귀화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 낱말의 통시태는 ‘고(庫房)>고>고왕>광’으로 볼 수 있다.
o 귀양
'죄인을 으슥한 시골이나 외딴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그 지역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1) 고향으로 돌아 감. 2) 마음이 쏠림. 3) 현(縣) 이름‘ 등의 뜻인 중국계 한자어(『한한대사전』권 7, 875쪽 참조) ’귀향(歸鄕)(歸 도라갈 귀(『신증유합』하, 8, 鄕 스굴 (『훈몽자회』중, 8))이 모음 사이에서 ‘ㅎ’이 탈락되어 귀화어가 되었다.
O 곤두박질
‘1) 몸을 번드쳐 급히 거꾸로 박이는 일. 2) 자빠지락 엎드러지락 함. 3)⥇재주넘기(함남)(『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곤두박질, 재주넘기’의 뜻인 중국계 한자어(『한한대사전』권 10, 939 참조) ‘근두(筋斗)(筋 힘 근(『훈몽자회』하, 9, 斗 말 두(『훈몽자회』중, 11)’가 모음이화, 강화 현상에 의해 ‘곤두’로 변형되면서 귀화어가 되었고, 여기에 ‘강렬한 행위’의 뜻인 접미가 ‘-박질(뜀박질, 달음박질, 싸움박질 등)’이 첨가되어 혼종어적 파생 귀화어가 되었다. 일부 국어사전에 ‘접미사 ’-박질‘을 한자음 차자 표기 형태인 ’撲跌‘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어사전(1920)』에서의 한자음 차자 표기 형태를 그대로 쓴 것이라 추정된다.
‘곤두박이, 곤두박이다, 곤두박질치다, 곤두박질하다, 곤두질, 곤두질하다’ 등에서의 ‘곤두’도 모두 ‘근두(筋斗)’에서 변형된 낱말들이다.
O 김치
‘무우, 배추, 오이 따위를 소금에 절였다가 갖가지 양념을 한데 버무려서 담근 반찬(『우리말 큰 사전』)’의 뜻인 이 낱말은 중국 문헌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 문헌인 『대동야승』, 『만기요람』 등에 보이는 한국계 한자어(『한국 한자어 사전(단국대 동양학연구소, 2002)』, 권 3, 111 참조) ‘沈菜(沈 띰 (『동국정운』권 3, 35), 菜 (『신증유합』상, 11)’가 다음과 같이 복잡한 음운변화 과정을 거쳐 ‘김치’로 변형되어 귀화어가 되었다.
조선 중기 중종 13년(1518) 김안국이 지은 의학서 『벽온방언해』5와 동왕 22년 최세진이 지은 전승 조선 한자음서인『훈몽자회』중, 22에 오늘날 우리가 고유어로 알고 있는 ‘김치’의 최고 형태인 ‘딤’가 보인다. 이는 ‘沈菜’의 오늘날 한자음 ‘침채’의 『동국정운』(조선 초기 한자음 개신서)식 한자음 ’띰(沈)[dim]'(전승 조선 한자음서의 하나인 『신증유합』하, 62엔 구개음화되기 전인 ‘팀’으로 나오며, 『동국정운』권 3, 35엔 유성음인 'ㄸ[d]‘의 ‘띰’으로 출현함)과 조선초 전승 한자음(기원 전 3세기경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수(隋)․당(唐) 시대의 한자 원음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한국 한자음)인 ‘(菜)(『신증유합』, 상, 11)’가 뒤섞여 ‘띰’가 되었다가 다시 ‘딤’로 변형된 것이다.
이 ‘딤’는 16세기말 임진란을 전후하여 구개음화되어 ‘짐(『두창경험방』, 13)’로 형태 변화되었다가 다시 ‘질삼[紡績]>길쌈’과 같은 부정회귀 현상(말을 표준 발음으로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발생하는 현상. 대부분 역구개음화 현상)으로 ‘김(『물명고』, 3, 초(草))’로 형태 변화되었고, 이는 다시 우리 국어의 ‘ㆎ>ㅢ>ㅣ’의 단모음화 과정의 전 단계형인 ‘김츼(『육당본 청구영언』67쪽)’로 되었다가 오늘날 ‘김치’로 귀화어가 되었다 (‘김장(←沈藏)’의 ‘김’도 ‘김치’의 ‘김’과 동일한 음운 변화 과정을 거쳤음). 이를 다시 정리하여 그 변화의 역사적인 모습인 통시태를 밝히면, ‘띰(沈菜)>딤>짐>김>김츼>김치’가 된다.(<한글 새 소식> 457호 발표 예정)
첫댓글 독자 여러분들계 알립니다. '고리'의 어원인 한자어 '고로'는 '木' 변이 아니고 '竹' 아래임을 밝혀 둡니다.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는 이 활자가 없어 임시 변통으로 써 넣은 것임을 밝혀 둡니다. 또한 고어 활자로 된 원고가 의양 컴퓨터에서는 탈자 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의양 컴퓨터가 고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9월에 출간될 <한글 새 소식>지에서는 모두 제대로 인쇄되어 나올 것임을 밝혀 둡니다. 죄송합니다. -조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