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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땅을 밟으며 독도경비대의 경례소리를 듣고 독도땅을 밟았다.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내 나라. 내 땅 독도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번지에 내가 선 것이다. 그저 감개무량합니다.
냉동님은 내리자마자 태극기를 들고 우리 땅임을 선포 한다. 비장한 표정이 엿보인다. 이렇게 예쁜 땅이 우리 것이라니...하하 좋다
이렇게 태극기가 소중하게 느끼지는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오수경님..태극기로 옷을 해 입었다.
독도가 국토의 동쪽이고, 그저 볼품없는 돌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을줄이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사랑스럽니다. 독도경비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만난 풀 한포기에게 나무 한 그루에 고개를 숙인다. 생각 외로 급한 경사다. 경비대원들은 매일 오르내리겠지 . 뒤를 힐끔 돌아 보게 되었다.. 저 멀리 촛대바위, 엄지바위 그리고 삼형제 바위를 보고 숨이 막힐뻔 했다. 난간이 없었다면 떨어졌을지도 몰라...
무궁화 꽃이다. 누가 일부러 심었겠지. 온갖 풍랑을 이겨내고 꽃을 피어낸 무궁화가 참으로 대견하고 고맙다. 더 많이 피어내길 바랄뿐이다. 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이 땅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사꾸라꽃이 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도는 6.25 사변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그 소홀한 틈을 탄 일본은 이 곳에 상륙하여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영토표식을 하고 돌아갔다. 우리나라 마지막 의병인 홍순칠씨가 수비대를 조직한다. 울릉도 경찰서장으로부터 지원받은 박격포, 기관총, M1소총등으로 무장하여 일본 함대를 격퇴시긴 것이다. 3년동안 무려 50여차례의 전투를 치루었다니 그들의 노력은 숭고할 뿐이다. 거기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 경비정의 화력에 밀려 독도를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진지공사때 쓰다남은 소나무원목을 검게 칠하고 나무 대포로 만들어 동도 꼭대기에 세운 것이다. 일본 경비정이 나타나면 포신을 경비정으로 향하게 한다. 그걸 본 경비정은 나 살려라 내뺐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독도의용수비대의 국토사랑 정신은 독도 뿐 아니라 삼천리 금수강산에 살아 남을 것이다.
799-805 독도경비대 막사 옆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있다. 799-805 독도 고유 우편번호다. 우체통은 눈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감안하여 기존 것 보다 1.5배나 두꺼운 철판을 사용했고 무게 1백80킬로인 대리석을 받침돌로 놓아 태풍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 대리석앞면에 태극기 문양과 대한민국의 글자가 선명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우체통이리라. 작은 것이지만 전국토의 하나라는 것을 대외에 공포하는 효과가 있다. 이 우체통을 통해 전 국토에 우편물 서비스를 하게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우체통아...매일 해뜨는 소식을 전해다오.
바닷물로 정수한 물을 마시고 흐르는 땀을 씻었다. 세상 살기 좋다..어찌나 물맛이 좋은지.. 그리도 헬기장에 올라 독도수비대장의 브리핑을 들었다. 젊고 잘 생겨서..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발해 뗏목탐사때 풍랑으로 제자를 잃어 누구보다 독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박창희 교수님 독도를 지켜야 되는 역사적 이유, 그리고 그 대안을 들어 보았다.
그동안 막연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떠들어대었지.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도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내가 실천해 나가는 거야. 태극기에 대고 약속 그저 가슴 뿌듯하다. 일본을 바라보며 윤봉길, 안중근 의사가 되어본다.
태극기가 참 고맙다. 뚱뚱한 배를 가려줘서...그런가?
나는 독도가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줄 알았다. 무려 90여키로나 떨어져 있다. 4시간동안 계속 내달려야만 독도를 볼수 있다. 일본 오키섬에서는 160키로가 떨어져 있다. 이것만 봐도 우리땅임이 분명하다. '獨島'는 원래 외로운 섬이 아니다. 원래 돌섬인데 초기 이주민이 남해출신이라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독도를 굳혀진 것이다. 지금은 작은 섬이지만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도 닳는다면 독도는 2천여키로의 거대한 산꼭대기인 것이다.그 해저산의 최고봉이 독도인 것이다. 가끔 예언서에 일본 서쪽이 침하하고 동해쪽이 융기한다고 하는데..그렇게 된다면 바로 이 곳이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되지 않을까?
일본놈이 독도에 터무니 없이 영유권 주장을 하는 저의가 숨어있다. 독도 주변에 막대한 가스층이 발견되었고, 석유가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그 밖에 영해권 그리고 한난류가 교차하기 때문에 어족자원이 풍부하기에 뺏고 싶은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 그러나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독도는 반드시 내가 지킨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분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경비대원도 함께 했다. 모처럼 독도가 외로운 섬이 아니라 활기찬 섬이 되었다.
독도에서 해보는 모놀포즈... 뿌듯합니다.
태극기를 마음껏 흔들었다. 월드컵때의 감동이 밀려온다. 대한민국 만세.. 모놀 만세
그 가파른 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식물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두꺼운 잎에는 따뜻한 털이 덮혀있다. 비바람을 이기기 위한 이들의 생존 수단이겠지.
패랭이꽃이 아주 예쁘게 자라고 있다. 푸른 독도가 된 것은 사회단체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러 단체에서 10,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500여그루의 나무를 살리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비단 섬을 예쁘게 꾸밀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해양법상 섬은 암초와 인공섬, 자연섬으로 구분된다. 영토의 경계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섬 뿐이다. 자연섬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식수가 있어야 하고 나무가 자라야 하고 한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
암초로 규정된 독도를 최종덕씨는 호적을 독도로 롦기고, 물골의 물을 찾아내 독도 물을 마시며 독도의 첫 주민이 된 것이다. 이 척박한 땅을 개척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70도의 가파른 바위섬에 식수가 나오는 것을 알고 시멘트 계단을 설치하여 후세인의 편의를 위해 싸운 것이다. 1987년 생을 마쳤다.
늠름한 독도경비대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캄캄한 밤에도,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경비대는 이 땅을 지킨다. 그 들이 이 땅을 지키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독도에서 맛보는 담배맛이 그렇게 구수할수 없다.
경비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도시락을 싸왔다. 몽돌에서 섬을 바라보고 먹는 도시락 맛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
아..좋다.
지금부터 '누가 모놀포즈를 잘 하나' 경연대회가 있겠습니다. 수줍은 버섶.. 저 손으로도 모놀 포즈가 되네...모노양이었습니다. 세상을 다 가졌다.
부부가 함께 독도를 본 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ㅣ 종준님, 설화님
추적 60분 독도는 내 땅이야.. 쉬야를 통해 흔적을 남기는.... 이곳에서 하지 않으면 10여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양해해주세요.
발해 1300호 뗏목...폭풍을 만나 죽어간 고 장철수님을 위해 간단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번 탐사회원중에 장철수님의 은사도 있고, 친구도 있다. 고인의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은 강한 해양국가로 향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동도도 이렇게 아름답다. 아..멋져..오수경님
독도에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우리의 소원' 을 목청껏 불러 보았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대한민국 만세..만세..만세...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강아지도 사람이 그리웠겠지. 강아지야 독도 잘 지켜다오.
선착장에 앉아 그저 돌산을 바라볼 뿐이다. 답답하다 왠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언제 다시 오랴.. 독도야..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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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년 이맘때지요..독도땅을 밟으며 흘렸던..눈물...홀로 아리랑을 들으니이 사진이 생각났어요.
역시나 대장님이요 센스100점...내가 이 사진 봤던가 새롭네예~~
야~~너무 멋지네요, 꼭 한번 가봐야 할곳이 있다면, 이곳 독도가 아닌가 싶네요. 언제 또 다시 모놀에서 이곳으로 여행 계획은 없으신지요, 쥔장님, 답을 주시다.....^^ ^^
글쎄요...요새는 독도땅 밟기가 쉽지 않다고 하네요..내년엔 꼭 한번 추진하겠습니다.
그때 같이 못가서 제일 배 아파하던 곳.....-_-
아! 잠깐만요. 사진들 정말 감동적이군요. 근데 사진 중에 "패랭이 꽃"이라 하신건 "달개비 꽃"이군요. 또하나 젤 아래에 강아지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고 우리의 토종견 "삽살개"로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