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드림 시나리오>
1. 기발하고 풍자적이며 웃음을 자아나게 하지만 결국 씁쓰레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났다. 생물학 종신교수 폴에게 까닭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꿈에 등장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열광했고 폴 또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꿈에 나타난 폴이 점차 폭력적이고 끔찍한 살인자로 변하자 그에 대한 여론은 돌변했다. 사람들은 그를 경원시했고 그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거부했으며 그의 가족들마저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결국 폴은 교수직을 그만두어야했으며, 아내와 이혼하고 떠돌아 다니는 비참한 생활로 전락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폴은 더 이상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게 되지만 이미 그의 인생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상태이다. 그는 과거에 성취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고독하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 된 것이다.
2.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행동에 얼마큼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본인도 알 수 없는 현상에 다만 그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사람들의 반응은 감각적이고 직접적이다. 처음 많은 사람들은 꿈 속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열광했지만, 끔직한 변화는 폴을 증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폴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폴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아니다. 현재의 나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일 뿐이다. 폴은 꿈속에서 저지른 폭력 때문에, 현실에서 경원시된다. 폴에 대한 비난은 이성적으로 올바른 반응일까? ‘폴’과 같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비난받는 사례가 현대사회는 또 있지 않을까?
3.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는 왜곡된 관점을 성찰하게 해준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사람들은 문제의 현상적 측면에만 몰두한 채, 그것의 실제적 중요성과 본질에는 무관심하는 경우가 많다. 명확하게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최근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하이브와 민희진’의 갈등 또한 대중의 왜곡된 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 사건은 K팝 사업의 왜곡된 구조와 경영층의 갈등에서 촉발되었고 더 많은 이익을 쟁취하려는 집단 간의 충돌이 사건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민희진이 어떤 퍼포먼스을 했으며 그녀가 입은 옷은 무엇이며 그녀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와 같은 외형적이고 비본질적인 측면에만 쏠려있다. 문제의 핵심과 관련된 구체적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상을 주는 것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폴에 대해 누구도 그의 고통에 주목하지 않고 그저 비난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만 넘쳐나는 것과 같이, K팝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건강한 구조형성에는 관심없고 다만 그들이 벌이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에만 열광하고 있을 뿐이다.
4. ‘본질은 없다’라는 포스트구조주의적 시각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중심과 원칙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다. 개별적인 것들을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이제 힘을 잃고 있다. 특정 발언을 두고, ‘사이다’다, ‘쿨하다’와 같이 반응하는 것은 발언의 논리와 근거에 관심없음을 말해준다. 다만 그것이 나의 심리적 상태와 얼만큼 일치하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흐름 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은 몰락하고 윤리적 원칙은 실종되었으며 삶을 이끄는 방향은 사라졌다.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하등생물처럼 이성적 판단은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5. 영화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무겁고 심각한 특정 문제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감각적인 시선과 개인적 호기심에 지배당하는 현실의 위험성이며,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가해지는 무책임한 비난의 폭력성이다. 그럼에도 영화적 전개는 무척이나 유쾌하다. 특히 중년 남자의 허망한 욕망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종신대학교수임에도 폴은 자신의 책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에 빠져 있으며 동료의 연구발표를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이라 분노한다. 과거 연인의 만남 제의에 온갖 상상을 하며 가슴 설레고, 젊은 여성의 육체적 유혹에 쉽게 빠지는 전형적인 남성적 찌찔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자 특별한 판단없이 언론에 등장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표출하는 모습은 그 또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현대적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구나 폴을 연기한 배우가 과거 <라스베이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것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만난다. 젊음의 날카로움과 반항적인 모습에서 사소한 관심에 집착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초라한 중년의 웃픈 모습으로의 변모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맞이해야 할 인간적 퇴락에 대한 묘한 슬픔을 감지하게 한다. 아! 시간은 많은 것을 퇴색시키고 있었다.
첫댓글 -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판단하고 행동할 뿐... 윤리적 원칙은 실종되었으며 삶을 이끄는 방향은 사라졌다.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하등생물처럼 이성적 판단은 퇴화하고...... 아! 시간은 많은 것을 퇴색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