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마음도 함께 따가 주
김동진 작사 작곡의 ‘봄이 오면’에 등장하는 진달래는 한국인의 정서다. 내 고향 마을의 앞산 뒷산을 물들이던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이다. 진달래를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고 진달래꽃을 따서 먹던 추억은 가난한 시절의 낭만이었다. 그렇게 진달래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의 곳간이었다.그러기에 진달래는 한때 나라의 꽃으로 거론되었다.

진달래는 진달래과(Ericaceae)에 속하는 낙엽 관목이다. 진달래과의 나무로는 진달래(R.mucronulatum),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 산철쭉(R.yedoense var. poukhanense) 등이 있다.
진달래의 키는 2~3m 정도 자라며 타원형 또는 피침형의 잎은 어긋난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는 조그만 비늘조각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4월에 분홍색으로 핀다. 통꽃으로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는데 꽃부리는 5갈래로 조금 갈라진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며 열매는 삭과(蒴果)로 익는다.
진달래와 개나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아 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개나리와 진달래는 노랑저고리와 분홍치마의 상징이 되었다.
개나리는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지만 진달래는 반그늘의 산성토양에서 잘 자란다. 봄에 가지를 꺾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진달래는 뿌리가 얕게 내리는 천근성淺根性이고 잔뿌리도 많아 쉽게 옮겨 심을 수 있다.
진달래는 꽃을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 또는 참꽃나무라고 부른다. 꽃을 따서 먹어보면 달착지근하다.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부른다. 이는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며 울어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삼월 삼짇날에 뷰녀자들은 화전놀이를 하였다. 진달래꽃으로 꽃전花煎을 부쳐서 나누어 먹고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화사한 봄볕을 즐겼다.
진달래꽃으로 두견주를 담가 마시기도 하였다. 찹쌀과 누룩을 넣고 술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를 때 진달래꽃잎을 넣어 만든다. 두견주를 빚을 경우 100일을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한다.
진달래는 거칠고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활엽수가 울창한 숲이 아니라 침엽수가 드문드문 자라는 산성토양에서 잘 자란다. 참나무 그늘보다는 소나무 그늘을 더 좋아하는 꽃이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언덕은 어디서나 고향마을처럼 정겹고 아름답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진달래가 만발하였던 것은 우리 산이 그만큼 헐벗었던 까닭이다. 일제의 압제와 광복을 거치면서 우리 산은 황토가 벌겋게 들어나는 민둥산이 되었다. '이 산 저 산 다잡아먹고 아가리 딱 벌리는 것은?' 이 단골 수수께끼 문제로 등장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산림녹화 사업으로 울창한 숲이 되었다. 석탄이나 석유, 가스를 연료로 때고 시멘트나 벽돌로 집을 지은 까닭이다.
삼국유사 기이 편에 '수로부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라 33대 성덕왕 때의 일이다. 순정공이 명주(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때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바닷가에 머물러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병풍처럼 생긴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이것을 보고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없을까?'
종자들이 험한 바위 벼랑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미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던 노인이 수로부인의 말을 들었다. 노인은 천 길 낭떠러지의 석벽에 올라가 수로부인이 바라던 꽃을 꺾어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노래까지 지어 꽃과 함께 부인에게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날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를 부른 용감한 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수로부인은 절벽에 피어난 진달래꽃처럼 아름다웠음에 틀림없다.
대구의 비슬산에서는 해마다 4월 중순경에 ‘비슬산 참꽃 축제'가 열린다. 발에 밟히고 채이는 것이 참꽃이고 사람일 것이라는 풍문에 놀라 먼 길을 돌아 비슬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비슬산 대견봉에 다가갈수록 참꽃과 인파는 점점 늘어났다. 진달래꽃밭은 마치 붉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수만 평에 가득하였다.

창녕의 화왕산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억새를 태우는 행사가 열린다. 가야 6국의 하나였던 비사벌을 호위하던 화왕산성은 석성과 억새 이외에 진달래도 유명한 명소다. 기실 비사벌의 이름은 빛벌인 바, 억새를 태우는 불빛과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 꽃빛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화왕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핀 진달래 군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치 붉은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강화의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으로 이어진다. 강화도가 한때 고려의 도읍지였던 까닭일까? 고려산 진달래 축제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진달래 꽃방망이로 앞서가는 여인의 등을 치면 사랑에 빠지고 남성의 머리를 치면 장원급제 한다는 전설이다. 고려산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도 있어 꿩 먹고 알 먹고의 꽃 산행이 된다.
진달래는 꽃을 따주어야 이듬해에 더 풍성한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를 따서 먹고 꽃방망이를 만든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진달래 꽃가지를 꺾어 노래부르며 수로부인에게 선물한 노옹의 낭만이 그리워진다.
첫댓글 진달래 꽃방망이 전설이 마음에 쏙 와 닿네요.
내년엔 꽃방망이를 많이 활용 해야겠습니다ㅎ
큐피드 화살보단 진달래 꽃방망이가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