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영해(寧海)는 경상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일찍이 고구려의 야시홀(也尸忽)과 우시국(于尸國)이 있었다. 79년(신라 탈해왕 23)에 신라가 병합하여 757년(경덕왕 16)에 우시국을 유린군(有隣郡)으로, 야시홀을 야성군(野城郡)으로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덕(盈德)과 예주(禮州)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현종 9)에 예주(禮州)에 병합되었다가 후에 다시 분리시켜서 현령(縣令)을 두었다. 1258년(고종 45)에 예주가 덕원소도호부로 승격하였고 1310년(충선왕 2)에는 영해부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415년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현령(縣令)이 파견 되어 조선시대 동안 명맥이 이어졌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덕과 영해현은 안동부로 이관되었다가, 이듬해 경상북도로 관할이 변경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해군이 폐지되고 영해면으로 축소되어 영덕군에 통합되었고, 1979년에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현재 영덕군의 관할구역은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축산면·영해면·병곡면·창수면 등 1읍 8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씨의 역사
영해이씨(寧海李氏)의 시조 이연동(李延東)은 고려 때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영해군(寧海君)에 봉해졌다. 신라 때 사도(司徒)를 지낸 완산이씨(完山李氏) 이입전(李立全)의 후손이라고 전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역시 같은 신라 때 사공(司空)을 지낸 전주이씨(全州李氏) 이한(李翰)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완산이 전주의 다른 이름인 것을 감안하면 영해이씨는 전주이씨(全州李氏)에서 이적(移籍)하여 영해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적종 및 분파
영해이씨는 전주이씨(全州李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감찰공파(監察公派)
강서공파(江西公派)
동명공파(東溟公派)
여주파(驪州派)
주부공파(主簿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주요 세거지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산대월리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상시동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영해이씨는 664가구 총 2,10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