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 기형적 얼굴보며 삶의 의욕 상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염불…이적 체험
여섯 형제의 맏며느리인 나는 시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면서 연로하신 시 할머님과 어린 시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 여섯.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뒷바라지를 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막내 시동생을 대학에 보내지 못하면서 시고모님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과 불화가 생겼다.
칭찬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참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부처님 전에 고달픈 삶을 맡기면 그나마 편안해졌기에 도반들을 따라 다니며 관음정근도 하고 절, 사경 등을 했다.
하지만 모든 수행이 그렇듯이 하면 좋기는 했으나 공부의 진전도 없고 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해서
모두 중단하고 외손주만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11월에 10년 지기 도반의 권유로 동안거 결제에 들어가는 선용 스님을 마나 정토선과 자성염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토선을 몰랐던 나는 참으로 의아했고, 다른 도반들의 자성염불 성취 수행담을 들으며 미리 포기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래도 전생에 선근 공덕이 있었던지 정토선 염불을 들으니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님께서는 염불은 밝은 기운이니 아기한테도 좋을 것이라며 염불 듣기를 권하셨다.
그래서 정토선 염불을 듣기 시작했고, 집안 일을 하면서도 듣고 아기랑 놀면서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해제 때가 되었고, 도반과 함께 다시 스님을 만났다.
그때 스님은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한다면서 염불을 지속하면 세포가 바뀌고 더 오래하면 뼈도 바뀐다는 말씀 등을 하셨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나는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자책이 앞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염불을 듣는 것도 시큰둥해졌다.
그리고 둘째 외손주가 태어났다. 큰 아이를 돌보며 산후조리와 두 집 살림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고,
더욱 나를 절망하게 한 것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마가 비틀어져 있었던 것이다.
딸이 충격을 받을까 싶어 말은 못했지만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걱정을 하던 중에 염불을 많이 하면 뼈도 바뀐다는 스님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염불을 다시 시작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마음을 집중했고, 아기 목욕을 시킬 때는 더욱 간절하게 염불을 했다.
그런데,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할까. 내 눈을 의심해 가족들에게 확인까지 시켰는데,
정말로 아기의 이마가 반듯하게 돌아와 있었다. 염불의 위신력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막내딸에게 컴퓨터를 배웠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도 정토선 카페에 가입은 하지 않고 드나들기만 하던 어느 날
한 도반이 카페에 올려놓은 선용 스님 소식을 접했다.
스님은 충북 음성 용운사에 계셨고, 철야정진을 한다는 소식이 함께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저 주저하며 카페 가입도 미루고, 철야정진에 참석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도 염불을 계속 들었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을 들으며 살아가는 일상은 평화로웠고
가끔씩은 감사와 행복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철야정진에 참석했고, 이후로 나의 염불수행은 더욱 힘을 얻었다.
1주일 가행정진 끝에 자성염불 성취
새벽 예불·염불·좌선으로 하루 시작
철야정진 참석후 적게 먹고 조금 자고 가행정진을 해보라는 스님 말씀을 따라 아기를 안고서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행정진을 했다.
이상한 것은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와는 달리 모든 상황들이 나의 수행을 도와주는 것만 같았다.
가행정진을 시작하면서 인터넷 정토선 카페도 잠깐씩 들러 궁금한 것만 보고 나가기를 일주일 정도 지난 월요일 새벽
염불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성악가의 목소리도 아니고 굵은 남자 목소리에 아름다운 음율까지. 놀랍고 기쁘고 환희로울 뿐이었다.
이렇게 정토선 1차 관문인 자성염불 단계를 성취할 수 있었다.
염불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면 세시쯤 된다. 예불과 염불, 좌선 등 새벽수행을 여섯시까지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귀로 듣고 입으로 염불하며 마음으로 부처님을 예경하지만 새벽수행과 한 달에 두 번하는 철야정진은
나를 참으로 풍요롭게 한다.
천진불인 아기들과의 하루는 참으로 행복하고, 한가로워도 게으르지 않으며 몸은 바빠도 마음은 여여로우며
경계에 부딪쳐도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로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러면서 한가지 작은 소망이 생겼다. 작은 공간이라도 염불당을 마련해 염불정진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들을 조복받아 밝고 고운 마음을 아름답게 색칠하고 싶다.
서산에 지는 해가 노을을 물들이는 것처럼.
그동안 17년을 절에 다녀도 내가 변하지 않았던 것은 업장을 녹이지 않고 쓰레기를 수면 아래 가라앉히듯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염불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나의 업을 녹인다. 그러면서 나를 변화시켜간다. 변화는 일상생활로 이어졌다.
염불수행 후 오후불식과 오계를 지키려 노력하니 육식과 오신채는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함께 염불수행하는 도반의 오해로 어려움을 겪고 마음고생을 하다가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산란하여 고성염불을 하였다.
그런데 고성염불 중 갑자기 향내가 나며 천장에서 상서로운 꽃잎이 떨어졌다.
온몸이 환희로움으로 가득차면서 내 몸 세포 하나까지도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채워짐을 느꼈다.
새벽에 일어나 자성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고압선 우는소리가 들리더니 내 온 몸이 박하사탕 먹은 후
화한 느낌처럼 변하며 온몸이 환희롭더니 열이 내리고 몸이 가뿐하게 일어날 수가 있었다.
남들 때문에 괴롭다는 생각들이 내 탓이라 생각되니 나를 낮추고 다스릴 수 있었고 안보이던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7년을 절에 다니면서도 좌선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정토선 2차 수행후 염불삼매를 경험하게 됐다.
그런데 머리로는 집착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좌선만 하면 삼매에 집착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철야정진 때 집착을 끊으려 좌선을 하지 않고 여섯 시간 동안 절만했고,
그 후로 흔들림 없이 여여하게 정진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다. 어미 닭이 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정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산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가는 남편을 이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가족들도 내 모습을 보며 시나브로 부처님 법에 물들어 가길 바란다.
선용 스님과 도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주부(52·창원)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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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