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18년 청자발은 8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8월 첫째주, 광화문광장과 안산문화공간아지트쉼에서 <인블룸>을 만났습니다. |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허하라!
날마다 최고온도를 갱신한 역대급 폭염의 한가운데, 광화문광장에 수상한 이들이 나타났다. 할로윈데이도 아닌데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람,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사람, 영화 <1987>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수상한 이들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 모여들었다. 그대로 얼음! 5분 동안 정지 동작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스톱모션 플래시몹이라고 했다. 그들 중 두어명은 지열이 올라오는 뜨거운 콘크리트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듯 앉아있는 사람도 있다. 얼른 다가가서 땡! 쳐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찬찬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가장 앞에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는 청소년이 서 있고, 다음으로 2018년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청소년이 서 있다. 그들의 뒤에는 2016년 교복을 입고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박근혜 퇴진을 외친 청소년, 안타까운 죽음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열사, 신군부세력의 비상계엄 철폐를 외치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이끈 대학생, 이승만정부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1960년 4·19혁명을 이끈 고등학생, 1919년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열사 등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근현대사 속 청소년들의 모습이 있다.
이는 청소년활동가그룹 <인블룸>이 마련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우리나라는 만19세 미만 국민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피선거권은 만25세 이상에 부여), 주민투표권, 정당가입 및 활동의 자유 등을 제한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다며 청소년 참정권 보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인블룸>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플래시몹을 통해 청소년의 의견과 존엄성을 존중하고 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날 40도 폭염에도 불구하고(멤버 지원의 말대로 “에어콘 빵빵한 학원에서 영어 독해 풀고 싶”을 정도로 더웠다) 서울의 곳곳에서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플래시몹을 구경하던 사람 중에서 15세 청소년들을 만났다. 두바이 출신 아쉬타와 미국 유학생 지원은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플래시몹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두 친구에게 소감을 물었다.
“22개국을 여행했지만 이런 멋진 퍼포먼스는 처음 보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 아쉬타
“영화 <택시운전사>, <1987>을 보고 학생들이 민주주의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활동하고 있는 선배님들을 만나 기뻐요.” – 지원
인블룸이라 다행이야
<인블룸>은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청소년활동가그룹이다. 안산시를 ‘희망이 회복된 사회’로 만들기 위해 2017년 결성되었다. 이들은 매주 정기회의를 통해 청소년과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한다. 시민단체 <기부이펙트>가 이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상반기에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주제로 시민들의 자유발언대와 거리캠페인, 스톱모션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활동주제를 ‘청소년 참정권’으로 정한 이유는 탄핵촛불 이후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기도 했고, 내년에 만18세가 되는 멤버들이 청소년 참정권을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활동의 기획단계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토론하며 청소년 참정권의 개념을 보다 정확히 알게 되고,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더욱 공감했다.
“저는 활동하기 전에 청소년 참정권, 18세 투표권은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고 참정권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성윤
하반기에는 다른 주제를 정해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고, 주제는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멤버들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사회문제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조금만 시간을 내어 생각해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불편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떠올라요.” – 지선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느라 힘들 때도 있다. 시험기간에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브레인스토밍인지 아무말대잔치인지 모를 회의를 하다보면 예정된 종료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인블룸> 활동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든든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이니까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대답을 듣거나 유난한 사람 보듯 하는데, <인블룸>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관심 있는 사회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 멤버들은 동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주일 내내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슬픈데, <인블룸> 활동은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 같아요. 가끔 공부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니까 잘하고 싶어요.” – 성윤
우리가 문제해결의 주체
<인블룸> 멤버들은 활동을 통해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게 되었다. 주변이나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시간이 남으면 찾아보던 뉴스와 신문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보게 되고, 갑자기 눈과 귀가 뜨인 듯 잘 보이고 잘 들리게 되었다. 사회선생님들과 말이 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이전에는 문제들이 보여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거나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자신과 <인블룸>이 문제해결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하다가 문제들이 보이면 계속해서 궁금한 점들이 생겨요. <인블룸>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을 텐데 그건 왜 그럴까 생각해요.” – 지원
“길거리나 학교에서 문제들이 보이면 이건 좀 해결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블룸>에서 이야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세은
“상반기 활동주제 논의할 때 제가 중고등학교 교복 무상지원 요구하자는 의견을 냈거든요. 그때는 성남시가 한다고 하니까 우리도(안산시) 하면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까 교복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고… 그래서 정책의 필요성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어요. 최근 안산시도 중고등학생들에게 교복을 무상지원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평소 관심을 둔 문제가 해결되어 기분이 좋았어요. 사회문제 해결은 정부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성윤
멤버들은 지난 5월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찬반 의견을 들어보는 자유발언대를 진행했다. 어른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였고, 우리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어른들과 만남이었다. 이를 통해 기성세대에 대한 편견이 무너졌다.
“저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분이 많을 줄 알았어요. 자유발언대 앞에 찬반스티커를 붙이는 판넬을 두었는데, 어르신들에게 설명해드리니까 교육감은 당연히 청소년들이 뽑아야지,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고 되게 큰 힘을 받았어요. 어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 지선
“대학생이 즉석에서 자유발언을 해주셨어요. 지금은 성인이지만 지난 대통령선거 때 만19세 미만이라 투표를 못 했다고, 자신이 청소년이었을 때 참정권을 확대하지 못해 아직도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하셨어요. 성인들은 청소년 참정권에 별로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느꼈어요.” – 성윤
멤버들은 활동을 통해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변화도 느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건네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지지하게 된 부모님,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의견을 바꾼 친구들… <인블룸>은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큰 변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청자발은 OO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인블룸> 멤버들에게 청자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공식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청자발이란?
“인블룸의 오른팔이다. 청자발은 인블룸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재정적인 도움도 크지만, 이런 사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되게 든든해요.” – 지선
“청자발은 안경이다. 예전에는 사회문제가 잘 안 보였지만, 청자발과 인블룸을 만나고나서 안경을 쓴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 소의
“청자발은 마이크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청중들에게 말을 해야 하잖아요. 평소에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청자발 활동하면서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그만큼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되었어요.” – 성윤
“청자발은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1분 1초를 열심히 살아야 하고. 청자발에도 1분 1초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원
“나에게 청자발은 자신감이다. 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먼저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어요.” – 세은
“망원경이다. 멀리 있는 문제점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 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