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7 어제 초저녁 7시에 잠들어 새벽 1시에 일어났다. 눈 비비고 세수하고 불화 잡았다. 한 달 전쯤 시작한 관음도 마지막 마무리 남았다. 판소리 적벽가 박송희 선생 소리를 아이들 방에도 위아래 층에도 들리지 않고 나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틀어놓고 불화 그렸다. 아침 9시 되어 다 마쳤다. 뿌듯한 마음으로 화판에서 떼어내는데 어랍쇼, 천은 천대로 그 아래 배접하느라고 붙인 종이 두 장은 종이대로 떨어질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가 손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진다. 이런 낭패가 있나. 어쩐지 처음 배접해서 말려놓았을 때 화판에서 들뜨는 느낌이 들어 뜯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다가 풀 풀어 다시 천 위에다 덧칠을 했는데 아무 소용없었나 보다. 혹시나 하고 풀 되게 풀어 뜯어진 한지에 칠하고 그림 그린 면을 붙여 말렸는데 어떤 데는 붙고 어떤 데는 울어 그나마 판판하던 그림이 이제는 우글우글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뜯는데 그조차 마음대로 안 된다. 한지 찢어지고 말았다. 남은 한지 뜯어내고 보니 한지 뜯어내면서 천이 구겨져 안료 두텁게 칠한 데서 안료가 듬성듬성 떨어져 나왔다. 화 일어난다. 끓는다. 지난 한 달 동안 틈틈이 그린 거 다 도로아미타불 되고 말았다. 이번 그림이 그동안 그린 중 가장 잘 되었다 싶었는데. 화는 화고, 화는 화고. 화는 그냥 화일뿐 내가 아니고. 꾹 참으며 풀 개고 한지 자르고 천 잘라서 빈 화판에 다시 배접을 했다. 지난 번 풀 농도가 너무 묽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좀 되게 갰다. 망친 그림 처박아놓고 새로 배접한 거 말리고 있는데 영 안 마른다. 종일 속이 끓는다.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화는 화고, 화는 화고. 애써 주문처럼 읊으며 산에 갔다. 소리공부는 해야겠기에 천마산 갔다. 적벽가 뒷부분 조조 패주하다가 관공이 풀어주는 데 한 시간 연습하다가 왔다. 오늘은 소리도 안 된다. 안 되는 날도 있겠지. 새털 같이 많은 날에 어찌 되는 날만 있을라고.
2010.1.18 망친 불화를 새로 시작했다. 오기로 다시 그린다. 그릴수록 화가 일지만 그럴수록 화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다 거름이 될 것이다. 망치고 망가뜨리고 그것이 결국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깊이 새겨질 것이다. 똑같이 그리기 무엇해 색을 바꿔 칠했다. 색 몇 군데만 바꿔도 다른 그림이 된다. 어제부터 먹 풀어 글을 쓴다. 서각을 위해서다. 논어 자략에 나오는 화이부동과 장자 외편 달생편에 나오는 목계 이야기를 쓴다. 서예 잘하지도 못하지만 할수록 어렵다. 먹은 마음에 따라 금세 글씨가 바뀐다. 서예도 결국 자기폭로다. 알량한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림이나 글은 고치고 덧칠할 수 있지만 서예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가필이 되지 않아 더욱 그렇다. 약수터 가서 소리 연습했다. 적벽가 초입부터 공명 오나라 들어가는 데까지, 그리고 적벽대전 대목을 한 시간 반 연습했다. 가끔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부분이 있다. 흥보가와 적벽가 배운 것이 부르는 시간만 다섯 시간 분량이니 이제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서 자주 연습하지 않는 데는 음정과 장단이 긴가 민가 한다. 예전부터 판소리 오대가 중 심청가를 가장 좋아해서 올해부터는 심청가를 배울 데가 어디 없을까 기회를 엿보는 중인데 이미 배운 소리를 탄탄하게 다져놓지 않고 새로운 소리를 더 얹었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 한다. 당분간 배운 소리 다지고 닦고 다듬는 데 정진하자 한다.
2010.1.22 설악 작업실 갔다. 날 추워서 작업하기 쉽지 않지만 마감 맞출 작업이 둘 있다. 지난 며칠 붓 들고 틈틈이 글씨 썼는데 여러 장 쓰고 겨우 한 장씩 추려 오늘 나갔다. 동네에서 복사를 해서 나갈까 하다가 설악 미원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복사기가 좋아서 축소 확대 비율도 크고 인쇄처럼 깨끗하게 나와 거기서 하려고 그냥 갔다. 고장났다고 한다. 45만원 주고 부속을 갈아야 한다고 해서 고치지 않고 그냥 있다고 한다. 중학교 앞 문방구 갔다. 거기도 고장. 새로 생긴 문방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거기는 복사 안 한단다. 길에서 아는 분 만나 새로 지은 집에 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왔는데 다시 연락해서 복사할 데 있느냐 했더니 농협 가서 하자고 한다. 그 분 만나 농협 가서 복사했다. 복사기 유행독감도 있는지 복사기가 어떻게 죄다 고장이야.
작업실 갔더니 징그럽게 춥다. 발 시리다. 작업대며 전기톱에 가득 쌓인 눈 치웠다. 눈이 녹다 얼기를 반복했는지 덩어리 째 얼어서 나무방망이로 깨서 치웠다. 제재소 톱날 거칠게 난 나무 꺼내 연마기에 사포 붙여 갈아내고 전기톱으로 잘랐다. 먼지 날려 큰 환풍기 틀어놓고 작업했더니 손 시리고 발 시리고 귀 시리고 머리 지끈거려 몇 번이나 난로 옆에 가서 손 녹이며 작업했다. 나무 다 다듬어 풀 개자니 물 없다. 물통도 분무기도 다 얼었다. 언 분무기를 난로에 녹여 물 타서 풀 개 나무에 종이 붙이고 난로에 대 말렸다. 그냥 두면 날 추워 마르기 전에 얼 기세다. 종이 겨우 말려 저녁 7시 30분까지 작업하다가 돌아왔다. 며칠 날마다 다녀야 하는데 그야말로 날씨 무섭다. 오며 가며 소리했다. 요즘도 날마다 한 시간 이상씩은 일부러 연습을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설악까지 운전하는 시간이 왕복 한 시간 이상이니 일부러 소리 연습하러 갈 일 없다. 이상하게 어제부터 아랫배가 당긴다. 누워있어도 그렇고 서서 다닐 때도 그렇다. 속이 쓰린 것과는 다르다. 며칠 지켜보다가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을 가야할 것 같다. 낌새가 수상하다.
소영이는 엊그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닌다. 방학 시작 하고나서 식당, 제과점으로 다니더니 안 되는지 나중에 주유소까지 알아보다가 얼마 전에 동네 화장품가게를 갔었는지 그제부터 거기 다닌다. 아침 10시까지 가서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밤 8시까지 하고 온다. 아르바이트라기보다는 출근에 가깝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이틀 다닌 애를 혼자 두고 오늘 오후 3시에 사장이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고 한다. 오늘부터는 밤 9시까지 혼자 가게 보다가 문 닫고 퇴근을 한다고 한다. 걱정 안 되나. 어린애를 혼자 가게 두기도 무엇하고 별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겠지만 혹 순간 마음 잘못 먹어 화장품을 호주머니에 슬쩍 넣지나 않을지, 아니면 손님이 훔쳐가서 모자라게 된 물건을 애가 덮어쓰지나 않을지, 돈 계산 잘못해서 모자란 돈 채워 넣게 되지는 않을지, 웬 도둑이 들어 돈 몽땅 털리지나 않을지, 문단속 제대로 못하고 가게 문 닫지는 않을지, 별 걱정이 다 든다. 그 사장도 참 무사태평이다. 이틀 된 아르바이트생을 혼자 두고 여행을 가다니.
2010.1.23 아침 먹는데 건희가 느닷없이 빈대떡이나 해물파전에 콜라 곁들여서 먹고 싶다고 한다. 해물파전에 굴 들어간다 했더니 굴 빼고 해달라고 한다. 파는 먹어? 파도 안 먹잖아. 아니에요. 파 잘 먹어요. 급식에 나온 파도 먹어요. 잘도 먹겠다. 설악 가서 서각작업 하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 들러 오징어 두 마리, 새송이버섯, 부추, 깻잎 샀다. 파도 살까 하다가 말았다. 분명 두어 점 집어먹다 말 테니. 홍합 살을 살까 하고 물어봤더니 100그램에 천삼백 원이란다. 말았다. 빈대떡도 할까 하고 녹두가루 봤더니 빈대떡도 하자면 녹두가루만 사서 될 일 아니다. 고사리도 사야지, 고기도 사야지, 일이 많다. 더 해서 다 먹으면 해볼 만도 하거니와 다 못 먹을 게 분명하니 사서 고생할 일도 아니다. 돌아와 씻고 썰고 데치고 다듬고 부침가루 반죽해 부침개를 부쳤다. 건희 묻기를 해물파전과 부침개의 차이가 뭐냐고 한다. 어차피 너는 굴도 안 먹고 또 파도 안 먹는데 그거 두 가지 빼면 그게 무슨 해물파전이야. 그냥 먹어. 나름 최선을 다했어. 힘들게 일하다 돌아와서 만들어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야지. 제가 언제 맛없다고 했어요? 됐어. 어서 먹어. 바짝 더 바짝 구워달라고 해서 오래 구워 바삭바삭하게 부쳤다. 오징어 한 마리는 가늘게 썰어 전에 넣고 한 마리는 굵게 썰어 초고추장에 무쳐서 줬다. 술안주 아니냐고 하는데 그거 술안주 아니거든? 그거 원래 밥반찬이거든? 하여간 트집은.
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히 무사하시다고 한다. 날마다 전화 드린다. 입원하시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전화 드렸는데 입원한 후로는 날마다 문안이다. 일부러 목소리 톤을 올려 크고 힘찬 소리로 전화한다. 기운 전염되시라고. 아버지 목소리가 밝아서 좋네요, 식사 많이 하셨다고요? 잘하셨어요, 칭찬도 곁들인다.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소영이는 오늘도 일찌거니 일어나 씻고 가게 갔다. 점심 때 전화해서 점심 먹었느냐 했더니 먹었다고, 걱정 좀 말라고 한다. 자꾸 걱정하고 전화 해대면 걱정도 전염되고 내가 저를 못 믿어 그러는가 하고 섭섭해 할까 봐 표 내지 않으려고 꾹 참고는 있지만 어찌 걱정 안 되겠나. 원래 여행 좋아하고 외국으로도 자주 다닌다고는 하지만, 겨우 이틀 나온 애에게 가게 맡겨놓고 제주도 여행 가고 싶을까. 9시에 문 닫고 돌아온 소영이 몫으로 남겨둔 반죽 얹어 부침개 구워 주며 돈은 많이 벌었는지, 받은 돈은 어디 두는지 물었더니 오늘 12만원어치 팔았고 금고에 넣고 왔단다. 더 묻지 않았다. 문단속 알아서 잘 했겠지. 요즘 불화만 그리다가 연달아 나무 자르고 다듬고 망치질에 끌질을 했더니 어깨며 등짝이며 목이며 허리며 허벅지며 안 당기는 데가 없다. 며칠 더 작업해야 하는데 오늘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아령 좀 들며 몸 풀고 자야겠다. 물론 불화도 그리다 자야지. 날마다 돌아와 밤에 불화 그리는 재미에 빠져있다. 새로 시작한 불화는 백의관음이다. 지난 수업에서는 채색하지 않고 붉은 바탕에 금으로 선 두르고 얼굴과 몸에만 채색하는 홍탱화로 그려서 집에서 혼자 채색을 해보는 거다. 색을 몰라 전화해서 물어 영락, 화관, 가사, 장삼, 연꽃, 연대, 암빛, 제각각 색을 일일이 받아 적었다. 오늘도 오며가며 소리 연습하고 작업하면서 수업 테이프를 돌려가며 종일 들었다. 적벽가 ‘공명 오나라 들어가는 데’, ‘군사설움 대목’, ‘공명이 동남풍 비는 데’, ‘조자룡 활 쏘는 데’, ‘주유와 공명이 수륙군 분발하는 데’까지 입에 안 붙은 데는 여러 번씩 했다. 오늘은 목이 잘 나오는 것 같기는 한데 혼자 연습하다 보면 걱정이다. 제대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엉뚱한 데로 가면서도 제 멋에 겨워 취해서 모르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영 고치기 어려운 버릇이 몸에 배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
첫댓글 오호 ,,,삼조고라 .,
광진구청 고구려 관련 행사에서 탁본체험 한다고 의뢰한 겁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