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두음법칙 유감 (1)
(7/28/06) 나 균 용 목 사
한글맞춤법 제13항에는 “한 단어 안에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라고 했고, 그 예로는 두음법칙과 관계있는 단어들로는 ‘연연불망(戀戀不忘)’과 ‘유유상종(類類相從)’과 ‘누누(累累)이’를 들었다. 그 외에 우리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것들을 보면 노노법사(老老法師)와 寥寥(요요), 寥寥無聞(요요무문) 등이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곧 다음의 경우는 어느 것이 맞는가?
落落長松(낙낙장송/낙락장송), 朗朗, 琅琅, 浪浪(낭낭/낭랑), 冷冷(냉냉/냉랭), 綠綠, 碌碌(녹녹/녹록), 凜凜, 懍懍(늠늠/늠름), 略略(약약/약략), 歷歷(역역/역력), 年年生, 年年이(연연생, 연연이/연년생, 연년이), 零零碎碎(영영쇄쇄/영령쇄쇄), 燐燐(인인/인린), 赤裸裸(적나나/적나라), 喜喜樂樂(희희낙낙/희희낙락) 등.
국어사전에서는 후자를 취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우리말 바루기’라는 칼럼을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쓰고 있기에, 한 번 문의해 보았다. 왜 위의 경우에 전자(곧 같은 글자)로 쓰지 않고, 후자로 쓰는가라고. 그랬더니 그 기자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하면서 국어연구원에 물어보라고 하며 웹사이트 주소를 주었다. 그래서 이번엔 국어연구원에 문의하였더니, 그 대답이 놀라웠다.
첫째 이유는, “戀戀은 ‘연연’이라고 썼으니, ‘여:년’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略略, 歷歷, 年年生, 燐燐 등의 경우 ‘약약, 역역, 연연생, 인인’으로 쓰면 ‘야갹, 여격, 여년생, 이닌’으로 읽어야 하니까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론에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제13항에 단서를 더 달아서 이런 경우에는 예외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맞춤법에 맞고 안 맞고는 규정이 최고의 심판관인데, 한글맞춤법 규정에도 없는 이론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또한 그 외에 다른 단어들의 경우는 왜 전자로 쓰지 않고 후자를 택하는가?”라고 물었다. 국어연구원의 학자는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더 묻기를 “그러면 ‘一 一이’의 경우는 ‘일일이’라고 쓰는데, 왜 ‘이리리’라고 읽지 않고, ‘일리리’라고 읽는가?”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것은 이 경우의 ‘ㄹ'이 영어로는 ‘엘(l)’ 소리로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왜 ‘알(r)’ 소리가 되지 않고, 왜 ‘엘(l)’ 소리가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나쁘게 말하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燐燐의 경우, ‘인린’이라고 쓰면, 그 발음은 당연히 ‘일린’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실제 발음도 그러한가?”라고 물었더니, 역시 아예 대답을 하지 않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인닌’이라고 해야 옳다. 혹시 이 글의 독자들 중에 누구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해 주기 바란다.
한글맞춤법이라는 규정은 최후의 보루요, 최종 심판관이다. 우리가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이 맞춤법에 맞도록 바르게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만들고 국어를 가르친다는 사람들부터 이 규정을 무시한다면 우리 백성들이 어떻게 바른 글과 바른 말을 쓸 수 있겠는가?
더구나 맞춤법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옳다고 하면서 가르치면서, 규정대로 하자는 말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기는 ‘냉냉, 늠늠’이라고 쓰거나, ‘냉랭, 늠름’이라고 쓰거나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실상 이런 것은 우리 인생에서 지극히 작은 것이다.
내가 정말로 슬픈 것은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나아가 고치려고 하지 않는 완악한 마음이요, 세상 맞춤법에 대해서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성경의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하여는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학자연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 아프게 다가오면서 큰 두려움이 오기 때문이다.
선생이 잘못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인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