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북한산의 대남문을 오르는 길은 대단히 매혹적인 길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땀방울을 식혔습니다. 참나무의 여린 싹들이 그 오종종한 손을 펴서 인사해 왔습니다. 그 인사 받고 눈으로 답례하였습니다.
<인사회>는 2004년의 초입에서 부산 한림서원의 이경복사장님을 모시고 함께 대화하였습니다. 오랜 벗이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흐름들과 길에 관해서 생각했습니다. 3월에는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님께서 고민한 여러가지 인문학 출판의 방법들에 관해서 함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북한산은 말없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해왔습니다.
5월의 <인사회>는 광주를 찾으려 합니다. 지금은 성역화가 마무리된 망월동 국립묘역, 일명 하여 新묘역을 찾을 것이며, 원래의 망월동 묘역을 찾아 헌화할 것입니다. 나오는 길에 담양의 소쇄원에 하차하여 그 왕대나무 사이를 산책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작년 년중 독서캠페인의 방법으로 제안하였던 것의 상반기 집약판인 독서캠페인 제안과 집행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최근 룡천역 폭발사고 관련 지원 이벤트가 구상 중입니다만, 이것은 대상 서점에게 이익을 내걸지 않는 공동행동의 의미를 지닐 것이며, 우리에게도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작은 노력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단결의 의미에 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메이데이를 보내면서 우리는 노동절을 함께 기념하면서, 하다못해 메이데이에 관해 소수라 하더라도 함께 고민하는, 그리고 과제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비단 메이데이와 관련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출판,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여러 과제들에 관하여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생각들을 막아서는 일상의 과제들이 많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만, 선배님들 후배님들 함께, 동반자로 출판의 구조조정국면이라 불린다는 이 시기를 인사회가 지혜로운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2003년 광주를 다녀와서 올린 감상문을 후기로 남깁니다.
---------------------------------------------------------------------------------
[감사] 즐거운 기억 - 광주행 보고서
번호:3397 글쓴이: 김일신/西海文集
조회:78 날짜:2003/05/18 02:35
.. 내려가는 길은 신록이 화면 가득했습니다. 한국출판협동조합 마당에 모여 대기하고 있던 한진고속 관광버스 편으로 광주를 향해 출발했고요. 승용차와 RV차편을 이용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 힘, 신뢰감을 한진고속 관광버스에서 느끼면서요. 차창 가득히 5월의 신록이 스쳐지나가는 사이사이 모내기를 해 놓은 논과,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 물을 대 놓은 논과, 파릇파릇한 보리가 낭창낭창 바람에 흔들거리는 보리밭을 바라보면서요. 농촌에서 논일, 밭일을 거들면서 자란 저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마냥 고향 같고 그리운 품 같은 마음이었답니다.
아무튼, 동광주 진출입로로 해서 망월동 5.18 국립 묘지에 무사히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고요. 진입로에는 행사용 태극기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휘장처럼 걸려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광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신묘역, 그러니까 국립묘역이지요. 신묘역은 <민주의 문>이라는 한옥 형식의 커다란 문을 통과하여 광장과 조형물들을 지나 진입하게 되는데, 조형물이나 구성이 아름다운 게 광주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인식을 강조하여 심어주려는 정치권력의 의지를 읽게 하는 듯 하였었고요. 저의 친구 문창인은 2시경에 묘역에 도착하여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다니며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고요. 일행은 먼저 5월 묘역의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오월의 빛>이라는 시민 자원봉사자의 한 분 한 분에 대한 에피소드며, 의미들, 돌아가시던 상황들에 대한 소개 이야기를 들으며 묘역을 한 바퀴 순회하였고, 영정이 안치된 유영관에 들러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히 묘역을 참배하는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변에는 <민주주의 캠프>에 참가한 남녀 고등학생들이 열심히 수첩에 받아적거나 혹은 쫑알대고 하였는데, 그 모습들도 좋아보였습니다.
일행은 신묘역 참배를 마치고 민주열사 묘역(구묘역)으로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이한열열사의 묘소와, 정재홍 형의 벗이신 이내창 열사의 묘소, 저의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같은 분단의 친구 김준배의 묘소,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정치권력의 힘에 의해 불시에, 억울하게 생을 달리해야 했던 민주열사들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김남주 시인의 묘소도 거기 있었습니다. 오철수 시인의 "동아~"라고 가슴 절절한 시로 기억되는 성균관대 출시의 최동 열사의 묘소도 거기 있었습니다.
민주열사 묘역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언젠가 전두환 이순자 내외가 민박하고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전주환 대통령 이순자여사 민박 기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을 한번씩 밟고 지나가도록 파묻어 놓았는데, 다들 한번씩 밟아주고 들어갔답니다.
버스로 돌아오면서 일행은 일정에 관해 재점검을 했습니다. 광주 친구 문창인의 처가 전야제 준비팀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도청 앞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 일단은 광주에서의 일정을 문창인의 조언에 따르기로 했는데요. 그가 제안한 것은 도청앞 진입은 거의 불가능하고 차 속에서 시간만 다 버릴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15분 거리에 있는 담양 소쇄원에 가서 그 청량한 바람을 맞고 풍광에 눈을 씻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은 쾌히 찬성하고 기사님께 일정 변경을 요청드려 소쇄원을 향했습니다.
소쇄원으로 가는 길은 광주 시민의 생활 용수를 대는 광주호를 끼고 돌아가는 경치 좋은 길입니다. 아름다운 길을 바라보면서요 일행은 소쇄원에 도착하였고요. 저도 한번 방문하지 못한 곳, 이름으로 더 잘 아는 곳, 조선 정원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들 중의 하나라는 소쇄원을, 그리 해서 가보게 되었던 것이었네요.
바람이 통하고 바위를 따라 떨어지는 물줄기, 그 소리를 들으며, 왕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소리랑 들으면서요 한 바퀴 즐거운 산책을 하였습니다. 피톤치드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요.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고 귀경에 나서자고 하였습니다. 친구의 조언은 여전히 검증된 것이라서 <호반산장>에서의 촌닭백숙과 촌닭 닭도리탕은 천하 최고 였습니다. 광주호를 50미터 앞에 놓고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먹는 요리는 누구에게나 미식가의 면모를 키워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너무 자랑조로 서술한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요. 유쾌하여 즐거운 기분에 그리 서술이 되었으니, 이해를 부탁드리고요. 돌아오는 길은 버스가 전용차로를 달려가는 것이라 금방 서울이었습니다. 광화문, 신촌, 화곡동에서 일행은 차례대로 하차하여 집을 향했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다들 가벼워 보여 저 또한 기뻤습니다. 여러 회원님들 첫번째 광주행이 무사히 끝났음을 보고 드렸습니다. 정말 정말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고요. 내일 있을 홍교선 회원의 결혼식에서 뵙겠습니다. 편안히 주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