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 천당
고린도후서 5장 1-10절 /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성경에는 ‘천당’이란 직접적인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래 천당(天堂)은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로, 죽은 후 복된 세계를 가리킵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있는 신들의 궁전"을 뜻하며, 제한적으로 사후 처소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불교에서 유래된 천당은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과 동일한 개념에서 사용되어 신자들이 사후에 주님의 재림을 통해 영원히 사는 복된 하늘의 세계를 뜻합니다. 그런데 천당이란 용어가 불교에서 유래한 까닭에 불교와 기독교 모두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불교와 기독교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천당은 ‘극락 세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천당은 극락을 말하는 것으로, 윤회 속의 한 단계인 임시적 세계인데, 선행과 공덕으로 얻어지는 이상적인 세계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고 인연이 다하면 다시 윤회합니다. 불교는 믿음보다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궁극적인 해탈(열반)을 추구하며, 극락은 그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불교 경전에 따라 극락(아미타불의 정토), 천계 등 다양한 이상 세계가 존재하며, 이는 수행자의 공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의 천당은 천국 개념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안식처로서 슬픔, 고통, 죽음이 없는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천당은 성도들이 영원히 머무는 하늘의 처소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가 들어갑니다. 천당은 믿음을 통해 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천당은 죽음 이후 최후의 심판을 통해 영원히 결정되며,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머무르는 곳이기에 불교의 경우처럼 다양한 이상 세계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불교와 기독교 간에서 천당이 갖는 핵심적 차이는 기독교는 영원한 구원과 믿음을 강조하며, 천국은 최종 목적지입니다. 하지만 불교는 윤회와 깨달음을 중시하며, 극락은 임시적이고 해탈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한데, 기독교에서 천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 개신교에서 천당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유는 초기 선교 시기에 기독교 개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불교 용어인 '천당'은 하늘에 있는 복된 세계를 의미하며, 기독교의 천국과 비슷한 내세적 개념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특히 최봉석 목사(최권능)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용했는데, 이는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초기 선교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천당'은 비록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이지만, 이는 곧 성경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또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 곧 ‘(하늘의) 장막’이 한문으로는 ‘천당’인 까닭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뜻하는 ’천성‘이란 용어와 함께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낙원을 뜻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 5장 2절에서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곳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곧 영원한 처소(집)를 사모하며 소망에 있는 성도들이 들어갈 곳이니, 곧 우리들이 갈 영원한 본향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13-16에서 “이 사람들(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를 들어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믿음으로 산 인물)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나그네의 길에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위로부터 난 자이니, 흙(땅)에서 취한 몸은 불가불 벗고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영원한 새 몸을 입고 우리를 위하여 주어진 우리가 돌아갈 영원한 처소인 천당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기에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으로 우리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기까지 살아 있게 되든지 죽게 되든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에 있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라고 주님을 대함에 있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