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김 영 일
삼돌인 좋기만 했읍니다. 신이 났습니다. 형은 삼돌이만큼 좋아 떠들지는 않았읍니다. 그나 형이 젤 기쁠 게 뻔합니다. 형은 이번에 중학교에 붙었읍니다.
그것도 일류 학교입니다.
“너, 우리 형 중학교에 붙었다.”
삼돌인 뻐기며 철이한테 말했읍니다. 철이하고 담장 밑에서 구슬치기를 하는 참입니다. 봄볕이 따스합니다.
“어느 학교냐?”
철인 삼돌이가 우쭐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읍니다. 철인 형이 없었읍니다. 걸핏함 형 자랑을 하는 삼돌이가 아니꼬았읍니다. 아니꼬운 정도가 아닙니다. 괜
히 형을 믿고 우쭐거리기만 합니다. 보기 싫습니다. 보기 싫지만 역시 삼돌이한텐 기가 죽습니다. 지금도 그러했읍니다. 구슬치기를 하다 지게 되니까 삼돌이가 일부러 형 자랑을 하는가 봅니다.
“어느 학교는 어느 학교야, 일류 학교지.”
삼돌인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고 입을 비쭉했읍니다.
“일류 학교면 젤인가?”
“금, 똥통 학교가 젤이야?”
“똥통 학교가 어딨어? 다 저 할 탓이지.”
“뭐가 저 할 탓이야?”
“아무 학교에서나 공부만 잘함 되지 않아.”
“그래서 너 공부 잘하는구나?”
“누가 나 말이야.”
“형임 젤인가?”
“금, 젤이지.”
“뭐가 젤이야?”
“젤이지, 젤이지.”
“형 믿고 까불지 마.”
“누가 형 믿고 까불었어? 언제 까불었어?”
“흥, 형 없는 사람 다 죽겠네.”
“누가 죽는댔어.”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아.”
“금, 요건 부럽니?”
삼돌인 호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철이 코끝에 갖다대었읍니다. 그리곤 불었읍니다. 형의 하모니카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삼촌한테 받은 것이었읍니다. 형이 받은 선물이지만, 삼돌이도 가끔 불게 합니다. 아까 불다가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던 하모니카입니다.
“흥, 그까짓 것.”
철인 입을 비쭉했읍니다. 입을 비쭉했지만 부럽습니다. 부럽지만 철이에겐 없읍니다. 없으니 맞설 수도 없읍니다. 기가 죽었읍니다. 역시 형이 있는 게 좋을지 모릅니다. 아니 확실히 좋습니다. 좋지만 철이에게 형이 없으니 할 수 없읍니다.
“뭐가 그까짓 거야? 금, 너 있어?”
삼돌이도 입을 비쭉했읍니다. 못마땅합니다. 괜히 부러운 걸 부럽지 않은 체 합니다. 깍정이입니다. 깍정이라도 좋습니다. 마구 하모니카를 불었읍니다. 씽씽 소리가 잘 납니다. 소리가 잘 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힝 웃었읍니다.
“없어도 좋아, 부럽지 않아.”
“꽤 부러운 건 좋아하시네.”
“흥, 괜히 구슬치기하다 지니까 형 자랑이야.”
“누가 졌어?”
“금, 대봐.”
“좋아.”
“퍽도 좋아하시네.”
“이게.”
삼돌인 권투식으로 몸을 가누었읍니다. 그나, 덤비진 않았읍니다.
“금, 대봐.”
철인 구슬치기람 자신있읍니다. 공부도 삼돌이에게 지지 않습니다. 삼돌이네 집도, 철이네 집도 동산 밑에 있습니다. 모두 가난합니다. 가난한 건 상관없지만, 철이에게는 형이 없읍니다. 그것만은 어쩔 수 없었읍니다.
삼돌이 형은 물도 잘 긷습니다. 높은 지대라 수도가 없읍니다. 그래 길어 먹어야 합니다. 삼돌이 형은 학교 갔다 옴 두 지게, 세 지게 긷습니다. 그나 철인 길을 수가 없읍니다. 삼돌이도 긷지 못합니다. 긷지 못하는 건 같지만, 삼돌이에겐 형이 있읍니다. 형이 대신 긷습니다. 철인 대신 길을 형이 없읍니다. 엄마가 길었읍니다. 철인 어서 삼돌이 형같이 커서 엄마 대신 물을 길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읍니다.
근데, 괜히 삼돌인 형만 믿고 우쭐거립니다. 못마땅합니다. 못마땅해서 구슬을 흠뻑 따먹으리라 생각했읍니다.
“누가 질 줄 알구.”
“흥, 누군 진댔어.”
“금, 대봐.”
“좋아.”
삼돌이가 저만치 구슬을 댔읍니다. 철인 한참 노리다가 콕 쪼았읍니다. 딱! 잘 맞았읍니다.
“어때, 잘 맞히지?”
철인 씩 웃었읍니다. 역시 구슬치기람 자신있읍니다.
“까불지 마.”
삼돌인 입을 비쭉하곤, 또 저만치 구슬을 댔읍니다. 철인 또 한참 노려보다 던졌읍니다. 그나 맞지는 않았읍니다.
“에이.”
철인 분한 듯 혀를 찼읍니다.
“흥, 그렇게 맞았단 씨도 안 남게. 어서 대.”
삼돌인 입을 비쭉하고, 철이가 댄 구슬을 노려봤읍니다. 콕 쪼았읍니다. 콕 쪼았지만 허탕이었읍니다.
“하하하, 참 잘 맞히시는데.”
철이가 빈정거렸읍니다. 빈정거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구슬이 맞지 않아 속상했읍니다.
“까불지 마.”
이번엔 삼돌이가 시무룩해서 좀 멀리 구슬을 댔읍니다.
“그렇게 멀리 댐 어떻게 맞혀.”
“왜 못 맞혀.”
“안한다.”
“왜 안해?”
“그렇게 멀리 대는 걸 누가 하니?”
“금, 너도 멀리 댐 되지 않아.” 칠꽉펀때
“그래도 그렇게 멀리 대기 없다.”
“자, 금 해.”
삼돌인 할 수없이 아까만치 댔읍니다. 지금도 한 개를 잃었읍니다. 아깐 몇 개를 잃었는지 모릅니다. 괜히 고집부리다 철이가 딴 김에 안한다고 달아남 손 해ll 입니다. 손해보는 걸 할 필요는 없읍니다.
철인 한참 노려보다 딱 맞혔옵니다.
“홍, 어때 ? 잘 맞지?”
철인 씩 웃었읍니다. 정말 잘 맞습니다. 재수가 있읍니다. 구슬을 호주머니에 쓸어 넣고, 또 저만치 서서 노려봤읍니다.
“요것도.
이번에도 맞혔읍니다. 신이 났읍니다. 신이 나지만 삼돌인 기가 죽었읍니다.
기가 죽는 것보다 화가 났읍니다. 화가 나지만 할 수 없읍니다. 또 구슬을 댔읍니다.
“어때, 요건 부럽지?”
어쩐 셈인지 모르겠습니다. 철인 대는 족족 먹어치웠읍니다. 삼돌인 화가 터져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너 놀리기냐?”
삼돌인 씨근거리며 철일 쏴봤읍니다.
“누가 놀렸어?”
“금 왜, 남 약올려?”
“누가 약 올렸어?”
“네가 약 올리지 않았어?”
“내가 언제?”
“너 정말 이러기냐?”
“누가 뭐랬어?”
철이도 할말이 있읍니다. 아까 삼돌이가 하모니카를 씽불며,
“금, 요건 부럽니?”
하고, 놀린 적이 있읍니다. 철인 아까 그게 못마땅했읍니다. 기분나빴읍니다.
기분나빴지만 참았읍니다. 참다가 지금 복수를 했읍니다.
“잔소리 말고 어서 하기나 해.”
삼돌이도 아까 철이한테 한 말이 있는지라, 더 따지진 않았읍니다. 그저 구슬이 자꾸 맞는 게 분했읍니다. 분하지만 자꾸 맞는 구슬을 안 맞게 할 수는 없었읍니다.
“하람 누가 못할 줄 알구 ”
철인 코가 우쭐했읍니다. 구슬이 척척 맞는 게 신통했읍니다. 그나, 너무 우쭐해서 그런지 이번엔 허탕이었읍니다. 허탕은 삼돌이도 마찬가집니다. 삼돌이도 맞히지 못했읍니다. 그나, 다음엔 철이가 또 맞혔읍니다.
“어쩐 일이냐. 금 그렇지.”
철인 고개까지 끄덕이며 구슬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헤 웃었읍니다. 웃는 게 보기 싫습니다. 보기 싫지만, 이젠 삼돌인 구슬이 없읍니다. 다 털렸읍니다.
집에 가서 갖고 와야 할 텐데, 그 새에 철이가 집에 갈는지 모릅니다. 그렇담 큰 일입니다.
“철이야, 구슬 열 개만 꿔 줘. 이따 줄께.”
삼돌인 손을 내밀었읍니다. 기가 죽어 눈치만 봤읍니다.
“싫어, 집에 가서 갖고 와.”
철인 꿔줄 눈치가 아닙니다. 고갤 흔들었읍니다.
“누가 집에 가서 갖고 올 줄 몰라서.”
“근데 왜 그래?”
“이따 줌 되지 않아.”
“꿔줌 재수없는 걸.”
“뭐가 재수없어?”
“재수없지 않고. 안 꿔준다.”
“너 정말 그러기냐?”
“금 하모니카 불게 해.”
“하모니카를?”
“응, 금 한개 줄께.”
“누가 한 갤.”
“금, 두 개 줄께.”
“두 개도 싫어.”
“금, 세 개 줄께.”
“너 하모니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치만 한번 불고 도로 줄 게 아냐.”
“너 불 줄 아니?”
“그까짓 거 못 불어.”
“언제 배웠니?”
“배우지 않음 못 불라고.”
“금, 어디 불어봐.”
삼돌인 하모니카를 쑥 내밀었읍니다. 철이가 하모니카를 불 것 같지 않았읍니다. 못 불면 따질 이유가 섭니다. 그땐 구슬 잃은 화풀이라도 해야 하겠읍니다.
“누가 못 불 줄 알구.”
철인 하모니카를 받아 쭉 훑고는 생 불었읍니다. 씽 부는 품이 제법입니다.
씽씽 룹니다. 씽씽 불다 산토끼도 마구 불어 제낍니다.
“으응.”
뜻밖입니다. 정말 뜻밖입니다. 철이가 그렇게 하모니카를 잘 불 줄 몰랐읍니다. 잘 불 줄 알았음 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삼돌인 하모니카를 불 줄 몰랐읍니다. 형의 하모니카를 가끔 불어보긴 하지만, 노래에 맞춰 불 줄은 모릅니다. 근데 철인 어디서 배웠는지 곧잘 붑니다. 부럽습니다.
삼돌인 형도 있고 하모니카도 있지만, 철이가 부럽습니다. 구슬치기도 잘합니다. 척척 맞힙니다. 하모니카도 씽씽 붑니다. 척척 맞히고 씽씽 부는 철이가 역시 부러웠읍니다.
“너 어디서 배웠니?”
삼돌인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읍니다.
“왜, 부럽니?”
철인 하모니카를 입에서 떼고, 마주 바라보며 되물었읍니다.
“응, 부럽지 않고.”
삼돌인 사실대로 말했읍니다.
“정말?”
철인 뜻밖이었옵니다. 삼돌이가 부러워할 줄은 몰랐읍니다. 정말 몰랐읍니다.
삼돌인 형도 있읍니다. 하모니카도 있읍니다. 그런 삼돌이가 부러워하는 걸 보니 이상하기도 했읍니다.
“정말이지 않고.”
“금, 내 가르쳐줄까?”
“정말?”
“그래 금 나도 불고, 좋을 게 아냐.”
“응, 우리 그렇게 해.”
철이가 한번 불고, 삼돌이가 한번 불고, 씽씽 불었읍니다. 씽씽 부니 재미있읍니다. 삼돌인 서툴긴 하지만 서툰 대로 재미있읍니다.
“자, 아까 약속한 구슬 받아.”
철인 세지도 않고 한줌 집어 삼돌이한테 줬읍니다. 아까 삼돌이한테 딴 구슬은 죄다 준 셈입니다. 그나 그게 문재가 아닙니다. 그보다 하모니카를 불 수 있읍니다. 하모니카는 철이가 젤 좋아합니다. 아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하모니카입니다. 아버진 작년 봄에 갑자기 돌아가셨읍니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하모니카! 철인 아버지 생각을 하며 불었읍니다. 늘 불었읍니다. 늘 부니, 엄마가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하모니카를 치웠읍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읍니다. 어디다 감춰뒀는지 알 수 없었읍니다. 졸라도 내주지 않았읍니다.
이젠 하모니카 생각도 없읍니다. 생각이 없다가는 어디서 하모니카소리만 들림 아버지 생각이 났읍니다.
“언제 구슬 이렇게 많이 받기로 약속했어?”
삼돌인 구슬을 받아들고 멋적어했읍니다.
“구슬이 문제 아냐.”
“금, 뭐가 문제니?”
“하모니카가 문제지.”
“하모니카가?”
“그래, 우리 같이 불기로 했지?
“응, 나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 가르쳐줄께.”
철인 하모니카를 씽씽 불었읍니다. 씽씽 불며 동산으로 올라갔읍니다. 삼돌이도 궁둥이를 툭툭 치며 뒤따라갔읍니다.
동산엔 봄이 한창 피고 있었읍니다. 철인 잔디에 앉아 저쪽 산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를 불었읍니다. 아버지가 그리워졌읍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하모니카를 불면, 저쪽 산 위에 아버지가 나타나 철일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아버지!”
철인 울며 산을 향해 달려갔읍니다. 흰나비가 팔랑팔랑 뒤따라갈 뿐 삼돌인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읍니다. 봄을 실은 기차가 동산을
한바퀴 돌고, 철이가 달려간 산 밑으로 갔읍니다.
“철이야! 하모니카 불어.”
삼돌인 하모니카를 들고 철일 불렀읍니다. 메아리도 없어 되돌아오지 않았읍니다. 삼돌이가 마구 부는 하모니카 소리만이 흘러 내려갔읍니다.